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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27. 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성숙한 믿음

관리자 2010-06-27 (일) 11:00 13년전 1328  

성숙한 믿음

 

요한복음 9:29-34

 

미국의 남북전쟁 전후 어니스트라는 소년이 오막살이 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머니로부터 앞산에 있는 ‘큰바위 얼굴’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들었습니다.

어머니로부터 “언젠가 우리 동네에 큰바위 얼굴 같은 사람이 나타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는 큰바위 얼굴 같은 사람이 언제나 나타나려나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그동안 그는 큰 인물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큰 부자도 만났고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장군도 만났고, 언변이 뛰어난 정치가도 만났습니다. 또 천재시인도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큰 바위 얼굴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어니스트는 실망하지 않고 그 동네에 보이는 저 높은 산꼭대기의 큰바위 얼굴을 스승 삼고 자신을 닦아 나갔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어니스트는 자라 고향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가 되어 설교를 하는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어니스트는 하루에도 몇 번씩 큰바위 얼굴을 바라보면서 큰바위 얼굴을 닮아 보려는 큰 마음을 가지고 살면서 이웃을 사랑하며 살고자 애를 썼습니다.

어느 날 이제 벌써 노인이 된 어니스트는 주일 예배에서 설교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본 천재시인이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보시오. 어니스트야말로 큰바위 얼굴과 똑 같습니다.”

이것은 미국의 소설가 호손이 쓴 [큰바위 얼굴]이라는 소설의 내용입니다. 작가 호손은 위대한 인물은 본래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어진 삶에서 주님을 발견하고 그의 뜻대로 살려고 최선을 다할 때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온전하게 닮아가고자 일평생을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믿음의 주요 온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2).

신자들은 세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1) ‘to have'형 즉 소유지향적인 형의 신자들이 있습니다. 언제나 무엇인가 달라는 요구사항이 많은 신자들입니다. 언제나 채워지지 앉아 욕구 불만의 상태에서 사는 신자들입니다.

이러한 유형의 신자들의 ‘무조건 주시옵소서’ 하는 기도 소리로 교회가 시끄럽습니다. 그러기에 한국교회는 신자들은 많은데 사회에서 빛과 소금이 되지 않습니다.

2) ‘to do'형, 즉 행위지향적인 형의 신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신자들은 무슨 일을 하든 열정적으로 하는 신자들입니다. 이런 신자들은 일은 하지만 자기만 일한다고 투덜거리면서 삽니다.

이러한 유형의 신자들은 그러한 투덜거림으로 인해 오히려 큰 문제를 만들어 교회를 분열시킬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 다툼과 반목과 시기와 질투가 생겨나게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류의 신자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줍니다.

3) 'to be'형, 존재지향적인 형의 신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신자들은 사람은 완벽하게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다른 사람에게 완벽하게 살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저 주님을 닮으려고 겸손하게 처신하고 기도하면서 묵묵히 일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늘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자신을 깊이 반성하고 회개하여 완성을 향하여 전진합니다.

이런 류의 신자들은 말하지만 어니스트 같은 사람들입니다. 이런 류의 신자들은 언제나 자신을 성찰하면서 겸손하게 정진하며 덕을 쌓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께서 나면서부터 맹인이 된 자를 만나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는데 그대로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은 예수가 안식일에 진흙을 이기는 ‘노동’을 통해 맹인을 치료하는 ‘행위’를 했다고 하여 안식일에는 일을 하지 말라는 율법에 어긋났다고 생각하여 예수를 고소하려 하였습니다.

이런 살벌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서 병 고침을 받은 맹인이 예수를 어떻게든 옹호하면 유대교에서 출교 처분을 받을 텐데 예수를 보는 안목이 변하여 담대하게 예수를 메시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이 맹인의 신앙의 발전을 단계별로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의 깊은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1. 맹인은 우선 예수를 대단한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나면서부터 맹인이었던 자가 눈을 뜨고 다니자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요9:10).

바리새인들이 눈이 떠진 까닭을 묻자 그 맹인은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요9:11)고 했습니다.

맹인은 나면서부터 전혀 보지 못하였는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완전히 눈을 뜬 것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놀라운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제발 눈 좀 뜨게 해 달라고 예수께 간절히 애원하지도 않았는데 주님께서 불쌍히 보시고 고쳐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 같은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예수가 하신 것과 같은 기적을 만들어 낸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런 까닭에 그는 예수를 두고 무엇보다도 먼저 인간 중에 이러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상 우리들은 예수의 인간성에 마음을 사로잡히는 때가 있습니다. 세상의 영웅들이 한자리에 모인다고 하면 예수는 반드시 거기에 끼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생애를 노래한 시가 있다면 예수의 생애도 반드시 거기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또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문학이 수집된다면 예수의 비유도 반드시 거기에 포함될 것입니다.

