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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8. 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예수 생명 내 안에

관리자 2010-03-28 (일) 11:00 14년전 1407  

예수 생명 내 안에

요한복음 6:52-59절

어느 나라에 많은 지혜와 학식을 가진 대학자가 있었는데 그의 얼굴은 지독하게 못생겼다고 합니다. 어느 날 왕이 그의 지혜를 빌리려고 그를 입궐하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왔는데 너무 못생긴데 왕은 크게 놀랐습니다. 왕은 그를 만나자마자 너털웃음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오, 그대는 그 귀중한 보배를 참으로 못생긴 그릇에 담아 두었구려.”

“왕이시여, 왕궁에서는 왕이 드시는 술을 어디에 담아 두십니까?” 왕은 당연한 것을 왜 묻느냐는 듯이 대답했습니다. “술이야 항아리에 담아두지.” 그러자 그 사람이 깜짝 놀란 듯이 되물었습니다.

“저런, 왕 같이 지체 높으신 분이 어찌 항아리에 담긴 술을 즐긴다는 것입니까? 금그릇에 담아 두셔야지요.”

그의 말을 들은 왕은 모든 술을 금그릇에 담아 놓으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그 술이 다 변하여 마실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왕은 화가 나서 그 학자를 불렀습니다.

“학식이 높은 그대가 금그릇에 술을 넣으면 술 맛이 변할 줄 알면서 어떻게 내게 그런 일을 권했소?” 그러자 그 학자가 정중하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다만 귀중한 것을 보잘 것 없는 그릇에 담아 두는 것이 좋을 때가 있다는 것을 말해 드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내려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는 하늘과 땅을 창조하실 때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창조하신 분으로서 하나님과 똑같은 분인데, 우리같이 죄인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시는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는 ....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사53:2-3절).

예수는 이 땅에 볼품없이 오셨습니다. 즉 가문이나 학식이나 인물 면에서 부족해서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이심에도 우리 인간들을 구원하시려고 스스로를 낮추셔서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오늘은 예수께서 세상과 모든 인간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시던 것을 기념하는 종려주일입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을 어떻게 믿고 섬겨야 하는 지를 본문을 통해서 묵상하려고 합니다.

 

1. 우리는 예수의 살을 먹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53절)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예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실 수가 있습니까? 예수께서는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생명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실제로 예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실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을 상징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의 이 말씀을 지키고자 오늘날 교회에서는 성찬식을 합니다. 예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십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희생 제사를 드렸습니다. 희생 제물을 드릴 때 제물인 동물을 완전히 태우는 일은 없었습니다. 불태우는 것은 신에게 재물로 드리는 증표에 불과합니다.

살코기는 제사장들에게 수고료로 주어졌고 제사장은 그것을 신전 경내에서 사람들과 함께 축하연때 먹었습니다.

그 축제에 신이 임재하여 예배자들과 함께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 살코기가 신에게 드려질 때 그 신은 그 살코기 속에 들어간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예배자가 그 고기를 먹으면 그 예배자는 그 신을 먹은 것이 되며, 신이 임재한 그 살코기를 먹은 예배자 속에 그 신의 생명과 능력이 함께 한다고 믿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예수께서는 이런 제사적 의미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는 하나님 아버지가 그에게 임재하셔서 이 땅에 내려 오셨습니다.

예수는 완전한 인간이었지만 그 속에는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요한 사도는 예수께서 인간으로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요일 4:2-3).

우리는 이 예수를 믿으므로 영생을 얻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믿음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선한 행동을 통해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로지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우리가 성찬식 때 예수의 살을 상징하는 떡을 먹는 것은 그 떡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임재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자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안에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 안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또한 성찬식을 통해서 예수가 내 안에 그리고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신다는 것을 우리는 언제나 믿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이 거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 각자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안에 계신다는 것을 믿고 거룩하고 순결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진실하게 삽시다. 올바르게 삽시다.

 

2. 우리는 예수의 피를 마셔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피를 생명으로 생각했습니다. 사람에게 상처가 나면 피를 흘리게 되고 피가 빠지면서 생명은 사라지게 됩니다. 그들은 피를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오늘날에도 피를 완전히 뺀 고기가 아니면 먹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창9:4). “다만 크게 삼가서 그 피는 먹지 말라 피는 그 생명인즉 네가 그 생명을 고기와 함께 먹지 못하리니”(신12:23).

그런데 예수는 “너는 나의 피를 마셔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너는 나의 생명을 너의 존재의 중심에 받아 드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요 “내가 가진 생명은 하나님께 속해 있는 생명이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예수의 생명을 우리의 삶의 중심에 아니 핵심에 받아드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의 마음 중심에 예수의 생명을 받아들여 우리가 육적인 피가 아니라 예수의 피로 생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저의 사무실에 책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수많은 책을 제가 다 읽은 것은 아닙니다. 책장에는 꽂혀 있으나 한 번도 안 읽은 책도 있습니다. 읽으려고 노력하지만 신간 서적이 쏟아져 나오니까 못 읽은 책들이 많습니다. 그런 책들은 서재를 빛내 줄 뿐 내 지식과는 관계가 없는 책입니다.

그러나 그 많은 책 가운데 어떤 책을 꺼내 읽고 크게 감동해 이렇게 좋은 책을 그냥 서재 장식용으로 썩혀 두었구나고 생각했습니다. 그 책에서 영적인 깨달음을 주는 큰 감동을 제가 받은 것입니다.

감동을 받기 전까지 그 책은 제 밖에 있었으나 이제 제 안에 들어와 내 정서적이고 영적인 양식이 되었습니다.

