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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02.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부활의 확실성

관리자 2014-02-02 (일) 11:00 10년전 1109  

부활의 확실성

고전 15:12-19

 

1

 제가 오래 전에 성지 순례를 하던 중 로마 교회의 ‘카타콤’이라는 유적지를 방문했습니다.

예수의 부활 후 제자들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여러 곳에 흩어졌습니다. 당시 로마는 막강한 힘으로 세계를 정복해 가고 있었고, 정복한 지역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서 각 지역의 종교와 문화를 인정하는 포용정책을 했습니다. 즉, 로마 황제를 인정하는 이들에게는 그들의 종교를 인정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황제 숭배를 거부하였기 때문에 엄청난 박해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의 기독교인들에게는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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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박해를 피하여 기독교인들이 카타콤(Catacomb)이라고 하는 지하묘지로 모여들었습니다. 카타콤은 지하 10~15m 깊이에 겨우 한 사람이 통행할 정도의 통로를 만들고, 중간 중간에 방을 만들어 죽은 사람의 뼈를 보관해 두던 곳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카타콤은 미로처럼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구조인데 이런 경우 수 km나 되고 그 안에서 길을 잃는다면 돌아올 수도 없을 정도로 복잡했습니다.

지하묘지에서의 삶이란 생각만 해도 처참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카타콤에서의 삶은 당대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박해가 길어지면서 몇 대에 걸쳐서 그곳에 숨어 살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 황제에게 복종하고 로마인들의 종교를 따르면 편하게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어두운 대대로 지하묘지에 숨어 지내는 고난을 감수한 것을 생각하면 정말 머리가 숙여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그 혹독한 고난 속에서도 자신들의 믿음을 순수하게 지켜나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부활신앙’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부활을 자기들의 부활로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이들도 초대교회에는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고전 15:12)

 

고린도 교인들 중에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가 부활한 것은 알았지만, 그것이 자신들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며 예수의 부활과 자기 자신을 별개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또한 그들 가운데는 죽은 자의 부활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인간이 어떻게 죽었다가 살 수가 있느냐며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현대인들 가운데도 똑같은 의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현대 과학이 고도로 발달해서 수많은 질병을 정복하고 인간의 수명도 늘어났지만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사이비 종교에서나 말하는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들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증언은 부활의 확실성을 의심하는 오늘날의 현대인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2

성경은 모든 인간이 죄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죄는 하나님을 떠난 ‘불순종’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금지하신 선악과를 먹은 이후, 인간은 하나님의 명령에 거역하는 불순종의 죄 안에 빠져 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처음 인간을 창조하실 때는 자유의지를 주셔서 죄를 지을 수도 있고 안 지을 수도 있었는데, 아담의 타락이후부터 우리 인간에게서 그 자유의지가 사라졌습니다. 인간은 이제 자유의지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죄를 지을 수밖에 없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할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인간은 모두 다 마귀의 손아귀에 붙잡혀 눈이 멀어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 인간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고 했습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에베소서 2:3)

그런데 일반 교육학에서는 원래 인간에게는 선한 속성이 있기 때문에 그 선한 것들을 잘 개발하고 노력하면 인간은 얼마든지 선하게 바뀔 수 있다고 합니다. 좋은 환경과 조건을 마련해 주면 누구나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있다는 낙관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좋은 환경과 여건만 만들어 주면 누구나 선하고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수한 교사들과 첨단 교육 시설을 동원하여 좋은 교육환경을 마련해 준다면 교육의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에게 있어서 최고의 환경이라고 할 수 있는 에덴동산에서 인간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타락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인간이 선하게 되는 것은 좋은 환경이 뒷받침되기만 하면, 내재되어 있는 선한 속성이 밖으로 발현되는 것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인간 외부로부터 ‘선하게 만드는 힘’이 들어와야 가능한 것입니다. 즉, 도저히 선할 수 없는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선하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의 타락은 인간의 불순종으로 인한 것인데, 불순종이란 ‘자기 중심성’ 즉, 자기가 자기 인생의 왕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본질적인 인간의 죄인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 반드시 하나님과의 관계성 속에 거할 때, 즉, 그 분 안에 있을 때만이 진정한 평안을 누릴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고서는 인간은 아무리 자기하고 싶은 것을 다 해도 거기엔 공허함과 허무함만 있을 뿐, 참된 행복이 없습니다.

우리 생각해 봅시다. 과거에 우리가 하고 싶은 것 다하고 살 때가 행복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섬기면서 그분의 가르침대로 살면서 절제하고 사는 지금이 행복합니까?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 섬길 때가 아닙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며 그분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합니다.

 

3

우리 기독교인들의 믿음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있습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믿음은 예수의 부활로 우리가 영원히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의 대표이십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인 우리의 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다 해결되었습니다. 또한 그분이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우리들 또한 다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과학과 이성을 앞세워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자연의 기본 법칙에 위배되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합니다. 예수의 부활은 미신적인 사람들이 단지 상상으로 만들어낸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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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신문사 기자였다가 윌로우크릭 교회의 사역자로 변신한 리 스트로벨(Lee Strobel)이라는 사람도 그러한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탁월한 법률 전문기자였던 리 스트로벨(Lee strobel)은 예일대 대학원에서 법학 석사 학위를 받고 1981년까지 저명한 신문사 '시카고트리뷴'의 법률부 부장을 지냈습니다. 그는 교회에 대한 적대감으로 가득 차 있고 냉소적인 무신론자였습니다. 그러다가 아내가 윌로우크릭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점점 아내가 긍정적이고 성실하고 확신에 찬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러한 아내의 변화를 목격한 리 스트로벨은 기자 출신답게 그 원인에 대해 조사하기로 마음먹고 기독교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2년 동안 많은 책을 읽고, 전문가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역사와 고고학, 고대 문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렇게 기독교의 핵심 사건과 성경을 풀어가면서 그는 움직일 수 없는 여러 가지 증거를 접하고 결국 신실한 크리스천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리 스트로벨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윌로우크릭 교회의 빌 하이벨스 목사와 함께 복음을 전하는 탁월한 목회자로 사역하였습니다. 그는 이러한 과정을 그의 책 “예수는 역사다”(The case for Christ)라는 책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리 스트로벨은 그 책에서 저명한 신학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부활의 확실성’을 두 가지 증거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목격자 증거’이고 또 하나는 ‘정황증거’입니다.

