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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5.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그리스도의 추천서

관리자 2014-05-25 (일) 11:00 9년전 1249  

그리스도의 추천서

고린도후서 3:1-5

 

지금부터 29년 전에, 저는 우리 교회에서 안식년을 얻어서 영국에 공부하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 교단의 추천을 받아서 영국 ‘연합개혁교회’(United Reformed Church)에 갔는데, 영국 연합개혁교회(URC)는 잉글랜드 장로교회(The Presbyterian Church of England), 잉글랜드 웨일즈 회중교회(The Congregational Church in England and Wales), 그리스도 개혁교회 연합(The Re-formed Association of Churches of Christ), 그리고 스코틀랜드 회중 연합교회(The Congregational Union of Scotland)가 하나의 교단을 이룬, 영국 교회 가운데 성공회와 감리교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유수한 교단이었습니다. 저는 그 교단에서 운영하는, 버밍햄에 있는 ‘셀리옥 선교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저의 수업료와 생활비를 전담해 주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저에게 환대해 준 것은 우리 교단과 영국 연합개혁교회가 자매관계가 있었고, 서로 조인트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었는데, 우리 교단이 저를 추천해주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우리 교단의 추천서 덕분에 영국연합교단은 저를 정성껏 도와주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권위 있는 사람이나 단체의 추천서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초대교회에서도 추천서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바울의 뒤를 이어 오게 된 지도자들은 당시 교회의 센터인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추천서를 받아 가지고 왔습니다. 그 추천서를 보고 교회는 그들을 영접하였던 것입니다. 당시에는 교회 지도자들이 예루살렘 교회의 신임장이 없는 사람은 교회에서 받아들이지 말라는 경고까지 한 바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전도여행을 하면서 그런 것을 가지고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불신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 가운데 유독 바울을 불신하는 사람들은 율법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아직도 율법의 권위주의를 버리지 못하고 율법을 지키는 것이 구원의 필수적인 요소라고 주장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행 15:5)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율법보다 믿음을 강조하는 바울이 여간 못마땅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이 보기에는 바울은 모세의 율법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할례를 통한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을 부정하는 위험하고 황당한 이단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바울은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은 열 두 제자 중에 한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추천서를 받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거짓 사도’ 혹은 ‘사이비 전도자’라고 몰아붙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초대교회에서 복음의 순수성을 흠집내고 교회의 신앙을 혼란에 빠뜨리게 한 자들은 오히려 그 율법주의자들과 그들의 추천서를 받아서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파견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서도 이와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러한 비난에 대해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자신의 사도됨을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갈 1:1)

 

바울은 자신이 사도로서 사역을 감당하는 것은 예루살렘 교회의 어느 권위 있는 지도자로부터 위임을 받았거나, 추천서를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부여받은 사명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있어서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으며, 이는 초대 교회에서 가장 권위 있는 지도자인 야고보와 베드로와 요한도 이미 인정한 사실이라고 말합니다.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갈 2:9)

 

그렇습니다. 바울에게는 형식적인 추천서보다 실질적인 추천서, 곧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추천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바울 혼자만의 주장이 아니라, 바울의 사역을 통해 열매를 맺은 교회와 성도들이 그 증거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은 너희에게 받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고후 3:1-2)

 

바울에게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곧 추천서였던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세웠고, 성도들을 복음으로 거듭나게 하였으니 “거듭난 당신들이 나의 추천서”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루살렘 지도자들의 추천서를 가지고 온 사람들처럼 인간의 권위에 기대어 대접을 받으려는 자와는 달리,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거듭난 성도들을 통해 나타난 ‘성령의 추천서’를 가지고 있는 자였던 것입니다.

바울을 비난하는, 추천서를 가지고 온 사람들은 인간의 권위에 방점을 두었지만, 바울은 오직 하나님 중심이었습니다. 바울은 어떤 권위 있는 사람의 추천서보다 더욱 확실한 추천서는 ‘거듭난 성도들의 거룩한 성품과, 도덕적인 생활의 변화’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인간적으로 돋보일만한 지식과, 명예와, 권위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변화되지 않은 신앙’은 참 신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추천서를 가지고 온 지도자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확실하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율법 준수’, 예를 들어, ‘할례’ 같은 것을 구원의 조건에 포함시킴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을 불완전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에,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다른 복음’(갈 1:7) 곧 ‘비진리’인 것입니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갈 1:7). 그러한 ‘다른 복음’으로는 사람이 변화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예수 외에 다른 것이 끼어들면 안됩니다. ‘예수+⍺’(예수 플러스 알파)는 안됩니다. 이단이나 사이비 종교에서도 예수를 말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은 거기에 자꾸 ‘플러스 알파’(+⍺), 곧 자기들의 교주를 끼워 넣습니다. 예수의 말씀을 믿는 것은 좋은데, 자기 교주를 통해서만 예수의 말씀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자기 교주를 통해서만 성경의 비밀, 하늘의 비밀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절대 거짓입니다. 죄인인 인간은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중심, 예수님 중심, 성령 중심이어야 합니다. 그 외에 누군가 끼어들면 안됩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나님 외에는 우리를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행 4:12)

