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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1.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관리자 2015-02-01 (일) 11:00 9년전 1260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갈 1:1-5

 

우리 나라에 개신교가 전파되던 초기에 활동했던 선교사들 가운데, 미감리회의 로제타 홀(Rosetta Sherwood Hall, 1865~1951) 선교사는 43년간 한국을 위해 봉사하면서, 평양에 최초의 병원을 설립한 것을 비롯하여, 현재 고려대 의대의 전신인 서울 경성 여자의학 전문학교, 현 이화여대부속병원인 동대문병원, 인천 기독교병원, 인천간호보건대학, 농아학교 등을 설립하고, 한글용 점자를 개발하는 등 우리 나라 근대사에서 위대한 일들을 감당하였습니다. 또 한국의 최초 여의사인 박점동을 키웠고, 한국여성의 인권을 위해서 일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에서 의료선교사가 되기 위해 의과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약혼자 윌리엄 제임스 홀과 함께 1890년 10월에 한국에 들어와 의료선교를 시작하였습니다. 2년 후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린 로제타 선교사는 1894년에 남편과 함께 평양에 병원을 설립하고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해 남편인 윌리엄 제임스 홀이 풍토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한국에 들어온 지 4년, 결혼 한 지 2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한국에 혼자 남게 된 홀 선교사는 출산을 위해 잠깐 미국에 갔다가 다시 돌아와 한국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남편을 기념하며 평양에 홀 메모리얼 병원을 세워 가난한 사람을 치료했는데, 이 병원이 후에 김일성 종합대학 부속 병원이 되었습니다. 홀은 남편을 잃은 슬픔도 뒤로 하고, 쉴 틈 없이 부녀자와 아동을 위한 의료선교 사역을 이어갔는데, 얼마 후 어린 딸마저 풍토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는 비극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딸을 남편 옆에 묻으며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사랑하는 내 아들 셔우드 홀과 한국에서 평생 사역을 할 수 있게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서 여러분의 인생과 생명을 바치고자 합니까?

오늘부터 우리는 갈라디아서를 보게 됩니다. 고린도서에 이어서 여기에서도 우리는 복음 선교를 위해 자신의 생명도 아낌없이 바치고자 하는 바울의 신앙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도 바울이나 로제타 홀처럼 복음 선교에 우리의 열정과 생명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갈라디아는 오늘날 터키 중부 지역인데, 바울이 1차 전도 여행 때 방문했던 지역입니다. 주후 46년경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을 출발하여 약 2년 간에 걸쳐 구브로(Cyprus) 섬과 갈라디아지방을 다녔습니다(행 13-14장) . 그런데 바울이 밤빌리아 주의 버가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그만 습기와 늪지대에 유행하는 풍토병인 말라리아에 걸려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렇듯 선교사들의 삶은 복음 선교 사역을 위해 생명까지도 걸어야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의지로 선교 사역을 감당했던 그들로 말미암아, 오늘날 이렇게 세계 곳곳에 복음이 전파될 수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우리도 그러한 선교사역을 돕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풍토병 때문에 선교활동을 중단하거나 포기한 것이 아니라, 다른 방안을 찾으려고 애썼습니다. 그래서 버가를 떠나 습기가 많지 않은 고원지대인 갈라디아 지역에 와서 선교활동을 하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내가 주의 일을 하는데 왜 이렇게 풍토병으로 고생하는가?’하고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 12:10)

바울은 몸이 아플수록 더욱 큰 믿음을 가지고 주의 일을 감당하여, 갈라디아 지역에 교회를 많이 세우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행 13:44). 그러나 이러한 주님의 역사를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이었는데, 사람들로부터 크게 환영을 받은 바울 일행을 시기하여 이들을 박해하고 쫓아내버렸습니다.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여 그 지역에서 쫓아내니”(행 13:50).

바울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유대인들의 심한 핍박을 받고, 어쩔 수 없이 이고니온으로 피신하였다가, 거기서도 심한 핍박을 받고 다시 루스드라로 피신하였습니다. 그런데 루스드라에서는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쫓아온 유대인들이 사람들을 선동해서 바울을 돌로 쳐서 죽이려고까지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행 14:19)

천신만고 끝에 목숨을 건진 바울은 그러한 핍박과 생명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곧바로 더베로 가서, 거기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행 14:20-21).

 

이러한 바울 일행의 헌신적인 선교사역을 통해, 이방인 지역인 소아시아에 복음이 널리 전파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1차 선교 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안디옥에 머물던 바울에게 우려할 만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자신이 개척했던 갈라디아 지역의 교회에, 자신이 전한 복음을 부정하고, 복음의 진리를 왜곡하는 거짓 교사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써서 그들의 거짓됨을 폭로하고 자신이 전한 복음을 지키고자 했던 것입니다.

