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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8.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네 안에 그리스도가 있는가?

관리자 2015-01-18 (일) 11:00 9년전 1329  

네 안에 그리스도가 있는가?

고후 13:1-10

 

지금부터 54년 전, 제가 고등학교를 들어가기 위해서 입학시험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은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였는데, 수업이 끝나면 학교 도서관에 남아서 공부하는 사람도 있었고, 바로 학원에 가서 공부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반면에 저는 중학교에 다니면서도 혼자가 된 어머니의 농사일을 돌보느라 좀처럼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학교 수업을 마치자마자 30리나 되는 길을, 약 1시간 30분 정도 걸어서 집으로 와야 했습니다. 집 근처에 와서 홀로 일하시고 계시는 어머니를 보면, 책가방을 던져두고 바로 논밭에 들어가서 어머니를 도와야 했습니다. 그렇게 농부처럼 일하면서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치르게 되었으니 제대로 준비할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제가 시험을 보는 그 고등학교는 그 지역에서는 명문학교였고, 입학 경쟁율이 약 3:1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때 저로서는 그렇게 쉬운 시험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시험을 치긴 했는데, 그렇게 잘 본 것 같지 않았습니다. 머리도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닌데, 공부할 환경도 안되고, 시간도 없었으니 잘 볼 수가 없었습니다. 꼭 고등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해야 하는데,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하는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만약 내가 떨어지면, 어머니는 보나마나 일손이 부족한 집안 농사일이나 거들라고 하실 것이니, 무슨 일이 있어도 합격해야만 했습니다.

드디어 합격자 발표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저는 떨리는 마음으로 학교 강단 벽에 붙어있는 합격자 명단이 보기 위해 걸어가는데, 거기에는 합격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울고 있었습니다. 저는 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벽보에서 제 이름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전병금’ 제 이름 세 글자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 명단에 쓰여 있는 제 이름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너무 좋아서 날아갈 것만 같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없어서 입시 공부를 제대로 못했는데도 그런대로 합격을 한 것입니다.

만약 그때 제가 불합격했더라면, 아마도 낙심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입시, 취업, 승진 등을 위해 시험을 치르고 어떤 사람은 합격의 기쁨을 누리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불합격의 쓰라림을 겪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꼭 치러야 하는 시험이 있습니다. 그 시험은 꼭 합격해야하는 하는 시험입니다. 그것은 바로 다시 오시는 주님 앞에서 치르는 ‘최후의 심판’입니다. 입시나 취업이나 승진은 혹시   불합격 하더라도 ‘다음 기회’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재림하실 때의 최후의 심판에서는 ‘다음 기회’라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그 기회는 단 한 번뿐입니다. 우리는 그 시험에 불합격하여 심판의 자리로 내침을 당하지 않도록 “지금”, 그리고 “날마다” 준비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세상에서 모든 시험에 합격하여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취업하고, 높은 자리까지 승진했다하더라도, 주님의 재림때 내침을 당한다면, 그 인생은 ‘불합격’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하루 하루를 그럭저럭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날에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고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받기 위해 준비해야만 합니다.

 

본문에서, 바울이 개척한 고린도 교회는 그가 떠나자마자, 거짓사도들이 들어와서 극심한 분쟁에 휘말리게 되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전임 교역자인 바울을 거짓 사도로 몰아 비난하고, 바울의 가르침을 무력화시키려는 거짓 사도로 인하여 상상할 수 없는 혼돈에 빠져 들었습니다.

사태가 이처럼 악화되자,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세 번째로 방문하기 전에, 고린도 교회를 혼란에 빠트린 거짓 사도들의 정체를 폭로하고, 그들이 가르친 거짓 복음을 낱낱이 폭로하면서 마지막 경고를 하였습니다.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리니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하리라. 내가 이미 말하였거니와 지금 떠나 있으나 두 번째 대면하였을 때와 같이 전에 죄 지은 자들과 그 남은 모든 사람에게 미리 말하노니 내가 다시 가면 용서하지 아니하리라”(고후 13:1-2)

