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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3.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지혜 있는 자가 되라

관리자 2015-12-13 (일) 11:00 8년전 1289  

지혜 있는 자가 되라

엡 5:15-21

 

어떤 사람이 매일 밤, 악몽에 시달렸습니다. 꿈을 꿀 때마다 신비스러운 보자기를 쓴 어떤 형체에 의해서 방해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재산을 모아 놓으면 그것을 빼앗아 가고, 즐거운 일이 생기면 기쁨을 누릴 틈도 주지 않고, 마음에 불안과 공포를 심어 넣었습니다. 배가 고파서 음식을 먹으려고 하면 음식을 빼앗아 가고, 잠을 좀 자려고 하면 마음의 평안을 빼앗아 가고 대신 번민에 빠지게 했습니다. 그가 세상에서 명성을 얻기라도 하면, 그 형체가 어김없이 나타나서 그를 음해하고 루머를 퍼뜨려 그에 대한 평판을 나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또 그가 아주 좋은 기회가 와서 그 기회의 문을 들어가려고 하면, 그 순간에도 나타나서 그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어느 날 그가 결혼식을 올리는 꿈을 꾸었는데, 꿈에서 사랑하는 신부의 손을 잡고 결혼서약을 하는 순간 그 형체가 나타나서 훼방을 하며 “이 결혼은 성립할 수 없다”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그 사람은 이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그 형체를 향하여 소리쳤습니다. “너는 도대체 누구냐?” 하고 소리 지르면서 그의 얼굴의 보자기를 벗겨 버렸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수건을 걷고 드러난 얼굴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의 얼굴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를 궁핍하게 하고,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게 하고, 나쁜 평판을 만들게 하고, 중요한 기회를 놓치게 하고, 인생을 망치게 하는 요인이 다른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자기가 자기 자신의 가장 큰 원수요 반대자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원수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운명을 위대하게 개척할 수도 있지만, 망쳐 놓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죄악이 차고 넘치는 세상입니다. 자칫하다가는 죄악에 물들어 자신의 삶을 망쳐버리기가 쉬운 세상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유명한 신학자 폴 틸리히는 현대의 특징을 네 가지로 말했습니다.

① 현대는 문화적, 종교적인 안전성을 잃어버린 불안과 공포의 시대이기 때문에 일체의 토대가 무너져 버렸다

② 불확실성으로서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③ 공통의 세계가 무너졌기 때문에 고독하다

④ 그런 까닭에 모든 것이 무의미하고, 따라서 냉소주의가 정신적인 특징이다

이런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돈과 명예와 권력을 추구하고 성공에 목표를 두고 사는 세상에서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비상한 각오를 하지 않으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이러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지혜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세상에 파송하면서 지혜있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 10:16).

오늘 본문에서 바울도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엡 5:15).

 

여기서 “지혜 있는 자”란 세상의 학문적 지식을 소유한 지성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 9:10) 라는 잠언 9장 10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진리에 헌신한 자로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그 뜻을 따르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에 반해, “지혜 없는 자”는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 1:7)는 말씀처럼, 인생을 살아가면서 꼭 알아야 하고, 행해야 할 바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어리석은 자”를 의미합니다.

 

