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7.11. 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나는 양의 문이라 > 이사장칼럼

본문 바로가기
법인소식
정기간행물
정보공개
언론보도
이사장 칼럼
 


2010.07.11. 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나는 양의 문이라

관리자 2010-07-11 (일) 11:00 13년전 1339  

나는 양의 문이라

 

요한복음 10:7-10

 

심리학에서는 ‘대체의 법’(the law of substitution)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인간은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가질 수 없다는 법칙으로서 한가지 감정은 다른 감정에 의해 대체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동시에 두 가지 감정을 가질 수 없습니다. 즉 우리의 마음에는 오직 의자가 하나만 놓여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절망이 먼저 그 의자에 앉으면 희망이 앉을 자리가 없고 반대로 희망이 먼저 앉으면 절망이 앉을 자리가 없습니다. 결코 희망과 절망은 함께 앉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복음을 받아들이면 세상적인 생각은 자리를 차지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바라보고 오직 믿음으로 그분의 뜻을 인정하는 긍정적인 생각을 받아들이면 부정적인 생각은 우리의 마음에 자리할 곳이 없습니다.

이는 마치 어두운 방에 등불을 켜는 것과 같습니다. 캄캄한 방 안에 등불을 밝히면 어두움이 한순간에 없어지듯이, 반대되는 두 가지 심리상태는 함께 공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온통 세속적인 생각에 사로 잡혀 살고 있었다고 해서 그 세속적인 생각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복음을 받아들여 예수를 그리스도라 고백하는 믿음의 생각이 들어오면 우리의 마음은 긍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채워지게 됩니다.

우리는 믿음에 기초하여 긍정적인 사고를 하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 생활을 하게 될 때 우리의 생각은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됩니다.

황희 정승은 인품이 원만하고 청렴하여 모든 백성들로부터 존경의 대상이 되었는데, 어찌나 겸손하고 긍정적이었던지 황희 정승을 빗대어 ‘삼가정승(三可政丞)’(무슨 일이나 긍정적으로 생각하여, 남에게 자신의 주관적 의사나 의견을 내지 않는 사람)이란 고사성어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어느 날 황희 정승이 집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집안의 두 여종이 다투고 있었습니다. 한 여종이 황희 앞으로 나와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주장을 하자 가만히 얘기를 듣던 황희 정승이 ‘네 말이 옳다’라고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그 말에 그 여종이 당당한 표정을 짓자, 옆에 있던 다른 여종이 얼굴을 붉히면서, 자신이 옳고 아까 말한 여종이 틀렸다고 항변을 했습니다. 역시 끝까지 듣고 있던 황희 정승이 정색을 하면서 ‘네 말도 옳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옆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부인이 정승을 책망하며 물었습니다. “대감, 하나가 옳으면 하나는 그른 것이 도리인데 어찌하여 이쪽의 말도 옳고 저쪽도 옳다고 하시는 것입니까? 도대체 이런 판결이 어디 있습니까?”

부인의 말을 듣던 황희는 짐짓 그렇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부인의 말도 옳소”라고 너무도 당연하다는 태도로 말했습니다. 그러자 세 사람 다,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다가 그만 웃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본래 우리 인간은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우리가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는 믿음에서만이 가능합니다.

예수께서는 목자와 양의 비유를 많이 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본래 유목 민족이었기 때문에 어디를 가도 목자와 양떼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 광명은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처럼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양들이 평안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목자와의 관계가 각별해야 합니다.

참된 목자는 아침에 양 떼를 이끌고 푸른 초장으로 나갑니다. 그러나 밤에는 양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 우리에 들어가게 하고 양의 문에 누우면 하루의 일과가 끝납니다.

양의 문에 가로 눕는 것은 밤에 일어날 수 있는 위험 곧 이리와 다른 짐승의 침입으로부터 양을 지키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목자는 한시도 양떼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보호하여 인도합니다.

