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3.22.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복의 근원이 되는 사람 > 이사장칼럼

본문 바로가기
법인소식
정기간행물
정보공개
언론보도
이사장 칼럼
 


2015.03.22.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복의 근원이 되는 사람

관리자 2015-03-22 (일) 11:00 9년전 1272  

복의 근원이 되는 사람

갈 3:1-14

 

결혼 적령기에 들어선 어떤 남자가 결혼할 만한 여자를 구하기 위해 찾아 나섰는데, 그 남자는 완벽한 여자를 원했습니다. 여러 여자를 만났지만 그가 원하는 완벽한 여자는 없었습니다. 하나같이 뭔가 만족스럽지 않은 부분이 눈에 띄어 오래 사귀지를 못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결혼하고 싶은 생각은 더 커졌지만, 그렇다고 흠이 있는 여자와는 도저히 함께 살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완벽한 여자를 찾아 헤매다가 인생을 허비하고, 결혼할 시기를 놓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친구가 찾아와 이렇게 물었습니다. “자네는 결국 완벽한 여자를 찾는데 실패했군. 그런데 이세상에 완벽한 여자가 그렇게 단 한 명도 없던가?” 그러자 그 남자는 의외의 말을 했습니다. “꼭 한 명 있었다네. 우연히 정말 완벽한 여자를 한 번 만난 적이 있었지.” 친구는 깜짝 놀라 물었습니다. “그래? 그래서 어찌됐나? 왜 그 여자와 결혼하지 않았나?” 그러자 그는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그녀 역시 완벽한 남자를 찾고 있더군.”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나 스스로도 완벽한 사람이 못되는데, 다른 사람에게 완벽하길 요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런데 유대교를 따르는 유대인들 가운데는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글자 하나라도 빠트리지 않고 지키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안식일법, 제사법, 정결법은 물론이고 절기와 전통까지 잘 지키고 있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러면서 율법을 잘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을 정죄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그 누구도 하나님의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수 만가지 율법 가운데 하나만 지키지 못해도 율법을 어긴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약 2: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오히려 율법을 지키려고 애쓰다가 자기의 무능만 드러내고 자신의 죄만 깨달을 뿐입니다. (롬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다른 사람을 향해 율법을 지키지 못한다고 정죄할 처지가 못됩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율법을 잘 지키는 의인인체 하고,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설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지, 율법을 잘 지킨 의로움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 피흘려 죽게 하심으로써,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는 도저히 의인이 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그런 우리를 용서하시고, 의인으로 인정해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 출신 기독교인 가운데 여전히 율법의 권위를 내세우는 자들은 예수의 복음만으로는 완전하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는 것도 유대인에게 주신 특권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 출신들이 구원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할례와 절기를 지킴으로써 유대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복음을 통해 얻은 자유를 내팽개치고, 다시 율법으로 후퇴하도록 하는 행위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을 약화시키는 행위이기에, 바울은 이러한 주장에 맞서 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갈라디아서는 바로 이런 주제를 다룬 바울의 논쟁서신입니다.

 

갈라디아 지역은 B.C. 2 세기경 수리아의 셀류커스 왕조(Seleucid dynasty) 때, 많은 유대인들이 정착하여 상권을 잡고 있어서 그들의 영향력이 대단했습니다. 바울이 1차 전도여행에서 이 지역에 전도하여 교회를 세울 때, 바울을 반대하는 유대인들이 지역 유지들을 선동하여 바울을 핍박하고 추방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들의 막강한 영향력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여 그 지역에서 쫓아내니”(행 13:50)

그런데 갈라디아 지방의 교회들을 심각한 위기와 혼란에 빠트린 것은 교회 밖에 있는 유대교인들보다도, 교회 내의 일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가리켜 ‘거짓 교사’라고 했는데, 여전히 율법을 중시하는 그들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인류의 죄를 사해주시기 위해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을 ‘유일하고도 완벽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할례’와 ‘율법’ 준수 없이는 그 구원은 완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바울의 사도권을 트집 잡았습니다. 사도도 아닌 바울이 전한 복음은 무효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모든 것을 바로잡지 않고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헛되게 하고, 그가 전한 복음이 무효가 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자신의 사도권에 대해서 변명하고, 믿음으로 구원받은 진리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1절에서 5절 까지는, 자신이 전한 복음에서 떠난 갈라디아 교인들을 책망하고, 6절부터 14절까지는, 구약성경에서 ‘믿음의 조상’으로 추앙받고 있는 아브라함을 통해 믿음으로 구원받는 의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갈라디아 교인들은 이방인 출신으로서,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성령의 받아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곧 율법 없이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에 현혹되어, 바울이 전한 복음을 버리고,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는 잘못된 길로 빠져버렸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강한 어조로 갈라디아 교인들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 3:1-3).

