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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1. 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신앙의 기적

관리자 2010-02-21 (일) 11:00 14년전 1268  

신앙의 기적

요한복음 6:1-13절

보물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보물은 금보다 더 귀한 것으로 누구든지 빈 그릇을 가지고 오면 채워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빈 그릇을 가지고 왔습니다. 금보다 더 귀한 보물인데 큰 그릇을 가지고 가면 안 될 것 같아서 제일 작은 그릇을 가지고 갔습니다. 주인은 아무 말 없이 채워 주었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 그것을 보고 그 사람보다 더 큰 그릇을 가지고 갔습니다. 또 주인은 아무 말 없이 가득 채워주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있던 세 번째 사람은 그 보다 더 큰 그릇을 가지고 갔습니다. 너무 미안하지만 일단 한번 가지고 갔더니 주인은 아무 말 없이 가득 채워 주었습니다.

네 번째 사람은 세 번째 사람보다 더 큰 그릇을 가지고 갔습니다. 세 번째 사람보다 더 미안했지만 일단 한 번 가지고 갔더니 주인은 아무 말 없이 가득 채워 주었습니다.

그러자 첫 번째 사람이 항의하고 덤벼들었습니다. “왜 다른 사람은 나보다 더 큰 그릇인데 가득 채워주었습니까?” 주인은 그 사람에게 “너는 더 주려고 해도 담을 큰 그릇이 없지 않느냐 ?”고 대답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믿음의 그릇이 얼마나 큰가에 따라서 큰 사람이 되 되고 작은 사람도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축복이 큼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그릇이 작아 그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느 날 친한 친구 둘이 바닷가에 낚시를 하러 갔습니다. 비록 낚시질은 서툴렀지만 비교적 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그런데 한 친구는 손바닥만한 작은 고기가 물리면 그것을 잡아 가지고 간 구럭에다 집어넣고 큰 고기가 물리면 다시 바다에 놔주었습니다.

옆에서 낚시를 하던 친구는 이상하게 생각했으나 도중에 물을 수 없어서 궁금해 하다가 점심시간이 되어 준비해온 도시락을 함께 나누면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여보게, 이상한 게 하나 있네.” “뭔가?” “가만 보니까 자네, 작은 고기는 잡아 구럭에 넣고 큰 고기는 오히려 다시 물 속에 놔주는데 이해가 안 가는 걸? 나 같으면 오히려 큰 것을 집어넣고 작은 것은 불쌍해서 바다에 다시 놔줄 텐데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나?” “별 것 아니네. 우리 집엔 프라이팬이 10cm짜리 밖에 없어서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기회를 주시는데 내 믿음의 그릇이 너무 작아서 그 큰 축복을 놓쳐버리는 경우는 없습니까?

예수께서 유월절 명절을 앞두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던 중이었습니다. 디베랴 바닷가에서 벳세다를 지나가던 이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예수의 기적에 대한 소문이 자주 들리고 있는 터라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말씀을 듣는 자리에 운집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오랫동안 말씀하시고 저녁때가 되자 그들이 먹을 것을 생각하였습니다. 이 때 예수께서는 한 아이가 내 놓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이고 남은 조각이 12광주리가 되게 하는 기적을 베푸셔서 그들의 굶주림을 해결하였습니다.

이런 놀라운 기적이 우리들의 삶속에서도 나타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신앙에 있어서는 너무 합리적이면 안 됩니다.

 

지난 1월 중순에 중남미의 아이티 공화국에 강진이 일어나 애석하게도 20여만 명이 사망하고 많은 중상자들이 생겨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얼마나 불쌍합니까? 먹을 것이 없어 진흙으로 만든 쿠키를 먹는 최빈국이며, 얼마 전에는 허리케인으로 많은 고생을 했는데, 이번에는 지진이라니, 불행해도 너무나 불행한 국가입니다. 이런 불행을 불쌍히 여겨 그들을 돕고자 세계 많은 나라들이 나서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굶주린 군중들을 보면서 무엇인가 먹여서 보내려고 하였습니다. 이런 마음이 주님의 마음입니다. 남을 돕는 마음을 먹어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도 굶주린 이들에게 무엇을 주려고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요6:5)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빌립을 시험해 보고자 한 것입니다.

벳세다는 빈 들판이어서 떡을 살 곳이 없을 뿐더러 거기 모인 무리가 너무 많기 때문에 음식을 살 돈도 마련하기에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 날 모인 사람들은 장정만 해도 5천명이 되는데, 그들이 먹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계산해 보면 적어도 200 데나리온이 들어갑니다.

한 데나리온이란 그 때 장정 한 사람의 하루 품삯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쉬고, 몸이 아픈 날도 쉰다고 가정하면 1년 정도의 품삯이 될 것입니다.

빌립은 이런 것을 잘 알기에 여기 모인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취지에서 말했습니다.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7절).

빌립의 대답은 합리적이고 계산적이며 너무 정확한 대답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런 합리적인 계산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그 무엇이나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대답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빌립은 그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불가능하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분은 성자 하나님으로서 성부 하나님처럼 전능한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으로서 예수께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세 제자와 함께 변화산에서 내려 오실 때 한 사람이 귀신들린 아들을 데리고 예수께 고쳐 달라고 애원하면서 제자들의 무능력을 언급하였습니다.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쫒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막9:18)

그리고 전능하신 예수께 애원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막9:22).

그 때 예수께서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고 말씀하시면서 그 아이에게 들어온 귀신을 내 쫒아 주셨습니다.

