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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19.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하나님이 계신 교회

관리자 2014-01-19 (일) 11:00 10년전 1125  

하나님이 계신 교회

고전 14:26-33

 

젊은 건축가가 꿈을 가지고 사무실을 개업한 지 얼마 안되어서 큰 부자로 이름난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부자 친구는 “이 설계도에 의해서 집을 잘 지어주게. 가장 좋은 재료를 쓰고 계산서는 언제든지 보내주게, 잘 부탁하네.” 하고 돌아갔습니다. 부자 친구의 의뢰를 받은 건축가는 곧 일을 시작해서 좋은 재로로 양심껏 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점차 더 많은 이익을 보려는 욕심이 생겨서 값싼 자재와 서투른 목수를 썼습니다. 집이 완성되었을 때 그는 부자 친구에게 계산서 영수증을 주었습니다.

부자 친구는 수표를 주면서 “이 집은 자네를 주려고 지은 것이네.” 하면서 그 집의 소유권을 건축가에게 주었습니다. 그렇게해서 그 건축가는 그 집에 살면서 겨울을 맞이했는데, 날씨가 추워지자 벽에 습기가 차오르고, 지붕과 문틀에서 비가 새어 들어오고, 문틈에서는 황소바람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긴 겨울 동안 그보다 더 시린 양심의 고통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공부하는 학생이 학교생활을 잘 했는지는 성적표를 받으면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세상에서 살면서 신앙생활을 잘했는지에 대해서도 ‘신앙의 성적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기본기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예배’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어떻게 하면 ‘성공적인 예배’ ‘승리하는 예배’를 드릴 수 있는지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고전 14:33)

바울은 예배를 통해 받는 신앙 성적표에 ‘무질서’가 아닌 ‘화평’이라는 점수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질서있는 예배’ ‘질서있는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당시 고린도교회 교인들 가운데 일부는 방언의 은사를 지나치게 강조하였습니다. 그들은 방언이야말로 자신의 영적인 권위와 능력을 나타내는 증거라고 여겨, 예배 중에도 경쟁적으로 방언을 하느라 무질서해지기 일쑤였습니다.

여기서 무질서란 말은 개역성경에 “어리석음”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교회를 섬기는데 꼭 악한 일을 하려고는 하지 않아도 법대로 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를 섬기면서 시기심으로 질투심으로 경쟁심으로 교회 일을 하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최초의 사람 아담의 아들 가운데 가인은 그의 아우 아벨과 같이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직업에 따라 하나님께 예물을 드렸습니다.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예물을 드렸고, 아벨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물만 받으셨습니다. 그러자 가인의 마음이 뒤틀리기 시작했습니다. 가인은 명색이 형이었는데 그 체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동생 앞에서 체면을 구겼다고 생각한 가인은 분을 참지 못하고 결국 동생인 아벨을 쳐죽였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극단적인 시기심과 경쟁심의 비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되 이처럼 경쟁적으로 섬기면 안됩니다. 가인은 동생의 제물을 열납된 것을 보고,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께 예물을 드렸어야 합니다. 우리들 또한 시기심과 질투심으로 교회생활을 하기보다는, 언제나 겸손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또 무질서는 무례함에서 오기도 합니다. “무례”라고 하는 말은 사람들이 자신의 지위를 지키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교인끼리도 모이면 서로 반갑게 맞이해 주고, 서로 도우며 섬겨야 하는데, “나는 이들하고 수준이 달라”하면서 교만한 태도를 갖게 되면 그는 교회에서 덕이 없는 사람입니다. 만일 교회에서 낯선 사람을 만났으면 잘 안내하고 떠날 때는 잘 작별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성령의 은사인 방언이나 예언을 질서있게 하도록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유기적인 통일성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님의 교회를 어지럽히고 화평과 질서를 깨뜨리는 거짓 진리가 전해지도록 방치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당회는 교회에서 신령한 진리가 선포되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요사이 거짓 진리로 사람들을 미혹하는 ‘신천지’나 ‘하나님의 교회’, ‘구원파’ 등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당회는 목사와 장로들로 구성된 기관이며, 진리를 수호하는 최전선의 방어진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온 성도들은 당회의 권위를 인정하고 당회의 처리에 복종해야 합니다. 교회의 무질서는 당회가 흔들릴 때, 신앙적으로 분명하지 못할 때 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무질서한 곳에는 하나님은 계시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가 무질서하고 당회가 권위가 없을 때 그것은 참된 의미에서 교회가 아닙니다.

