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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4.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오직 주의 교훈으로 양육하라

관리자 2014-05-04 (일) 11:00 10년전 1288  

오직 주의 교훈으로 양육하라

에베소서 6:4

 

1666년 영국 런던에 대화제가 있었는데 도시 전체가 다 타버렸습니다. 1만 3천 여 채의 집과 87채의 교회가 소실되었습니다. 그때 왕이었던 찰스 2세는 크리스토퍼 워렌 경에게 성 바울(St. Paul) 대성전을 위시해서 55개의 교회당 건축을 명령했습니다. 교회당 건축이 한창이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워렌 경은 공사장에서 일하는 석공을 불러서 말을 건넸습니다. “자네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 “네, 저는 이 돌을 깎아서 저 벽에 맞추어 넣고 있습니다.” 워렌 경은 다른 석공에게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석공은 “네, 우리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석공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석공은 “네, 저는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기 위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 세 사람은 교회 건축현장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각각 그 목적과 의미는 많이 달랐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냥 일하거나, 식구들의 생계를 위해서 일한다고 대답했는데, 오직 한 사람만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성스러운 일이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같은 질문을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들에게 하면 똑같은 대답을 할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라고 물으면, “그냥,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있어요” 라고 대답할 수도 있고, “아이들을 돌보고 있어요”하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람직한 대답은 “나는 지금 훌륭한 인간을 만들고 있습니다.”하는 대답일 것입니다.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우기 위해서는 앞의 두 석공 같은 근시안적 안목이 아니라, 세 번째 석공 같은 위대한 안목이 필요합니다.

오늘은 ‘어린이주일’입니다.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귀한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울 수 있는 위대한 안목을 갖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자녀들이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가끔 돌잔치에 가보면 사람들이 ‘돌 예배’ 시간보다 더 관심을 가지고 집중하는 순서가 있습니다. 바로 ‘돌잡이’ 시간입니다. 아기 앞에 ‘돈’, ‘연필’, ‘실’ 같은 것을 놓아두고 이제 한 살이 된 아이가 뭘 잡는가 보는 순서입니다. 아기들이 돈이나 책이나 붙잡으면, 아이가 나중에 커서 부자가 되거나 일류대학교에 들어간다고 부모들이 얼마나 기뻐하는지 모릅니다. 요즘은 IT 분야 CEO가 되라고 ‘마우스’를 갖다 놓거나, 치과 의사가 되라고 ‘칫솔’을 갖다 놓는다고 합니다. 자녀들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안락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을 붙잡는 삶을 살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배우고, 하나님을 알도록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아이들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시초인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그 ‘하나님의 형상’이 흐려졌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을 찾기 보다는 세상을 좋아하고 세상을 향하여 나가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이 흔적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닌 세상을 향해서는 결코 참된 평안함과 만족함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세상에서 부와 권력과 명예를 다 가진다고 해도 하나님 없이는 끝없는 허무와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이 진정으로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그 자녀들로 하여금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도록 가르쳐야 하고, 하나님을 찾게 하고, 기도하게 하고, 찬송하게 해야 합니다.

저의 외손녀가 겨우 말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 영아부에서 이런 찬양을 배워와서 불렀습니다.

“눈, 눈, 눈, 성경 보고요, 코, 코, 코, 숨을 쉬고요, 입, 입, 입, 찬송하고요, 귀, 귀, 귀, 말씀 들어요. 머리, 머리, 머리, 예수님 생각. 마음, 마음, 마음, 예수님 사랑. 손, 손, 손, 봉사하고요, 발, 발, 발, 교회가지요.”

저는 그 어린 아이가 이렇게 찬양하는 것을 보고서 무척 감격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겨우 말을 배우는 아이가, 오랫동안 예수 믿은 성도들이 해야 할 모든 것을 노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녀는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잠시 맡겨준 선물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녀를 하나님의 자녀답게 키워야 합니다. 가정예배를 드리고 주일 예배에 참석시켜야 합니다. 이것을 아예 습관화시켜야 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광야의 시험을 다 마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 6:6-7)

하나님의 백성들이 명심해야 할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신앙의 대물림’인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대물림’은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부지런히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것은 잊어버리지 않도록 ‘부지런히’ 그리고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는 것은 무엇입니까?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들이 세상적인 지식이 많으면 성공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를 시킵니다. 그중에서도 영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직 어린 자녀들이 유치원에 가기 전부터 영어를 가르치느라고 야단입니다. 이러한 영어교육 열풍으로 인해 영어 사교육 시장의 규모가 약 15조원에 이른다고 하니 놀라울 뿐 아니라 걱정스럽기까지 합니다. 영어로 인해 입시와 취업이 결정되고, 이로 인해 구조적인 임금 차별이 존재하는 한, 부모들은 부지런히 ‘영어’를 가르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우리의 인생을 진정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영어’가 아니라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현실이 이러니 어쩔 수 없다고 말하기 전에, 먼저 획기적인 가치관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에 따른 사회구조의 변화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첫 걸음은 먼저 하나님을 알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자녀들이 좋은 성품을 갖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아이들의 일생을 결정하는 시기는 6세까지라고 합니다. 6세까지 어린이들의 삶의 태도와 습관이 정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습관과 태도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부모’입니다. 자녀는 그 부모가 하는 대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부모가 게으르면 그 자녀도 게으르고, 부모가 부지런하면 자녀도 부지런합니다. 또 부모가 이기적이면 자녀도 이기적인 경우가 많으며, 부모가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친절하게 대해주면 자녀들도 그렇습니다. 아이들에게 부모는 마치 거울과 같습니다.

