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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6.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순수한 사람

관리자 2014-10-26 (일) 11:00 9년전 1066  

순수한 사람

고후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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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2013년에 캐나다의 작가 엘리스 먼로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자, 그녀의 2001년 작품을 바탕으로 한 '어웨이 프롬 허'(Away From Her)라는 영화가 새삼 주목을 받았습니다. 국내에서도 2006년에 개봉되었던 이 영화는, 은퇴한 노 교수가 평생을 함께한 아내에게 바치는 헌신적인 사랑을 그린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그랜트와 피오나라는 남녀 두 사람이 만나서 서로 사랑하고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결혼 후 한번도 떨어지지 않고 44년 동안 행복하게 함께 살았습니다. 함께 스키도 타고, 산책도 하고, 식사도 하면서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매일 밤 잠들기 전, 남편은 아내에게 오웬의 “아이스랜드에서 온 편지”를 읽어 주곤 했습니다.

남편은 교수였는데, 젊고 아름다운 대학생들이 주변에 많이 있었고, 그 중에는 그를 열렬히 사랑한 여학생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그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고 아내 만을 사랑하며 그 곁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40년이 넘도록 잉꼬 부부로 지내던 두 사람에게 불행이 찾아왔습니다. 생명의 광채가 넘쳤던 아내에게 알츠하이머 병이 찾아온 것입니다. 처음에는 프라이팬을 냉동실에 넣는다거나, 와인을 와인이라 부르지 못하는 등 사소한 실수를 했지만, 점차 집 앞에서 길을 잊을 정도로 증세가 심각해졌습니다.

자존심 강한 그녀는 하얀 백지가 돼가는 자신의 모습을 남편에게 보이기 싫어서, 남편의 반대를 무릅쓰고 요양소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요양소 규정상, 적응을 위해 한 달간 면회가 금지된다고 해서 남편은 결혼 후 처음으로 아내와 떨어져서 지내게 됩니다. 한 달 후 설레는 마음으로 아내를 찾아간 남편은 그만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동안 병세가 나빠진 아내가 그를 전혀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아내가 다른 치매 환자와 사랑에 빠진 것입니다. 하얗게 지워진 남편과의 추억 대신 새로운 남자에 대한 설렘이 온통 그녀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걸 지켜본 남편은 괴롭기 짝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그런 아내를 질투하기 보다는 더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아내를 위해 더욱 헌신합니다. 심지어 아내가 새롭게 만난 남자가 재정적인 문제로 요양소를 떠나게 되어 아내가 절망에 빠졌을 때, 그 남자와의 재결합을 주선하기까지 합니다. 기억이 사라진 아내가 다른 남자와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 불행과 외로움에 빠져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내의 행복을 되찾아줄 수만 있다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슨 일이든지 다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내의 정신이 잠깐 돌아와 남편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전에 읽어주었던 오웬의 “아이스란드에서 온 편지”를 기억해 내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나를 버리고 떠날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까지 나를 떠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았군요.” 그리고 두 노부부는 서로를 꼭 껴안아 주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남편이 정말 있을까요? 여러분 모두가 이 영화처럼 아름다운 사랑, 헌신적인 사랑을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이미 이보다 더 크고 헌신적인 사랑을 경험했습니다. 바로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나같은 죄인을 위해서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낮고 낮은 이 땅에 내려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사랑을 받은 우리 인간은 영적인 알츠하이머 병에 걸려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이 주는 즐거움에 빠져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버리고 떠나시지 않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해주시고, 헌신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바울이 세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배은망덕하게도 그들의 영적인 스승인 바울을 향하여 온갖 비판을 다 퍼 부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비유에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뿌린 원수처럼(마 13:25), 유대주의자들이 교회에 들어와 유대교적 잔재를 뿌렸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바울을 비롯한 이방인 선교사들을 배제하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교회의 분쟁을 부추겼습니다. 그 결과 고린도 교회의 복음에 대한 순수성은 흔들리고 말았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복음의 뿌리가 흔들리자 교회는 더 이상 교회다운 모습을 유지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로인해 많은 문제들이 생겨났습니다.

바울은 복음과 교회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가라지와 같은 유대주의가 퍼져나가는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어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바울이 자기들과 대면했을 때에는 별 말을 하지 않더니 멀리 가서는 책망을 많이 한다’고 바울을 비난했습니다. 1절에서 바울은 자기 자신을 가리켜 “너희를 대면하면 유순하고 떠나 있으면 너희에 대하여 담대한 나 바울은”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바울이 자신을 비난하는 자들의 말을 빗대어 표현한 것입니다. 그들은 더 나아가 바울을 “육신을 따라 행하는 자”(고후 10:2)라고 악의적으로 모함했습니다. 즉, 바울이 세상적 가치와 이기심에 따라 자기 유리한대로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이 누구입니까? 교회 역사를 통하여 그가 전한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 정도로 하나님께 붙잡힌 사람이었는데, 이런 분을 그렇게 폄하한다는 건 말도 안되는 처사입니다. 바울을 비난하는 자들이 오히려 비난을 받아야 마땅한 상황인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에게 비난을 퍼붓는 자들에게, 자신이 강경한 태도로 대하지 않도록 그와 같은 비방과 모함을 중지해 줄 것을 정중하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육신에 따라 행하는 자로 여기는 자들에 대하여 내가 담대히 대하는 것 같이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나로 하여금 이 담대한 태도로 대하지 않게 하기를 구하노라” (고후 10:2)

