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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08.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양보할 수 없는 진리

관리자 2015-03-08 (일) 11:00 9년전 1256  

양보할 수 없는 진리

갈 2: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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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사를 보면 김약연(金躍淵, 1868~1942) 선생이라는 분이 나오는데, 이분은 만주 용정에 50,000 평의 땅을 사서 명동촌을 세우고, 명동학교와 명동교회를 세워, 독립운동과 인재양성을 이끌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김약연 선생은 자신의 전 재산을 자기와 자기 집안을 위해서 쓴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독립을 위한 인재양성에 바쳤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홍범도 부대 등 항일 무장투쟁을 지원하기도 하고, 3.1운동 때는 그곳에서 한인 1만명의 만세 시위를 주도하다가 2년 반 동안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간도의 대통령”으로 떠 받들었다고도 합니다. 그는 해방 2년을 앞두고 세상을 떠났는데 “내 행동이 곧 나의 유언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고 합니다.

그는 본래 유학자였으나, 나이 마흔이 넘어 개신교에 입문한 뒤, 1929년 예순을 넘긴 나이에 평양신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명동교회를 설립하고 후에 목사가 된 그는 민족 독립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었습니다. 이렇게 자기의 모든 것을 바쳐 하나님의 복음과,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살았던 김약연의 정신이 오늘 우리 한국교회의 정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김약연 선생처럼, 이 세상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 간 사람들은 그 누구나 자기를 위해서 살기 보다는,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바울 사도 또한, 일신의 영달이 아닌,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기 위해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본래 그는 유대인으로서 유서깊은 가문에서 태어나 많은 학문을 쌓은 대학자였으며, 산헤드린 회원이라는 높은 지위에 오르는 등,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바울은 자기 자신의 명예와 권력을 추구하며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이후에는,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기 위해서 전 인생을 바쳤습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 3:8-9)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고, 그 안에서 가장 귀한 가치를 발견한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에서 목회를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안디옥 교회의 파견을 받아 갈라디아 지역으로 제1차 선교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한 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점을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은 새롭게 예수를 믿게 된 이방인들이 할례와 율법을 꼭 지켜야 하느냐는 문제였습니다. 바울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지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 그리스도인 가운데는 먼저 할례를 받고, 율법을 준수해야,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지고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완성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바울은 이 문제를 가지고 예루살렘에 가서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과 협의를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5장에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행 15:1-2)

바울에게 있어서 예루살렘 회의는 성공적이었습니다. 물론 율법을 중시하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행 15:5). 하지만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은 바울의 주장에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두 지도자인 베드로와 야고보는 바울이 주장하는 대로,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할 때, 믿음 외에는 할례나 율법 등의 조건을 요구할 필요가 없다고 결의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행 15:11, 베드로)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행 15:19, 야고보)

 

예루살렘 회의 후, 예루살렘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안디옥에 보내면서 이방인들의 신앙을 위한 공식문서를 전하도록 했습니다. 이제 “교회에 들어오는 이방인들에게는 할례나 율법 같은 짐을 지우지 않는다”는 것이 예루살렘 교회의 공식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지시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혼란하게 한다 하기로”(행 15:24)....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우상제물, 피, 목매어 죽인 것, 음행)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행 15:28).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에 가서 이 소식을 전하고 예루살렘 교회에서 보내온 편지를 읽어 주자, 모두들 그것으로 인하여 기뻐하였습니다. 이로써 할례와 율법에 관한 모든 논쟁은 종결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안디옥 교회를 방문하면서 이 문제는 다시 심각한 논쟁으로 불거졌습니다.