저도 저의 부모님에게서 성실함을 배운 것 같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비록 배움은 짧았지만 맡은 일에는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그분들의 성실함을 저도 모르는 사이에 배운 것 같습니다.

자식들은 부모들이 가르친 만큼 배우는 것이 아니라, 보여준 만큼 배웁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먼저 좋은 인품과 습관을 가지고 자녀들을 대할 때, 그 자녀들이 위대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했는데, 많은 부모들이 무심코 자녀들을 노엽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고, 무시하거나 핀잔을 주면서 대화의 상대로 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모릅니다. 어린아이들은 ‘반쪽짜리 어른’이 아닙니다. 그들도 온전한 인격을 지닌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비록 판단력이 미숙하기도 하고, 경험이 부족하기는 해도, 하나님의 인격을 가지 것을 인정하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들의 장래 문제도 그들의 의견을 경청해야 합니다. 그냥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장래는 자기들이 결정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부모들 가운데는 자신의 아이를 끔찍하게 아끼면서도, 정작 그 아이를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고, 부모가 시키는 대로 따라해야 할 수동적인 존재로만 보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쉽게 윽박지르고, 함부로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자녀는 부모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엇나가거나 수동적인 태도를 갖기가 쉽습니다. 자녀들이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는 ‘자율적인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비전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부모들이 자녀를 윽박지르는 대부분의 이유는 ‘학교 성적’ 때문입니다. 부모들은, 우리 나라에서는 소위 말하는 ‘일류 대학’을 나와야 취직도 잘되고, 사회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만일 자녀들의 성적이 거기에 못 미치면 야단법석입니다. 학교 시험에서 99점을 맞아와도 잘했다고 칭찬해주기는커녕 왜 한 문제를 틀렸냐고 다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아이들이 성적 때문에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요사히 왕왕 일어나는 청소년 자살 사건에서 가장 큰 원인이 ‘성적’ 때문이라고 합니다.

많은 부모님들은 자신의 꿈을 자식들을 통해서 이루려고 합니다. 그러나 지나친 기대는 자녀에게 큰 부담이 됩니다. 부모의 기대는 너무 큰데, 자신은 부모님의 기대치에는 이를 수 없어서 스스로 견디지 못하고 그냥 삶을 포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신 자녀들의 소질과 특성을 찾아서 그것을 키워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자녀들의 소질과 특성을 키워주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많습니다. 가령 자녀들이 체육, 음악, 미술 등의 분야에 소질을 보이면 그때부터 레슨비, 악기 및 장비구입비, 각종 대회 참가비 등에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학교 공부도 부유한 가정의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고액 과외와 해외연수 등으로 경쟁력을 갖출 때,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은 변변한 학원도 다니지 못하고 방치되기 일쑤입니다. 그러니 자녀들의 소질과 특기를 계발하고 도와주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쉽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뛰어넘을 수 있는 하나님의 비전을 아이들에게 심어주어야 합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은 어린 시절에 자신이 꿈꾼 이야기를 자주 했습니다. 그 꿈은 요셉이 열방 가운데 존귀한 자가 될 거라는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형들은 요셉의 엉뚱한 말에 당황하고 증오심까지 가졌습니다. 한편 아버지 야곱은 요셉의 꿈을 키워주기 위해서 총천연색 채색옷, 즉 무지개를 상징하는 꿈의 옷을 만들어 입혔습니다. 그러나 요셉에게 다가온 현실은 꿈이 이루어지는 과정이기보다는, 꿈이 깨어지는 좌절과 고난 그 자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을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였습니다. 결국 요셉은 자신이 포기하지 않은 꿈대로 애굽과 자신의 족속을 구원하고 존귀한 자가 되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비전을 자녀들에게 심어주어야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비전을 자녀들에게 심어주는 방법은 바로 부모님의 기도입니다. 부모님의 기도가 훌륭한 사람을 키워냅니다. 중세 기독교 신학과 서양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성 어거스틴(354-430)은 사도 바울 다음가는 위대한 교부로 불리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는 젊었을 때 방탕한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 그를 고통스럽게 지켜보던 어머니, 모니카는 자식이 하나님 앞에 돌아오기를 바라며, 십 오년 여의 세월을 눈물로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결국 모니카의 기도는 그대로 이루어져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왔고, 2천년 기독교 사상을 지배하는 위대한 교부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자녀들은 어머니의 기도하는 모습, 어머니의 교회 나가는 모습, 어머니와 함께 가정 예배드리는 모습, 어머니가 헌금을 정성껏 드리는 모습, 구제하는 모습,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모습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비전을 가슴에 품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 성도들은 자녀들을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하면서, 그 무엇보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도록 가르치고,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도록 모범을 보이며, 그 마음속에 하나님의 비전을 심어주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세상을 유익하게 하는 훌륭한 자녀로 키우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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