세익스피어는 [줄리어스 시저]라는 희곡을 썼습니다. 숙적인 폼피의 군대를 격파하고 로마에 개선한 시저는 국민들로 부터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습니다.

이를 시샘한 캐시어스는 동지를 규합하여 그를 타도할 세력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국민들에게 신망이 있는 브루터스를 설득하기로 하였다.

캐시어스는 시저의 국왕 추대를 저지하기 위하여 그를 암살하기로 브루터스와 결의하고 다음 날 시저가 의회 입구에 이르렀을 때 음모파는 그를 포위하고 칼로 찔렀습니다.

브루터스는 군중들에게 암살의 이유를 설명하자 군중들은 그를 로마의 민주주의를 구한 영웅이라고 칭찬했습니다. 거기에 안토니오가 나타나 다시 군중들에게 은인이자 인격자인 시저를 죽인 브루터스 일파를 쳐부셔야 한다고 선동했습니다.

결국 브루터스는 로마에서 도망쳤고, 안토니오는 옥티비엇, 레피더스와 삼두 정치를 결성하고 브루터스 일당을 토벌하기 위해 군대를 일으켰습니다.

필리바이에서 결전을 벌이지만 캐시어스와 브루터스 일당이 패하고 캐시어스는 부하를 시켜 시저를 찌른 칼로 자기를 찌르게 하고 죽습니다. 브루터스도 부하에게 칼을 쥐게 하고 스스로 그 칼에 찔리며 “시저여, 편히 쉬라”고 하며 숨졌습니다.

줄리우스 시저는 위대한 장군이자 정치가였습니다. 이 시저가 더 오래 살았다면 로마는 더욱 발전하여 국민들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 시저에 대해 세익스피어는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그의 생애는 관대하였으며, 그의 뛰어난 기질의 융합은 대자연으로도 서게 했도다. 이 사람이 바로 인간 지도자라고 온 세계를 향해 외쳐야 할 자이로다”

그러나 이 줄리어스 시저보다 예수는 더 위대합니다. 예수처럼 위대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의 교훈과 비유는 온 세상 사람에게 평화와 행복을 줍니다. 이 예수 같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들도 그런 위대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장기려 박사의 비문에는 “주님을 섬기다 간 사람”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장 박사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의 벗임을 자처하면서 기독교 신앙에 기초한 철저한 희생과 봉사의 삶을 산 이 땅의 작은 예수로 칭송받던 사람입니다.

우리도 이런 분처럼 신앙을 기초로 해서 우리의 이웃을 섬기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믿음에 기초해 이웃을 섬길 때 우리는 예수를 조금씩 닮아가는 것입니다.

 

2. 맹인은 그 다음 예수를 선지자로 알았습니다.

 

맹인이 고침을 받고 처음에는 예수를 위대한 한 인간으로 보았으나, 바리새인들이 예수에 대해 그의 의견을 재차 물었더니 ‘선지자’(17절)라고 답하였습니다.

선지자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입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암3:7)고 말했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아주 가까이 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선지자란 감추어진 하나님의 계획을 투시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있는 사람이 선지자라면 가장 위대한 선지자는 누구입니까? 이사야입니까? 예레미야입니까? 에스겔입니까? 아모스입니까?

답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위대한 선지자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바로 성부 하나님과 동격인 성자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성부 하나님 스스로 자신을 낮추셔서 우리 인간을 사랑하사 성육신 하셨기에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당신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위대한 선지자입니다.

삼위일체 신앙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에 온 사람들 중에서 예수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안 선지자는 없었고, 하나님의 뜻에 맞게 실천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는 예수가 그 본질상 하나님이시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를 ‘선지자’라고 고백한 것은 맞는 표현이었습니다. 만일 예수의 가르침을 올바로 실천하면 개인 간의 민족이나 국가 간의 여러 가지 문제가 다 해결 될 것입니다. 예수는 지혜의 근본입니다.

맹인이었던 자가 예수를 높여서 말하면 유대교 공동체에서 축출 될 텐데 그는 담대하게 예수를 선지자라고 말했습니다. 대단한 고백이었습니다. 위험을 무릎 쓴 용감한 고백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말’로 예수를 증거하는 담대함이 있었습니다.