 

(1) 목격자 증거 : 예수님의 부활 현장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사람들은 많습니다. 고린도전서 15:5-8에 보면, 죽은 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께서 ‘게바’와 ‘열두 사도’ ‘오백여 형제’ ‘야고보’ ‘모든 사도’ 그리고 ‘바울’에게 나타나셨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증거할 때 적어도 500명 정도는 그 증언이 사실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만일 바울이 허튼 소리를 했다면 초대교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부활의 증인들’이 그에 대해 아무런 반박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복음서와 사도행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증언자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예수의 부활을 ‘전설’이니 ‘환상’이니 하면서 애서 부인하려고 하지만, 수많은 목격자들이 당대에 존재한다는 것은 그러한 주장이 얼마나 유치한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2) 정황증거 : 어떤 범죄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직접 목격자가 없어도 영수증, 전화 사용 기록, 차량 번호, 지문, DNA 성분 등의 정황 증거가 결정적인 단서가 되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 또한 최소한 다섯 가지의 정황 증거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제자들은 죽기까지 믿음을 지켰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까지만 해도 제자들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확신 할 수 없어서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그들이 다시 모이더니 “예수가 부활하셨다”고 전파하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 일을 하는데 아무런 이익도 없고 오히려 목숨을 잃는데도 말입니다.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도 믿음이 불분명했던 그들이 기꺼이 목숨을 내놓으며 부활을 증거하는 특별한 신앙을 가지게 된 것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는 것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우리 기독교 역사에는 순교자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죽으면서까지 믿음을 지킨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게 될 영원한 삶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많은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부활을 믿기 때문에 그 부활을 얻기 위해 수고와 절망, 옥에 갇힘, 구타, 심지어 칼에 목베임을 받은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히 11:36-40).

 

둘째로, “바울을 비롯한 적대자들의 회심”입니다.

세상에는 명예와 권력과 재물을 얻기 위해, 아니면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 자신의 입장을 180도 바꾸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고 오히려 생명까지도 잃을 수 있는데 종전의 입장을 바꾸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과 같은 기독교에 적대적인 자가 어떻게 기독교 선교사가 될 수 있습니까? 그 일을 통해 온갖 고난을 겪다가 결국은 순교하는데 말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에 바울은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셋째로, “유대 사회 구조의 변화”입니다.

유대인들은 700년 동안이나 박해을 받았지만 오늘날까지 끈질기게 자기 민족의 정체성과 사회 구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유대인으로서 살아남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단 3년간 활동한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로 인해 몇 백년간 지탱해오던 제사, 율법, 안식일, 유일신사상, 메시야사상 등 핵심적인 사상과 제도가 상당수의 유대 기독교인에 의해 포기되거나 획기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넷째로, “성찬과 세례”입니다.

성찬과 세례는 예수님의 죽음을 기념하는 의식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굳이 그 슬픈 사건을 기념할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성찬과 세례는 곧 부활을 기념하는 의식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교회의 출현”입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직후 생겨난 교회는 20년이 채 되기도 전에 로마 황실에 들어갈 정도로 급속하게 성장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후 로마 제국과 전세계에 퍼져 나갔습니다. 가난한 시골의 목수의 아들인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혔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메시지를 선포하는 이들이 어떻게 이러한 역사를 이루어냈는지는 일반 역사가들은 아직도 그 의문을 풀 수 없을 것입니다.

 

오직 예수의 부활만이 이 모든 것을 설명해 줄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의구심이나 회의적인 생각이 자리 잡을 틈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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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오넬 럭후(Sir Lionel Luckhoo) 라는 사람은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법률가로 이름이 실린 사람입니다.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에게서 두 번 기사 작위를 받았으며 판사와 외교관으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혼자서 부활에 관한 역사적 사실들을 엄밀히 분석한 후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거는 티끌만큼도 의심할 수 없다. 그것은 너무나도 분명해서 나는 불가항력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4

이처럼 부활은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초가 되는 신앙생활의 핵심이요 전부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본문에서 만일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지 않았다면 세상에서 성도만큼 불행한 자가 없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17-19). 그런데도 현대의 기독교인들 가운데는 예수의 부활은 믿으면서도 자기 자신의 부활과 영생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가진 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이런 신앙은 실상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정말 불행한 믿음입니다.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써 우리의 모든 죄가 다 용서되었다는 사실을 믿을진대, 예수의 부활로 우리는 이미 영원한 생명을 얻었음을 믿어야 합니다. 이 놀라운 예수의 부활이 나에게 주는 부활의 영광임을 믿고 예수의 부활을 전하며 세상을 깨워나가야 합니다.

예수의 생명의 역사 외에는 이 땅에 희망이 없습니다. 예수 없는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통일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 주님의 부활 때문에 우리는 가치가 있고 영광이 있고 축복이 있습니다. 이 부활의 소식을 증거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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