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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30.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당신은 주님의 사람

관리자 2014-03-30 (일) 11:00 10년전 1082  

당신은 주님의 사람

고후 1:12-14

 

우리나라 역사를 살펴보면 시대에 따라 종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고구려 때 들어온 불교는 삼국시대에 불교문화를 꽃 피웠고, 원효나 의상 같은 큰 인물을 배출하기도 하였습니다. 고려 시대에는 불교가 국교로 받아들여지기도 했습니다. 한편, 같은 삼국시대에 전래된 유교는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기능하면서,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 시대에 이르러 전성기를 구가하였고 퇴계 이황이나 율곡 이이 같은 걸출한 인물을 낳았습니다. 그러다가 구한말에 기독교가 전래되었는데, 서구 문물과 함께 들어온 기독교는 우리나라의 근대화를 이끄는 선구적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상재, 이승훈, 안창호, 한경직, 김재준, 함석헌 같은 위대한 인물들이 배출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김재준’이나 ‘함석헌’은 한국 기독교가 ‘소승적 기독교’에 머물러 있을 때, 이를 ‘대승적 기독교’로 발전시킨 위대한 인물이었습니다. 저의 스승이기도 했던 김재준 목사는 한국교회가 교회 안에만 머물러 있을 때, ‘역사참여의 신학’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교회란 세상을 변화시키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탁월한 혜안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재준 목사는 역사를 강조했는데, “역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무대이기 때문에 우리는 때와 징조를 분간하는 눈을 가져야 한다. 지금 하나님이 이 역사현실에서 무엇을 지향하고 계신가 하는 것을 분별하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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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준 목사는 한국교회가 역사를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역사참여적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탁월한 가르침을 전해 주었습니다. 만일 한국교회가 오늘날까지 김재준 목사의 이러한 가르침을 새겨듣고, 역사참여적인 교회가 되기에 최선을 다했더라면, 오늘날 끝을 모르고 추락하는 안타까운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한신대에 들어가게 된 것도 김재준 목사님 때문이었습니다. 제 고향 교회 목사님이 그 당시 설교하실 때마다 김재준 목사님을 말하곤 하였는데 저도 덩달아 김재준 목사를 흠모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분 밑에서 배우고 싶은 마음으로 그분이 교수로 계시는 한신대에 입학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한신대에 입학한 다음 제일 먼저 김재준 목사님을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먼발치에서 그 분을 뵙고 그만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기대했던 모습은 성자같이 근엄하고 성스러운 모습이었는데, 직접 그분을 보니 그냥 평범한 시골 아저씨 같은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 아직 어렸던 저는 한국교회 130여년 역사 가운데 위대한 성자였던 그분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곧 우리 제자들은 그분을 스승으로 모셨던 것을 자랑스럽게 여길 정도로 그분을 존경하고 따랐습니다. 지금도 그분이 가르쳐 주신 것을 기억하고 그대로 따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누군가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은 그 관계가 매우 친밀할 뿐만 아니라, 자랑스러워하는 대상의 삶이 얼마나 존경스럽고 흠모할만한 것인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과 고린도 교인들과의 관계가 이와 같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는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그것이라.”(고후 1:14)

 

바울의 이러한 바람은 고린도 교회와의 관계 회복을 절실히 바라는 바울의 심정이 담겨있는 것이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세운 교회였는데 바울이 떠난 후 여러 가지 문제로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때 바울은 계속해서 복음을 증거하는 선교여행 중에 있었습니다. 바울의 선교여행은 오늘날의 ‘여행’같은 취미나 레저가 아니라, 기독교의 근거가 없는 지역에 가서 복음을 증거하며 교회를 개척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죽음과의 싸움과도 같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바울의 유일한 바람은 더 많은 지역에 교회를 세워 복음은 전파하는 것이고, 그렇게 세운 교회가 믿음의 뿌리를 내리고 성숙한 신앙인을 배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세운 교회에서 들려온 소식은 위로와 도움이 아니라 비난뿐이었으니, 바울에게 너무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특별히 고린도 교회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바울이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신뢰성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곧 방문하겠다고 해놓고 두 번이나 연기한 일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의 입장에서 보면,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복음을 전해야 할 일이 여기저기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늦어지고 말았던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도 그러한 바울의 사정은 헤아려주지 않았습니다. 그저 바울은 신뢰할 만한 사람이 못되며, 그렇기 때문에 그의 가르침도 신뢰할 수 없다는 비난 일색이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바울의 외모와 언변을 트집 잡았습니다. 그들은 바울의 겉모습만 보고, 외모도 볼품이 없고, 말재주도 별로라고 하면서 도저히 존경할만한 인물이 못된다고 했습니다. 그런가하면, 어떤 이들은 ‘바울이 변덕이 심하다’고 하면서 ‘바울의 인격마저 의심스럽다’고 비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바울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이런 저런 트집을 잡아 바울을 매도하는데만 열중하였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렇듯 자신을 신임하지 않고 도리어 비방만 일삼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입장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12절)