오늘 우리는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를 묵상하며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양의 특징이 몇가지가 있는데, 1)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고 따릅니다(요10:2-5). 양은 동물 중에서 자기 목자의 음성을 제일 잘 알아듣는다고 합니다. 2) 양은 순하고 복종을 잘합니다(사53:7). 3) 양은 사자와 이리, 뱀이나 곰 같은 원수 앞에서는 무서워 떤다고 합니다(렘11:19, 미5:8). 4) 웅덩이에 빠지기 쉽다고 합니다(마12:11). 5) 목자가 무관심하면 고통을 당합니다(겔34:5-8).

그러므로 양은 목자가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원수의 먹이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많은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막6:34) 여러 가지로 가르치셨습니다.

그 당시 유대 백성들은 의지할 만한 지도자가 없었습니다. 로마의 식민지 통치 아래서 독재자 헤롯이 집권하고 있었고 백성들을 위로하고 희망을 주어야 할 종교지도자들마저 교권주의에 사로 잡혀 백성들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그들을 목자 없는 양과 같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상 인간은 누구나 죄로 버림받아 하나님을 잃은 사람들입니다. 아니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본문에서 “나는 양의 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죄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인간이 하나님께 접근할 수 있는 문은 오직 예수라는 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2:18)고 했고, 히브리서에서는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히10:20)고 했습니다. 이 예수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양은 우리 안에 들어가지 않고는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없습니다. 양인 우리 성도들은 이 문을 통해서만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고등종교가 많습니다. 불교도 있고, 이슬람교도 있고, 힌두교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당신만이 참된 문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요10:8).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예수 외에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이가 없는데, 어떤 종교에서는 그들의 교주도 양의 문이라고 가르치나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왜 기독교만 이렇게 진리가 배타적이고 독선적이냐고 비판합니다. 우리 생각으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외에 다른 이름으로 구원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4:12).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우리가 예수를 믿어 참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감사할 뿐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풍성한 삶을 주십니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릴 만큼 희생적이고 적극적입니다. 선한 목자인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으로 끝나지 않고 죽음을 이기고 부활, 승천하셔서 우리에게 풍성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10절).

미국 각 도시에 ‘J. C. 페리’라는 백화점이 있습니다. 이 백화점을 설립한 J. C. 페리는 돈을 많이 벌어 은행과 부동산에 투자를 했는데, 1930년에 일어난 대공황으로 모든 주식이 휴지 조각이 되었고 모든 부동산 값이 폭락해 버려 하루 아침에 알거지가 되었습니다.

완전히 파산한 그는 심한 우울증에 걸려 자살을 결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완전한 절망과 좌절 속에 정신병원에까지 입원하게 됐는데 어느 날 아침 식사를 위해 복도를 걷다가 어디선가 찬송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 주시리“(382장)

 

그는 찬송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옛날 교회에서 들었던 성경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주님이 그의 마음 속에 임했고, 하나님의 엄청난 은혜가 그의 가슴을 적셨습니다. 그의 마음을 누르고 있던 실패와 좌절의 무거운 돌이 치워지고 주님의 평안함이 마음에 임했습니다.

그는 일어나 다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백화점을 세우게 되었고 결국 미국 전역에 1700여개 백화점을 세워 백화점왕이 되었습니다.

