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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26.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하나님의 은혜

관리자 2014-01-26 (일) 11:00 10년전 1169  

하나님의 은혜

고전 15:9-10

 

독일의 찰츠부르크에 히틀러의 아름다운 별장이 있었습니다. 히틀러는 자주 이 별장에 머물면서 휴식을 취하였습니다. 그 별장 주변에는 산책로가 있었는데, 호수를 굽이 굽이 돌아 경관이 아주 좋았습니다. 히틀러는 그 산책로를 따라 산책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어느 날 아침, 여느 때처럼 히틀러는 평상복 차림으로 별장을 나와 이 산책길을 걷다가 호수 쪽에 이르렀는데 발을 잘못 디뎌 그만 빠지고 말았습니다. 히틀러는 허우적 거리면서 살려달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그때 근처의 숲 속을 걸어가던 한 남자가 그 소리를 듣고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히틀러를 물에서 건져주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물에서 나온 히틀러는 얼마 후 정신을 차리고 위엄찬 모습으로 말했습니다. “당신은 정말 대단한 일을 했소. 나는 대독일 제국의 총통이오. 당신은 총통을 살린 것이요. 당신 이름은 무엇이요?”

“네, 코오엔입니다.”

자신을 살려준 사람의 이름을 들은 히틀러는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그런데, 독일 사람 이름이 아니군.”

“네, 그렇습니다. 나는 유대인입니다.”

“뭐? 유대인? 나는 유대인을 싫어하거늘.... 그러나 좋소. 비록 유대인이지만 큰 일을 했으니 당신의 소원을 한 가지 들어주겠소. 무슨 소원이든 한 가지만 말하시오.”

“그게 정말입니까?”

“나는 한 번 말한 것은 책임을 지는 사람이오. 소원을 말하시오.”

“예, 그렇다면 제 소원은 단 한 가지입니다. 물에 빠진 총통님을 구해준 사람이 저라는 사실을 발표하지 말아 주십시오. (만일 유대인인 제가 당신을 구해준 것을 나의 동족들이 알면, 그들이 좋아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히틀러는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는 그를 돌려보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는 전쟁 동안 유대인을 6백만 명이나 학살하고 유대인을 말살하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그가 그런 광기를 보였던 이유는 그의 유년 시절의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히틀러가 어렸을 때 그의 집은 너무 가난했고 그의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였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집을 비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날도 아버지가 집을 비운 사이에 어머니는 이웃 아저씨를 불러 들여 그와 불륜을 저지르는 것을 어린 히틀러가 목격했습니다. 그런데 그 남자가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래서 히틀러는 유대인을 저급하고 쓰레기 같은 민족이라고 망상해 버린 것입니다.

만약 이때, 히틀러를 구해준 코오엔이라는 유대인이 자신의 소원으로, 비참하게 죽어가는 자기 민족을 살려달라고 간청했다면, 어쩌면 유대인들의 대량학살은 피할 수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 민족을 구원하려는 마음보다는, 히틀러를 살려놓고도 자기 동족들로부터 미움이나 사지 않을까 해서 비밀로 해달라는 간청만 했던 것입니다. 참으로 비겁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살리는 것은 그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기에 귀한 일입니다. 영혼이 죽어가는 사람을 구원하는 일 또한 이처럼 소중한 일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과거의 모든 것을 버리고 복음전도에 나선 사람입니다.

 