 

바울은 자신이 성실하지 못하다고 하는 비난에 대해 윤리적 결백을 주장하면서, 지금까지 자신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대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거룩함”(holiness)이란 ‘하나님 앞에서 합당하게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출애굽기 3장에 보면, 모세가 하나님을 만났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 3:5)고 하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경외하는 마음으로 신을 벗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합당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또 이사야는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 6:5) 라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제단 숯불을 이사야의 입술에 대고 그를 성결하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 설 때,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성결하게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런 면에서 바울은 자신이 언제나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서왔음을 자부하였습니다. 언제나 겸손하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성결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바울은 또한 자신을 신뢰할 수 없다는 사람들의 비난에 대해, 자신이 “진실함”(sincerity)으로 행하였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말은 투명하게, 그 어떤 잡된 것도 섞임이 없이, 혹은 거짓이 없이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의 언행에는 어떤 불순한 의도나 거짓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문 앞에서 “도망하라. 발각됐다.”고 소리치고 다녔더니 전혀 뜻밖의 사람들이 도망가더랍니다. 그것은 뭔가 감추는 것이 있고, 발각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깨끗했습니다. 마치 투명한 유리 수족관 안에 있는 물고기처럼, 숨기는 것도 없고 감추는 것도 없었기에 발각될 것도 없었습니다. 당연히 도망갈 일도 없고 누구 앞에서든지 당당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거룩함’이나 ‘진실함’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살아갔기 때문에 누구 앞에서도 양심에 거리낌이 없었고 이것을 자랑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우리도 언제나 이렇게 하나님 앞에 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깨끗한 삶을 살아가려는 최선의 노력 없이는 하나님 앞에도, 사람들 앞에도 설 수 없기 때문입니다. 햇빛에 드러내놓아도 흠잡힐 데가 없는 사람이야말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디모데전서 6: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베드로후서 3:14)

 

바울은 자기 자신 뿐 아니라 고린도 교인들에게도 거룩하고 진실한 사람들이 되어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고린도 교인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를 향한 바울의 당부이기도 합니다. 그 날에 우리도 주님의 자랑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님 앞에서,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흠 없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삶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 안에서 치열한 자아성찰과 끊임없는 신앙실천으로만 가능할 것입니다. 앞서 소개했던 장공 김재준 목사의 좌우명을 보면, 그가 얼마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살아가기 위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노력했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나의 좌우명 : 바로 살려는 노력

1.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2. 대인관계에서 의리와 약속을 지킨다.

3. 최저 생활비 이외에는 소유하지 않는다.

4. 버린 물건, 버려진 인간에게서 쓸모를 찾는다.

5. 그리스도의 교훈을 기준으로 "예"와 "아니오"를 똑똑하게 말한다. 그 다음에 생기는 일은 하나님께 맡긴다.

6. 평생 학도로 산다.

7. 시작한 일은 좀처럼 중단하지 않는다.

8. 사건 처리에는 반드시 건설적, 민주적 질서를 밟는다.

9. 山河와 모든 생명을 존중하여 다룬다.

10. 모든 피조물을 사랑으로 배려한다.

("젊은 시절부터 나는 이 열 가지를 정하여 바로 살려고 노력하였다.")

사랑하는 강남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날 한국교회는 날로 사회적 신뢰도와 명예를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이는 거룩함과 진실함을 갖춘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들’은 점점 줄어들고, 양심을 속이는 거짓되고 탐욕스러운 ‘가짜 그리스도인들’이 판을 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에서 우리가 자랑할 만한 그리스도인을 만나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우리 주님은 바로 여러분이 ‘자랑할 만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우리 주님이 최후의 심판 날에 여러분을 자랑을 할 수 있도록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서야 합니다. 그날의 영광을 바라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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