바울은 더 이상 교회를 어지럽히는 자들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하였습니다. 바울은 전통적인 율법에 따라 두세 사람의 증인을 세워, 합법적이고 공정한 재판을 엄격하게 시행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힌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정말 바라는 것은 그런 처벌이 아니라, 그들의 ‘회개’였습니다. 우리는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런 고린도 교인들을 미혹하여 거짓 진리에 빠지도록 한 거짓 사도를 결코 용서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미리 회개하여 서로 웃는 얼굴로 만나게 되기를 바랐습니다. 바울의 책망은 이런 사랑이 있었기에 더욱 단호했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주의 자녀들에게 혹은 이웃에게 책망을 할 때, 거기에는 반드시 사랑이 전제되어 있어야 합니다. 사랑이 없는 책망은 오히려 반박을 사게 되고, 결국 관계의 파탄을 가져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 교회에 가서 그들을 단호하게 책망하기 전에, 그들이 미리 회개하고 돌아올 것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스스로 자신들의 믿음을 점검해보라고 부탁합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고후 13:5).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거짓 사도들의 말을 듣고, 분별력 없이 바울을 의심하고 바울의 가르침에서 떠난 것은, 그들 안에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비난하고, 바울의 가르침에서 떠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인지 냉정하게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만일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면 그렇게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는 말은 제철소에서 순금을 골라내는 작업에서 유래된 말로, 순수한 것을 골라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말은 고린도 교인들이 단순히 자신을 반성한다는 말 정도가 아닙니다. 이 말은 자기 자신을 용광로의 불구덩이 속에 던져 넣는 고통으로 회개한다는 말입니다. 즉 내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게 하기 위해서는 성도들은 자기의 옛 자아를 불구덩이에 던져 녹이는 것 같은 회개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매 순간마다 죄를 지은 것에 대한 회개를 하되, 용광로에서 철을 제련하듯이 철저하게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매순간 자아를 죽여야 합니다. 자기를 꺾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는 매일 죽노라”(고전 15:31)고 한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자기를 죽여야 합니다. 우리의 부패성을 죽여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자신을 죽이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계신가를 확인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죽인다는 것은, 마치 음식물이 몸속에 들어가서 그 형체가 없어지고 몸의 일부와 같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 들어가 내 자신은 없어지고 주님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 2:20)

그런데 몸속에 들어간 음식물이 소화돼서 녹아지지 않으면, 그 음식물은 토해지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매일 죽지 않고, 주님 안에 거하지 않으면, 세상에서나 교회에서 잘못된 판단을 하고, 남을 비방하고 분쟁을 야기시키는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주님은 그런 사람은 밖에 버려질 것이라고 분명하게 경고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요한복음 15:5-6)

그러므로 우리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있는가’ ‘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 하는 것을 매순간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가 매일 나를 죽이고,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확인할 때, 주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내 안에 그리스도가 내주하고 있는가를 점검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제련소에서 순금을 골라내고 버리는 불순물과 같은 사람입니다. 이는 또한 예수님께서 비유를 통해서 말씀해주신 ‘가라지’와 같은 사람입니다. 곡식과 가라지는 겉모습은 비슷해 보이지만, 결국에는 그 갈길이 전혀 다릅니다. 주님은 우리가 결코 가라지와 같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당부하고 계십니다.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마 13:30)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없으면 그 사람은 ‘불순물’이나 ‘가라지’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엄청난 저주에 이미 빠진 것입니다. 지금 내 안에 그리스도가 계신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예수께서 내 안에 모시기를 힘써야 합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 안에 들어오기 위해서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우리는 주님께 그 문만 열면 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청함을 받고도 그 문을 열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는 주님이 내 안에 들어와 나를 변화시키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세상일에 취해서, 혹은 내 마음에 가지고 있는 죄 때문에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을 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의 문을 닫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으면, 예수님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으로 남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 이는 주의 이름을 아무리 부른다 한들 주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열고 주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그리고 매일 매순간 내 안에 그리스도가 계신지를 시험해 보고, 그리스도가 계신 것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내 마음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사는 사람은, 가정에서나 교회에서, 그리고 사회에서도 사람들의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모든 꽃은 그냥 두어도 향기가 나듯이,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야 합니다. 교회에서 언제나 헌신, 봉사, 순종이 따라야 하고, 세상에 나가서는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목사님은 말하기를,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예수를 믿으라고만 하지 말고, 예수가 누구인지 보여달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동네마다 교회가 수두룩하고, 각 교단의 신학교에서는 매년 수많은 목회자들이 배출되고, 기독교 단체들도 많이 있지만, 정작 사람들은 예수가 누군지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현실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신다면, 어찌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모를 수가 있겠습니까? 반대로,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지 않는다면, 어찌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예수 믿는 남편을 볼 때마다 예수님을 보는 것 같습니까? 예수 믿는 아내를 볼 때마다 예수님을 보는 것 같습니까? 교회에서 만나는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목사님을 볼 때, 예수님을 보는 것 같습니까?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데, 오직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자만이 그 안에 계신 주님을 보여줄 수가 있을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 2:2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지금도 우리 마음 문 밖에서 두드리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주님을 홀로 두시지는 않고 있습니까? 우리는 즉시 마음 문을 열어 주님이 내 안에 계시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우리 안에 주님이 계신 것을 확인하고, 세상에 빛과 소금의 삶을 통해 그것을 증명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주님 오시는 그날에 영광스럽게 주님을 맞이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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