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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금 목사 강남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 2016년 4월 3일

관리자 2016-04-03 (일) 11:00 8년전 1457  


전병금 목사 강남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 2016년 4월 3일  

어떤 후배 목사가 저를 찾아왔는데 얼굴이 수척해서 꼭 어디 아픈 사람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저에게 자기 교회의 한 장로님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면서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그 교회는 작은 교회라 장로가 한 분 밖에는 안계셨는데, 이분은 매일 새벽기도도 빠지지 않고 기도를 많이 하시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그 목사님이 하는 일에 대해서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예배를 드린 후에는 꼭 전화를 해서 “왜 그런 소리를 하느냐?”, “왜 그렇게 맘대로 설교하느냐?”, “왜 그렇게 작게 말하느냐?”면서 잔소리를 쏟아낸다고 합니다. 그밖에도 사소한 행동까지도 지적하면서 “왜 그렇게 걷느냐” “왜 그렇게 머리를 깎았느냐?”고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해서, 사택에 전화벨이 울리면 깜짝 깜짝 놀란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목사가 긴 한숨을 내쉬며 말하기를 “하나님도 사람의 성질은 못 고치는 것 같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목사님한테 별다르게 해 줄 말이 없었습니다.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정말 고역일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창조주이신데 어떻게 사람의 성질을 못 고치겠습니까? 하나님은 불가능이 없는 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있고 사람이 할 일이 있습니다. 그 장로님은 비록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지만, 다른 사람의 실수나 잘못을 지적하는 것으로 자기의 의를 드러내고자 하는 고약한 옛 습성을 버리지 못한 것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목사님도 그보다 더 심한 경우를 당했는데 그저 기도하고 인내했더니 나중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옛 습성을 버리고 지금은 교회의 충성된 일꾼이 되었다고 합니다.
혹시 우리 가운데도 옛 습성을 버리지 못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없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17에서,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라고 했는데, 이는 우리의 성품과 생활습관도 모두 새롭게 변화되어야 한다는 요청이기도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죄와 세상에 대해 죽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우리는 이제 하늘에 속한 존재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하늘에 속한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 부단히 땅에 속한 육체를 죽여야 한다고 다소 과격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 3:5)
한 때 노예였던 자가 자유를 얻었으면, 이제 노예 같은 삶을 살 것이 아니라 자유인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노예 근성을 다 버려야 합니다. 하물며 하늘에 속한 자가 어찌하여 이 세상의 악한 것을 땅에 속한 생각과 행동에 얽매일 수 있습니까? 우리는 하늘에 속한 자로서 이 세상의 가치관과 풍조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마치 우리를 죽이는 독초나 해충에 물려 독이 온 몸에 퍼져나가지 않도록 경계하듯이 “땅에 있는 지체”를 억누르고 없애야 합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기 전까지는 이 땅에서 타락한 본성과 악한 기질을 가지고 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육체의 정욕을 따르는 타락한 행위에 대해서 계속적으로 억압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우리의 이 육체는 타락한 본성의 악한 도구가 될 수도 있고, 새 사람된 자의 선한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선한 도구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죽어야 할 더러운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본문은 “땅의 지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부패한 성품을 말합니다. 바울은 그 부패한 성품을 구체적으로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들은 땅의 것들을 즐기며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죄악들이기 때문에, 아주 죽은 것처럼 영원히 정지시키라는 것입니다.
어떤 학자는 이 다섯 가지 죄악을 2가지 종류로 분류했는데, “음행”과 “탐심”으로 분류했습니다.
그 중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은 ‘음행’의 일면을 말합니다. 음란과 부정은 음행의 행동적 표현이고, 사욕과 악한 정욕은 마음 속에 일어나는 음란한 충동과 욕심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음란’과 ‘부정’의 차이는, ‘음란’은 부정이라는 말보다 범위가 좁은 말로 불법적으로 취하는 성적 행동이고, ‘부정’은 성문제에 대한 일체의 불합리한 언행을 가리킵니다. ‘사욕’은 헬라어로 ‘파토스’라고 하는데, 이는 격렬한 행동을 말합니다. 또 ‘악한 정욕’은 잠재적 색욕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우리의 몸을 하나님의 거룩한 전이라고 했습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그런데 음란의 죄에 빠진 자는 하나님의 성전인 몸을 더럽힘으로 하나님을 영원히 떠날 수도 있기 때문에, 음란이야말로 신앙생활에서 제일 무서운 죄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의 서신에 죄를 열거하면서 처음에 이러한 음란의 죄를 열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도 성적인 타락이 극에 달했습니다. 선정적인 대중매체는 신문, 방송, 영화, 인터넷, 스마트폰 등을 통해 성적 타락을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여성가족부의 ‘2010년 성매매 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연간 성매매 규모가 9조원에 육박하고, 여성 성매매종사자의 수가 15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게 추정치이니까 밝혀지지 않은 것은 더 규모가 클 것입니다. 