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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5.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제자의 길

관리자 2014-06-15 (일) 11:00 9년전 1158  

제자의 길

고린도후서 4:1-6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 때, 기독교인들을 무자비하게 박해하여 많은 기독교인들이 순교하였습니다. 하루는 일본 관리들이 어느 교회에 와서 교회 문 앞에 예수의 화상을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화상을 밟고 지나가면 살려주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화형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협박을 했습니다. 교인들은 어쩔 수없이 나가면서 예수의 상을 다 밟고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는 신앙이 아주 좋은 어머니와 아들은 맨 나중에 나오면서 예수의 상을 밟는 것을 거절하였습니다.

“우리가 감히 예수님을 밟다니 그것은 말도 안됩니다. 비록 그림에 지나지 않지만 내 발로 밟는 것은 예수님을 또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결국 그 모자는 십자가에 달려 화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어린 아들이 두려워 떨자 어머니는 아들의 손을 꼭 잡고 말했습니다.

“아들아,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사랑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렴. 이제 우리는 예수님이 계신 평화가 넘치는 하늘나라로 곧 가게 될거야. 그곳에서 만나자.”

드디어 어머니와 아들이 각각 십자가에 묶여 세워졌고, 그 아래 쌓아놓은 장작더미에 불이 피워졌습니다. 점점 연기가 자욱해졌습니다. 어머니를 바라보며 위로를 얻던 아들은 연기로 인하여 어머니가 보이지 않자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어머니, 연기 때문에 어머니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요.”

그러자 어머니는 힘있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얘야, 내 얼굴이 보이지 않더라도 저 하늘에 계시는 우리 주님이 보이지 않느냐. 얼굴을 들어 저 하늘을 바라보아라.”고 했습니다.

 

기독교인으로서 박해를 당하고 순교를 당하면서도 끝까지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던 이런 위대한 신앙인들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복음이 전 세계에 퍼지고, 우리들까지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다 이런 위대한 신앙인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런 위대한 신앙인들에게서 신앙의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

 

본문의 바울 사도가 복음을 증거하던 때도 복음을 증거하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특히 로마황제를 ‘신의 아들’ ‘구세주’ ‘평화의 왕’으로 신격화하던 로마제국 내에서,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하나님의 아들이며, 참된 구세주이며 평화의 왕이라는 복음을 증거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생명을 내놓아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당시에 고도로 발달한 헬라 철학도 복음 전파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었습니다. 바울은 전도 여행 중에 헬라 철학의 꽃을 피운 아테네를 방문하여(행 17:16-34) 그들의 철학적 냉랭함과 교만으로 인해 큰 실패를 한 후로 복음 전도가 벽에 부딪히는 듯 했습니다. 많은 정성과 헌신을 다하였건만 아테네 선교는 조금치도 진전이 없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렇게 힘들게 세운 고린도 교회마저 불신앙과 도덕적 타락으로 거의 절망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로마의 핍박과 헬라철학과의 상충, 그리고 이미 세워놓은 교회의 불신앙적 행태로 바울의 선교는 마치 벽에 부딪히는 듯했습니다. 본문을 쓰고 있는 마게도니아에서의 그의 마음 상태는 지칠대로 지쳐서 모든 선교를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데 조금도 지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전하는 복음은, 이방인들이 잘 수용하든지 하지 않든지 상관없이, 이 세상을 구원할 진리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전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셔서 산자와 죽은 자의 주가 되신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 자신이 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고 성결케 되었으며, 영원한 생명을 소유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해서는 그의 생명을 전혀 아끼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다 반대하고 핍박하고 생명을 위협한다고 하더라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타락하여 교회의 위상이 땅에 떨어졌어도 바울은 복음전파를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기독교 복음을 오해해서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은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핍박하는 것은 복음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고후 4:3)

 

그런데 오늘날 한국 교회는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마치 복음이 그 힘을 잃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잘못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복음이 가려져있고 계시되지 않은 것입니다. 교인들을 손가락질하는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예수 믿는 사람들이 저럴 수가 있냐?”고 비난합니다. 그런데 정확히 말하면, 비윤리적이고 몰상식한 교인들은 예수를 제대로 믿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이용해서 자기의 유익을 구하고, 자신의 세속적 탐욕을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일탈적인 모습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낙심하여 교회를 떠나는 안타까운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복음을 잘못 받아들인 사람을 보고 낙심하지 말아야합니다. 바울은 사람이 아닌 복음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결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끊임없이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목적과 방향을 잊어버리면 작은 어려움에도 흔들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절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결코 이 복음은 실패할 수 없다’는 믿음 때문에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든 복음만 전하면 된다는 ‘목적지향주의’하고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일은 목적이 좋은 만큼 수단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전파에 앞서 먼저 자신을 깨끗하게 했습니다. 그는 순전한 신앙을 간직했을 뿐만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자세 하나 하나에서도 흐트러짐이 없었습니다: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고후 4:2)

