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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8.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눈을 열어 주소서

관리자 2015-10-18 (일) 11:00 8년전 1252  

눈을 열어 주소서

왕하 6:14-17

 

여러분이 잘 아는 헬렌 켈러 여사는 시각, 청각 중복 장애를 극복하고 작가와 교육자로 명성을 떨친 사람입니다. 그녀가 쓴 <3일 동안만 본다면>이라는 책에 이러한 글이 있습니다.

“만약 내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유일한 소망 하나 있다면, 죽기직전에 꼭 3일 동안만 눈을 뜨고 보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눈을 뜨고 볼 수 있다면, 가장 먼저 나를 이만큼 가르쳐주고 교육을 시켜준 설리반 선생님을 찾아가겠습니다. 그녀의 인자한 얼굴과 아름다운 모습을 몇 시간이고 물끄러미 보면서 나의 마음속 깊이 간직해 두겠습니다. 다음엔 친구들을 찾아가고 그 다음엔 들로 산으로 산보를 가겠습니다. 바람에 나풀거리는 아름다운 나뭇잎사귀들, 들에 피어 있는 예쁜 꽃들과 풀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석양에 빛나는 아름다운 노을을 보고 싶습니다. 다음날 새벽에는 먼동이 트는 웅장한 장면을 보고, 아침에는 박물관, 오후에는 미술관을, 저녁에는 보석같은 밤하늘의 별들을 보면서 하루를 지내고, 마지막 날에는 아침 일찍 큰 길가에 나가 출근하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들을 보고, 오전엔 오페라하우스를, 오후엔 영화관에서 영화를 감상하고 싶습니다. 그러다 저녁이 되면 건물의 숲을 이루고 있는 도시한복판으로 나와서 네온싸인이 반작거리는 거리와, 쇼윈도에 진열돼 있는 아름다운 상품들을 보면서 집에 돌아와, 3일 동안만이라도 볼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겠습니다. 그것이 나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매일 일상에서 겪는 일들이 헬렌 켈러에게는 일생의 소원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 여러분이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잠깐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보면, 가진 재산도 없고, 머리도 별로 좋지 않고, 외모도 뛰어난 것도 아니고,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감사하면서 살기 보다는 불평과 원망으로 사는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앞에 이야기한 헬렌 켈러를 생각하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건강한 두 눈으로 사랑하는 가족들도 보고 친구들도 만나고, 산과 들로 산보를 나갈 수도 있습니다. 박물관을 견학할 수도 있고, 영화 관람을 할 수도 있습니다. 거리에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또 건강한 두 다리로 오늘 강남교회까지 올 수도 있었습니다. 또 건강한 두 손으로 가족과 이웃과 친구들의 손을 잡을 수도 있습니다. 치아도 멀쩡해서 식사 시간마다 음식 먹는 데 별로 불편하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건강한 몸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도 있습니다. 일할 수 있는 직장도 있습니다.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나 동료도 있습니다. 열악한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비하면 비교적 좋은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알고 보면, 하나님이 주신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감사할 일이 많은데, 우리는 보통 우리에게 없는 것만 생각하고 불평하고 원망할 때가 많습니다.

주위를 한 번 둘러보십시오. 사랑하는 가족을 떠올려 보십시오. 자기 자신을 한 번 돌아보십시오. 그리고 평소에는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쳤던 것 중에서 우리가 가진 소중한 것을 찾아 종이에 적어 보시기 바랍니다. 생각보다 내가 가진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본문은, 주전 9세기 경에 있었던 이스라엘과 아람의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은 솔로몬 이후에 남북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엘리사는 북왕국에서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그 당시 북왕국은 우상 숭배가 만연하여 극도로 타락했던 때입니다. 정치적으로는 북방 지역에서 크게 세력을 확장해 오던 아람의 잦은 침입으로 곤욕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엘리사는 북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촉구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런 엘리사 선지자의 영적 통찰력 때문에 이스라엘을 침략하려던 아람은 큰 차질을 빚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아람의 왕은 엘리사를 제거하기 위해 군대를 보내 엘리사가 거주하는 성을 에워쌌습니다.

“왕이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엘리사가 어디 있나 보라 내가 사람을 보내어 그를 잡으리라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보라 그가 도단에 있도다 하나이다 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그들이 밤에 가서 그 성읍을 에워쌌더라”(왕하 6:13-14)

강력한 아람의 군대가 성을 포위한 것은 북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위기이며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본문에 보면, 엘리사의 종이 그 모습을 보고 탄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왕하 6:15). 이는 그 종뿐만 아니라 그 성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심정을 대변한 것일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을 겪을 때,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절망하며 탄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엘리사 선지자는 전혀 동요하지 않고 오히려 늠름하게 대답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왕하 6:16). 누가봐도 그 상황은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달랐습니다. 오히려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그 이유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군대가 아람군대를 에워싸고 있는 것을 엘리사는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인간의 배후에 계시는 하나님을 영적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려워하기 보다는 당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주어진 특권입니다.

