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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19.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한국교회의 모델

관리자 2015-04-19 (일) 11:00 9년전 1407  

한국교회의 모델

살전 1:4-8

 

오늘은 우리교회가 1970년 4월 19일에 창립 된지, 꼭 45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우리 교회는 처음 개척할 때, 서울노회에서, 당시에는 신도시인 화곡동에 개척하게 되었는데, 종로서적센터의 사장이었던 장하구 장로님이 55만원을 전세자금으로 헌금하였습니다. 그 돈으로, 현재 화곡대림아파트 앞, 길가에 있던 2층짜리 건물의 2층 한 칸을 월세로 얻어서 창립하였습니다.

우리 교회의 창립일은 부활절이기도 하고, 우리 민족사에 큰 획을 그은 4.19 혁명기념일이기도 합니다. 즉 우리 교회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님께서 3일 만에 부활하셔서, 칠흑같이 어두운 밤을 깨우는 밝은 태양처럼 이 땅에 밝은 빛을 비추신 날에, 또한 이승만의 독재로 어두움에 빠져있던 민족의 어두움을 깨고 역사의 새벽을 알리는 4.19 기념일에 창립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교회의 창립 기념일은 예수의 부활과 민족의 부활의 의미를 동시에 품고, 구원의 복된 소식을 전하는 교회, 민족의 새역사를 알리는 파수꾼으로 세워졌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렇듯 뜻 깊은 사명을 품고 출발한 강남교회의 창립 9주년이 지난 직후에, 제가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만 36년을 섬겨 오면서, 한 가지 비전을 향해 달려왔습니다. 그것은 우리 강남교회가 한국교회의 모델이 되는 비전이었습니다. 물론 지역적으로나 인구분포 면에서 열악한 조건이 많았던 우리 교회로서는, 그리고 부족한 것이 많은 저에게는 가당치도 않은 비전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어떻게 기라성 같은 교회가 많은 한국교회에 모델이 되겠습니까?

하지만, 신앙생활에서 모델이 되는 것은, 생활수준이나 사회적 지위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를 닮았느냐 하는 것이 기준이 됩니다. 우리가 본문에 나오는 표현대로 ‘주를 본 받는자’(imitators of the Lord, 살전 1:6)가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한국교회의 모델이 되는 길일 것입니다. 비록 지난 36년 동안, 그 비전을 충분하게 이룬 것은 아니지만, 한국교회에서 어느정도 교회의 이름도 알려지고,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는 교회가 된 것은, 여러분 모두가 이러한 비전을 향해 함께 행진해 온 결과일 것입니다.

 

본문에 데살로니가 교회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곧 그리스 전역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model)이 되었느니라”(살전 1:7). “본”이라는 말은 영어로 “모델”(model)입니다. 우리 교회가 한국교회의 모델 교회를 꿈꾸고 있는데, 이 데살로니가 교회는 이미 그리스 지역에 모델 교회가 된 대단한 교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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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살로니가(Thessalonica)는 로마의 속주인 마게도냐(Machedonia)의 수도로써, 경치가 매우 수려한 항구도시이자, 교통의 요지였습니다. 로마와 아시아를 연결하는 도로도 있어서 매우 번창하여, 바울이 선교하던 때에 이미 20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런 데살로니가를 “마케도냐의 어머니”라고 불렀습니다.

사도행전 17장을 보면, 바울은 제2차 전도여행 때, 이곳에 들려 전도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와 동행했던 사람들은 실라와 디모데였습니다. 그곳 주민들은 대부분이 마케도냐인들과 헬라인들이었고, 유대인들도 상당수가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거기에 있었다는 것은 그곳에 유대교 회당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바로 그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는데, 유대인 보다는 많은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아 들였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유대인들의 시기가 대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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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살로니가 지역에 있는 유대인들은 시장거리의 불량배들을 매수하여 소동을 피우면서, 바울 일행을 붙잡기 위해 그들이 거주하고 있던 야손(Jason)의 집을 습격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바울은 더 이상 그곳에 머무를 수가 없어서, 교인들의 도움으로 베뢰아(Berea)로 도피하였습니다.

바울은 베뢰아에서 교회를 세우고 그들을 가르쳤는데, 그 소문을 듣고 데살로니가에 있던 유대인들이 거기까지 쫓아와서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이에 바울은 급히 몸을 피하느라 디모데와 실라와 떨어져 홀로 배를 타고 아덴(Athens)으로 갔습니다. 바울은 거기에서 디모데와 실라에게 전갈을 보내고 다시 고린도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숨 쉴 틈 없이 고린도까지 가게 된 바울은, 거기에서 교회를 세우고 잠시나마 안정을 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 마게도냐에 있던 디모데와 실라가 고린도에 와서 바울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에서 돌아온 디모데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무서운 핍박 중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다른 교회의 모범이 되어 성장해가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살전 1:6)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살전 3:6)

 

