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1.11.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참된 그리스도인 > 이사장칼럼

본문 바로가기
법인소식
정기간행물
정보공개
언론보도
이사장 칼럼
 


2015.01.11.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참된 그리스도인

관리자 2015-01-11 (일) 11:00 9년전 1283  

참된 그리스도인

고후 12:11-18

 

1967년 4월 21일,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망명이 있었습니다. 스탈린의 외동딸인 스베틀라나가 아버지가 죽은 다음 미국으로 망명한 것입니다. 스탈린은 외동딸인 스베틀라나를 사랑했지만, 그녀는 자신이 사랑한 남자를 스탈린이 강제 수용소로 보내 버리자, 평생 아버지를 미워하다가, 스탈린 사후에 미국으로 망명한 것입니다. 이 사건은 냉전시대였던 당시에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뉴욕 케네디 공항에 내린 그녀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깊이 생각했습니다. 저의 생각을 도우신 분은 하나님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이란 내 생각을 하나님과 연결시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고, 행동에 옮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의 기독교인들 가운데는, 단순히 예수 믿고 구원받는 신앙에 머물러, 그의 신앙이 삶과는 유리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온전한 신앙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3:2)는 주님의 요청은, 우리의 삶을 돌이키는 것이 신앙의 첫 단계임을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위대한 신앙인인 바울의 신앙과 삶을 통해, 무엇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거짓 교사들의 말을 듣고, 자신에 대해서 오해하고 비난할 뿐만 아니라, 바울에게서 배운 신앙을 버리고 거짓 가르침에 빠지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도 가슴이 아팠습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예루살렘 회의를 통해서, 이방인들에게는 할례나 율법이나, 아무런 짐도 강요하지 않기로 결의한 바 있는데, 유대주의자들은 바울이 개척한 이방인 교회를 다니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으로는 부족하고, 할례와 율법을 지켜야만 온전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치면서 신자들을 현혹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내세우기 위해서 바울을 비난하고 음해하는 짓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고린도에서 교회를 세울 때, 교회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스스로 노동을 하면서 선교비를 마련한 것을 가지고도, 바울이 그만큼 그들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다고 이간질을 하였습니다. 안타깝게도 고린도 교인들은 그러한 비방과 이간질에 넘어가 바울을 오해하고 적대시 할 뿐만 아니라, 바울이 전해 준 복음도 외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사례를 받지 않는 것은 그들을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자신을 후원하는 데에 시간과 물질을 허비하지 않고, 오로지 영혼구원에만 매진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우리 주님께서 무엇을 가장 원하시는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원하시는 것은 복음증거입니다. 전도입니다. 천하보다 귀한 한 생명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19-20)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이방인의 선교사로 부름받은 바울은 이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평생 복음 증거를 위해 살았던 것이고, 자신이 전도한 교회 또한 복음 증거에 열심을 다하기만을 바랬던 것입니다. 그 외에 다른 인간적인 것에 시간과 정성을 허비하는 것은 절대로 바울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도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복음 증거입니다. 우리는 이와같은 주님의 지상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나의 시간과, 정성과, 물질을 내어서 기쁜 마음으로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바울을 비방하고 음해한 거짓 교사들은 스스로를 사도라고 내세웠지만, 실상은 거짓 사도였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통한 자기 의를 드러내고자 한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인들은 그러한 거짓 교사들의 검은 속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들에게 부화뇌동(附和雷同)하여, 바울을 무시하였습니다. 그리고 거짓교역자들은 대단하게 알았습니다. 거짓 교역자들도 자기들이 “크다”고 했습니다. 곧 대사도라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이에 대해 정면으로 비판했습니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나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고후 12:11). 자기 자신은 부족한 사람이지만, 거짓 사도들이 전하는 거짓 진리보다 자신의 복음의 진리가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열매로 나무를 안다”(마 12:33)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바울은 누군가 자기 스스로를 큰 사도라고 칭하고 다녀도, 그 열매를 보고 판단해야 된다고 하면서, “사도의 표가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고후 12:12)라고 하였습니다. 거짓 사도들의 열매는 분열과 분쟁이었지만, 사도 바울의 열매는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한 마디로 표현하면, ‘기적’입니다. 사도들에게는 하나님의 하시는 기적이 따랐습니다. 이 기적은 마술 같은 눈속임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가장 먼저 언급한 참된 사도의 열매는 “모든 참음”이었습니다. 바울은 “오래 참음”이 사도로서 표라고 했는데, 그 자신이야말로 이방인 사역을 하면서 오래 참은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거짓 사도들이 바울에 대해서 근거 없는 비판을 할 때, 거기에 대해 분노로 대응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래 참는 사랑으로 대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에 대해 말할 때에도, 바울이 가장 먼저 언급한 것은 “사랑은 오래 참는다”는 것이었습니다(고전 13:4). 또한 바울은 이 “오래 참음”이 성령의 열매라고 하였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

살아있는 식물은 때가 되면 열매를 맺는 것처럼, 살아있는 신앙인들은 이런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열매 맺지 못한다는 것은 살아있는 신앙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문제는 열매가 없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기적도 열매도 없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좋은 교회의 열매는 웅장한 건물이나 예배의식의 화려함이나 헌금의 액수나 성도의 숫자가 아니고, 생활이 변화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들의 생활에 변화가 없다면 우리들의 신앙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사도의 기준은 생활을 변화시키는 복음을 전하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살아있는 말씀은 우리를 변화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말씀대로 살아서 생활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진실한 신앙에는 생활이 따라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참 신앙인의 여부를 알 수 있는 표시와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는 신앙과 생활이 함께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이라면 인격적으로도 훌륭해야 하는데, 우리가 주변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과연 그렇습니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신앙의 연조가 길수록 더 아집이 생기고, 이웃을 배려하지 않고, 무시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우리는 신앙의 연조가 깊을수록 폐쇄적인 것이 아니라, 더욱 겸손하고, 더 넓은 포용성을 갖춰나가야 할 것입니다.