 

바울은 자신의 복음 증거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은 고린도 교인들을 가리켜 “우리의 편지”라고 합니다. 자신의 사도권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에게 제시할 증거는 바로 고린도 교회 교인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앞에 보낸 ‘고린도전서’에도 이미 언급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나의 사도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고전 9:2)

계속해서 바울은 자신을 비방하는 자들이 가졌다고 자랑하는 추천서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추천서를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먼저, 적대자들이 지니고 있는 추천서는 파피루스 종이에 쓰여진 것이나, 바울의 추천서는 마음에 쓰여진 것입니다. 둘째, 적대자들의 추천서는 잉크로 쓰여진 것이나, 바울의 추천서는 하나님의 영(靈)으로 쓰여진 것입니다(3절). 셋째, 적대자들이 가진 추천서는 종이에 쓰여진 것이므로 몇몇 제한된 사람에게만 보여질 수 있으나, 바울의 추천서는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넷째, 적대자들의 추천서는 돌판에 새겨진 임시적인 것이지만, 바울의 추천서는 마음 판에 새겨진 영원한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의 편지’라고 할 때, 그것은 고린도 교인들의 믿음을 보면 바울을 알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가정은 아버지가 누구냐가 중요합니다. ‘그 아버지의 그 자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그 교회가 목사가 누구냐가 중요합니다. 훌륭한 목사님을 통해서 훌륭한 성도들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철학자인 플라톤(Plato)은 말하기를 “훌륭한 선생은 그의 교훈을 희미해질 잉크로 쓰거나 글자로 쓰지 않는다. 그것을 이해하는 제자를 찾아 그 마음에 쓴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의 교훈을 인간위에 썼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주님의 방법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교훈을 희미해져가는 잉크로 쓴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에 쓰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고후 3:3)라고 했습니다. 이는 적대자들의 추천서가 사람에게서 유래한 반면, 바울의 추천서는 그리스도에게서 유래했음을 보여줍니다. 사람에게서 유래한 것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구원하기 보다는 도리어 교회에 분열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유래한 복음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리스도의 편지’인 고린도 교인들이 세속의 물결에 휩쓸려 불신앙과 도덕적인 일탈로 혼란을 겪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지켜보는 바울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우리가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살 때 대체적으로 그 물건의 상표를 보고 판단합니다. 믿을만한 회사의 상표가 붙어 있으면 일단 신뢰감을 가집니다. 그래서 ‘브랜드 가치’라는 말을 씁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그 브랜드 가치가 하락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인 도요타가 얼마 전에 관리 소홀로 인한 치명적인 결함이 발견되어 리콜을 당하면서 그 명성을 많이 잃었습니다. 한 순간에 브랜드 가치가 추락하면서 회사 경영이 매우 어려워졌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원하든, 원치 않든지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추천서요 편지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걸어 다니는 신앙의 광고판’이요 ‘상표’입니다. 교회의 명예와 그리스도의 명예는 우리들에게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교회의 브랜드 가치가 계속해서 추락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이 예수님의 편지임을 자각하지 못하고, 세속의 물결에 휩쓸린 채, 변화된 삶을 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분명 ‘그리스도의 편지’인데, 우리의 마음에 주님의 그 은혜와 사랑이 각인되어 있습니까? 우리를 삶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브랜드 가치가 올라가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의 브랜드 가치는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부와 명예와 권력으로 올라가지 않습니다. 오직 우리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을 각인하고 겸손히 하나님만을 의지할 때, 세상 사람들도 그 가치를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고후 3:5) 라는 말씀처럼, 여러분 모두가 오직 하나님 중심의 삶을 통해 이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는 ‘그리스도의 편지’, ‘그리스도의 추천서’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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