예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모양만 그리스도인으로 있을 때는 예수는 내 밖에 머물러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외적인 치장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분을 내 안에 모시고 그의 생명이 내 안에서 계시면 이제 내 생명이 되고 능력이 됩니다. 이제 비로소 참된 능력 있는 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3년이나 따르고도 예수가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재판을 받으실 때 그만 그 앞에 있지 못하고 세 번이나 부인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가 부활승천 하신 후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 체험 후 그의 속에 예수가 계셔서 예수가 그의 생명이요 능력이 되니 예수를 전하고 그를 위해서 죽는 것도 행복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가 그의 속에 있어서 그에게 생명이 되었기 때문에 예수와 운명을 같이 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예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3. 우리는 이웃을 깊이 사랑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잘 풀어서 본다면 사도 요한은 “만일 너희가 생명을 원한다면 와서 식탁에 앉아야 하리라 그리고 떡을 나누고 잔을 마셔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생명에 접하는 생활로 들어가리라” 또 “너희는 사랑의 식탁에 앉지 아니하고는 그리스도인의 삶과 감격에 충만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떡과 잔을 성찬식에서 주님의 살과 피로 알고 먹고 마심으로 영원한 생명에 참여한 감격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이웃들과 함께 식탁을 함께 나누지 않으면 성찬의 의미를 너무 축소시켜 버리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이웃들과 식탁을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가 먹는 떡과 잔을 세상의 가장 가난한 이들과 나누어야 합니다.

[라우폴의 꿈]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거기 보면 라우폴 공이 예수께서 성만찬에 쓰신 은잔을 찾기 위해 자기가 살던 성을 떠날 때 말에 채찍을 가하여 막 성문을 나가고 있는데 아주 남루한 거지가 라우폴 공에게 자선을 청했습니다.

그는 그 내미는 손을 재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돈 한 푼을 던져 주고 갔습니다. 그는 예수를 섬기는 것은 그 잔을 찾는 것인 줄로 생각하고 멀리멀리 그 은잔을 찾아다녔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가 가진 돈도 다 떨어지고 건강도 쇠하여 졌으며 그는 지쳐서 기진맥진하였습니다.

백발이 성성하여 이제는 성화된 마음, 겸허하고 가난한 마음으로 라우폴 공이 자기의 성을 향해서 쓸쓸히 돌아올 때 그는 무르익은 곡식처럼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그 동안 그에게는 깊은 죄의식과 사랑이 생겼습니다. 그가 출발했을 때 손을 벌렸던 그 거지를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구걸을 하자 그는 “네게 아무 것도 줄 것이 없지만 내가 먹을 빵이라도 나눠 먹자”며 빵을 두 조각으로 나누어 그 거지에게 주었습니다. 또 그 거지가 목말라 보여서 자기의 표주박을 가지고 손수 우물에 가서 물을 한 잔 떠다가 그 거지를 대접했습니다.

그랬는데 그 거지가 흘연 예수로 변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네가 찾는 은잔은 바로 이 표주박이고 이 냉수는 나의 피이며 네가 나눠 준 이 빵조각이 나의 살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천적인 성만찬은 주님의 이름으로 고통받고 고난받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을 베푸는 것에 있습니다.

지난 번 우리들은 대지진으로 만신창이가 된 아이티를 위한 헌금을 한 일이 있습니다. 이것이 실천적인 성만찬이요, 거룩한 식탁입니다. 이런 일에 최선을 다해 참여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매월 나눔 헌금을 실시해 이 돈을 우리의 이웃 가운데 직장을 잃고 살기 어려운 이웃들과 나누어 주고 있습니다. 이것도 이웃과 함께 하는 거룩한 식탁의 일종입니다. 그런데 이 헌금이 줄고 있습니다. 이런 헌금이 작아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제가 영국에 있을 때 버밍헴 대학 병원의 원무과장 여인의 말을 듣고 감동했습니다. 그녀는 그 병원에 입원한 환자와 병원교회에서 만났습니다. 그 병원 직원인 이 여자는 그 남자가 불쌍해서 도와주었습니다.

그런데 병원에서 그 남자가 곧 죽을 것이라고 선고했습니다. 그때 그 여자는 그 남자를 불쌍히 여겨 돌봐 주다가 죽기 일 주일 전에 그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병원 목사에게 간청해서 병원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여자의 사랑을 받은 그 폐암 환자는 그 뒤 7년을 더 살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는 남편이 떠난 후 한 남자를 사랑하던 것을 병원에 들어오는 모든 환자를 사랑하기로 결심하고 환자를 열심히 섬겨 버밍헴 병원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모든 환자를 사랑합니다. 그녀에게는 모든 사람이 그녀의 식탁 친구들이었습니다. 이것이 곧 믿는 자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죽어가는 사람과 결혼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 우리와 식탁을 나눌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그 누구와도 식탁을 나누며 사랑해야 합니다.

특히 예수를 모시는 이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임합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우리는 남의 구원을 위한 복음 전도에 나서야 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최고의 방법은 바로 그들에게 물질적인 것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게 하여 그들에게 영적인 생명을 주는 것이 바로 이웃을 사랑하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5월 9일은 총동원 주일입니다. 이 총동원 주일은 바로 이웃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가장 좋은 날입니다. 물질적인 것을 주어 육체적인 생명을 연장시켜 주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복음을 전하여 사람의 영적인 생명을 살리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의 지상명령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우리는 유언과도 같은 주님의 이 명령을 충성되게 받들어야 할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으로부터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함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성찬식을 통하여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 주님과 늘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 몸이 바로 주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 거룩하고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하고, 주님의 임재하심에 감사하여 충성스럽게 복음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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