예수께는 그 무엇이나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빌립은 인간의 계산과 합리성만 내세웠습니다. 인간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도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생각을 회개하고 전능하신 예수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우리의 모든 희망을 걸어야 합니다. 여기에 바로 우리의 믿음의 힘이 있습니다.

 

2. 예수께 기대를 걸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빌립은 불가능하다고 했으나 안드레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압니다. 그 다음 나머지는 예수께서 능히 하실 수 있음을 믿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안드레는 한 소년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예수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다고 꼭 예수께서 그것으로 어떻게 하실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일 어느 부모가 자신의 아이를 신앙생활을 잘 시키고 예수의 성품을 닮도록 가르쳤다고 하더라도 그 아이가 미래에 하나님을 위해서나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어떻게 쓰여지게 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또 어떤 주일학교 교사가 한 어린이를 신앙지도를 잘하여 그 아이가 자라 미래에 복음을 위해서 크게 쓰임 받을 지 아는 이도 없을 것입니다.

독일에서 한 초등학교 교장이 아침마다 교실에 들어가서는 꼭 모자를 벗고 예의를 갖추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그 교장 선생님께 물었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대답하였습니다. “이 소년들 중에서 장차 어떤 사람이 나올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의 말은 옳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소년들 중 하나가 바로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였기 때문입니다.

안드레는 자기가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이 소년을 예수께 데리고 왔을 때는 자신이 지금 무엇을 행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기적을 일으키기 위한 소재를 마련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예수께로 인도한 사람의 미래의 가능성을 우리는 잘 모릅니다.

우리는 우리 하나님께 기대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물론 예수께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실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최선이 없어도 다 하실 수 있습니다.

다만 예수께서는 우리 인간이 최선을 다할 때 그것을 재료로 사용하셔서 기적을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어린아이의 헌신과 안드레가 어린아이를 주님께 인도한 것을 귀하게 보시고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우리 인류의 삶을 살펴보더라도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는 축복이 따랐습니다. 폴란드의 유명한 피아니스트였던 파데르브스키가 처음에 피아노를 전공하겠다고 지원했을 때 그의 선생은 파데르브스키의 손이 작아서 피아노에는 전혀 희망이 없다고 단호히 말을 했습니다.

이탈리아의 불후의 테너 가수 카루소가 성악을 전공하겠다고 첫 교습을 받았을 때 그 선생은 카루소의 목소리가 창문을 울리는 바람 소리 같으니 음악공부를 안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영국 역사에 유명한 정치가요 연설가인 디스렐리가 처음으로 국회에서 연설을 하는 날, 사람들이 비웃고 야유를 해서 그는 연설을 중단하고 그대로 않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앉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을 했습니다. “지금은 내가 그냥 앉지만 앞으로 당신들이 내 말을 들을 때가 꼭 올 것이오!”

발명왕 에디슨도 한때 무려 2백만 달라를 소비해 가며 굉장한 발명을 위해 일하고 보니, 별로 아무 소용이 없는 발명이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실패의 연속을 한 사람입니다. 낙선을 여러 번하고 패배를 많이 당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끝까지 노력했을 때 드디어 그는 백악관의 주인인 국민의 대통령이 되었고, 인류역사에 존경을 받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영적인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인간적으로 할 수 있는 한 주님께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가 인간적으로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3. 예수께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가져 오기를 기대하십니다.

 

소년이 가지고 온 것은 보잘 것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예수께서는 그 소년이 가져온 것에서 기적의 소재를 찾아내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소년이 그 떡과 물고기를 예수께 드리기를 거절하고 숨겼다면 오병이어의 신비한 기적은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주님께 내놓기를 기대하시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가진 것이 좋은 것이든 아주 작은 것이든 가져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는 주님께 우리의 것을 내놓지 않고 그냥 무덤덤하게 살고 있기 때문에 기적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있는 것 그대로를 주님께 바치면 상상할 수 없는 기적으로 보답해 주십니다.

보통 우리는 가진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식도 물질도 건강도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주님께 바쳐질 때 그것이 얼마나 큰 것이 되는지 모릅니다.

미국의 34대 대통령이었던 아이젠하워가 기자클럽에서 연설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린 시절 그는 아버지와 함께 젖소 시장에 젖소 한 마리를 사러 갔습니다. 아버지는 마음에 드는 젖소를 보고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이 젖소의 혈통은 무엇입니까, 유지방 성분은 어떻습니까, 매일 얼마나 젖을 내고 있습니까?”

그 때 주인이 말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잘 모릅니다. 제가 아는 이 젖소는 송아지 시절부터 정직합니다. 지금까지 이 젖소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 나에게 주었습니다. 이 젖소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 당신에게도 줄 것입니다.”

아이젠하워는 기자들에게 “저는 늙은 젖소와 같습니다. 대통령으로서 제가 가진 것을 다 미국 국민들에게 줄 것입니다” 그 때 기자들이 다 일어나서 박수를 쳤습니다.

그 후 그가 대통령일 때 미국이 선교사를 제일 많이 파송했고, 국력이 제일 찬란했고, 모든 장관이 다 크리스챤이었고, 주일이면 모든 가게 문을 닫았고, 전 가족이 다 교회에 와서 예배드렸고, 각급 학교가 성경을 가르치고 기도로 수업을 시작하고 기도로 수업을 끝냈습니다.

아이젠하워가 자신의 것을 다 미국을 위해서 드릴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 내가 가지고 있는 보잘 것 없는 것을 드리면 하나님은 나를 통해 기적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우리의 헌신을 기뻐 받으십니다. 그리고 그 자그마한 헌신을 통해서 위대한 복음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믿음을 가지고 주께 헌신하여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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