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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4. 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빛의 자녀로 살라

관리자 2010-11-14 (일) 11:00 13년전 1325  

빛의 자녀로 살라

 

요한복음 12:35~36

 

한 중년 사업가가 의욕적으로 사업을 확장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의 신앙심은 돈독하였고 하나님의 은혜로 하는 일마다 잘 되었습니다. 그는 교회 봉사를 열심히 하였고 자타가 공인하는 엘리트 신자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몸이 찌뿌듯하고 팔다리가 쑤셨습니다. 물론 괜찮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아내의 성화도 있고 해서 종합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의사가 보호자인 아내를 들어오라고 하더니 아내에게 “세상에 이렇게 미련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몸이 이런 정도로 망가질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니, 여기 흉부 MRI를 좀 보십시요. 폐 한 쪽이 다 망가지고 이미 안이 손을 쓸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초기에만 발견되었어도 살 수 있을 텐데 왜 그동안 정기 검진을 받지 않았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부인은 “무슨 착각 아닌가요? 우리 그이는 병이라고는 통 모르는 사람이예요” 놀라며 물었습니다. 그러나 의사는 단정적으로 “이 환자는 앞으로 3개월 정도 밖에는 못 살 것 같습니다. 사업을 하시는 분 같은데 속히 정리를 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내는 그럴 리가 없다고 다시 확인을 요청했습니다. 의사는 이름을 정확히 말하면서 핀잔을 주었습니다. MRI 상단에 그 남편의 이름이 분명히 적혀 있었습니다.

의사는 건강한 사람의 MRI를 보여주며 설명했습니다. 그 병원은 대형 종합병원이었기에 의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 그 가정은 초상집과 같이 되었습니다.

그는 생각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허무하게 죽다니... 평소 담임목사님이 설교에서 인생은 무상한 것이라는 말씀을 자주 하셔서 그것이 인생의 원리이지만 아직 젊은 내게는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그때 그는 “어떻게라도 살아야 한다. 아니 세상 의사는 못해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과거에는 암 말기 환자가 하나님께 기도만 하는 것을 절대 신용을 하지 않았는데 자신이 당하고 보니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마음이 절실했습니다.

담임목사님께도 기도를 요청했고, “목사님, 만일 하나님이 고쳐 주신다면 내 재산의 반을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 목사님, 기도해 주셔서 꼭 고칠 수 있도록 해 주세요”라고 서원도 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제가 고치는 것이 아니라 집사님의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이 고쳐 주실 것입니다. 우리 교인들이 함께 열심히 기도하겠습니다”라고 신앙의 위로를 해 주셨습니다.

그날부터 그 집사는 울부짖으며 기도했습니다. “만일 고쳐 주시면 전 재산의 반을 꼭 바치겠습니다”라고 서원기도를 드리고 또 드렸습니다.

그러데 병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김아무개씨 댁이지요. 이거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지난번 판독한 그 흉부 MRI 사진이 사장님 것이 아니라 동명이인인 것 같습니다. 그분은 오랫동안 폐암으로 고생하신 분인데, 간호사의 착각으로 그분의 MRI 사진을 사장님 것으로 판독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사장님의 건강은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한번 저희 병원에 오셔서 결과를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심려를 끼쳐 드려서 죄송합니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그 집사는 “저 의사, 사람 잡겠네”라고 하면서 그 다음 주일 하나님께 감사헌금을 드렸습니다. 정확히 일금 십만원을 드렸습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아내가 핀잔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고쳐 주시면 전 재산의 반을 바친다고 서원기도 했는데, 겨우 십만원을 드려요, 어디 그게 믿음이예요?”

그 집사는 팩 토라지며 말했습니다. “허, 무슨 소리. 그거야 암에 걸려 죽게 된 사람을 고쳐 주셨을 때 이야기지 멀쩡한 사람 오진했는데 무슨 재산을 반이나 바친단 말이요?”

우리 인간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만사가 평안할 때는 자신의 건강과 지식과 경험을 믿고 자신만만합니다. 그러나 위기가 왔을 때 자신의 신앙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굴복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 원합니다.

평안할 때는 통 모른 척하다가 급할 때는 와서 통 사정하는 우리 인간의 이 같은 마음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말 가소로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금년에도 많은 은혜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가운데 우리의 올해의 삶을 가만히 뒤돌아 보면 은밀하게 우리의 삶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무사하게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신자된 우리의 당연한 도리입니다. 다음 주일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금년의 지나온 삶을 되돌아 보고 하나님께 진정한 감사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이 세상은 어두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트로이라는 난공불락의 성이 있었습니다. 이 성이 얼마나 튼튼한지 그 누구도 쳐 들어와 함락시킨 예가 없었습니다. 그 성은 바닷가에 우뚝 서 있는 튼튼한 성이었습니다.

