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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03.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미래의 주인

관리자 2015-05-03 (일) 11:00 9년전 1263  

미래의 주인

막 10:13-16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요즘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하나 둘 밖에 없고, 아이들을 소중하게 생각하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을 함부로 대하기가 일쑤였습니다. 성경에서도 아이들이 수난을 당하거나 업신여김을 당하는 장면이 가끔 등장합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고 있을 때, 그들의 인구가 점점 많아지니까, 애굽인들이 위협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애굽의 왕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인구를 억제하기 위하여, 아들을 낳으면 나일 강에 던지고, 딸을 낳으면 살려두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이와 비슷하게 헤롯 대왕도, 베들레헴에서 새로운 유대인의 왕이 태어난다는 동방박사의 말을 듣고, 그 지역의 두 살 이하의 사내 아이들을 모조리 죽이는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또 다른 고대 국가들에서도 이러한 유아 학대는 심심치 않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서양 문명의 시효라고 할 수 있는 헬라도 그것은 매한가지였습니다. 그리스의 도시 국가 중에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는 스파르타는 사내 아이를 낳으면 국가에서 검사관을 보내어 살펴보고, 그 아이가 커서 스포츠 선수가 되거나 군인이 될 수 있겠다고 판단하면, 그 아이를 기르고, 그렇지 않고 약하게 생겼으면, 커서 국가의 부담이 되지 않도록 내다 버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에는 어린이들이 전혀 대우를 받지 못했습니다. 더군다나 여자 아이의 경우에는 쓸모가 없다고 하여 유기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또한 동양 문화권에서는 자녀의 생사여탈권이 부모에게 있어서, 옛날에는 부모가 자기 자녀를 죽여도 법률상 죄가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요즘은 시대가 달라져서,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녀들을 귀하게 여깁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대와 범죄가 줄어들지를 않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어린이집 폭행사건으로 나라가 들썩거릴 정도였습니다. 갓난 아기를 내다 버리는 영아유기도 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영아 유기가 2010년에는 69건에서 2013년에는 225건으로, 3년 동안 3배 이상 증가했다고 합니다. 한 교회에서는 버려지는 아이를 위한 “베이비 박스”를 교회 앞에 마련해 두었는데, 2013년 한 해 동안만 252명의 아이들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이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미혼모 등이 최소한의 삶을 살아 갈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전혀 해주지 않는 데서 오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또한 임신중절 등을 통해 생명을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2011년의 경우, 태어난 신생아 수가 47만 명인데, 인공임신중절로 세상에 태어나지 못한 아기의 수가 무려 16만9000여명에 달해 전체 신생아 수의 36%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는 기사도 있었습니다. OECD국가들 중에서 인공임신중절이 가장 높은 편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어린아이들의 권리는 전혀 나아지지 못한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인간의 생명입니다. 어린 아이의 생명이건, 태중에 있는 태아의 생명이건, 모든 인간의 생명은 소중한 것입니다. 그 소중한 생명이 잘 보호받고 자라날 수 있도록, 개인과 사회는 최선의 노력을 다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부여된 ‘생명에 대한 책임’입니다. 교회는 이런 일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인간의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예수님께서는 그 대상이 어른이건 어린 아이이건 차별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연약하고 보호받아야 할 어린 아이들에 대해 특별한 관심과 배려의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공생애를 시작하시자마자, 그가 병든 사람을 고쳐주고, 귀신을 쫓아낸다는 소식이 두루 퍼져 나갔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딜 가나 많은 사람들로 인하여 아주 분주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 몰려 나오는 사람들 가운데는 자신의 자녀들까지 데리고 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자기의 자녀들을 한번 만져주시고, 축복해주시기를 바랬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매일 같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 나오는 상황이 반복되자 쉴 틈이 없었고, 이로 인해 매우 피곤하였습니다. 거기다가 사람들이 아이들까지 데리고 나오는 것을 보자, 짜증이 났습니다. 어른들도 제대로 다 만날 시간이 없는데, 어린아이들까지 데리고 오면 어떻게 하냐고 그들을 꾸짖었습니다. 그때, 그 모습을 보시던 예수님께서 오히려 제자들에게 노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막 10:13-14)

얼마 전에 예수님은 가버나움에 가셨을 때, 제자들이 서로 누가 크냐는 것을 두고 다툴 때, 어린 아이 하나를 안고,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막 9:37) 고 하셨습니다. 어린 아이를 주님 대하듯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려고 오는 아이들을 막아서면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 화가 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막 10:14-15). 그러면서 그 어린아이들을 안아 주시고, 그들을 위해 안수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이것이 어린아이들을 대하는 예수님의 태도였습니다. 그 당시는 어린아이들을 사람 숫자에도 안 넣을 만큼 사람취급도 안하던 때입니다.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그들을 안고 축복하신 예수의 모습은, 그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모습이었습니다. 그 후, 기독교 공동체는 어린 아이들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고, 우선적으로 보호하고 배려해 주었는데, 이것이 세계 역사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어린아이들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학대를 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세계노동기구(ILO)의 발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약 2억 5천만 명 정도의 아동이 힘든 노동에 종사하고 있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 절반에 달하는 1억 2천만 명의 어린이들은 학교에도 다니지 못하고, 하루 종일 일을 한다고 합니다. 주로 아프리카, 중남미, 인도와 같은 빈민국이나 개발도상국에서 노동현장에 내몰리는 아동들은 사회적으로 고립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또한 열악한 근로환경 속에서 받은 정신적, 신체적인 상처는 성인이 된 후에도 지울 수 없는 흉터로 남게 된다고 합니다.

