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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4.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심은대로 거두리라

관리자 2015-06-14 (일) 11:00 8년전 1410  

심은대로 거두리라

갈 6:6-10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보면, 참으로 권력이 무상하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동안의 대통령들만 봐도 독재를 하다가 하야를 하거나, 암살당하기도 하고, 제대로 임기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기도 하고, 임기를 마친다고 해도 거의 다 부정부패에 연루되어 감옥살이를 하거나, 검찰 수사를 받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권력을 잡기 위해서 암투를 벌리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때로는 그렇게 허무한 권력을 잡으려고 그 야단을 하는 이들이 불쌍하게도 보입니다.

세상 것은 다 그렇습니다. 권력 뿐 아니라, 돈도 명예도 인기도 언젠가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런 것들이 영원히 자기 곁에 머물 것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혹시라도 언젠가 사라지는 그런 것들이 손에 있을 때, 그것을 통하여 남을 돕고 선행을 베푼다면 그것은 자기와 자손을 위하여 큰 보험을 들어두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가지고 위세를 부리면서 남을 해롭게 한다면, 훗날 자기 자신과 자손에게 화와 저주를 심어두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면,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전쟁을 치를 때, 영국과 앙숙 관계였던 프랑스가 전쟁 물자와 자금, 군대를 원조해 주었습니다. 그 덕에 독립에 성공할 수 있었던 미국은 나중에 그 은혜를 후하게 갚았습니다. 세계 1차, 2차 대전 때 프랑스를 도와주었고, 전후에도 복구를 위해서 많은 원조를 해 주었습니다.

한편, 조선 중기에 홍명하(1608~1667)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 당시 숙종임금 때, 정승이었던 신익성의 사위였는데, 생원이 된 후 14년 동안이나 문과에 급제하지 못하고 처가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관직에 나가있던 그의 처남과 동서로부터 괄시를 받았습니다. 홍명하보다 한 살 위 처남인 신면과, 한 살 아래 동서인 김좌명은 관직에도 나가지 못하고 처가살이하고 있는 홍명하를 멸시천대하며 심히 구박했는데, 하루는 같이 식사를 하다가 홍명하의 앞에 꿩 다리 고기가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천민이 꿩다리를 먹으면 입이 부르튼다”고 하면서 문 밖에 집어 던졌다고 합니다. 장인인 신익성이 아들 신면을 불러 누차 타일렀으나 소용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홍명하가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홍명하는 출세가도를 달려 정승이 되었는데, 그와는 달리 처남 신면이 역모 사건에 연루되어 국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때 효종이 특별히 홍명하를 불러 신면의 참형에 대하여 자문을 구하였는데, 홍명하가 대답하기를 “신면은 신의 처남이긴 하나 자주 면대하여 깊은 심정의 대화를 나눈 일이 없으므로 사람의 인품을 헤아려보지 못하였사오니 어의에 따르겠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적극적인 구명 의지가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신면은 처형을 당하게 되었는데, 그때 홍명하가 한마디만 잘해주었어도 신면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홍명하는 신면에게 당한 수모가 얼마나 한이 되었는지, 그가 사형당하는 날 저녁 밥상에 꿩 다리, 열 개나 놓고 저녁을 먹었다고 합니다.

 

혹시 여러분에게 힘이 있습니까? 물질이나, 권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으로 남에게 선행을 베푸는데 써야 합니다. 누가 그것을 주었습니까?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그것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에, 그것을 통해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 일을 하는 데 사용해야 합니다. 특히 남을 돕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는 정도가 아니라, 그렇게 해야만 합니다.

본문 말씀에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주 자연의 이치를 가지고 신앙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실로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은 마르고 닳도록 변하지 않는 자연의 이치입니다. 이런 자연의 원리는 세상에서만이 아닌 영적인 세계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8)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속담처럼, 육체의 소욕을 쫓아 하나님의 선한 뜻과 섭리를 거스리는 자는 결국 그가 심은 불의의 씨앗으로 인하여 사망을 거둘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앞에 5장에서도 이에 대해 분명히 말했습니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갈 5:19-21). 바울은 이런 것을 행한 사람은 결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런 더러운 삶을 살면 하나님 앞에 갈 수 없습니다. 계속해서 이런 삶을 살면서도 ‘교회에 가서 잠깐 회개하면 괜찮겠지’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구원파 같은 신앙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안일한 신앙에 대해 분명히 선을 그었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이는 하나님을 자기 위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이단적인 생각입니다. 우리는 속히 우리 안에 있는 이단적인 생각을 제거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도 모르고, 하나님의 뜻도 모르는 상태에서, 육체를 위해서 살았던 것은 주님의 은혜로 용서하십니다. 어린아이나 심신박약 상태에서 저지른 일에 대해 정상참작을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이미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사람들은 그런 핑계를 댈 수 없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가운데, 자신은 여전히 육체를 위하여 살면서도, 마치 성령을 쫓아 살아가는 것처럼 위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속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속아 넘어갈 줄로 알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개역성경에는 이것을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7절)라고 번역했습니다.