지난 11월 24일(월) 우리 교회에서 NCCK 총회가 있었는데, 어떤 사람들이 총회를 반대한답시고 핸드 마이크를 가지고 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NCCK와 천주교가 함께 “신앙과 직제위원회”를 만들어 서로 대화하는 것에 대해서 반대한다고 하면서, 교회 정문 밖에서 소란을 피웠습니다. 이 얼마나 폐쇄적인 모습입니까? 신앙인이 이러면 안됩니다. 그들이 성경이니 신앙이니 하는 말을 들먹거리면서 소란을 피우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엄연한 한국교회의 모습 가운데 한 단면입니다. 물론 그들이 뭘 알겠습니까? 편협한 목회자들이 잘못 가르친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목회자들이 회개해야 교회가 바뀔 것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또,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이 사례를 받지 않은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계속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내가 구하는 것은 너희의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고후 12:14)고 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목회자인 자신에게 물질보다는 마음을 주기를 바랐습니다. 돈은 언제나 갚을 수 있지만 돈만으로는 갚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마음입니다.

어느 착한 여신도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 집에 거지가 와서 구걸을 했습니다. 그 여신도는 그 거지에게 돈을 주려고 찾았지만 잔돈이 없었고, 빵을 살 돈만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여자는 거지를 물리치지 않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집에 잔돈이 없는데 마침 빵이 좀 필요해요. 여기 1파운드를 드릴 테니, 저 앞에 제과점에서 빵을 좀 사다주시면 그 잔돈 가운데 얼마를 드리겠어요.” 그리고는 1파운드를 거지에게 선뜻 건네주었습니다. 그 여자의 말을 듣고 거지가 빵집에 다녀와서 빵과 잔돈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거기서 동전 몇 개를 그 걸인에게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받은 거지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여자가 놀라서 왜 그러냐고 묻자, 그 걸인은 말하기를, “제가 돈을 받았기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나를 믿어 주었기 때문에 감격해서 눈물이 납니다. 지금까지 세상에서 나를 믿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걸인인 나를 의심하지 않고 믿어주었습니다. 이보다 더 이상 고마운 것이 없습니다.”

그 여주인은 믿을 수 없는 사람을 믿어 주었습니다. 그 여인의 신뢰는 걸인에게 있어서 돈 이상의 의미였습니다. 곧 그 걸인은 따뜻한 마음을 받았던 것입니다. 바울도 고린도 교인들에게 마음을 받기를 바란다고 했는데, 우리들 또한 주님께 우리의 마음을 드려야 합니다. 이것은 물질을 드리는 것보다 앞서는 것입니다. 참으로 신자는 주님께 헌금을 드리기에 앞서, 언제나 마음을 드려야 합니다. 또한 이웃을 도울 때에도, 물질로서 돕는 것과 함께, 나의 마음을 주어야 합니다. 신뢰심을 주는 것이야말로 가장 귀한 것을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은 그리스도인들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교회에서 모은 헌금을 예루살렘에 보내주는 일을 했는데, 그 일을 맡겼던 바울의 제자 디도와 또 다른 제자가 그것에 손을 대었다고 비난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그렇게 신뢰하는 디도와 또 한 제자를 그런 사람으로 의심하는 고린도교인들을 생각할 때,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보낸 자 중에 누구로 너희의 이득을 취하더냐? 내가 디도를 권하고 함께 한 형제를 보내었으니 디도가 너희의 이득을 취하더냐?” (고후 12:17-18)

그러나 바울은 그들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결코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고 고린도 교인들에게 변호하였습니다. 이렇게 바울의 무한한 신뢰를 받고 있는 디도와 또 한 제자는 정말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누군가 이렇게 자신을 믿어준다면 큰 힘이 되겠지만, 실상, 세상에서 나를 신뢰해 주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오직 우리 주님은 우리를 무한히 신뢰해주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님의 일을 맡겨 주시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에게 중요한 일을 맡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믿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신뢰하여 쓰시고자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올해 우리는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믿음의 열매를 맺고,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주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돕고, 주님과 이웃에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부족한 우리를 택하셔서 주님의 참된 일꾼으로 살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서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 19 기독교회관 604호 (사)지구촌구호개발연대  대표자 : 전병금
TEL : 02-744-1895   FAX : 02-744-1894  고유번호 : 584-82-00066  
604, Korea Christian Bldg., 19, Daehak-ro, Jongno-gu, Seoul, Republic of Korea(Postal Code 03129)
Copyright by 2016 (사)지구촌구호개발연대.   All rights reserved. Produced by S.L.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