사실 바울은 본래 유대인 가운데 베냐민 지파로서 났는데, 태어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을 만큼 철저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었으며, 태어나면서부터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명망있는 가문 출신입니다. 또한 학문으로는 당대 최고의 학자인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를 하였고 유대인의 관원의 지위에 올라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부활한 예수님을 만났고 인간은 누구나 예수의 복음만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진리를 안 다음 그는 자기의 모든 것을 버리고 복음을 들고 그 넓은 소아시아와 유럽을 3회에 걸쳐 전도여행을 하면서 복음을 증거하며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를 통해서 전해진 복음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유럽이 빛나는 유산을 가지게 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는 인간으로서 가지고 누렸던 세상의 좋은 것을 다 버리고 예수의 복음만 위해서 일평생을 살았으니 자신의 공로를 내세울 만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스스로 “나는 사도중에 가장 작은 자라”(고전 13:9)라고 하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겸손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자신의 과거 행적을 기억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유대인의 율법을 철저하게 신봉하던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바울은 초대교회의 지도자인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는 사건의 책임자로 있었던 사람입니다. 스데반의 순교 이후 초대교회 성도들이 각 지역으로 피했는데, 바울은 다메섹으로 피한 신자들을 잡아오겠다며 토벌대의 책임자를 자처하여 대제사장으로부터 위임장을 받아 내기도 했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한 때 이런 핍박자였기 때문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변화된 이후에 언제나 스스로를 겸손하게 낮추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제자들 가운데 자기가 제일 못난 사람으로 알았습니다. 실상 가문이나, 학문이나, 지위로 보아서는 바울과 다른 제자들은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바울은 대단한 배경을 가진 사람입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보면 바울의 가문이나, 학문, 지위를 따라올 사람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자기가 과거에 예수와 교회를 핍박한 것을 언제나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을 “사도들 중에서 가장 작은 자”로 알았습니다. 도리어 자기는 사도라고 칭함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인데, 자기가 사도가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하나님이 주신 사도의 직분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다른 사도들보다 더 많은 고통을 감내하면서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마땅한 본분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러한 헌신을 통해 바울은 기독교 2천년 역사에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한 신학자요, 문필가요, 복음선교사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한다는 것은 더 할 수 없는 영광이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부족하고 연약하고 아무런 자격도 없는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지 우리가 무슨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무엇인가 성취했을 때, 그것을 자기 자신의 지혜와 능력 때문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성도들 가운데도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자기 자신을 내세우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구약에 나오는 사울 왕이 그랬습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초대임금이었습니다. 그는 처음 왕이 될 때까지만 해도 매우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왕이 되자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주관해야 하는 제사를 자기가 직접 주관하기도 하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전쟁에서 얻은 승리를 자기가 잘나서 그렇게 된 것으로 착각하고 교만해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방 민족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왕으로 세움을 받은 사울은 점차 자기 권력에 도취되어 본분을 망각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블레셋 족속으로부터 나라를 구하는데 큰 공을 세운 다윗을 시기하여 죽이려고 혈안이 되었습니다. 단지 다윗이 자신보다 백성들로부터 지지를 더 많이 받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사울은 나라를 지킬 생각은 안하고 다윗의 꽁무니만 뒤쫓아 다녔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이처럼 성공하기 전과 성공한 후에 그 태도가 달라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다가도, 일단 성공하고 나면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고, 자신의 기득권을 누리고 지키는데 혈안이 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은혜를 모르는 자식을 두기란, 독사에게 물리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다.”세익스피어의 말도 있는데, 이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처음과 나중이 한결같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미국 개척시대에 보스턴에 스트로사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대단한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가난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꿈을 이룰 방법을 고민하던 끝에 그는 당대의 큰 부자였던 바턴이라는 사업가를 찾아가 자신의 포부를 설명하고 돈 2천 달러를 빌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빈털터리에게 2천 달러를 빌려줄 사람이 어디 있겠냐며 스트로사를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바턴은 스트로사의 이야기를 신중하게 들은 뒤에 선뜻 2천 달러를 꾸어주었습니다. 그 돈으로 사업을 시작한 스트로사는 꿈을 이루기 위해 성실하게 일하여 사업에 성공을 했고 바턴의 돈도 갚았습니다.

그 후 10년이 지나고 세계에 일대 공황이 와서 바턴의 사업도 모두 도산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소문을 들은 스트로사가 찾아와 바턴의 빚 7만 5천 달러를 선뜻 갚아주었습니다. 바턴은 놀라며,

"자네는 벌써 내 돈을 다 갚았는데 이것이 웬일인가?"

그러자 스트로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빌렸던 돈 2천 달러는 다 갚았지만 지난날의 그 큰 은혜를 다 갚았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하나님의 사랑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갚을 수 없는 큰 은혜지요."

은혜받은 것을 잊지 않았던 스트로사는 그 후에도 평생 넘치는 복을 누렸다고 합니다.

 

이처럼 다윗도 사울과는 달리 처음과 나중이 한결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왕이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전쟁에서 이긴 것도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로지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하나님을 위한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다윗도 잠시 그것을 잠깐 잊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정욕에 눈이 멀어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충직한 부하를 전쟁터에서 죽게 하는 씻을 수 없는 죄를 범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것 때문에 한 것 때문에 평생을 괴로워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한 순간이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할 때, 우리는 엄청난 범죄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프랑스에 있는 루브르박물관에 전시된 조각품 중의 하나는 작가의 이름을 알 수 없는 수작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얽힌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가난한 조각가가 헐벗고 굶주려 가면서도 피와 땀을 짜내는 노력의 결과로 걸작품을 완성시켰는데 하루는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기에 조각품이 얼어 상할까봐 자기가 입었던 겉옷을 벗어 덮어놓음으로써 조각품은 보존이 되었지만 그는 얼어죽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을 자신의 생명보다 소중하게 여기다 그만 목숨을 잃었다는 그 이야기는, 하나님의 창조물인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의 독생자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은혜를 떠올리게 합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자기가 만든 것을 사랑하기 마련입니다. 자기 자녀라면 더할 나위없을 것입니다. 하나님 또한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자녀로 삼아주신 우리들이 비록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그 자녀를 위해 희생하듯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어찌 잊으며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바울은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전 15:10)고 했습니다. 우리도 오늘이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건강하게, 이만큼 살고 있는 것도 전부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결코 잊지 않고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며 그 은혜에 보답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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