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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26.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주께서 너를 부르신다

관리자 2015-07-26 (일) 11:00 8년전 1429  

주께서 너를 부르신다

엡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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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송가 작사가로 유명한 화니 크로스비(Fanny Crosby, 1820-1915) 여사는 95세까지 살면서 9,000 여편의 찬송시를 지었는데, 우리말 찬송가에도 여러 편의 찬송이 들어 있습니다.

수많은 찬송시를 작사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영성을 전한 그녀였지만, 개인적으로는 매우 불우한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그녀는 여섯 살 때 안질을 앓아 맹인이 되었는데, 설상가상으로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할머니 손에서 자라났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러한 불행에 굴복하지 않고, 믿음으로 빛을 찾고 위대한 신앙의 위인이 되었습니다.

그녀가 찬송가를 작사할 때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있는데, 하루는 점자 성경을 읽다가 큰 은혜를 받아 작사를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 그녀는 요한복음 11장 28절을 읽고 있었는데, 베다니에서 사는 마르다와 마리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문에서 마르다는 자기 동생 마리아에게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1장을 보면,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라비인 나사로가 갑자가 병이 들어 죽었습니다. 그 집안에 큰 슬픔이 찾아온 것입니다. 큰 상심에 빠져 울고있는 자매에게 동네 사람들이 찾아와서 위로해 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당한 슬픔을 누가 위로할 수 있겠습니까? 찾아온 사람들은 어떤 말로도 위로받을 수 없을 것 같은 자매를 바라보면서 안타까워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평소에 그들과 친분이 있었던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마을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문 밖에서 마르다를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슬픔에 잠겨있는 마르다를 위로하시며, “네 오라비 나사로가 다시 살 것이다” 라는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3, 25-26).

이 놀라운 말씀을 들은 마르다는 아직도 방안에서 슬피 울고 있는 마리아에게 예수께서 부르신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의 부르심으로 인해 마르다와 마리아의 슬픔과 절망은 다 해결되었던 것입니다.

화니 크로스비 여사는 이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예수님이 마리아를 부르신다는 구절이 마치 자기를 부르시는 것처럼 감격스러웠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께서 자신을 살려 주시려고 자기 이름을 불러 주신다고 감동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놀라운 은혜와 벅찬 감격 속에서 그녀는 시상이 떠오르는 대로 써내려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지어진 찬송가가 찬송가 531장입니다.

 

“자비한 주께서 부르시네 부르시네

사랑의 햇빛을 왜 안 받고 점점 더 멀리가나

지금 오라 지금 오라 자비한 주께로 지금 곧 나아오라”(찬송가 531장)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을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이 안들리십니까?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죄 가운데 빠져있던 자신을 불러주신 주님의 은혜를 깨닫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엡 1:7)

여기서 “구속”(redemption)이라는 말은 헬라어에서 전쟁포로나 노예의 몸 값을 주고 그 사람을 자유롭게 할 때 사용되던 말입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 할 때 사용한 말입니다. 즉, 이 말은 ‘자력’으로는 도저히 건짐 받을 수 상황으로부터, ‘타력’에 의해, 곧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해 자유롭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인간이 자력으로 구원받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받는 것을 말하고자 이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건입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인간은 죄의 권세 앞에서 무력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인간은 자기의 죄와 무능에 대해서는 무지하면서도, 또 교만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한심하고 어리석은 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인간에게 영원한 구원을 주셨습니다. 이 땅에 살았던 인물 중에 그 누가 예수님처럼 인간을 구원하는 위대한 일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 예수님께서 오늘도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를 사망에서 건져주시기 위해서 부르시고 계십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겔 18:4)고 했습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댓가로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는커녕, 하나님의 존재를 무시하려고 애쓰면서, 끊임없이 죄를 범하는 것이 인간의 본 모습입니다.

