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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6.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라

관리자 2014-02-16 (일) 11:00 10년전 1142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라

고전 15:50-58

차병원을 설립한 차경섭 원장은 개척교회를 하면서 눈물로 교회를 섬긴 목사의 아들입니다. 그 아버지가 어느 날 아들 차경섭에게 유언으로 말을 했습니다. “나는 기도와 봉사와 섬김으로 터를 닦아 놓았다. 그 터 위에 교회와 병원과 학교를 세워 하나님을 잘 섬기도록 해라”고 했습니다. 후에 그는 의사가 되어 종로 3가에 작은 장소를 새로 얻어 조그마한 산부인과 의원을 개원했는데 어느덧 역삼동과 분당에 차병원을 세우고, 은혜 교회를 세우고, 포천에 중문의과대학을 세우게 되어 아버지가 터전을 닦고 그 아들은 그 위에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전 15:58)

라는 말씀처럼,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을 위해 수고를 할 때 그것이 주안에서 헛되지 않게 해 주십니다.

 

그런데 이런 세상적인 것보다 더 큰 영적인 은혜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죽음을 이기는 영적인 은혜입니다.

그럼 ‘죽음’이란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서 인간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오직 성경 밖에는 없습니다. 유교에서는 아예 죽음에 대해 ‘모른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어느 날, 공자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죽음에 대해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공자는 “우리가 삶에 대해서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에 대해서 알 수 있으랴?”하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죽음에 대한 문제는 이 세상의 그 누구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만 이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곧 ‘죄’라고 했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약 1:15)

 

‘죽음’의 원인이 ‘죄’이기 때문에, 사실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것은 ‘죄’입니다. 사람이 죄를 지을 때마다 죽음의 독침을 맞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음과 죄는 동일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죽는 이가 있다면 이는 정말 비참한 일입니다. 예를 들어, 가롯 유다는 죄를 해결하지 못하고 자살했습니다. 그는 예수를 팔고 마음이 안정되지 못해서 죽었습니다. 마음의 불안은 죄가 해결되지 못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본문 57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죽음을 이기게 하신다는 것이며, 이는 곧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죽음을 이기는 죽음’이었습니다.

우리 주님의 죽으심 속에는 정말 오묘한 진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전 인류의 죽음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어떤 분이 또 있겠습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습니다. 이에 대해 베드로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사도행전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세상 사람들에게 ‘죽음’은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평안히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고, 영생에 들어갈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눈을 감을 수 있었습니다.

무디는 “땅은 물러가고 하늘은 열린다.”고 했고, 요한과 안드레는 “불수레가 왔으니 나는 올라타야 하겠다”고 하였고, 존 낙스는 “그리스도 안에서 살라. 그러면 죽음이 무섭지 않다”고 했고, 죠지 워싱턴은 “나는 지금 죽는다. 그러나 조금도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본문에서 바울도 이와 같이 죽음 앞에서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5: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이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죽음을 이긴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영생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승리를 위해서가 아니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의 평안을 얻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미련하기 때문입니다. 잠언 17장 24절에서, “미련한 자는 눈을 땅 끝에 두느니라.”(잠 17:24)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세속적인 욕심을 버리지 못하기에, 세상의 근심 걱정으로 인해 평안을 얻지 못하고 두려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게 아무것도 없어도 예수 한 분 만으로 만족’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예수 제일주의’로 사는 신앙이 위대한 신앙입니다. 이에 대해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시 57:7)

 

고구려, 백제, 신라로 나누어진 삼국을 통일하는데 주역을 감당했던 김유신은 젊은 시절에 매일 기방을 드나들며 방탕한 생활에 빠졌습니다. 그러다가 그의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내가 이대로 기생집이나 다니다가는 어찌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기방 출입을 끊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김유신이 술에 취해 말을 타고 가던 중에 그의 말이 전에 하던 대로 기생집 앞까지 그를 태우고 갔습니다. 기생집 앞에서 술이 깬 김유신은 말에서 뛰어내려 그가 그렇게 아끼던 말의 목을 베어 버리고 다시는 그 집에 가지 않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김유신의 결단력을 보여주는 이야기인데, 그는 이런 결단력을 통해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룰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 또한 이렇게 예수 중심으로 마음을 확정해야 합니다. 주님만 바라보기로 작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 중심으로 산다는 것은 주의 일에 나서겠다는 말입니다. 미국의 오클라호마주 오럴 로버츠 대학을 세운 오럴 로버츠(Oral Roberts, 1918-2009)는 청년시절 폐병으로 죽을 위기에 있었는데, 그 지역 어떤 여성도가 와서 예수님을 전하면서 “너는 성경 말씀을 읽고 그대로 살아라. 그리고 병이 낫게 되면 주의 종이 되어라”고 했다고 합니다. 오럴 로버츠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말씀대로 했는데, 정말 그의 병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놀라운 체험을 한 오럴 로버츠는 그 뒤에 주의 종이 되어 영적인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주님의 일이라고 하면 만사를 제쳐두고 충성했습니다. 특히 텔레비전 방송 목회를 개척하여 수 많은 사람을 믿음으로 인도했고, 1963년 오클라호마 털사(Tulsa)에 오랄 로버츠 대학을 세워, 하나님의 일꾼을 배출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이처럼 영적인 일에 나서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날마다 일어나는 세 가지 기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성경말씀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것’,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전도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믿고 사랑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스운 이야기 같지만 현실입니다.

영적인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은 전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의 부활 승천 후 성령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을 들고 나갔습니다. 그래서 복음이 세계에 전해진 것입니다. 만일 복음이 나 하나에서 머무르면 복음은 결코 전해질 수 없습니다.

 

19세기 미국의 부흥 전도자 무디 목사는 수십만 명을 주님께로 인도한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하루에 한 사람에게 반드시 복음을 전한다는 목표를 세워서 매일 실천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하루는 아무에게도 전도할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날 밤 잠 자리에 들었지만 그게 자꾸 마음에 걸려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시 옷을 입고 어두운 밤 거리로 나갔습니다. 인적도 드문 한밤중에 전도할 대상자를 찾다가, 한 술 주정꾼을 만났습니다. 그는 다짜고짜 다가가서 "예수님을 아시나요?"라고 물었습니다. 그 술 주정꾼은 '예수는 무슨 예수?' 하면서 화를 벌컥 내었습니다. 결국 무디는 쫓기다시피 하여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났습니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기에 나가서 문을 열어보니 예전의 그 술주정꾼이었습니다. 그 술주정꾼이 고백하기를 “그날 밤 예수님을 아느냐는 말에 크게 화를 냈으나 그로부터 그 말이 내내 귓전에서 떠나지 않아 결국 예수를 믿기로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의 씨를 뿌리는 일에, 주의 일에 힘써야 합니다.

 

톨스토이는 ‘세 개의 의문’이란 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1)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언제인가?

(2) 이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3)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 톨스토이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1)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시간은 현재다.

(2) 이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사람은 현재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이다.

(3)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현재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일이다.

 

이 말에 신앙적인 의미를 부여하면 이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현재’, ‘옆에 있는 사람’에게 ‘전도하는 일’ 입니다.

 

2014년 새해에 복음 전하는 일에 더욱 힘써서, 여러분 때문에 구원받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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