그러나 엘리사의 종은 세상적인 눈 밖에 없었습니다. 피상적입니다. 표피적이었습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 밖에는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근심하고 걱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입니다. 상식적인 선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개입을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이런 육적인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안이 내세울 것이 없으면, 학벌이 별 볼일 없으면, 물려받은 재산이 많지 않으면, 백그라운드가 별로 좋지 않으면, 세상에서 자신감이 없습니다. 낙심합니다. 그리고 이내 절망합니다.

여기 엘리사의 종도 그런 눈밖에는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아람의 군대가 성을 포위하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꼼짝없이 죽게 되었다고 절망했습니다. 만약 우리들도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이 종과 별로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사만 달랐습니다. 자신만만했습니다. 그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보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좌절하지 않습니다. 자신감을 잃지 않습니다. 그 어떤 세상의 파도가 몰려와도 대항할 수 있습니다.

사실 엘리사도 세상적으로 보면, 별거 아닌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시골에서 농사짓던 평범하고 별 볼일 없는 농부였습니다. 농부가 무슨 대단한 사람이겠습니까? 그런 그가 엘리야 선지자를 만나 그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지켜주는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엘리사가 어떻게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 되었습니까?

그는 하나님과 함께 하면서 영적인 눈이 열린 사람이었습니다. 세상 일에 대해 인간적인 눈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눈으로 즉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아람 군대는 상대할 수 없는 강한 군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아람 군대는 그저 작은 벌레와 같은 하찮은 존재일 뿐입니다. 그러기에 엘리사는 아람이라는 강대국의 침입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지켜주시는 것을 아는 하나님의 사람은 엘리사의 말처럼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는 자가 세상의 원수들보다 많고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 이와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출애굽기에 나오는 대표적인 구약 인물인 모세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여 홍해 바다 앞에 다다랐을 때, 이집트의 왕이 군대를 몰고 추격해왔습니다. 바로의 군대는 잘 훈련된 수많은 병사들과 강력한 무기인 병거를 수 없이 지니고 있는, 당시 최강의 군대였습니다. 그런 군대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몰살시키기 위해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고 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는 홍해바다가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進退兩難)이었습니다. 나가지도 못하고 돌아가지도 못하는 지경에 빠져 버렸습니다. 이제 곧 바다에 빠져 죽든지, 이집트 군대의 칼에 죽든지, 둘 중에 하나 밖에는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꼼짝없이 죽는 것 외에는 선택할 것이 없었기 때문에 두려움과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이성을 잃어버리고,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아비규환의 상황에서 오직 단 한 사람, 하나님의 사람인 모세만 달랐습니다. 그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 14:13-14)

어떻게 그런 위기일발의 상화에서도 모세가 이렇게 자신이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그가 몰려드는 이집트 군대를 보고, 파도가 넘실대는 홍해바다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이집트로부터 이끌어내신 구원의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을 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기에, 모세는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덤빈다 해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세의 믿음대로, 하나님께서 홍해바다를 갈라주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건너가게 하시고, 그들을 뒤쫓는 이집트의 군대를 수장시켜 버리셨습니다.

 

엘리사가 아람 군대를 보고 두려워하는 종을 위하여 기도할 때, 그 종이 영적인 눈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엘리사가 있는 산에 가득한 하늘의 불말과 불병거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아람의 군대를, 곧 세상의 군대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이처럼 세상에 무서운 게 없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오신 분들 중에서 세상 일로 두려워하는 분이 있습니까? 감당할 수 없는 고난으로 인해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까? 그렇다면 모세의 말처럼,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 강하신 팔로 우리를 건저 내시고, 우리의 대적을 물리쳐 주실 것입니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시 27:3)

 

우리도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프랑스의 유명한 수학자인 파스칼은 어려서부터 천재로 유명했습니다. 그의 확률이론은 세계 수학사에 새로운 장을 여는 이론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를 동경하였고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프랑스 사교계에서는 여인들은 파스칼과 식사를 한번 하는 것이나, 함께 춤을 한 번 추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왕족들도 파스칼과 식사를 한 번 하는 것을 큰 영광과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파스칼은 그야말로 유명인사였습니다. 그는 성공한 사람이었고 소위 잘 나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상류층 사람들과 사교계를 주름 잡으며 술과 향락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러던 파스칼이 하루는 파티를 마치고 술에 취하여 집으로 돌아오다가, 센 강 다리에 마차가 부딪히는 큰 사고를 당했습니다. 마차에 깔린 파스칼은 센 강을 바라보며 “이제 죽는구나”고 생각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그의 머리 속에 이런 음성이 들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파스칼아, 도대체 죽음 앞에서 너는 무엇이냐? 죽음 앞에서 너의 명성과 넘치는 자신감은 무슨 의미가 있느냐?’

파스칼은 이 물음에 전혀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결하게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예수를 만나고는 그 자리에서 “이 환희! 이 감격! 이 기쁨!” 이라고 외치면서 그 후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면서 살았습니다. 그 뒤에 그가 쓴 책이 그 유명한 “팡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가질 수 없는 환희와 감격과 기쁨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이 세상에서 무엇을 위해서 살고 있습니까? 우리가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영원한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뜻 깊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바로 이 시간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준비하신 시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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