맹인의 말과는 달리 우리들의 말은 세상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때가 많습니다. 우리나라의 어떤 고위 공직자는 말에 실수가 많아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성경은 “말에 실수가 없으면 온전한 사람이요”(약3:2)라고 했습니다. 또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잠10:19)고 했고, “의인의 입술은 여러 사람을 교육하나 미련한 자는 지식이 없어 죽느니라”(잠10:21)고 했습니다.

그럼 어떻게 말을 해야 많은 사람들에 유익을 끼쳐 생명을 살릴 수 있겠습니까? 지혜롭게 말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우선, 무슨 말이든 생각하고 해야 하고, 둘째 덕을 세우는 말을 해야 하고, 셋째 부드러운 말을 해야 하고, 마지막으로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말하는 사람에도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하나는 과거를 말하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미래를 말하는 사람입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 요셉은 과거를 말하지 않고 자주 미래에 관해 말했습니다.

자주 과거를 들추면 안 됩니다. 우리 주님은 살리는 말을 하셨습니다. 건설적인 말을 하셨습니다. 좌절했던 사람이 일어나며 상처 받은 사람이 회복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살아야겠습니다.

 

3. 맹인은 최종적으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를 처음에는 위대한 사람으로 다음에는 선지자로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당시 최고의 권위와 권력을 가진 바리새인들 앞에서 예수를 위대한 사람이나 선지자라고 말한 것도 어려운 일이었는데,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곧 메시야라고 고백한 것은 그의 신앙의 성숙을 말한 것입니다.

한번은 나폴레옹이 많은 지성인들이 모여 예수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는 자리에 참여했습니다. 그들은 철학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거의 다 예수가 메시야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예수를 위대한 인물이라는 점에서는 동의했으나 예수가 위대한 인물 그 이상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인 메시야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때 나폴레옹이 말했습니다. “나는 인간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말하거니와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존재 이상이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 다만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면 나는 말하노라 온 인류 가운데 나는 그 만을 따를 것이고 언제나 그 사람을 따라 가겠노라고.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면 나는 맹세하노라 천국이나 지옥이라도 그분을 따르겠노라고 땅이나 바다나 공중이라도“

그렇습니다. 예수를 알면 알수록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즉 메시야로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부 ‘시몬’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수를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함으로 이름이 ‘베드로’로 변화되어 교회의 기초가 되었고 천국 열쇠까지 받는 엄청난 특전을 얻었습니다. 시몬이 이 고백을 했을 때 예수께서 너무나 기뻐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를 메시야로 고백하는 사람에 이르러야 합니다. 여기에 이르게 되면 생명을 내걸고 주님의 일에 나서게 됩니다. 예수를 나의 메시야라고 고백하지 않고서 목숨을 걸고 결코 주님을 증거할 수 없습니다.

네덜란드의 유명한 화가 렘브란트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젊은 시절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방황하던 중 극적으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곧 재기하여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등의 명작을 남겼습니다.

그의 친구들이 종종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자네처럼 좋은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가?” 그럴 때마다 렘브란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묻기 전에 일단 붓을 들고 그리기 시작하게.”

그렇습니다. 어떤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 우리는 너무 망설이며 쭈뼛거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신중하게 탐색하며 준비하는 일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진취성이나 실천력이 다소 부족해 보이는 사람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행동’입니다.

오랫동안 고민하며 망설이다가 결국 시작조차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지 않습니까? 교회의 사명인 전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전도에 대한 명령에 우리는 얼마나 순종하고 있습니까?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이 말씀을 실천할 생각은 접어두고 이 말씀의 신학적 의미가 어떻고 배경이 어쩌고 하는 말잔치에 빠져 있지나 않은지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이미 운전면허를 딴 사람은 실제로 차를 전진시켜 보아야 합니다. 단지 이론서만 복습하면서 시간을 보낸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는 이미 ‘전도면허증’이 주어졌습니다.

‘Just do it!’ 어떤 스포츠용품 광고에 나오는 문구입니다. 전도, 그것 역시 지금 바로 시작하면 됩니다. 해보면 방법이 생기고 그 맛을 깨달아가게 됩니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넋 놓고 앉아 있는 시간은 휴식이 될 수 없습니다. 해야 할 일을 하고서 잠깐 쉬는 시간이 휴식이며 재충전의 기회입니다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바로 성령의 능력에 의지해 당장 전도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맹인은 자신이 눈을 뜨게 되는 기적을 경험하고 예수를 처음에는 위대한 사람으로, 그 다음에는 선지자로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였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삶을 되돌아 보고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고 예수의 은혜를 널리 전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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