하나님을 내 마음대로 재단하지 마십시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우리의 속 마음을 숨길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속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교인들 중에서도 속다르고 겉다른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겉으로는 존경받는 교회 지도자처럼 행세하고 다니면서, 남들이 못 보는 곳에서는 각종 비리와 불의를 자행하는 사람들이 교회의 위신을 추락시키고 있는 것도, 자신은 하나님을 속일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인간에게 속임을 당하시지 않습니다. 그렇게 착각하는 것은 하나님을 비웃고 조롱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지 가슴이 아플 지경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그런 인간들로 인하여 조금도 그 거룩한 뜻이나 성품이 손상당하시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이, 혹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비웃거나 조롱하도록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자’이며,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살후 2:12)

 

우리는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가 아니라,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영생’을 거둘 수가 있습니다(갈 6:8). ‘성령을 위하여 심는다’는 것은 자기의 삶을 성령에게 맡기고, 성령의 열매를 거두기 위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앞 장에서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등의 ‘성령의 열매’를 언급하였는데(갈 5:22-23),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곧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사는 자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입니까? 아니면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입니까? 당연히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나는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은, ‘교회에서 어떤 직분을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삶에서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느냐’ 하는 것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성령에 의해서 받는 은혜와 능력을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곧 그의 복음전파를 위해서 써야 합니다. 그런데 희생적으로 하나님과 복음을 위해서 일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믿음을 수반합니다. 그래서 영생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정한 믿음으로 주님을 섬겨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 복음을 위해서 실천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믿음은 이런 것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성령을 위하여 심는다’는 것이, 또는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추상적이고 잘 와닿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냥 ‘교회만 잘 다니고 헌금생활 착실히 하고, 교회 봉사만 하면 되는 것인가’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보다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특히 우리가 가진 물질로 선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종교개혁자인 마틴 루터는 “지갑이 회개해야 진정으로 회개한 것이다”라고 했다고 하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질’은 가장 첨예한 가치의 총합입니다. 즉, ‘이 물질을 어디에 쓰느냐’ 하는 것이 ‘나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가장 잘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우스개 소리로 “내 것도 내 것이고, 네 것도 내 것”이라고 합니다만, 물질은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것 같아도 내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주 만물의 창조자이시며, 지금도 살아서 우주 만물의 운행과 질서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물질의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물질을 하나님의 선한 뜻과 섭리를 쫓아, 선한 일 즉, 복음선교와 구제에 사용하는 것이 가장 선한 것이며, 가장 현실적으로 믿음을 실천하는 길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인가’ 하는 것을 판단할 때, 선행과 구제 여부로 판단했다고 합니다. 좀 극단적인 판단인 것 같지만 저도 그것이 옳은 판단이라고 생각됩니다.

바울이 소아시아와 유럽 전역으로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선교에 힘쓰면서도,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서 구제하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그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큰 흉년과 로마정부로부터의 경제적 수탈과, 유대인들에 의한 박해 속에서 견딜 수 없는 형편에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가는 곳마다 구제 헌금을 모아 예루살렘 교회를 구제하고자 애를 썼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선교사역의 두 축이 ‘복음 전파’와 더불어 ‘구제’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복음선교’와 ‘구제’의 두 축으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 우리가 가진 물질로 복음선교와 구제에 힘써야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 교회는 지난 번 네팔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고통당하고 슬피우는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헌금을 모아 최선을 다해 물질로도 후원하고자 했습니다. 또한 다음 주에는 우리 교회의 네팔 구호단이 파견되어 현지에서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이 일을 위해서 많은 기도와 후원을 바랍니다.

또한 다가오는 6월 21일, ‘민족화해주일’을 맞이하여 북한 어린이 돕기 헌금을 하려고 합니다. 유엔세계식량계획(WFP) 발표에 따르면, 북한 어린이 4명 가운데 1명 이상이 영양실조로 발육저하를 겪고 있을 정도로, 북한은 기아 상태가 매우 심각한 단계라고 합니다. 한 번 영양실조에 걸린 어린이들은 회복될 때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고, 중요한 성장기에 영양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하면 성장과 발달에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해 평생 고통 받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루 천원이면 북한 어린이 한 명이 하루 동안 분유를 통해 필요한 영양분을 얻을 수, 3만원이면 한 명의 아이가 한 달 동안 분유를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에 우리 교회에서는 하루 천원으로 북한 어린이에게 생명의 온기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주기 위하여 그동안 돼지 저금통으로 북한 어린이 돕기 운동을 해 오던 것을 ‘북한 어린이 분유 후원하기’ 헌금을 하려고 합니다. 헌금금액은 주일학교 어린이들은 10일치 분유 값에 해당하는 1만원 이상, 성인들은 한 달 치 분유 값에 해당하는 3만 원 이상, 후원하고자 하는 인원수대로 해 주시면 됩니다. 오늘 나눠드린 헌금봉투를 가지고 다음 주에 헌금하시면 됩니다.

혹시 ‘우리교회가 이런 일을 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하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지도 모릅니다. 맞습니다. 우리 교회만으로는 너무 연약한 일입니다. 하지만, 9-10절에 보면, “선한 일을 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갈 6:9-10)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일이라도, 성령을 위하여 심는 선한 일을, 우리가 주님 앞에 설 때까지 꾸준히 해 나갈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식으로, 선한 열매를 맺게 해 주실 것입니다. 이 일에 모든 힘을 내어 동참하여, 수확의 기쁨에도 함께 동참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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