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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8. 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생명을 구하러 오신 예수

관리자 2010-11-28 (일) 11:00 13년전 1322  

생명을 구하러 오신 예수

 

요한복음 12:44~50

 

기독교 신자라고 자처하는 여집사가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고 있었는데 그의 남편은 출석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기독교 진리를 알고 싶어 하는 열망은 대단했습니다.

하루는 그 부인이 출석하는 담임목사가 여집사의 남편을 찾아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하기를 권면하였습니다.

이때 남편은 “저는 특별히 종교에 적대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만일 그리스도인이 되었는데 기독교가 나를 아내처럼 신경질적이고 화를 잘 내며 말을 많이 하는 사람으로 만든다면 저는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던 목사는 너무나 놀랍기도 하고 말문이 막혀 더 이상 무슨 말을 하지 못하고 다음날 그 여집사에게 남편의 말을 전해 주었습니다.

목사의 말을 듣고 있던 그 부인은 자신이 남편과 아이들에게 퍼부은 심한 잔소리와 매사에 신경질적이었던 가정생활이 전도의 문을 닫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목사와 함께 꿇어 엎드려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 눈물로 회개하였습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후 남편은 낚시를 한 후 낚시대를 매고 집안으로 들어서다가 그만 실수를 하여 현관에 놓여있던 화분을 건드려 깨뜨리고 말았습니다.

평소에 신경질적이고 잔소리가 심한 아내에게서 심한 욕설이 쏟아져 나올 것으로 생각한 남편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욕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조용했습니다. 그가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을 내리고 눈을 들었을 때 아내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여보. 걱정하지 마세요. 훌륭한 가정에서도 가끔 다툼이 일어나는 법입니다.”

이에 남편이 놀라 “왜 당신은 보통 때처럼 성을 내지 않소?”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싱긋 웃으며 남편에게 상냥하게 말했습니다.

“그것은 이제 다 지나간 일이예요. 내가 지금까지 성질을 참지 못하고 당신에게 말이 많았던 것을 미안하게 생각해요. 그 동안 우리 집에 당신과 나 외에 주님이 계시다는 것을 몰랐어요.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 주셔서 성내지 않게 해 주신 거예요.”

이 일이 있은 후 그 남편은 아내의 바뀐 성품에 크게 감동하여 아내를 따라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아름다운 부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예수와 함께 사는 사람들입니다. 교회에서만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도 함께 사는 사람들입니다. 마음으로만 함께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실천적인 행동으로도 함께 사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유명한 신학자가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가면서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주일날은 기독교인인데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는 전혀 기독교인이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예수께서는 교회 안에만 있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세상 속에도 함께 계십니다. 우리는 예수와 그 어느 곳에서도 함께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말씀의 은혜를 받아 그 어디에서라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1. 우리가 믿는 예수는 하나님과 동일한 분이십니다.

 

제가 이스라엘에 가서 히브리대 대학원에 등록을 하고 신학을 연구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 성공회 게스트 하우스가 숙소였는데 택시를 타고 그 숙소에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택시 안에서 택시 기사에게 예수를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택시 기사가 갑자기 길가에 택시를 대더니 저를 내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서 “왜 그러십니까?”하고 물었으나 설명이 필요 없다는 듯 다짜고짜로 내리라고 하였습니다.

현대 이스라엘의 종교는 유대교입니다. 유대교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리스도로 인정할 것을 요구한 저의 전도가 그 택시 기사는 불쾌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를 가리켜 ‘하나님의 본체’(빌2:6)요,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요1:1-3)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는 성육신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저는 그 택시에 내려 또 한 유대인을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왜 당신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유대인은 “어떻게 하나님께서 예수라는 인간이 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를 믿지 않습니다”라며 강한 어투로 대답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그의 대답을 통해 기독교는 절대적으로 하나님께서 낮고 낮은 이 세상에 어리석고 보잘것없는 우리들을 구원하시려고 친히 인간의 몸으로 오셨음을 믿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유대교와는 틀리다는 사실을 더욱 실감했습니다. 그 유대인은 결코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오실 수 없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에게 또 다른 질문을 하나 던졌습니다. “그런데 전 세계에는 당신들이 믿지 않는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며 그분의 뜻대로 살고자 헌신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점점 그 수가 늘어나고 있는 반면에 유대교는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연하잖아요? 기독교는 열심히 전도하니까 그렇게 믿는 수가 증가할 수 밖예요. 그러나 우리는 전도를 하지 않습니다. 우리 민족만 믿으면 되지 다른 민족까지 믿을 필요가 뭐 있습니까?”

그 때 전 다시 한번 유대교는 기독교와 전혀 다른 그들만의 하나님을 믿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왜 그들이 복음으로 인해 전 세계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한 지체이며 가족인 사실을 외면하면서 배타적이 되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선민사상을 가진 배타적인 유대인들은 사도들과 복음전도자들을 핍박하고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본질상 하나님이십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요12:44-45).