이런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국제노동기구나 유니세프 같은 기구에서는 어린이 노동자를 위한 운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공정무역운동을 통하여 소비자에게 어린이 노동현실을 알리는 단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인류의 미래라고 할 수 있는 어린이들이 바로 그 미래마저 빼앗기고 있는 현실에 무거운 마음을 가눌 수가 없습니다.

 

우리 주님도 이 세상에 오실 때, ‘아기 예수’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변방인 갈릴리 지역, 나사렛이라는 촌 동네의 가난한 목수 가정에서 자라나셨습니다. 아마 그 당시의 다른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의 목공소에서 심부름을 하고, 일을 배우면서 자라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의 특별한 신앙적 가르침을 받으며 성장하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는 예수님이 어떤 아들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셉과 약혼하여 결혼식을 기다리던 중에 천사가 나타나, 결혼도 하지 않은 자신이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땐, 너무 놀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통해 태어날 아이가 인류를 구원하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 명령에 순종하였습니다.

마리아는 그렇게 낳은 아들을 아무렇게나 키울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먼저, ‘하나님의 아들’로 이땅에 오신 예수가 하나님을 알도록 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훈련을 시켰을 것입니다. 또한 그 아들이 얼마나 존귀하고, 가치 있는 사람인 것을 가르쳤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자녀들을 어떻게 가르치십니까?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들을 키우면서, 공부 잘해서 잘 사는 것을 철저히 가르칩니다.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직장을 다니도록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자녀 뒷바라지 하느라, 일생을 다 바칩니다. 하지만 현실은 부모님의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자녀들의 학벌이, 돈과 명예와 권력이 자녀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고 모든 노력을 다 기울였는데, 자녀와의 관계가 깨어지고, 양자 모두 원치 않는 방향으로 나가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우리는 그런 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과, 자기가 얼마나 가치있는 존재인지를 깨닫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리아의 그 거룩한 어머니의 양육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4월부터 시작한 ‘나눔비전스쿨’을 통해서 이 마리아의 양육을 실천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현재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등학생까지 약 20명의 학생들이 매주 토요일마다 나와서, 세 시간씩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 우리 교회의 원어민 선교사를 포함한 전문적인 영어강사 서너명이 반을 나누어 영어성경공부도 하고, 생활영어를 배우기도 하면서, 영어에 자신감을 가지도록 지도하고 있습니다. 또한 여름방학 때에는 거의 한 달 동안 필리핀 선교센터에서 그룹이나 개인지도를 통해 집중적인 영어교육을 하게 될 것입니다. 또, 대여섯 명씩 소그룹을 이루어, 각 소그룹마다 대학생 팀장을 두었는데, 학생들이 일주일 동안 ‘자기주도학습’을 하도록 해서, 이것을 확인하고 격려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를 통해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기르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이들의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훈련은, 학생들이 분명하게 하나님을 알고, 자기의 정체성을 깨닫도록 지도하는 신앙훈련입니다. 스스로 기도 제목을 정해 매일 기도하고, 말씀을 읽은 것을 기록하고, 감사일기를 쓰고, 토요일에는 이것을 나누고 함께 기도함으로써, 신앙이 생활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영어 공부의 내용도 성경의 인물과 신앙적 위인의 삶을 다룸으로써, 세상적인 성공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적으로 성숙한 삶을 살아가도록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절교육과 소그룹 활동 등을 통해 인성교육에도 힘을 기울여 나갈 것입니다. 이러한 훈련과정을 통하여, 나눔비전스쿨에서는 우리 교회의 표어처럼 ‘예수님을 닮은 사람’을 육성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자들입니다. 우리는 그들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전해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 앞에서 올바른 모범과 성실과 믿음의 본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19세기의 미국의 최고의 설교자 필립스 브루스 목사는 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다음, 묘비에 마태복음 15:28을 새겨 넣었습니다. 그 말씀은 예수께서 수로보니게 여인에게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했던 말씀이었습니다. 믿음의 어머니들은 자식들이 그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우리 어머니의 믿음이 정말 크시다’하고 생각될 정도로 믿음의 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부모들은 자식에게 유산을 물려주는 데 관심이 많습니다. 좋은 집을 물려주려고 하고, 많은 유가증권을 물려주려고도 합니다. 그러나 그건 것을 얼마 못갑니다. 자녀들에게 물려줄 불멸의 유산은 믿음의 유산입니다. 그것은 자녀들이 부모의 믿음을 보고 배움으로써 물려줄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키운 자녀는 미래가 확실할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어, 그들의 미래가 축복받은 미래가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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