바울의 선교 사역을 훼방하고, 그들을 무자비하게 핍박한 사람들과, 그들이 전한 복음을 왜곡하고 다녔던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이 아니라, 이방인 지역에 디아스포라를 형성하여 살고 있었던 같은 동족인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유대교주의자들인 이들은 할례와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바울이 가르친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복음을 무색하게 만드는 자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들을 가리켜 “거짓 형제들”(갈 2:4)이라고 하면서 그들의 가르침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지적하였습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 2:16).

 

하지만 이러한 “거짓 형제들”의 방해 공작은 집요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복음의 기본 진리를 혼란하게 할 뿐만 아니라, 바울의 사도권에 대해 꼬투리를 잡고 늘어졌습니다. 바울은 열 두 사도 중에 한 사람도 아니고,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인정받은 선교사도 아니며, 기껏해야 변방에서 활동하던, 격이 낮은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바울에 대한 중상모략은, 풍토병에 시달리면서 까지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목숨 걸고 전하고자 하였던 바울의 순수한 신앙 열정을 왜곡하는 것이었으며, 무엇보다도 복음의 진리를 왜곡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통탄하지 않을 수 없었던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하는 것으로 갈라디아서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갈 1:1)

바울은 자기의 사도의 직분이, 누군가로부터 임명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비록 그가 예수님과 동행했던 열 두 사도 중에 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들이 예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았던 것처럼, 자신도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이방인의 사도’로서의 사명도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인 제자들로부터 지시를 받은 것이 아니라, 주님이 직접 소명을 주신 것입니다.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행 9:15-16)

어떤 신학교 입학 면접을 하는 자리에서 면접관이 한 청년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언제 신학을 하기로 작정했습니까?” 질문을 받은 그 청년이 대답하기를, “고등학교 예배시간에 설교를 들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자 면접관이 또 물었습니다. “그런 감동을 당신에게 준 설교자는 누구입니까?” 그러자 그 청년은, “나는 그 설교자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에 설교자를 통해서 나에게 말씀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보통 목사가 임직을 받을 때, 노회를 통해서 받습니다. 그렇다고 노회가 그를 목사로 세운 것이 아닙니다. 노회는 다만 그의 자격이 충분하지 면밀하게 살펴보고 예식을 치를 뿐입니다. 만일 그 목회자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음이 없다면, 노회에서의 임직 예식은 별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이 다른 누군가를 하나님의 종이 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부족한 인간을 그의 제자로 부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세움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의식이나 서약이 문제가 아닙니다. 주님의 인정을 받은 종이냐,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사역자냐 하는 것이 저 중요합니다. 여기에는 목회자나 평신도의 구분이 없습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부름받은 사역자입니다.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으로부터 확실한 사명을 받았습니다. 반면에, 바울의 선교 사역을 훼방하였던 거짓 형제들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사단으로부터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그들은 실상 바울을 훼방한 것이 아니라, 바울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훼방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처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사명을 받은 우리는, 사람의 눈치를 볼 것이 아니라,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먼저 앞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비진리에 맞서 치열하게 싸워야 합니다. 이 사실을 망각할 때, 우리가 감당하고 있는 일은 허무한 것이 되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아브라함, 요셉, 모세, 사무엘, 다윗, 엘리야, 이사야, 아모스 같은 사람들은 부르심을 받을 당시에는 떠돌이, 노예, 죄수, 양치기, 포로, 농부 같은 보잘 것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모두 다 신앙의 거인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자신들을 택하시고, 사명을 주신 이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비록 부족한 자들이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할 때, 이 땅에서 큰일들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처럼 부족한 자들을 하나님께서 그의 일꾼으로 불렀다는 사실이 얼마나 대단한 것입니까?

그런데 바울이 자신의 사도권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에게 변론을 했던 것처럼, 모세도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자신의 리더쉽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떻게 증명할 지를 고민하였습니다. 아무리 자신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보냄을 받았다고 말하더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출 4:1).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가지고 있던 지팡이를 땅에 던져 보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땅에 던지자 곧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다시 그 꼬리를 잡으라고 하셔서 뱀의 꼬리를 잡았더니 뱀이 다시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그후 모세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수백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출애굽하여,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았습니다. 이 말씀은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그 무서운 바로 왕도 지팡이 같이 쉽게 취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으로써, 그 어떤 일도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사도권과 리더쉽을 증명해준다는 것입니다. 실로 순종하는 신앙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주님께 부름받은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어떤 사명이든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그 사명을 기쁨으로 감당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위대하게 쓰실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맡기신 일은 무엇입니까?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 일, 세상에서 소금과 빛이 되는 일, 복음을 위해 사는 일, 이 모든 것이 지금 여러분에게 맡기신 주의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그 일을 감당하게 하실 것입니다. 모세에게 지팡이를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능력의 지팡이를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오늘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주님의 위대한 일들을 감당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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