여기에다가 사회 지도층 인사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성추문, 성상납 등도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흔히 소돔과 고모라를 성적으로 타락한 도시의 상징처럼 여기는데, 오늘날 성적 타락에 비교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할 것입니다. 믿는 성도마저 여기에 빠지면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또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죄가 있는데 그것은 ‘탐심’입니다. 탐심은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가지고 싶은, 채워지지 않는 욕구를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 것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그것을 추구하기에 전심전력을 다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을 여력이 없습니다. ‘탐심’의 헬라어 의미는 “더 움켜쥔다”는 뜻인데, 이는 ‘만족할 줄 모르는 탐욕’을 말합니다. 이것은 쉽게 만족시키려 하는 것은 마치 밑빠진 독에 물을 채우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명심보감에도 “만족할 줄 알면 즐거울 것이요, 탐욕에 힘쓰면 근심하게 된다”고 했는데, 현대인들은 대부분 탐욕에 힘쓰다가 근심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코미디언 조지 번이 탐심에 대해 이런 농담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창조하셨는데, 왜 아담과 하와에게 옷을 지어주시지 않았을까요. 만일 옷을 주면 주머니를 달아달라고 할 것이고, 주머니를 만들어주면 거기에 돈을 가득가득 채워달라고 징징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탐심’은 매우 광범위하게 죄를 짓게 합니다. 재물에 대한 탐심은 남의 것을 도둑질하거나 사기치거나 폭력으로 갈취할 수도 있습니다. 또 명예와 명성을 가지려고 악하고 야비한 야심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또한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해 권모술수를 서슴지 않기도 하고, 흉폭한 독재자가 되기도 합니다.
바울은 이같은 탐욕을 “우상숭배”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우상숭배가 되겠습니까? 우상숭배의 본질은 자기 손에 넣으려는 욕망입니다. 사람들은 신으로부터 무엇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우상을 만들고 섬깁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 가운데도 간혹 자기의 종교적 열심히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얻어내고 설득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신을 조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두가 우상입니다. 그래서 이 탐심은 우상숭배라고 해야 합니다.
이에 대해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고 하셨습니다. 세상의 재물과 명예와 권력을 추구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잘 섬기면서 하나님 나라의 의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반대로 합니다. 먼저 하나님이 나에게 물질과 권력과 명예 같은 세상적인 것을 주면, 그 다음에 하나님을 잘 섬기겠다고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탐욕이고 우상숭배입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세상 것을 하나님보다 앞세워서는 안됩니다.
바울은 이렇게 성적인 죄와 탐욕을 부리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고 했습니다.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골 3:5). 하나님의 진노는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그 하나는 그들이 범하는 죄 가운데 그냥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롬 1:24),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롬 1:28).
또 다른 하나님의 진노는 최후의 심판 자리에 그들을 세우는 것입니다 :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계 6:17).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음란과 탐심으로 아무리 잘 사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이미 하나님의 심판대 위에 서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더러운 것을 다 청산해야 합니다. 땅에 있는 지체를 죽여야 합니다.
바울은 그 누구도 이러한 하나님의 진노에 직면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골로새 교인들에게도 예전에 이러한 죄에 빠져있었음을 지적하고 또다시 옛 생활로 돌아가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골 3:7-10).
함부로 화를 내거나 마음속에 늘 불평불만이 가득한 것은 기질상의 죄입니다. 또, 다른 사람을 속이거나 악의적으로 비방하거나 욕설을 하는 것은 언어상의 죄입니다. 이런 것은 ‘옛 사람의 행위’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옛 사람의 부패한 본성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고 새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새사람”이란 고후 5:17의 “새로운 피조물(new creation)”, “새것”(the new)과 같은 의미로서 성령으로 거듭난 자아를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 안에서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자본주의가 판을 치는 이 세상은 정말 성적인 타락과 물질에 대한 과도한 욕심으로 점점 더 하나님과 멀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정신을 차리고, 이런 세상의 유혹에서 벗어나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며 살아야 합니다. 시편 73편 1절에서, 하나님은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다시 만나는 그날에 순결한 다섯 처녀들처럼 주님을 맞이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정말 깨끗하고 정결하여 아무 흠도 없는 신자들이 되도록 날마다 애쓰는 자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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