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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22.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평화를 위한 행진

관리자 2015-02-22 (일) 11:00 9년전 1260  

평화를 위한 행진

갈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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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국민들이 제일 존경하는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백범 김구(1876~1949) 선생입니다. 1999년 한겨레신문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김구 선생이 “20세기 정신사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김구 선생은 정말 사심 없는 우리 민족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상해임시정부의 주석으로 한국 광복군을 조직하여 일본에 필사적으로 항전하다가, 1945년 광복을 맞이하여 남한에 귀국하였습니다. 이후 신탁통치 반대운동과 남북 단독 총선거 반대 운동을 주도하며 남북협상을 주장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평양에서 회담을 했지만 협상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남한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하여 남한 단독 정부에 참여하지 않았고, 계속해서 남북이 하나가 되도록 노력하다가 1949년 6월 26일, 이승만 세력에 의해 암살당하고 말았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의 삶은 조국의 평화를 위한 행진의 연속이었습니다. 일제하에서는 조국의 해방을 위해 일제와 피흘려 싸우다가, 해방 후에는 조국을 분단시키려는 분단 세력과 싸우며 평화의 행진을 계속 했습니다. 비록 그의 ‘평화의 행진’은 미완으로 끝났지만, 그 과제는 오늘날 우리에게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땅의 진정한 평화는 예수의 복음으로만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평화의 행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깨닫고 전 세계를 향한 복음 전도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울의 복음 전도 여행은 폭발적인 역사가 있어, 가는 곳마다 대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 다음 안식에는 온 (비시디아 안디옥)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행 13:44)....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13:49).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행 14:1).

“바울이 일어나 그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행 14:20-21).

 

이처럼 바울의 전도여행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방인 지역에서 요원의 불길처럼 타올랐습니다. 그만큼 주님의 평화도 로마 제국 내에 있는 이방인들에게 전파되었는데, 이는 로마 제국이 선전하는 ‘로마의 평화’에 대한 대안적 메시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는 강력한 무력을 앞세워 ‘로마의 평화’를 유지했는데, 그것은 실상 식민지 백성들의 일방적인 희생 위에 세워진 ‘그들만의 평화’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는 세상이 알지도 못하고, 줄 수도 없는 진정한 평화였습니다.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그런데 이러한 역사를 바라보는 유대인들(the Jews)은 아연 실색해서 바울의 선교여행에 제동을 걸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이방인들도 ‘믿음’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면, 유대인으로서 특권의식과 선민의식에 치명상을 입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바울이 가는 곳 마다 바울을 핍박했습니다.

“유대인들이(the Jews)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거늘”(행 13:45).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여 그 지역에서 쫓아내니”(행 13:50).

“그러나 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거늘”(행 14:2).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행 14:19).

 

그런데 문제는 유대교인(the Jews)의 반대와 핍박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더욱 심각한 내부의 대적자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유대인 출신의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유대인의 민족적 특권을 고수하고 유대인 우월주의를 주장하는 “유대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지 않으면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행 15:1).

 

바울은 1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안디옥에 머물고 있었는데, ‘유대주의자들’이 찾아와, 이방인 선교 사역과 할례 문제를 두고 심각하게 도전을 하였습니다.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행 15:2). 바울은 이 유대주의자들의 도전을 어떻게든 해결하지 않으면 장차 이방인 선교에 큰 차질을 빚을 것으로 판단하고, 예루살렘 지도자들과 이 문제에 대해 담판을 지어야겠다는 결단을 내립니다.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행 15:2). 그리고 드디어 바울은 바나바와 디도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가게 되었습니다. “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나니”(갈 2:1).

이때 바울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간 바나바(Barnabas)는 예루살렘 교회에서도 신뢰받는 지도자였습니다. 본래 그는 처음 예루살렘 교회가 설립될 때, 자신의 재산을 팔아 헌금한 사람입니다(행 4:36-37,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또한 교회를 핍박하던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한 예수를 만나고 회개한 다음, 예루살렘의 수뇌들을 만나고자 하였으나, 다들 그의 회심을 의심하여 만나지 않으려고 할 때, 바나바가 바울을 예루살렘 지도자들에게 소개하기도 했습니다(행 9:26-27,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이처럼 바나바는 ‘위로의 아들’이라는 이름의 뜻처럼, 넓은 포용력과 관용으로 예루살렘 교회를 비롯한 초대교회에서 신뢰와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인물이었습니다.