 

실로 바울은 복음을 자기의 이익이나 자기 입장을 변론하는데 사용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의 진리대로 살았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그것이 부족합니다. 겉으로 말은 그럴듯하게 하는데 실제 삶은 부끄럽기 짝이 없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회개한다고 하는 것도 ‘립 서비스’요, 사랑한다고 하는 것도 ‘공수표’인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한국교회를 향해 ‘말’이 아닌 ‘행동’을 보여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진리를 듣기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진리대로 사는 성도들의 삶을 보기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기독교 신앙인들은 그리스도의 온전하심처럼 성결하고 거룩하고 깨끗함을 배워야 합니다. 복음 전도의 위대한 목적을 위해서 그 수단과 방법까지도 성결했는지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기독교 정치인, 기독교 실업인, 기독교 상인, 기독교 노동자는 다른 사람과 달라야 합니다. 남들이 사는대로 살면 안됩니다. 남들이 하는 ‘관행’대로 적당히 부정을 저지르고, 적당히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주님처럼 살아야 합니다. 주님이라면 과연 그렇게 했을까를 늘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종으로서 사는 삶’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행하는 사도직의 본질을 ‘종이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본래 복음은 자유를 가져다 줍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고후 3:17),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 그런데 그 자유는 역설적이게도 ‘종’이 될 때 완전히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기꺼이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표현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롬1: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빌 1:1).

그런데 바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종이 된다는 것은 사람들을 위하여도 종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고후 4:5).

성도들은 보통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하지만, ‘사람의 종’이 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주의 종으로서 모든 사람들의 종이 되어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우리도 이제 사람들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목사와 직분자들은 성도들의 종이 되어야 하고, 성도들은 이 세상 사람들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종이 된다는 것은 피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실천적인 의미에서,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자기 자신을 다 내어준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하므로 재물을 사용하고 또 내 자신까지도 내어 주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사랑을 덜 받겠느냐”(고후 12:15).

본훼퍼 목사는 기독교인은 “타자를 위한 존재”라고 했습니다. 한국교회가 “타자를 위한 존재”가 되고, 세상의 종이 될 때, 하나님의 능력이 왕성하게 나타날 것이며, 한국 교회가 살아날 것입니다.

 

1964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은 마틴 루터 킹(1929-1968) 목사는 암살 당하기전 바로 두 달 전에 다음과 같은 설교를 하였다고 합니다.

“저는 가끔 저의 죽음에 대하여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의 장례식을 그려봅니다. 만약에 여러분 중에 누가 혹시 저의 장례식에 계시다면 부디 길게 하지 말아 주십시오. 또 저의 장례식 조사도 짧게 해달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그리고 조사를 하는 사람에게 제가 노벨 평화상을 탄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지 말라고 부탁해 주십시오. 또 내가 그 외에도 많은 표창과 상을 받았다는 것을 말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일에 삶을 바치려고 노력했다고 말해 준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사람들을 사랑하려고 노력했고 굶주린 사람을 먹이려고 했으며 헐벗은 사람에게 옷을 입혀 주려고 애섰으며 감옥에 있는 사람들을 방문하려고 노력했고 인류를 사랑하여 봉사하려고 힘썼던 사람이라고 말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남기고 갈 재물도 없습니다. 또 제 인생에서는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것들을 남기고 갈 것도 없습니다. 다만, 헌신된 생애를 남기기를 원합니다.”

 

한평생 독립운동과 민족교육에 헌신한 남강 이승훈 선생(1964-1930)은 일제 강점기에 민족의 지도자로서, 강명의숙과 오산학교를 세워 인재양성에 힘썼으며, 기독교 이념을 바탕으로 조직된 항일결사단체인 신민회 활동을 통해 독립운동을 전개해 나갔습니다. 1911년 일제는 「총독암살날조극」을 조작하여 민족지도자들을 대거 체포하는 「105인사건」을 꾸몄는데, 이때 남강 이승훈 선생도 일경에 체포되어 5년간 수감생활을 했습니다. 하지만 남강은 더욱 투철한 신앙인, 독립투사가 되어 감옥에서 성경을 세 번 통독하고, 기도와 사랑실천에 힘썼다고 합니다. 1930년, 6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이승훈 선생의 비석에는 “일생을 남을 위해 살았고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 사람”이란 말이 새겨졌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독교 복음은 모든 인류와 세상을 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복음으로 이 세상이 살 수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믿고 복음을 전하며 복음이 왕성하게 일하도록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서서 사람들의 종이 되어 앞으로 나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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