바울은 오히려 그들을 “온유”와 “관용”으로 대하겠다고 했습니다.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1절)

여기에서 “온유”라는 말은 매우 흥미있는 말입니다. 온유에 해당하는 헬라어로 “프라우테스”(prautes)에 대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지나치게 잘하는 것과 전혀 잘하지 않는 것과의 중간”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또한 노할 때는 노하고, 노하지 아니하여야 할 때는 노하지 않는, 말하자면 자기의 노함을 완전히 지배하고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의 특징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가 받은 부정이나 모욕이나 중상에 대해서는 노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이 당한 모욕에 대해서는 정의의 분노를 퍼붓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바울은 사람들을 대할 때, 이런 온유로 대하려고 애썼는데, 사실 인간에게는 이런 온유가 없습니다. 이러한 온유는 오직 주님만이 가진 것입니다. 바울은 주님의 온유함을 의지해서, 자신도 고린도 교인들을 그렇게 대하려고 애쓴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자기를 비난하고 모욕하더라도 대항하지 않고, 온유함으로 대했습니다. 우리도 이 온유함을 주님으로부터 얻어야 합니다.

또 하나의 말인 “관용”은 헬라어로 “에피에이케이아”(epieikeia)라는 말인데, 이것은 공정한 것 이상의 공정한 것을 말합니다. 세상에서는 법이나 규칙이나 규정을 너무 지나치게 적용하다가 오히려 부작용이나 역효과를 불러 일으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법대로 하자” 혹은 “규정대로 하자”고 하면서 비인간적인 처사를 저지를 때도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법이나 규정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간혹 법대로 하다가, 규정대로 하다가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소위 “바르다”는 그 기준에 문제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 기준을 내가 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인간적인 법이나 규정도 그리스도의 사랑보다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모든 일에 “법대로”, “규정대로”, 혹은 “관행대로” 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초월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대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께서 처리하듯이 했다는 것입니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시대에 유명한 무신론자였던 헉슬리가 어느날 어느 가정의 파티에 참석했습니다. 그곳에는 신실한 기독교인들도 다수 참석했는데, 헉슬리는 그 회원 중 하나에게 “왜 당신은 예수를 믿으며 기독교를 믿는지를 나에게 말해주지 않겠습니까?”라고 요청했습니다. 헉슬리의 명성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그 사람은 “현명한 당신은 내가 말하는 것을 모조리 뒤집어 놓으려고 하는군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헉슬리는 “아니요, 나는 당신과 논쟁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가 당신에게 어떤 의의를 가지는가를 당신에게서 듣고 싶을 따름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가장 진솔한 말로 자기의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그의 신앙고백에는 소박함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성실함, 그리고 삶에 배어 있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의 신앙고백에 감동한 헉슬리는 “나도 당신같이 믿을 수만 있다면 내 왼손이라도 내놓겠어요”라고 했다고 합니다. 헉슬리는 이 세상에서 참으로 힘이 있는 것은 교묘한 지혜가 아니라, 진실한 그리스도의 사랑이며 순수함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후 10:4)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돈과 명예와 권력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해서 내 마음에서 묻어나오는 순수함입니다. 우리는 순수함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 순수함 가운데 주님의 온유함과 관용을 나타낼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서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 10:16)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왜 예수님은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하셨습니까? 여기서 나오는 ‘비둘기’는 '페리스테라'인데 그 당시 ‘전서구’로 쓰였던 집비둘기입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않았기에, 집비둘기를 훈련 시켜서 주인의 편지를 전달하게 했는데 그러한 비둘기를 '전서구'라 했던 것입니다. 이 비둘기는 먼 거리를 날아서 자기 주인을 정확히 찾아 편지를 전해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비둘기처럼 순결하라'는 말은, 비둘기가 온순하고 평화롭다는 뜻이 아니라, 주인을 향해 날아가는 충성스러운 비둘기처럼, ‘비록 이 세상 속에 살아가지만, 주님 한 분에게만 충성하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이처럼 신앙적으로 순수함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은 도덕적인 순수함이라기 보다는 영적인 순수함을 말하는 것으로서,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만 충성하는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은 닳고 닳아서 너무 꾀가 많습니다. 이러한 꾀는 하나님이 아닌 자기 자신의 이익에 더욱 민감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하나님께만 충성하는 것이 손해가 난다는 것을 잘 알기에, 적당한 타협점을 찾고 세상에 맞추어 살아갈 것을 요구하곤 합니다. 또 때로는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자신에게 이익이라는 판단하에, 그럴듯한 명분과 핑계를 들어 하나님께 순수하지 못한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앞서 소개한 영화에서, 그 남편이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얼마든지 아내를 떠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헌신적으로 아내를 돌본 것처럼,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마음을 간직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이야말로 참다운 그리스도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믿음을 간직한, 참다운 그리스도인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 누구에게나 “온유”와 “관용”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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