한참 적군과 전쟁을 치르고 있는데 어느 날 그 적군이 싹 물러가고 바닷가 모래 위에 아름답게 보이는 나무로 만든 말 한필이 덩그러니 서 있었습니다.

트로이 성의 보초를 서는 군인이 그 목마를 보고 적군이 물러갔다고, 우리가 승리했다고 환호하며 전리품으로 그 목마를 트로이 성 안으로 끌어다가 성 정원에 세워 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목마의 뱃속에는 소위 첩자 몇 놈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 첩자들이 승리감에 도취하여 경계를 소홀히 하는 틈을 타 그 목마에서 나와 성문을 활짝 열어 놓았고, 그날 밤 물러났던 적군이 밀물처럼 쳐 들어와 트로이 성을 함락시켜 버렸습니다.

이렇게 사탄은 우리를 속입니다. 우리가 자다가 우리 영혼을 도둑 맞을 수가 있습니다. 잠깐 방심하다가 그만 넘어지고 맙니다. 그래서 우리 영혼이 파멸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평생 동안 올바로 살다가 그만 세상의 욕심에 빠져 인생이 파멸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테는 탐욕을 가리켜 ‘굴복시킬 수 없는 원수’라고 하였습니다.

한 순례자가 순례의 길을 가면서 쾌락의 표범도 무사히 통과하였고, 허영의 사자도 무섭기는 했지만 굴복하지 않았지만, 탐욕의 깡마른 늑대 앞에서는 한 걸음 한 걸음 어둠 속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이것이 바로 탐욕의 힘입니다. 이 탐욕은 끈질기게 우리를 따라 붙어 우리를 지치게 하는 악입니다.

한 부자가 인생이라는 해변에 서 있었습니다. 건너편은 천국이었습니다.

그때 한 천사가 나타나 그 바다를 건너 천국에 무사히 당도하려면 건너편까지 허름한 뗏목을 저어 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천사가 부자가 쓸 뗏목을 보여 주자, 그는 자기 재산을 그 뗏목에 싣기 시작했습니다. 이 광경을 본 천사가 주의를 주었습니다. “이 뗏목은 몹시 낡았소. 짐을 너무 많이 실으면 가라앉고 말거요. 그럼 건너편에도 못 건너가오.”

하지만 그 부자는 그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뗏목에 짐을 실었습니다. 금궤, 돈 자루, 보석 자루, 골동품, 미술 작품, 옷과 맛있는 음식 꾸러미 등등.

짐을 모두 실은 부자는 뗏목을 타고 바다를 가로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서 큰 파도가 뗏목을 덮쳐 뗏목은 가라앉고 부자는 익사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탐욕은 영혼에 짐을 너무 많이 지웁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

이 세상은 온갖 욕심으로 어두움이 가득합니다. 부와 명예와 권력과 장수에 대한 욕심 때문에 세상이 어둡습니다.

톨스토이가 지은 한 이야기에 보면, 어떤 가난한 농부에게 큰 부자가 와서 “당신, 지금부터 힘껏 뛰어서 내 농장을 돌아오면 그 전부를 당신에게 다 주겠소”라고 말했습니다.

농부는 되도록 넓게 돌아서 해질 무렵 출발점으로 들어 왔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지쳐 죽고 말았습니다. 장사하는 이들이 무덤에 둘러서서 “이 사람에게는 땅 반평이면 충분하겠구만”이라고 그 농부의 어리석음을 지적했습니다.

이렇게 탐심이 사람을 잡아먹습니다. 아마 이런 탐심 때문에 인간은 행복해 질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주의 복음 앞에 탐심을 버리고 영원한 생수인 주의 말씀으로 이 어두운 세상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2. 이 어두운 세상을 비치는 빛이 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창1:1-3).