 

고린도 교회의 예배는 아직 정해진 틀이나 순서가 없었습니다. 주보도 없었고, 사회자도 없었습니다. 함께 찬양하기도 하고, 누군가 성경을 읽고 해석해주고, 누군가는 예언을 하고, 또 누군가는 방언과 통역을 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예배가 성령의 감동에 따라, 전체의 유익을 위해 순서대로 진행되면서 덕을 세워나가기를 바랬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서로 차례를 기다리지도 않고, 한꺼번에 방언이나 예언을 하거나 몇몇 목소리가 큰 사람들이 순서를 독점하기도 했습니다. 무질서할 뿐만 아니라 신앙적 이기주의에 빠져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이기주의적인 태도는 참된 신자의 태도가 아닙니다. 이기주의는 하나님의 교회의 원수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이기주의자와 동행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 누구나 이기주의가 그 마음속에 가득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기주의 때문에 인간은 불행해집니다.

 

미국의 한 지역 신문 칼럼에 ‘비참하게 되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칼럼이 실렸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언제나 당신 자신만을 생각하라.

어떤 사람을 만나든 신경 쓰지 말고 자신의 이야기만 하라.

모든 것을 ‘나’에게 초점을 맞추고 되도록 자주 ‘나’라는 말을 사용하라.

상대방의 의견을 들어도 자신의 이야기를 멈추지 말라.

남들이 자신을 인정해주기를 바라라.

자신을 비판하는 자들을 용서하지 말라.

나보다 잘난 사람이 있다면 시기하고 질투하라.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절대로 듣지 마라.

남들을 믿지 말고 너 자신을 믿어라.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오직 ‘나’만 알고 있으라.

모든 일에 당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게 하라.

남에게 칭찬받기를 즐겨라.

하기 싫은 일은 하지 말고,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은 더욱 하지 말라.

당신 자신을 제일 사랑하라.

철저히 이기주의자가 되어라.”

 

이렇게만 하면 비참한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로마의 네로 황제가 황금으로 집을 짓고 자기만 행복하려고 했으나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기주의자는 자기 자신만 불행한 것이 아니라 남들도 불행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이기주의자는 숨 쉬는 시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과연 이와 같은 길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자신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신앙 성적표에는 ‘무질서’와 ‘이기주의’가 아닌 ‘화평’이라는 점수를 받아야 합니다. 바울 당시의 초대교회는 대부분 가정교회였으며, 그 안에는 믿지 않는 배우자나 가족 등 불신자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23절에 보면,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교회 안에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런 자들이 교회 안에 들어와서 예배드리는 모습을 볼 때, 무질서와 이기주의로 물든 모습을 본다면 과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고 하겠습니까?

이들과 함께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예배와 신앙생활을 통해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화평의 하나님”이심을 알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교회는 질서를 세우고, 덕을 세워야 합니다.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고전 14:26)

 

교회가 화평을 이루기 위해서는 올바른 메시지를 전해야 합니다.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고전 14:31)

 

성도들이 질서 가운데 덕을 세우며 ‘예언’,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게 될 때 그 교회는 하나님이 계신 교회라는 인정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그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 (고전 14:24-25)

 

그런데 ‘화평의 적’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공적으로 살지 않고 자기의 의를 내세우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자기의 의를 내세울 때 화평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피로만 우리가 평안을 얻을 수 있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인류 전체에게 화평과 행복을 줄 수 있습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 없었다면 인류는 영원한 불행을 짊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십자가의 사랑은 전 인류 구원을 위한 제물이 되어주셨습니다. 예수의 피는 우리만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전 인류, 지나간 세대와 오는 세대의 모든 사람들을 용서하시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성적표를 받기를 원하십니까? 교회는 질서와 평화가 있어야 교회입니다. 무질서와 이기주의는 몰아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그렇게 될 때, 불신자들조차도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하나님 앞에 서는 날, 우수한 신앙의 성적표를 받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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