원래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복음을 받아들이기 전에는 우상을 섬기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복음을 듣고 하나님을 섬기며,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할 뿐만 아니라, “주를 본받는 자”(살전 1:6)요, “모든 믿는 자의 본”(살전 1:7)이 되었다는 소문이 퍼져 나가는 것을 본 바울은, 감격에 겨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살전 1:8)

 

9절에 보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와서”(9절)라고 했는데, 과거에 헬라의 다신교에 젖어 있던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모든 우상 숭배를 과감히 청산하고 하나님께 돌아온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면, 그 속에 우상이 설 자리가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복음과 우상을 동시에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 빛과 어둠이 같은 자리에 있을 수 없는 것과 같이, 복음을 받아들인 이상, 우리 마음에 우상이 머무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를 보면, 진실로 우상숭배를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온 것인지 의구심이 들 때가 많습니다. 특히,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끊임없이 물질을 추구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오늘날 한국교회가 하나님보다 물질 우상을 섬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하건만, 요즘은 본이 되기는 커녕 손가락질만 당하고 있으니, 어디가서 목회자라는 신분을 밝히는 것도 부끄러울 지경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의 로마 카톨릭 교회 또한, 성직 매매, 면죄부 판매, 교황의 과소비, 사제 계급의 사치 등, 하나님을 섬기기 보다는 오히려 물질을 섬기는 데 혈안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루터를 통해서 종교개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중세기의 로마 교황 중에 노켄티어스(1243-1254)는 금은보화를 좋아하는 속물같은 인물이었습니다. 하루는 그가 금과 은으로 된 식기들을 감상하면서, 당시 유명한 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1224-1274)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금과 은은 내게 없으나’ 하고 말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지 않소?” 그러자 아퀴나스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네,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어가라’ 하고 말할 수 있는 시대도 지났습니다”

이 대화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베드로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를 일으켰을 때 한 말을 인용한 대화였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한 말은 황금을 좋아하는 교황에게 충고한 말입니다. 물질에 대한 탐욕으로 인해 기적도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세상 사람들은 세상에서 돈을 제일 좋아합니다. 돈을 위해서라면 하지 말아야 할 일도 서슴없이 하고, 꼭 해야 할 일도 눈감아 버리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교회에 다니는 성도들도, 구별되고 거룩한 삶을 살기는 커녕, 세상 사람들과 별로 다르지 않으니, 어디에서 이 사회의 희망을 찾을 수 있을 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냐 물질이냐’라는 물음 앞에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따라, 하나님께 돌아왔으면, 신앙인답게 살아야 합니다. 비록 그 길에 핍박과 환난이 따르더라도 결코 그 길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주를 본받는 자” 혹은 “믿는 자의 본”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많은 환난 가운데서” 주님의 말씀대로 사는 삶을 살려고 부단히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살전 1:6)

바울을 통해 복음을 들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와서,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통해 하나님 만이 살아계시고 참되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전에는, 섬기던 우상을 떠나면 큰 재앙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었지만, 그 우상이 실상은 죽은 것이고, 거짓된 것임을 깨닫고 하나님께 온 것입니다. 대단한 결단입니다.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9절) 모습은 누가복음 10장의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폭행을 당하고 길 가에 버려져서,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사장과 레위인이 차례대로 지나가다가 그를 보긴 보았으나,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죽어가는 사람을 그냥 내버려 둔 채,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사마리아 사람이 지나가다가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그 상처를 싸매주고, 여관에 데리고 가서 돌봐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가 모든 비용을 다 지불하고, 추가비용이 들면 돌아오는 길에 갚아주겠다고 까지 했습니다.

여기서 제사장과 레위인은 강도만난 자와 같은 유대인이고, 더구나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인들이었으나, 각자 나름대로 핑계를 대고 그냥 그 옆을 지나쳐 버렸습니다. 하지만, 평소에 유대인과 원수로 지내던 사마리아 사람 하나가, 그에게 큰 사랑을 베풀었던 것입니다. 이들 가운데 누가 진정한 ‘이웃’의 모델이 되겠습니까? 바로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우리들이 한국교회의 모델이 되려면 이런 선한 사마리아 사람과 같이 되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강도만난 사람처럼, 세상에서 상처받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들을 돌보고 감싸줘야 할 교회마저도 그들을 외면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우리는 1년 전에 발생한 세월호 사건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채, 유가족의 상처만 깊어져 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정치가들도, 언론인들도, 대형교회의 목회자들도 마치 제사장과 레위인처럼, 내 일이 아니라는 태도로 그들의 곁을 지나쳐 왔습니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그들 곁에서 그들을 위로하고 그 상처를 싸매고 있습니다. 과연 누가 한국교회의 모델이 되겠습니까? 화려한 대형교회의 목회자들과 유명한 중직자들입니까? 아니면 이름도 없이, 고난당하는 이웃의 곁을 지켜주는 작은 교회의 목회자와 평신도들입니까?

우리는 오늘 주님으로부터 성령으로 감화를 받고, 이웃에 대한 작은 사랑부터 실천해 나가야 합니다. 한국교회의 모델은 바로 세상의 낮은 곳으로 나갈 줄 아는 성도들 가운데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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