그가 주님을 영접하고 꿈과 희망을 회복하니까 기적이 임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들에게 주님이 임하시지 않은 것이 문제지 돈이 없거나 ‘빽’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시카고에 대 화재가 나서 온 시가지가 불바다를 이루었을 때의 일입니다. 각 신문사의 기자들이 화재현장에 도착해보니 건물들이 모두 불타고 있었고, 시가지 한복판에 있던 무디 목사의 교회도 모두 불타버리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기자들이 무디 목사 곁으로 다가가 “목사님 항상 살아계신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셔서 무엇이든지 원하기만 하면 이루어 주신다고 설교하셨지요.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거룩한 성전인 교회가 불이 타 없어지는 것을 가만 두십니까?”라고 빈정거리며 말하자, 무디 목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벌써부터 하나님께 큰 교회를 달라고 기도해 왔소. 그 기도의 응답으로 지금 교회가 불탄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헐고 다시 세워야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불에 태워서 건물을 허는 비용이 들지 않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에 기자들은 어이없어 했습니다. 왜냐하면 무디 목사는 밤중에 화재를 당하여 잠옷 바람으로 겨우 목숨만 건진 빈주먹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자들은 다시 “그럼, 그 큰 교회를 세울 돈은 가지고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무디 목사는 옆구리에 끼고 있던 낡은 성경책을 내놓으면서 대답했습니다. “나는 수표와 돈을 가지고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써서 바닥이 나지 않는 하나님의 금고인 성경책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얼마 안가서 불에 탄 교회보다 더 크고 훌륭한 교회를 볼 것입니다.”

무디 목사는 그 화재 이후 영국으로 건너가 전 영국을 뒤흔드는 부흥을 일으켰고, 영국에서는 교회건축을 위해 많은 헌금을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무디 목사는 영국 국민이 바친 헌금으로 화재가 난 자리에 옛날 교회보다 훨씬 크고 아름다운 교회를 지을 수가 있었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면 일어납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주님의 역사를 믿는 믿음만 있으면 우리는 주님의 축복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담대히 믿고 주님께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3.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양은 목자의 말에 순종해야 합니다.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깍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사53:7) 양은 목자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여기서 양으로 비유된 예수께서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죽음 속에서도 잠잠했습니다. 목자이신 성부 하나님께 죽기까지 순종했습니다.

우리도 참 목자인 주님께 순종하고 복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경험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못합니다.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이 문둥병을 고치기 위해 사마리아에 와서 엘리사에게 문둥병을 고쳐 달라고 했을 때 엘리사는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왕하5:10)고 했습니다.

그는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세상에 좋은 물이 없어 요단강에서 씻으란 말인가, 그것도 일곱 번이나 씻으라는 말인가 하고 분노하여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종의 요청을 듣고 그 말대로 하기로 했습니다. 그가 그 말에 순종한 것은 그의 교만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가 가진 지식으로는, 경험으로는,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돼도 순종해야 합니다. 이해하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믿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식적으로, 상식적으로, 경험적으로, 합리적으로는 도저히 순종할 수 없을 것 같은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신자를 ‘양’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 ‘죽기까지’ 순종하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주님의 양이 된 우리도 상식에 위배되는 것처럼 보여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지라도 주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헌신적으로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신앙은 결국 순종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기적과 축복은 모두 순종을 통해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순종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은 교만을 꺾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결코 순종하지 않습니다.

우리 성도 가운데 사업을 하시는 분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그분은 굉장히 돈을 잘 버는 사람입니다.

이 분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에 순종하기 위해서 십일조 헌금을 온전하게 했습니다. 같은 회사 직원들이 무어라고 했고, 미신적 신앙생활이라고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온전한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놀랍게 일들이 잘 해결되고 사업이 번창하였습니다.

그는 그것을 알기에 온전한 십일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순종에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의 참된 목자이신 예수를 통해서 구원을 받은 우리는 예수 만을 위하고, 존귀케 하고, 그 안에서 기쁨과 행복을 찾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기쁨으로 삼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알고 순종함으로 그분의 말씀을 따를 때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영적인 복과 물질적인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순종하는 신앙을 배워 하나님으로부터 참된 생명을 얻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 19 기독교회관 604호 (사)지구촌구호개발연대  대표자 : 전병금
TEL : 02-744-1895   FAX : 02-744-1894  고유번호 : 584-82-00066  
604, Korea Christian Bldg., 19, Daehak-ro, Jongno-gu, Seoul, Republic of Korea(Postal Code 03129)
Copyright by 2016 (사)지구촌구호개발연대.   All rights reserved. Produced by S.L.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