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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7. 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온전하게 되는길

관리자 2010-03-07 (일) 11:00 14년전 1468  

온전하게 되는 길

히 5:7-10절

열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열한 살 때 축구를 하다가 공에 맞아 시력을 잃고 맹인이 된 소년이 있었습니다. 멀쩡하던 아들이 앞을 못 보는 맹인이 되자 어머니도 2년 뒤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유일한 혈육인 누나마저 공장에서 일하다가 과로로 죽었습니다. 그는 절망과 좌절의 늪 속에 빠져 자살을 여러 번 시도 했으나 그때마다 죽지도 않아 죽음마저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는 예수의 십자가의 고난을 통한 구원에 감격하였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근본적으로 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구원의 감격으로 모든 어려운 상황을 이겨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악착같이 공부를 해서 연세대를 졸업하였고 미국 피츠버그 대학에 유학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 후 그는 미국에서 대학교수가 되었고 부시 대통령의 보좌관이 되었습니다. 지금 오바마 정부에서는 그의 아들이 보좌관이 되어 대를 이어서 미국 대통령 보좌관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하버드 의대를 졸업한 그의 큰 아들은 세계적인 암전문의가 되었습니다. 그가 아들들에게 가르친 좌우명은 “포기하지 말라, 자신감을 가져라,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고난을 잘 활용하면 그것은 크게 유익합니다. 어떤 분은 “축복은 고난의 옷을 입고 다가 온다”고 했습니다.

본문에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8-9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무거운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간의 몸으로 내려오셔서 인간으로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셔서 우리의 모진 죄를 용서하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 전적으로 순종하셔서 십자가의 고통을 짊어지셨습니다. 예수의 전적인 순종을 통해서 우리는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순종은 고난을 통해서만 이룩됩니다. 고난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 순종할 수 없습니다.

오늘은 우리의 선각자들이 생명을 내걸고 일본 제국주의에 항거하였던 3.1절 91주년이 되는 주일입니다. 오늘 3.1절 주일에 고난으로 승리하신 주님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바랍니다.

 

1. 우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저는 이스라엘 성지 순례를 하면서 감동받은 곳이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감동적인 곳은 사해 바다 앞에 있는 마사다였습니다. 그곳은 A. D. 70년에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서 함락된 성입니다.

이스라엘의 애국 결사대인 960명이 로마군에 의해서 3년 동안이나 포위되어 있다가 함께 최후 날을 맞이했습니다.

여인 두 명과 다섯 명의 어린아이들이 살아남아 그들의 최후를 알림으로써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해서 후세에 전해졌습니다.

로마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망하자 남아서 나라를 되찾으려는 꿈이 다 깨진 그들에게 더 이상 희망이 없자 그들은 로마의 노예로 사느니 하나님의 백성들로서 함께 죽자고 하여 장렬하게 죽음을 택했습니다.

마지막 날 밤에 그들의 지도자인 엘리젤 벤 야일(Eleazer Ben Yair)이 이렇게 연설했습니다.

“이제 하루 밤이 남았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닥친 운명으로 인해 절대로 비관하거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저 로마인의 노예가 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부인들이 치욕을 당하고 자녀들이 노예로 팔리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있겠습니까? 저들을 우리의 주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보여줄 것입니다”

이들의 이러한 민족정신이 어디서 온 것입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바로 하나님만을 주로 섬기는 신앙심에서 온 것입니다. 이들이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것은 곧 신앙심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신앙은 애국과 관련이 있습니다. 모세도 민족을 위해서 애굽의 궁중을 뛰쳐 나와 민족과 함께 고난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바울은 자기 민족이 구원을 얻는다면 자신의 생명을 버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신앙심이 2000년 동안이나 나라를 잃어 버렸으나 시온 운동으로 다시 일어나 새로운 이스라엘을 만든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예수께서도 폭도들에게 잡혀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 산상을 올라가면서도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눅23:28)고 하였습니다.

3.1 독립운동 때 기독교 신자가 30만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기독교 선각자들이 당시 민족종교인 불교와 천도교와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지도하는 위치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였던 것을 보면 놀라운 일입니다.

그 때 남강 이승훈은 “이제 내가 죽을 자리를 찾았다”고 하면서 한국 기독교와 함께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죽음의 길로 나갔습니다.

이러한 위대한 신앙의 선조들을 가진 한국 교회는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데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고 이 땅에 사랑을 심어 이웃과 함께 세계의 위대한 나라를 이루어야 합니다.

근자에 우리나라의 국력이 높아진 것을 생각하면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경제적으로나 올림픽에서 10위권 국가로 발돋움한 것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믿음과 기도로 더욱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여 하나님이 축복하신 이 땅에 정직과 사랑을 심어가야 할 것입니다.