어느날, 예루살렘 교회의 최고 수장인 베드로가 안디옥 교회를 방문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안디옥의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생활을 모범적으로 하는 것을 보고는 만족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전 성도들이 어울려 공동식사를 나누며 그리스도의 복음의 역사에 감사하면서 교제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식탁교제’가 그 당시에는 굉장히 획기적인 일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유대인들이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들과 식사를 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금기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안디옥 교회에서는 이 오래된 금기사항을 과감히 깨뜨리고,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식사를 하며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를 방문한 베드로도 이를 좋게 여기고 흔쾌히 그 공동식사에 참여했습니다. 베드로도 이미 욥바에서의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모든 짐승을 정결하게 하셨으므로 부정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구별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예루살렘 회의에서도 그것을 확인한 바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이방인들과의 식탁교제에 참여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한참 식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그곳에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도착한 것입니다. 이들은 야고보 측근의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이었는데, ‘할례자들’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유대 전통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비록 예루살렘 회의의 결과는 부득이하게 따랐지만, 여전히 유대인과 이방인의 사이를 엄격하게 구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레위기 11장에서 유래된 정결법을 근거로,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과 식사하는 것이나, 이방인의 집에 방문하는 것이나, 심지어 이방지역을 여행하는 것도 꺼려하였습니다. 이들의 영향력은 예루살렘 교회에서도 대단한 것이었기에, 베드로는 이들이 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두려워하여” 식사 자리를 피하였던 것입니니다.

물론 베드로는 분쟁을 피하겠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행동했을 것입니다. 또한 베드로 자신은 이방인 그리스도인과 함께 식사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의도가 비록 분쟁을 피하고자 하는 단순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 행동은 지금까지의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배려와 교제를 전면 부인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여기에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인 바나바까지도 다른 유대인들과 함께 베드로를 따라서 식사 자리를 떠났기 때문에, 함께 식사하던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큰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예루살렘에서 온 ‘할례자들’만이 흐뭇하게 그 장면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바울은 베드로가 예루살렘에서의 자신의 위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을 두려워하여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진리를 전하는데 있어서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 주어야 하며, 하나님 외에는 그 누구도 두려워해서는 안되는 것인데, 베드로는 겉과 속이 다르며, 사람을 두려워하여 진리를 외면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실천하지 않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될 수 없는 것처럼, 행동하지 않는 진리는 참된 진리가 될 수 없습니다. 말로만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김남주 시인의 “자유”라는 시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자 유 - 김남주

만인을 위해 내가 일할 때 나는 자유이다

땀 흘려 힘껏 일하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싸울 때 나는 자유이다

피 흘려 함께 싸우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몸부림칠 때 나는 자유이다

피와 땀과 눈물을 나눠 흘리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사람들은 맨날 겉으로는

자유여, 형제여, 동포여! 외쳐대면서도

안으로는 제 잇속만 차리고들 있으니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무엇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제 자신을 속이고서.

 

바울은 베드로에 대해서 이것이 안타까웠던 것입니다. 이방인들을 진정 믿음 안에서 형제자매로 받아들인다면, 그들을 위해 일하고, 그들을 위해 싸우고, 그들을 위해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이방인 형제들과의 식사 자리를 피함으로써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반면에, 바울은 그런 삶을 산 사람입니다. 그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그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고, 그들을 위해 유대인들과 이방의 임금들, 권세자들과도 주저함 없이 싸우고, 그들을 위해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며 온갖 고난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바울이었기에 당시 최고 지도자인 베드로에게도 담대히 책망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갈 2:14)

바울은 진리를 위해서라면, 상대방이 예루살렘 교회의 최고 지도자가 아니라 로마 황제 앞일지언정 담대히 전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 9:15).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자기보다 조금만 권세가 있고, 지위가 높아도 할 말을 제대로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도다”(행 5:29)고 했던 사도들처럼, 어느 누구 앞에서라도 담대하게 진리를 말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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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 1918~2013)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권운동가였습니다. 남아프리카는 영국의 식민지였는데, 백인들이 오랫동안 지배해 오면서 흑인들을 모질게 착취하고 억압하였습니다. 넬슨 만델라는 이러한 백인 정권의 인종차별 정책에 맞서 흑인 인권운동을 주도하여 27년 동안이나 감옥에서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진리를 위한 싸움이었기 때문에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고, 세계 인권운동의 상징으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결국에는 1994년에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흑인정부를 세웠고, ‘진실과 화해위원회’를 결성하여 민족화해를 이끌어 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리를 위해 싸우는 기독교 정신입니다.

 

예수 안에서 진리를 따르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도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참된 진리이신 예수 안에서만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양보할 수 없는 이 진리를 위해서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거짓과 위선, 사이비가 만연한 이 땅에, 바울처럼 담대하게 오직 진리만을 말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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