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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2.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질그릇 속에 담긴 보배

관리자 2014-06-22 (일) 11:00 9년전 1105  

질그릇 속에 담긴 보배

고린도후서 4:7-11

 

악마가 자기의 활동 영역을 넓히기 위해서 자기가 사용하던 도구를 반액 대매출을 하게 되었습니다. 악마가 가게 문을 연 첫날,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는데 그곳에 터무니 없이 비싼 한 기구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기구를 보면서 “이것은 어찌하여 이렇게 비싼가?”하고는 모두가 놀랐습니다. 그 기구의 이름은 “절망”이었습니다. 악마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나는 이 절망이라는 도구를 사용해서 사람들을 파멸시키는 데 실패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도구가 가장 값이 비쌉니다.”

 

우리 인간은 연약하기 때문에 사탄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고 때때로 낙심하고 절망하기도 합니다. 본문에서 말한 것처럼 인간은 깨지기 쉬운 “질그릇”과 같습니다. 질그릇이란 진흙으로 구워 만든 그릇으로서 아직 유약(釉藥)을 바르지 않았기 때문에 윤기도 없고 깨지기 쉬운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인간의 나약함과 무가치함을 표현할 때, 질그릇이라는 은유를 곧잘 사용합니다. 다윗은 자신이 고난으로 도저히 견디기 어려웠을 때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시 22:15)라고 한탄하였습니다.

바울은 이 ‘질그릇’이라는 은유를 통해 이중적인 의미를 말하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자신의 나약함을 나타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 안에서 역사하는 복음의 능력의 완전함을 말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은 질그릇에 불과한 연약한 자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연약함’은 우리의 것이고, 그 안에 나타난 영광은 하나님의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연약한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영광스런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런데 때때로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자기 것으로 알고, 교만해지기도 합니다. 이번에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는 세월호 참사 사건으로 드러난 구원파 교주는 자기의 사업을 펼치면서 온갖 이익을 독차지하고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 왔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의 교회라면 인간은 연약한 존재임을 고백하고, 모든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모든 영광을 자기와 자기 일가족에게 돌렸습니다. 이렇게 종교를 이용하여 자기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은 사이비 종교에서나 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질그릇 같이 언약한 존재입니다. 만일 우리가 세상에서 드러나게 되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 속에 있는 보배로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내가 잘나서 그런 줄 알게 되면 교만해지게 됩니다. 이때 겸손해지지 않으면 사이비 교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보면, 본래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흙’은 히브리어로 ‘아다마’ 곧 ‘먼지’라는 뜻입니다. 먼지에 불과한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숨’을 불어 넣으시자 살아있는 생명이 되었다는 사실은, 인간은 하나님 없이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각인시켜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으로 큰 영광을 얻었다고 해도, 그것으로 자기 자신의 영광을 삼으면 안됩니다. 오히려 이렇게 허약한 존재가 그 안에 하나님을 모실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늘 감사해야 합니다.

 

구약 시대에 전쟁에서 승리한 개선장군에게는 개선식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그 개선장군에게는 정말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개선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개선식에서도 그 장군이 결코 교만하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개선장군이 머리에 관을 쓰고 전차를 타고 개선행진을 할 때, 군중들은 큰 소리로 칭찬의 말을 하면서 동시에 “뒤를 바라보라. 너도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는 경고의 말을 외쳤다고 합니다. 또 행렬의 뒷부분에서 행진하는 병사들은 두 가지 일을 했는데, 한편으로는 장군을 칭송하는 노래를 하고, 또 한편으로는 장군으로 하여금 너무 교만하지 않도록 더러운 농담과 욕지거리를 했다고 합니다.

 

인간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결국은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이것을 간과하고 마치 자신을 신처럼 여길 때, 비극이 발생합니다. 우리는 결코 우리의 연약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를 영광스럽게도 하시지만, 우리의 생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고, 내 몸 조차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연약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연약함은 우리의 것’이며, ‘영광은 하나님의 것’임을 언제나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한편, 바울은 우리가 모두 질그릇 같은 인생이지만, 그래서 쉽게 깨질 수밖에 없는 인생이지만,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된 삶을 살 수 있고,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후 4:8-9)