 

그 다음에 바울은 거짓 교역자들이 주장하는 율법의 행위로는 결코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 설명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아브라함이 3살 때 이미 의롭게 되었고, 초자연적 직관으로 율법에 통달하였으며, 할례를 받음으로써 그 의가 완전하게 되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신앙을 답습하여,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킴으로서만이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제 갓 복음을 받고 신앙생활을 출발한 갈라디아 교인들은, 거짓 교사들로부터 이런 가르침을 받고 할례와 율법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아닌지 큰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창세기 15장 6절을 인용하는 것으로 아브라함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고, 참된 믿음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갈라디아서 3장 6절에서 인용한 창세기 15장 6절을 보면,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 15:6)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함을 받은 것은 결코 율법을 잘 지켜서도 아니고, 할례를 받아서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순서상으로 보아도, 그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하란을 떠날 때가 75세 때였고(창 12:4), 할례를 받은 것은 99세 때였습니다(창 17:24). 더구나 율법은 수백 년이 지난 후, 그의 후손인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것입니다. 그러니, 할례와 율법 때문에 아브라함이 의로워졌다는 가르침은 성경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 히브리서 11:8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히 11:8).

원래 아브라함은 그의 아버지 데라와 함께 갈대아 우르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데라가 아브라함을 비롯한 그의 아들들과 손자들을 데리고 하란으로 가서 거기서 거주하였습니다(창 11:31). 일가친척이 하란에 정착하면서, 그곳이 아브라함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자식이 없는 것만 빼고는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란을 떠나, 하나님께서 보여주는 땅으로 가라고 하시면서 그를 부르셨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그곳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오직 하나님 한 분만 믿고 떠났습니다. 75세의 노구를 이끌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미래의 희망을 안은 청년처럼 떠난 것입니다. 실로 아브라함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7절에 보면,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갈 3:7)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아브라함과 동일하게 믿음으로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 없이, 혈통과는 관계없이, 모두가 하나님의 자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바울의 말은, 전통적인 유대인들 곧 ‘아브라함의 육적인 자손만 구원을 받는다’고 믿는 이들에게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아브라함의 혈통이 아닌 이방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있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믿음으로 구원해 주신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아브라함을 모델로 택해주셨다고 말합니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갈 3:8).

한편,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다는 것은, 아브라함이 받은 복을 유산으로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갈 3:9). 아브라함이 어떤 복을 받았습니까? ‘땅’과 ‘자손’, ‘복의 근원’이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는 그의 후손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천하 만민이 구원의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유명한 신학자인 빈센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모든 인류를 자신의 하수인으로 삼으려는 죽음의 세력은 완전히 패배하였고, 은혜의 새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고 했는데, 이것이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복의 근원’이 되는 복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바로 이러한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우리들을 또한 부르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믿음으로 응답한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나서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구원을 얻고, 생명을 얻는 일에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실상 ‘복의 근원’이 되는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처럼, 우리도 우리를 통해 구원받는 사람이 많아질 때, 믿음의 조상이 될 것입니다.

 

인도의 성자 선다싱이 한번은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서 남쪽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눈보라도 치고, 너무 추웠습니다. 그런데 길을 가다가, 어떤 사람이 길가에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가만히 보니까 온 몸이 다 얼었는데, 아직 얕게나마 숨은 붙어있었습니다. 선다싱은 급한 마음에 그를 엎고 일어났지만 혼자서는 도저히 그 험한 히말라야 산을 넘어갈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때 마침, 그곳을 지나가는 나그네가 있어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이 사람을 그냥 놓아두면 죽을 것 같은데 좀 도와 주시오”라고 하니까, 그 사람은 “아니, 나도 죽겠는데 다른 사람을 돌볼 틈이 어디 있습니까?”하고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그냥 지나가 버렸습니다.

선다 싱은 할 수 없이 그 사람을 엎고 겨우겨우 눈보라치는 산을 넘어갔습니다. 자신도 힘들었지만, 눈 속에 죽어가는 사람을 그냥 버려둘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산을 거의 다 넘어가다가 어떤 사람이 길가에 엎어져 죽은 것을 보았습니다.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니까, 아까 자기만이라도 살겠다고 먼저 지나갔던 사람이었습니다. 남이야 죽거나 말거나 자기 혼자만 살겠다고 지나갔던 그 사람은, 자기 생명도 구하지 못하고 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반면에, 다른 사람을 엎느라 체온을 유지했던 선다싱은 비록 힘이 들긴 했지만, 죽어가는 사람도 살리고 자기도 무사히 산을 넘을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말미암아 ‘복의 근원’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복의 근원이 된다는 것은 생명을 살리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살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함으로써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신, 놀라운 복음을 전하는 전도의 대열에 나서야 합니다. 그래서 나 때문에 구원받은 사람이 생겨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말미암아 복의 근원이 되어 아름다운 일생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 19 기독교회관 604호 (사)지구촌구호개발연대  대표자 : 전병금
TEL : 02-744-1895   FAX : 02-744-1894  고유번호 : 584-82-00066  
604, Korea Christian Bldg., 19, Daehak-ro, Jongno-gu, Seoul, Republic of Korea(Postal Code 03129)
Copyright by 2016 (사)지구촌구호개발연대.   All rights reserved. Produced by S.L.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