모든 인간은 그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나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죄는 소멸될 수밖에, 인간 안에 있는 죄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 나가기도 전에 소멸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런 죄인들에게 오셔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한 죄사함의 길입니다.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엡 3:12)라는 말씀처럼,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놀라운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또한 8절에 보면,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8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지혜”란 헬라어로 ‘소피아’(Sophia)라고 하고, “총명”은 ‘프로네시스’(Phronesis)라고 합니다. ‘소피아’는 인간의 삶과 죽음,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시간과 영원에 관한 궁극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말합니다. 반면에 ‘프로네시스’는 세상에서 통용되는 실제적인 지혜, 즉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겪는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해주는 지혜를 말합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지혜를 주셨을 뿐만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 날마다 일어나는 문제를 조정하고 해결해주는 총명도 주셨다는 것이 바울의 고백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추고 살아간다면, 우리의 인생은 더욱 풍요롭고 깊이있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하나님께서는 부르신 자들에게 지혜와 총명을 허락하셔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그런데, 성도들 중에는 그것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신앙적으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살면서도, 일상 생활 속에서 세상일에는 손도 못대고 당황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중심, 교회중심, 말씀중심으로 사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우물안 개구리’처럼 세상 물정도 모르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도 모른 체, 외골수 같이 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 중에 대화가 안 통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이들은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현실적인 삶에서의 지혜를 계발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반면에, 일상생활에서는 훌륭한 시민인데,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에는 관심이 없는 이들도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각종 첨단기기와 매체를 자유자재로 활용할 정도로 똑똑합니다만, 인간의 근원적이고 궁극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아예 외면을 하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공허함을 다른 것, 오락, 음식, 여행, 쇼핑, 탐욕, 중독 등으로 채워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인간성을 더욱 황폐하게 만드는 어리석은 일일 뿐입니다. 이런 이들은 영적인 지혜를 계발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부르신 자들에게 지혜와 총명을 넘치도록 부어 주신다고 했습니다(8절). 이렇게 궁극적인 문제에 대한 지혜와, 일상생활에서의 총명을 갖춘 사람은 영원한 것과 세상에서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 조화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는 과연 주님이 부르신 자 답게 지혜로운 삶, 조화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흔히 일에 대한 자세에 따라 ‘생업인’, ‘직업인’, ‘소명인’으로 나눠진다고 합니다. 생업인은 말 그대로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사람입니다. 직업인은 그 일을 통해 경제적, 사회적인 보상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이에 비해, 소명인은 하나님께서 그 일에 하게 하신 의미를 깨달은 사람입니다. 산업혁명기의 영국에 한 구두닦이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 소년은 하루 종일 힘들게 구두를 닦으면서도 얼굴에는 미소가 넘쳐났습니다. 구두를 닦으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그 소년에게 어떤 손님이 물었습니다. “너는 하루 종일 더러운 구두나 닦으면서 뭐가 그리 좋으냐?” 그러자 소년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지금 구두를 닦고 있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닦고 있습니다. 그러니 즐겁기만 합니다.” 이 소년이 바로 ‘올리버 트위스트’를 쓴 세계적인 작가 찰스 디킨스입니다.

여러분은 생업인입니까? 직업인입니까? 소명인입니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누구나 소명인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소명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먹고 살기 위해 산다는 태도로 살아서는 안됩니다. 또한 세상적인 보상만을 바라고 살아서도 안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부르신 의미를 깨닫고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런 부르심에 우리가 “예”라고 응답하고 순종하며 나갈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부르심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셨고, 모세를 부르셨고, 사사들을 부르셨고, 사무엘과 다윗을 부르셨습니다. 또한 선지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신약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부름은 필연적으로 현재 상황에서 떠나 어떤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부름입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은 그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가나안을 ‘향해’ 가도록 그를 이끌어 주셨고, 또 모세를 불러, 종살이하던 애굽을 ‘떠나’, 하나님을 예배하는 광야를 ‘향해’ 그리고, 가나안을 ‘향해’ 가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이처럼 부르심은 곧 ‘목적이 있는 여행’입니다.

주님은 우리들 또한 세상의 자리를 ‘떠나’ 하나님이 이끄시는 곳을 ‘향해’ 가도록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것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한 부르심입니다. 그 부르심에 응답한 이들은 그와 동시에 떠남과 여행의 길에 들어서는 것입니다. ‘여행길은 곧 고생길’이라는 말도 있지만,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나선 길에도 숱한 고난과 역경이 따를 것입니다. 성경에서 부르심을 받은 그 모든 사람들은 한결 같이 고난의 광야를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이 어떤 고난을 당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불러주신 이는 그 부르심의 목적을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기에, 그 모든 고난과 역경을 극복해 낼 길 또한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십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사 43:19-20).

여러분은 지금 우리 주님이 부르시는 음성이 들리지 않으십니까? 우리 모두가 주님의 부르심에 우리가 “예”라고 응답하고 순종하며 나갈 때,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놀라운 은혜와 기적을 날마다 체험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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