 

2. 우리는 복음 선교를 위하여 고난의 길을 가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원조를 받던 나라였는데 이제 원조하는 나라로 발전하였습니다. 이런 경우는 역사상 없다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최초로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가 된 것입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 128년 전에 미국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복음을 들고 들어 왔는데 이제 우리나라가 세계에 선교사를 보내는 나라 가운데 두 번째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미국이 첫째고 우리나라가 두 번째인데 아마도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가 첫 번째 선교국가가 될 것입니다. 복음 선교는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우리나라가 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세계와 단절하고 있을 때 중국 산동성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영국인 토마스 목사가 1866년 7월 미국의 상선 제너럴 셔먼호를 타고 대동강 어귀로 들어왔을 때 평양성은 발칵 뒤집혔습니다.

평양성 사람들은 처음에는 서양 군함이 쳐들어온 줄 알았습니다. 그러다가 제너럴 셔먼호 선장의 무역 요청과 토마스 목사의 복음 선교의 가능성을 거부하면서 제너럴 셔먼호에 불을 질렀고 24명의 선원을 다 죽였습니다.

그 때 토마스 목사는 자기를 죽이려고 대드는 조선군 병사에게 성경을 꺼내 주면서 “예수를 믿으시오”라고 전하면서 “오 주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하고는 순교했습니다.

장래가 밝은 영국의 젊은 선교사 토마스가 무엇이 아쉬워 우리나라에 와서 순교의 피를 흘렸겠습니까? 그는 생명을 바쳐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 준 최초의 순교자이고 최초의 복음 전도자였습니다.

우리는 토마스의 전도 때문에 오늘 구원을 받았습니다. 복음 전도에는 이런 고난이 따릅니다. 이런 고난이 없이는 선교는 불가능합니다.

우리교회에서 필리핀에 파견한 안옥희 선교사는 시집가는 것도 포기하고 필리핀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암병을 얻어 사선을 넘어 오늘도 선교 현장에서 뛰고 있습니다.

우리도 구원의 기쁜 소식인 복음을 전하는 고난의 길을 책임감을 가지고 달려가야 합니다. 이 일에 함께 나서지 않겠습니까? 선교에는 직접 선교사로 나가는 길도 있지만 물질 선교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우리교회 성도들이 어떤 식으로든지 복음의 선교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것이 우리들에게 가장 값어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불원간 주님 앞에 갔을 때 주님의 영광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3. 우리는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복음 선교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산다고 하더라도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서지 못한다면 우리가 한 일들은 공허한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나 자신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예수께서 유대인의 지도자인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고 하신 말씀에서 우리는 이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니고데모는 유대 공회의원 중의 한 사람으로 사회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지만 그가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죄 사함을 받고 새 사람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새 사람이 된다는 것은 죄인의 신분을 벗고 의인이 되며 인생의 목표와 방향을 새롭게 설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제 인생의 목적이 자기중심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중심으로 사고하고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된 사람은 말씀과 기도의 두 날개를 가지고 비상하며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 됩니다.

두 날개 중의 한 날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신자는 일상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생활화해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읽고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1:1-2).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가장 복된 삶입니다. 그런 삶을 살기로 작정해야 합니다. 양육반, 제자대학 등을 통해 성경 말씀을 체계적으로 깊이 공부하고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말씀을 우리의 삶에 적용해야 합니다.

두 날개 중의 다른 한 날개는 기도의 날개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늘에서 내려온 하나님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기도를 간단히 한 것이 아닙니다. 밤이 맞도록 하셨고 식음을 전폐하시고 하셨고 새벽 오히려 미명에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도 기도해야 구원 사역을 하실 수 있었습니다.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은 매우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담임교사가 머리가 너무 나빠서 아무리 가르쳐도 안 되니 집에서 가르쳐 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낙심하지 않고 열심히 가르치며 약해지지 않도록 힘을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11살이 된 에디슨은 기차 한 모퉁이에서 신문팔이를 하면서 무슨 실험을 하다가 기차 내에 불을 일으켜 차장에게 따귀를 맞고 한쪽 귀의 청력을 잃었습니다.

그런 어려운 처지에서도 그는 굴하지 않고 노력하여 2천여 종 이상의 발명품을 내서 발명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늘 기도하고 감사하는 신앙의 사람이었는데 전구를 발명하고 완성할 때까지 무려 12만 번이나 기도하고 1만 번이나 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한번 실험해서 실패하면 3시간을 기도했습니다. 그런 기도의 인내의 노력 끝에 훌륭한 발명가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말씀과 기도의 두 날개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한쪽만 약해져도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앞에 바로 서서 복음 선교와 함께 나라와 민족을 위해 부단히 기도하는 주님의 백성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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