여기서 “우겨쌈을 당한다”는 헬라어 표현은 “포도즙을 짜기 위해 포도를 짓누른다”는 뜻인데, 우리말에 ‘고혈(膏血)을 짜내다’라는 표현처럼, 극심한 고난과 핍박을 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답답한 일을 당한다”는 표현도 ‘전쟁에서 포위를 당하여 진퇴양난에 빠졌다’는 의미입니다. “거꾸러뜨림을 당한다”는 말은 ‘맞아서 쓰러졌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표현들은 바울과 초대교회 성도들이 당하는 고난이 얼마나 극심한 것인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동양에서는 “인생은 고해(苦海)와 같다”고 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끝없는 고통의 바다를 떠다니는 것과 같다는 말인데, 태어나고, 병들고, 늙고, 죽는 인생의 과정을 보면 실감이 나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여기서 일반적인 인생철학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간직하고 그것을 온 세상에 전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고난의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양사상처럼 비관적인 인생의 굴레에서 해탈하기 위해 자기 수양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절대적으로 의지할 때 비관적이던 환경도 극복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러한 고난과 핍박을 받는 현실 속에서도, 그 안에 “하나님의 심히 큰 능력”(7절)이 있기 때문에 “싸이지 아니하고” “낙심하지 아니하고” “버려지지 아니하고” “망하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아무리 어려운 인생의 고난과 맞닥뜨린다 해도, 거기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피할 길이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바울의 말처럼, 복음을 위해 살다보면 육신적으로는 너무 어렵고, 고통스럽고, 도저히 살 길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넓은 품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여유를 가질 수가 있습니다.

 

미국에서 한 시골 청년이 캔자스 시티에서 출판사와 신문사를 찾아다니며, 자기가 그린 만화를 실어달라고 부탁하였으나 한군데도 상대해 주지 않았습니다. 마침 주일이 되어 아무 교회나 길거리에 보이는 교회로 들어간 청년은 예배 내내 눈물만 흘렸습니다. 그 교회의 목사님이 그런 청년을 보고 사정을 들은 후 교회 창고에서 지내도록 해주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청년에게 “용기를 잃지 말게. 그리고 하나님이 자네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을 잊지 말게”하고 겪려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 창고에는 쥐가 많이 살고 있어서 낮밤을 가리지 않고 쥐가 많이 나다녔습니다. 청년은 그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지내다보니 쥐들이 다니는 것도 익숙해졌습니다. 그리고는 쥐들에게 먹을 것을 조금씩 주기 시작하면서 마치 친구처럼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쥐를 관찰하다가 그림으로 그리기도 했습니다. 이 먹을 것도, 잘 곳도 없던 청년이 월터 디즈니였고, 오늘날 전 세계를 사로잡은 ‘미키 마우스’의 아이디어는 그렇게 탄생한 것입니다.

 

우리는 나약한 인간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다면, 힘들고 어려운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바울은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을 당하여 기도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처할 때, 주의 성령이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로마서 8:26)

그러하기에 바울은 절망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비록 그 자신은 천하디 천한 질그릇이었지만, 모든 능력의 원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 안에 담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일을 만나더라도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여러분이 어려운 일을 만날 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은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가 모시고 있는,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영국 런던의 빈민가를 지나던 한 사람이 빈민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헌신하고 있는 한 목사를 만났습니다. 그는 온갖 고생을 다 겪고 있는 그 목사가 참으로 안됐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가난과 절망 속에서 사는 이들과 지내기가 얼마나 고생입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 목사가 말하기를, “고생이라니요?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생명의 떡’으로 내어주시지 않았습니까? 저는 그저 그 생명의 떡을 나누어 주는 사람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나누어줄 떡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입니다.” 그는 비록 런던의 빈민가에서 지겨울 정도로 고생했지만, 그의 영혼은 그리스도의 넓은 품에 안겨있었던 것입니다.

 

인생의 큰 어려움에 직면하여 이를 극복할 적절한 수단과 방법이 없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망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배로운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사는 이들은 그 어떤 경우에도 낙심하지 않고 일어날 수 있습니다. 사람을 의지하면 사람으로 인해 실망할 수밖에 없겠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사랑과 은혜를 결코 거두시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시 27:10)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히 13:6)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사 49:15-16)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진퇴양난의 계곡에 빠졌을 지라도, 우리가 아무리 환난과 핍박을 당할지라도, 주님은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비록 연약한 질그릇 같은 존재이지만,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아갈 때,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존재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고후 6:10) 라는 말씀처럼, 우리는 비록 질그릇 같은 연약한 존재이지만,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의 그 어떤 환난이나 고통이나 실패나 가난도 넘어뜨릴 수 없는(!) “심히 큰 능력”을 발휘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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