예수께서는 하나님과 자신을 동일시했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로 오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를 보는 것이 곧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를 힘써 알아야 하며(“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6:3)), 영생을 얻도록 그분의 말씀을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요8:51)). 이 예수 없이는 하나님을 결코 경험하고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예수를 바라보며 호흡합니다. 그분만 바라보는 삶에 영광이 있습니다. 능력이 있습니다. 행복이 있습니다.

예수를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아무 것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이 세상 악한 것이 다 동원되어 덤빈다고 하더라도 겁날 것이 없습니다. 또한 위축될 것이 없습니다. 예수는 영원한 승리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 몸부림하는 것이 사람을 거룩하게 합니다.겸손하게 하고 위대하게 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삶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시기에 세상 그 누구도 우리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

 

2. 예수는 심판이 아니라 구원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최초의 인간 아담에게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2:16-1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선악과를 따먹었는데도 죽지 않고 인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따먹는다면 죽는다고 하셨는데도 아담이 죽지 않았을까요?

우리는 이것을 상징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담은 그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는 죽은 것입니다. 비록 육적으로는 죽지 않았을지라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기에 아담과 그의 후손인 인류 전체는 하나님 앞에서 다 죽은 것입니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모든 인류는 육신은 살았으나 영적으로는 다 죽었습니다. 인간은 이 땅에서 많은 문명을 쌓으며 대단한 업적을 남겼으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영적으로 죽은 자에 불과합니다.

우리 주님은 이런 죽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3:16-17).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2:1)

예수께서는 세상을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 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를 영접하지 않는 사람은 죽은 상태라 이미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영접하는 사람은 영생을 얻지만 영접하지 않고 배척하는 자는 영원한 탄식과 고통이 따를 것입니다.

예수를 영접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를 받아드리지 않는 것이 얼마나 큰 저주인지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를 영접하는 삶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삶입니까? 그것은 바로 주와 복음을 위해서 자신을 ‘잃어 버리는 삶’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막8:35-36).

사람은 나면서부터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하지 잃으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는 늘 먹을 것과 어머니를 찾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죽을 때까지 갑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가능하다면 세상의 모든 것을 얻고자 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나와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잃으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목숨이 구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보면 ‘잃는 삶’이 바로 예수를 영접하는 삶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를 따르다 보면 재산을 잃는 수가 종종 있습니다. 시간도 많이 잃습니다. 체면도 잃을 수가 있습니다. 직장에서 예수를 전하다보면 동료로부터 당장에 따돌림을 당할 수 있습니다. 길거리에서는 사람들로부터 부끄러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만약 부끄러움을 느껴서 주님을 부인한다거나, 주와 복음을 위해서 또는 이웃을 위해서 희생을 꺼린다면, 다음의 말씀이 그 사람에게 해당이 됩니다.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막8:38).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십자가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고난을 피하지 않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는 십자가를 잘 질수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 십자가는 얼마든지 많이 있습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비록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주와 복음을 위한 것이라면 십자가가 될 수가 있습니다.

 

3. 예수는 하나님의 명령이 영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자의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요12:49).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던 유대인들은 예수의 말씀이 곧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몰랐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핍박하다가 나중에는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예수의 말씀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예수는 자유의지가 없이 하나님의 지시만을 따르는 로봇과 같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인간으로 태어나셨기 때문에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만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께서 하나님과 등등하신 분이요 일체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은 서로 영원히 연합하여 있습니다. 따라서 성자 하나님인 예수의 말씀은 성부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자유의지를 가지신 성자 예수의 당신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예수께서는 이것을 단 한마디로 영생이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요12:50).

예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이 세상에 전하러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말씀을 듣고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요, 그리스도 예수의 말씀을 외면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저주 아래 놓이게 될 것입니다.

예수를 떠나서는 결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선교사들이 목숨을 바쳐서까지 전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영원한 생명입니다.

중국 선교의 아버지라는 허드슨 테일러는 어려서 “나는 크면 중국 선교사가 될 것야”라고 말하곤 해서 드디어 1853년 9월 22세에 중국으로 건너가 상해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중국인들이 서양 귀신이라고 내쫓아 거처를 정하지 못하고 산속 수풀에서 살면서 전도했습니다. 그 때 영국에서는 경제적으로 손을 뗐는데도 돌아가지 않고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고통과 추위는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복음 전도를 위해서 참고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드디어 상해에 교회를 세우고 또 오지를 찾아서 복음을 증거하러 갔습니다.

그가 이렇게 한 것은 예수의 복음이 곧 생명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복음이 곧 생명입니다. 우리가 이 복음으로 사는 길이 세상을 올바로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많은 사람들은 삶에 지쳐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 영원한 생명의 길이요 참된 삶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살아 영원한 생명에 동참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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