또한 디도(Titus)는 바울이 가장 신뢰하고 아끼는 제자요, 동료였습니다.

(고후 8:23)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료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

(딛 1:4) “같은 믿음을 따라 나의 참 아들 된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바울은 자신과 뜻을 같이 하며, 가장 신뢰할만한 바나바와 디도와 함께 예루살렘 수뇌들과 논의하는 자리에 동행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디도를 데리고 간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었습니다. 디도는 유대인이 아니라 헬라인이었는데,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도 할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즉, 할례를 면제받은 이방인 그리스도인의 대표적인 사례였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 디도를 데리고 감으로써, 예루살렘 사도들과 ‘할례 문제’를 담판 짓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낸 것입니다. 신실한 디도를 통해 할례가 이방인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밝히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갈 2:3-4).

 

드디어 바울 일행은 예루살렘 교회에 가서 예루살렘 교회의 최고 지도자인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와 베드로와 요한을 만나서 이방인 선교와 할례 문제에 대해서 함께 의논하였습니다. 그 논의는 바울이 의도한 대로 흘러가, 흡족할 만한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저 유력한 이들은 내게 의무를 더하여 준 것이 없고, 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갈 2:7-9).

예루살렘 회의에서 바울과 예루살렘 교회의 수뇌들은 서로를 ‘이방인의 사도’와 ‘유대인의 사도’로 인정하고 “친교의 악수”(갈 2:9)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선교지역과 대상에 대한 역할을 분담한 것이 아니라, 바울의 사도로서의 위상을 인정했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바울은 전도여행을 다니면서 회당에서 만난 유대인에게도 복음을 전했고, 베드로도 유대 지역에서 만난 이방인 고넬료 같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즉, 예루살렘 회의는 선교의 지역과 대상을 나눈 것이 아니라, 복음 전파를 통해 이 땅에 참된 평화를 전하는 행진을 함께 하는 파트너로 서로를 인정하게 된 데에 더 중요한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 회의는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할례와 율법 문제를 말끔히 해결하는 회의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예루살렘 총회 차원에서는 입장 정리가 끝났는데도, ‘거짓 형제들’인 ‘유대주의자들’은 이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바울을 괴롭히고, 할례와 율법을 주장하며 교회를 어지럽혔습니다. 이에 바울은 2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나서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3차 전도 여행 중에 이 ‘갈라디아서’를 써서 유대주의자들을 정면으로 비판하게 된 것입니다.

 

초대 교회의 ‘할례 문제’는 구원에 있어서 본질적인 문제가 아닌 전통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주의자들이 이것을 본질적인 문제로 주장하는 것은 복음을 심각하게 왜곡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비본질적인 문제로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적대시해서는 안됩니다. 본질적인 믿음과 구원에 대해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다면 그 이외의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 논의하고 합의점을 찾아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함께 협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동안 한국교회는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으로 나뉘어 서로 다퉈왔습니다. 사실 ‘서로’라기 보다는 보수진영이 일방적으로 진보진영을 매도하고 적대시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교회 성장에 이바지해온 보수적인 교회와, 사회에서 예언자적 사명을 수행해온 진보적인 교회가 서로를 인정하면서, 하나님이 맡겨 주신 복음 선교 사역에 함께 힘을 보태야합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이 땅에 진정한 평화와 정의를 이루는데 함께 행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이러한 일을 방해하는 성숙하지 못한 일들이 가끔 일어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화합과 일치를 이루기 위해, 복음을 높이 들고 평화의 행진을 함께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아서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간혹 “어떻게 비진리와 화합할 수 있느냐?”고 항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비진리하고는 연합과 일치가 불가능합니다. 이단과 어떻게 함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이들과는 언제든지 평화의 행진을 같이 하고, 화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주신 지혜를 가지고, 겸손하게 평화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평화를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함께 해야 합니다. 남북한 문제와 민족 통일 문제도 그 연결선 상에서 논의해야 합니다. 이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서 남과 북이 먼저 하나님께 평화를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겸손하게 서로 만나는 평화의 행진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아무쪼록 금년에 이런 평화의 행진에 진전이 있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이러한 평화의 행진에 복음을 들고 동참하는 이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과 가정에서도 주님과 함께 평화의 행진이 계속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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