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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05.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감사하는 성도

관리자 2015-07-05 (일) 11:00 8년전 1402  

감사하는 성도

눅 17: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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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 대전이 한참이던 1943년 남태평양의 파푸아뉴기니 바다에서 미군기가 일본군에 의해 격추되었는데, 그중 7명이 그 지역의 섬사람들에 의해서 구조되었습니다. 섬사람들은 그들을 정성껏 치료해 주고 돌봐 주었습니다. 얼마 후 그들은 미군에 무사히 인도되었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1960년에 한 미국인이 그 섬을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는 그 섬에서 구출된 사람 중에 하나인 하겐사이머(Fred Hargensheimer, 1916-2010)였습니다. 그는 자기를 구해준 뉴기니의 주민들에게 어떻게 은혜를 갚을까 하다가, 그들에게 학교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전 재산을 정리해서 그들을 위해 학교를 세워주려고 온 것입니다. 그 후로도 하겐사이머는 여러 차례 이 섬을 방문하여 도서관을 세우는 등,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도와주려고 노력하였으며, 평생을 그들과 교류하면서 깊은 우정을 나누었습니다.

 

하겐사이머의 이야기는 누가복음 17장에 나오는, 예수님께 감사한 나병환자 이야기를 연상시킵니다. 섬사람들이 구해준 사람들 중에 다른 사람들은 고국에 돌아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지만, 하겐사이머는 그 은혜를 갚으려고 돌아와 학교와 도서관을 세우고, 평생 그들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병환자 10명을 고쳐주셨는데, 그 중에 오직 한 사람만 돌아와 예수님께 감사를 표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나병환자처럼, 그리고 하겐사이머처럼 감사하는 마음을 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유대 접경 지역의 한 마을에 들어가시게 되었습니다. 복음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십자가의 고난을 받기 위한 여정’인데, 그 길에서 예수님은 세 번이나 자신의 고난을 예고하고, 그 고난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또한 예수께서 당하실 고난의 의미가 무엇이며, 어떻게 그 일에 동참해야 할 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실 때, 그를 알아 본 한센병자 열 명이 멀리서서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그 당시 한센병에 걸린 사람은 특별관리 대상이었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격리되어 사람들이 사는 성 밖에서 살면서, 일반인과 접촉하지 않도록 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옷을 찢고 머리를 밀어야 했으며, 걸어다니면서도 입술을 가리고 “부정하다. 부정하다”고 외치면서, 다른 사람들의 다가오는 것을 미연에 방지해야 했습니다. 누구나 이들과 접촉하면 부정한 자로 취급되었기 때문입니다. 혹시 기적적으로 병이 나을 경우가 있으면, 제사장에게 가서 확인을 받고 예물을 드린 다음에야 가족에게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에게 소리친 10명의 한센병자들은 삶의 아무런 희망도 없이 하루 하루 살아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자기들이 있는 곳을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마지막 한 가닥 희망을 붙잡고 예수께 나아와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유대 율법에 따라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다만 멀리 서서 예수께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그들은 이미 한센병으로 인해 성대가 다 상하여, 아무리 큰 소리로 외친다하더라도 보통사람의 소리가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병이 나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께 있다고 생각하고 필사적으로 소리쳤습니다. 그러다가 사람들로부터 돌에 맞을 수도 있었지만, 이들은 죽자 살자 예수를 향하여 소리 질렀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굳게 믿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렇지 않고는 이렇게 생명을 걸고 예수께 부르짖기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혹시 돌에 맞아 죽는 일이 있어도 예수만 만날 수 있다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믿음은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입니다. 그분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하는 믿음입니다. 죽기 살기로 덤벼들어야 합니다.

그들의 소리를 들으신 예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눅 17:14)고 말씀하셨습니다. 레위기 14장 2절에 “나병 환자가 정결하게 되는 날의 규례는 이러하니 곧 그 사람을 제사장에게로 데려갈 것이요”라고 되어 있는데, 예수님은 레위기에 있는 말씀대로 “너희들은 이제 깨끗함을 받았으니 제사장들에게 찾아가서 율법에 정한 바에 따라 병이 나았다는 공식적인 인증을 받으라”(레 14:1-9)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병은 아직 낫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병도 낫지 않았는데 제사장에게 갔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는지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의 말씀만 믿고 제사장에게 몸을 확인하기 위해서 떠났습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대로 행동하지 않고 예수의 말씀을 믿고 행동했습니다. 그러자 여기에 하나님의 응답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들처럼 주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몸에 그 어떤 징조도 없었는데, 나은 것으로 믿고 제사장에게 보이려고 갔습니다. 병이 나아서 간 것이 아니라, 가다가 병이 나은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제사장에게 가라는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았다면 그 병이 낫지 않았을 것입니다. 믿음의 순종이 그들의 병을 고쳐준 것입니다.

이것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나아만 장군 이야기’와도 같은 것입니다. 열왕기하 5장에 나오는 아람의 군대 장관 나아만도 한센병자였습니다. 그가 병 고침을 받기 위해 엘리사를 찾아갔는데,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담그라는 말만 들었습니다. 나아만은 처음엔 불쾌했으나 주위의 권면을 듣고, 엘리사의 말대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병이 다 나았습니다. 만일 나아만도 요단강에 몸을 담그라는 말에 순종하지 않았다면 병이 낫지 않았을 것입니다. 믿음은 곧 순종입니다.