그럼 지혜 있는 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 16절 본문에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너무 악하기 때문에 죄를 경계하고, 선을 추구하지 않으면 우리는 쉽게 죄의 노예가 되어 버립니다. 인류의 물질문명을 발전했다고 하지만, 인간의 본성은 에덴 동산에서의 타락 이후의 죄악된 상태 그대로입니다. 오히려 문명이 발달할수록 세상의 악함은 더욱 복잡하고 다양해졌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우리는 죄에 대한 예방책을 준비해야 합니다. 조심하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과 삶이 순결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죄에 대한 예방책 가운데 가장 효과적인 것은 세월, 곧 시간을 아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죄악에 빠지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주님의 일을 감당하는데 시간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시간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귀한 달란트입니다. 그러기에 이 시간은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사용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것을 오용하고 낭비하다가, 끝내는 육체의 소욕을 쫓아 죄악의 수렁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세상의 욕심을 쫓는데 허비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께 예배하고, 이웃을 돕고, 정의를 실현하고, 평화를 만드는 데 사용해야 합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에베소교회에 보낸 당시도 정말 악하기 그지없을 때였습니다. 이 편지를 쓴 다음 몇 년 후에 네로 황제가 로마시에 대화제를 일으켰고, 그 책임을 기독교인들에게 뒤집어 씌워 바울과 베드로가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그 뒤 네로 황제는 자살해 버렸고, 로마제국은 큰 혼란에 빠졌는데, 기원후(A.D.) 68-69년, 단 2년 사이에 황제가 4명이 교체될 정도였습니다, 그러한 혼란기 속에서 기원후 70년에 예루살렘도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사회적인 혼란 이면에 있는 인간의 죄악된 본성을 꿰뚫어 보고, 시간을 아껴 잘 사용하고, 모든 시간에 최선을 다해 선을 행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혹시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보내지는 않습니까? 혹시 내 이익과 안일을 위해서만 보내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대부분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데, 실제로 우리는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는 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아 있는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고 하면서 어떤 일을 하든지, 분초를 아껴가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라고 권면합니다.

 

또 바울은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 5:18) 고 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처럼 악한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가기 위해서 육체적으로도 절제를 해야 합니다. 바울은 여기서 구체적으로 술 취하지 말고 방탕한 생활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실 술 취함이 곧 죄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술에 취함으로써 방탕한 본성이 드러나고,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절제를 요구한 것입니다.

불신자들은 인생이 고달프고 괴로운 일이 있으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술을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언젠가 뉴스에 보니, 우리나라의 술 소비량이 러시아와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합니다. 대략 우리 국민 한 사람이 연간 마시는 술의 양이 무려 9.16리터나 된다고 합니다. 이는 한 사람이 1년 동안 소주 127병을 마시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이렇게 술을 많이 마시면서 스트레스가 해소되느냐고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술에 취할수록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괴로움이 가중됩니다.

신자들은 세상의 그 무엇을 의지할 것이 아니라, “성령 충만”을 통해 마음의 평안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을 받으라”는 말은 성령의 위로를 한번 받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성령과 동행하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 성령은, 예수를 영접할 때 우리 안에 내주하지만, 항상 성령에 충만한 것은 아닙니다. “성령 충만”하기 위해서는 성령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도록 해야 합니다. 마치 술에 취한 이가 술에 지배를 받는 것처럼, 우리 신자는 성령의 강권적인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은 이 세상보다 크십니다. 아니 우주보다 크고 위대하신 분입니다. 이 성령이 나를 완전히 지배하여야 그 어떤 세상 풍파 속에서도 강하고 담대하게 맞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에 충만할 때, 이 세상이 줄 수도, 알 수도 없는 기쁨과 감사가 충만하게 됩니다. 그러한 우리를 그 누가 당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 다음에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엡 5:19)라고 했습니다.

초대교회의 특징 중에 하나는, 성령강림 이후 예배 때에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불렀다는 것입니다. 성령에 충만하면 찬송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치 술 취하면 노래를 부르듯이, 성령에 충만하면 노래를 부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이후에 교회를 통해서 음악이 발전해 왔습니다. 서양 음악의 역사는 교회 음악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성령 충만한 자에게는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구원 받은 것을 생각할 때, 또 이 땅에 사는 동안 주님이 주신 많은 복과, 천국에서 누릴 영광을 생각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릴 수밖에 없습니다. 초대교회처럼, 그리고 바울이 권면한 것처럼, 우리도 언제나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기쁨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다른 이웃을 섬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 섬김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이웃에게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 순종은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존경심에서 나온 순종입니다. 곧, 이웃을 섬기는 행위 자체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찬양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고 지켜가는 우리 성도들은 바울이 권면한대로 지혜롭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가정과 교회에 평화가 넘치며 큰 능력이 임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주 안에서 지혜있는 자가 되어, 이 세상 그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평화와 기쁨이 넘쳐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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