태초에 이 세상은 혼돈, 공허,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습니다. 어두움 속에 있었습니다. 전혀 가능성이 없는 세상이었습니다. 생명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사람도 동물도 식물도 없었습니다. 그저 어두움 뿐이었습니다. 마치 오늘날의 세상이 욕심과 죄와 사망만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세상은 어두움만이 있어서 전혀 생명의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하시니 빛이 있게 되었습니다. 온 세계가 환해 졌습니다. 질서가 생기고 아름다움이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무질서한 세상에도 하나님의 빛이 들어오니 광명의 세계가 되었습니다. 혼돈이 물러가고 질서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공허가 물러가고 빛의 충만함이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빛’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빛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생명의 원천이시오 영원한 진리이시며 절대 거룩하신 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께서는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요1:8)이 되시고, ‘세상의 빛’ 되신 예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요8:12)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참 빛으로 오셔서 어두운 죄악에 빠져 절망의 심연 가운데에서 헤매는 우리에게 생명의 길과 구원의 길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한경직 목사는 [인간의 죄와 십자가]에서 말했습니다. “우리가 예배당 뜰에 나가서 서울 사방을 돌아보면 여러 가지 것이 보입니다. 삼각산이 보이고, 여러 가지 고층 건물이 많이 보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밖에 나가서 그것을 먼저 보지 말고 오늘 같이 해가 잘 비칠 때에 해를 한참 쳐다보세요. 그러다가 다음에 사방을 돌아보십시오. 그렇게 하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아니합니다. 해를 본 눈은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아니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 십자가에서 비치는 하나님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고 원수 된 사람의 죄를 용서하여 달라고 하는 그 기도의 음성,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나서 그 다음에 세상 것을 바라보십시오. 세상 것이 보이지 아니합니다. 전에는 향락이 귀해 보였지마는 물질도 보이지 아니합니다. 전에는 지위나 권세 같은 것들이 그렇게 귀해 보였지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한참 바라보다가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 보이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죄에는 죽고 의에는 살아서 오직 십자가를 바라본 사람의 눈에는 오직 십자가만이 밝은 빛으로 그 심령을 채우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 오직 하나님의 의, 오직 하나님의 뜻이 그에게만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본문에 보면 참 빛 되신 예수께서 이제 잠시 동안만 유대인 가운데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유대인들은 그런 제한된 시간에 예수를 영접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유대인들은 지금껏 어두움을 사랑해 왔었기에 빛으로 오신 예수를 영접하지 않고 오히려 배척하고 핍박하는 무서운 죄를 범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영적 무지 때문에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에도 유대인들이 범한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날에 주님을 맞이하지 못하는 이들이 없도록, 만민이 다같이 영광스럽게 참 빛 되신 주님을 맞이하도록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 예수를 영접하고 맞이하는 이가 바로 축복의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예수를 전해야 됩니다. 이것이 이 세상을 살리는 길이요 축복의 길입니다.

 

3. 우리는 빛의 자녀로 살아야 합니다.

 

본문에서 ‘빛을 믿으라’고 한 것은 이 어두운 세상, 죄의 세상에서 죄를 따라 가지 말고 ‘빛의 아들’이 되라는 것입니다.

‘빛의 아들’이란 오직 빛이 보내주고 인도하는 진리를 분명히 깨닫고 그 빛 안에서 행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곧 예수 안에서 행하는 자들은 말합니다.

한 서커스단이 뉴욕 공연을 할 때였습니다. 공연중 갑자기 정전이 됐습니다. 1분 간이었지만 관중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무대에서는 조련사가 호랑이 네 마리의 재주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철창 속이니까 관중에게는 위험이 없었으나 캄캄한 데서 조련사가 호랑이의 공격을 받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 걱정이었습니다.

장내가 물을 끼얹은 듯이 고요하고 캄캄한데 무대에서는 조련사의 채찍 소리와 호랑이의 동작을 지시하는 명령이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불빛이 다시 켜지자 관중들은 모두 일어서서 박수를 보냈습니다.

뒤에 기자회견이 열리자 조련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호랑이들은 나를 잘 봅니다. 내가 호랑이를 못 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게 해서는 안됩니다. 마치 어둠 속에서도 밝은 빛 속에 있듯이 행동해야 합니다.”

조련사가 어둠 속에서도 호랑이를 여전히 제압하고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어둠 속에서도 빛의 사람으로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죄악으로 어두워진 이 세상에서 마귀를 이기고 승리의 삶을 살려면 빛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빛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처럼 겸손해야 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6-8).

예수의 십자가의 겸손을 본받아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와 사람들 앞에서 낮춰 겸손해야 합니다.

또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고 하신대로 쉬지 말고 기도하면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어떻게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쉬지 말고 기도할 때만이 그것을 할 수 있습니다.

선교에 대한 반기독교인들의 핍박 때문에 상상할 수 없는 고난을 겪으면서도 사도 바울이 어떻게 이런 권면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그가 쉬지 않고 기도생활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우리교회 성도 중에서도 도저히 신앙을 가지고 살 수 없는 열악한 환경에 빠져 있는 분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만났더니 그 고난을 다 하나님께 맡기고 끝까지 신뢰하면서 살고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분의 신앙적인 승리를 보면서 그분의 신앙의 위대함에 다시 한번 머리를 숙이게 되었습니다.

다음 주일 추수감사절입니다. 우리는 악조건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받아서 감사하는 것은 그 누구나 다 할 수 있습니다. 정말 어려운 것은 받은 것이 없어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신앙 안에서 진정으로 주님께 감사하는 한 주가 되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참 빛이시고, 우리는 그 빛의 아들입니다. 빛의 아들로서 무엇보다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의 뜻을 받들어야 할 것이며, 항상 기도함으로 만사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올 한해를 되돌아보고 각자에게 허락한 하나님의 축복을 헤아려 보고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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