 

제사장에게 가던 열 명의 한센 병자들은 가다가 보니 이 무서운 병이 다 나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그들은 너무 좋았을 것입니다. 이제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을 다시 만나 함께 살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종교적, 사회적 신분도 다 회복되어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거나 돌팔매질을 당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너무 기뻐서 제사장의 확인을 받은 즉시 그 길로 가족에게로 다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사람만은 자기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는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드렸습니다. 그는 그 당시에 유대인에게 멸시 천대나 받던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하던 다른 유대인들은 병이 낫자 예수님도 잊어버리고 가족에게로 가버렸는데, ‘버림받은 백성’이라고 업신여김 받던 사마리아 사람만이 예수님께 감사드리기 위해 다시 찾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사람을 보고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눅 17:17-18)고 하시면서 섭섭한 마음을 나타내셨습니다.

나머지 아홉은 왜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하지 않았습니까? 아마 그들은 자신들이 나은 것을 반신반의했거나, 예수님이 낫게 해 주신 것을 의심했을지도 모릅니다.

‘진짜 나았다고?’

‘지금은 나았지만 두고 봐야하지 않겠는가?’

‘주님께 천천히 감사드려도 되겠지.’

‘아, 내 병은 한센병이 아니었는지도 몰라.’

‘다 나은 것이 아닐 거야. 약간 나은 것일거야.’

‘주님이 나를 위해서 특별히 한 것도 없는데.’

‘아니, 나는 아마 낫고 있었을 거야.’

하지만 주님께 찾아온 사마리아 사람은 ‘주님이 내 병을 낫게 해주셨으니 마땅히 감사드려야해’라고 확신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주님을 다시 찾아와 감사한 이 사람에게만 구원을 선포하셨습니다.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눅 17:19). 열 사람이 나음을 입었지만, 한 사람만이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이 사마리아 사람은 주님께 감사함으로써 구원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그럼 우리는 주님께 어떻게 감사드려야 합니까?

1) 먼저 찬송가 23장 가사처럼 입으로 감사드려야 합니다.

찬송가 23장 가사를 보면, “만 입이 내게 있으면 그 입 다 가지고 내 구주 주신 은총을 늘 찬송하겠네”라고 찬송하고 있습니다. 이 사마리아 사람은 자신의 병이 나은 것을 알고는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15절).

우리가 찬송을 부를 때도 목소리를 다해서 하는 찬송과, 그냥 대충 부르는 찬송이 다릅니다. 힘을 다하여 찬양할 때, 더욱 마음에 감동이 다가옵니다. 이는 말로써 하나님과 이웃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날마다 그 입술에 감사가 있는 사람은 그 마음이 풍요로워집니다. 우리는 입으로 감사생활을 해야 합니다.

2) 두 번째는 몸으로 찬양해야 합니다.

15-16절을 보면, 그 사마리아 사람도 예수님께 돌아와 발 아래에 엎드려 감사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몸으로 충성하는 것이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방법입니다. 교회 안에는 우리 몸으로 충성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봉사의 직분이 있습니다. 주일학교 교사, 찬양대, 찬양단, 워십, 차량봉사, 식당, 카페, 도서관 등에서 봉사하는 것은 곧 주님께 감사하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지난번 금요기도회때 김문식 안수집사님의 간증을 들으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김 집사님은 오랫동안 차량봉사를 하면서, 때로는 사람들에게 욕설을 듣기도 하고, 성도들에게도 꾸중을 듣기도 하지만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봉사해 오면서 많은 은혜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성도들은 이런 봉사자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감사를 해야 합니다. 한 사람도 이런 봉사자들에게 짜증을 내거나 얼굴을 붉혀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냥 봉사하는 분들이십니다. 주님께 봉사하십시오. 교회에 봉사하십시오. 그것이 주님께 감사하는 방법입니다.

3) 물질로 감사들 드려야 합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에게 물질처럼 귀한 것은 없습니다. 인간 생활에 물질이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 귀한 것을 주님을 위해 드리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감사를 나타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예수님이 잡히시기 직전에 값비싼 향유를 가져다가 전부 부어드렸습니다.

독일의 유명한 진젠도르프 백작은 부자였는데, 박물관에가서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그림을 보다가, 그 그림 속에 계신 주님이 ‘나는 너를 위해 피흘려 죽어 주었는데, 너는 나를 위하여 무엇을 줄 수 있느냐?’고 말씀을 하시는 것 같은 감동을 받은 다음,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주의 일에 충성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맥추감사절입니다. 감사는 우리의 신앙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성경에서도 감사야말로 우리 신앙의 기본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시편에서도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시 103:1-2)라고 찬양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예수님께서 열 명의 한센병자를 고쳐 주셨는데, 주님 앞에 돌아와서 감사를 한 이는 오직 한 명 뿐이었습니다. 여러분은 그 한 사람에게 속해 있습니까? 아니면 나머지 아홉 명에 속해 있습니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하는 말씀은 오직 감사하는 사람들만 들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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