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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01. 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세상을 비추는 빛

관리자 2010-08-01 (일) 11:00 13년전 1325  

세상을 비추는 빛

 

요한복음 10:16

 

세계에서 부자로 유명한 록펠러(Rockefeller)는 33세가 되었을 때 최초로 자기 인생에서 100만 불의 순수한 이익을 얻는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43세에는 미국에서 가장 커다란 회사를 소유했고 53세에는 억만 장자가 되어 세계 최대의 부호(富豪)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53세까지 행복한 사람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에게는 알로피셔(alopecia)라는 탈모증 비슷한 병이 있었는데 머리카락과 눈썹이 빠지고 몸이 초췌하게 말라 가는 병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의사로부터 결정적인 소식을 듣습니다. “이런 상태로 1년을 견딜 수 있을까 싶습니다.” 그 선언을 들은 그날 밤 그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괴로워했습니다.

그 당시 사업은 너무나도 잘돼서 하루에 100만 불을 벌었지만, 그는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는 괴로운 인생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는 순간 이 많은 재산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허무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밤새 괴로워하다가 한 순간 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서 “돈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 되신다”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침대 곁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와 함께 새벽을 맞이한 록펠러의 인생은 그 다음부터 달라졌습니다. 피상적으로 교회에 나갔던 모습은 사라지고 성실하게 교회에 출석하며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지난 후 교회 하나를 지었습니다. 그 교회가 바로 뉴욕에 있는 유명한 리버사이드 교회입니다.

그리고 그는 록펠러 재단을 만들어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의료사업을 위해서 자기 모든 재산을 쏟아 부었습니다. 이러한 결단을 내린 직후 이상하게도 그는 잘 먹기 시작했고 잠도 잘 자게 되었습니다. 의사들은 그가 거의 55세를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지만 이 록펠러는 98세까지 살았습니다.

그가 이러한 삶을 살아가게 된 것은 세상의 빛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꾼 또 한명의 위대한 인물이 있는데, 그는 바로 알버트 슈바이쳐입니다.

알버트 슈바이쳐 박사는 아프리카 선교사로 위대한 족적을 남겨 20세기 위대한 성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철학박사요 신학박사요 음악박사요 의학박사였지만 아프리카 밀림지대에 가서 흑인들의 상처를 싸매주고 수술을 해 주고 흑인과 함께 살면서 일생을 흑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었습니다.

독일의 유명한 대학들로부터 교수직을 제의 받았지만 그는 그것을 거절하고 아프리카로 떠났습니다.

그가 한번은 어떤 공원을 지나갈 때 거기에 흑인 동상이 있었습니다. 그는 과거 100여년 동안 백인들이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에게 지은 죄악이 생각났습니다.

백인들은 흑인들을 무식하다고 잡아다가 팔아 돈을 벌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현지에 가서 흑인들을 학대했습니다. 마치 짐승처럼 대우했습니다.

그는 “내가 어떻게 하면 과거 100여년 동안 백인들이 아프리카에 가서 흑인들에게 지은 죄를 만분의 일이라도 보상할 수 있을까?” 생각하였고, 결국 백인들이 저지른 죄악을 갚기 위해서 아프리카로 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의 어두움을 비쳐 생명의 삶을 주는 빛이 되십니다. 이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살기보다는 어두움의 세력에 잡혀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땅에는 많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 각자도 세상의 어두움을 비출 빛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그저 살아가는데 급급하여 자신의 참된 본질이 빛이라는 것을 놓치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이 땅에 교회의 철탑이 그렇게 많은데도 세상은 아름답게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말씀에 비추어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알아보고 모두가 다 세상의 빛으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1.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특권적 선민의식을 가진 민족이었습니다. 자신들은 하나님이 택한 민족이며 이스라엘 민족 외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민족은 기껏해야 그들의 노예가 되게끔 정해져 있으며 나쁘게 말하면 하나님의 뜻에 따라 말살 당한 운명에 처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구약 성경의 사상이었고 신약성경에도 그런 언급이 나와 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파견할 때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로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마10:5-6)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실 때 한 가나안 여인이 예수의 도움을 요청했을 때 예수께서는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마15:24)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예수의 본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예수의 선교 활동 초기의 말씀이었습니다. 초기 선교 활동에서 예수께서는 당신의 뜻을 다 밝히지 않고 먼저 자신의 민족에게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러나 선교 활동 후반부에서 예수께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보증이 되지 못한다고 단정하셨습니다(요8:30).

또 백부장의 믿음을 보고는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했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8:10). 또 예수께서는 최후로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 28:19)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셔서 이방의 빛으로 삼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특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놀라운 특권을 잘 감당했어야 합니다. 그 특권을 배타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감사한 마음으로 이방을 비추는 빛이 되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변화를 두려워하였기 때문입니다.

1960년대에는 스위스가 세계 시계 시장의 90% 가까이 지배했으나 20년이 지난 후부터, 스위스는 시계 시장의 8%만을 점유하고 있을 뿐입니다. 두 명의 스위스 시계 기술자가 세계 최초로 디지털 시계를 발명해 냈지만 신기술은 스위스에서 전혀 관심을 끌지 못했고 그 신기술이 미국의 인스트루먼트 사와 일본의 세이코 사에 팔려 버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바뀌었습니다. 컴퓨터의 성능은 18개월마다 두 배로 상승한다고 합니다. 미국이나 영국의 경우 평균 직장 근무 연수는 약 6년 정도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앨빈 토플러는 이제 지구촌은 강자와 약자 대신 빠른 자와 느린 자로 구분될 것이고 빠른 자는 승리하고 느린 자는 패배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빌 게이츠는 최근에 내놓은 책 생각의 속도에서 다가올 10년의 변화가 지난 50년의 변화속도를 압도할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변화에는 세 가지 반응이 있습니다. 변화를 두려워하며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고, 변화를 수용하며 적극적으로 변화를 이끌어 가는 사람이 있으며, 변화에 무반응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토인비는 변화를 거부하면 결국 자기만족, 자기도취, 자아 우상화에 빠져 망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유대인들도 선민사상에 사로잡혀 변화를 거부하였을 뿐 아니라, 기독교라는 새로운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고 탄압함으로써 결국 수난의 민족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일본과 중국이 기독교와 함께 서양 문명을 받아들여 변화를 꾀할 때, 당시 성리학에 바탕을 둔 조선의 양반세력들은 평등사상에 바탕을 둔 기독교 정신에 위기의식을 느껴 변화를 거부하고 천주교인들을 '사학죄인'으로 몰아 1만여 명이나 죽이고 쇄국정책을 펼쳐 서양학문이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였습니다. 조선은 일본에 의해 끝나고 말았습니다. 헬라제국이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로마제국에 정복된 것은 변화를 수용하지 못해서라고 합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로 성육신하심에 따라 구원의 패러다임이 변화되었습니다. 이제 구원은 율법과 할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전적으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에 근거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에 기인합니다. 우리는 이 변화를 받아들여 잘못된 선민의식에서 벗어나 진정한 복음에 거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은 백성들입니다. 예수의 십자가의 은혜로 영원하게 사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 놀라운 축복을 우리는 잘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었다고 해서 교만하여 우쭐댈 것이 아니라 더욱 겸손하게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이 주신 그 은혜에 보답해야 할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섬기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은 로마의 총독이 아니라 유대인들이었고 바울을 비롯해서 사도들의 선교 활동을 방해한 사람들도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예수와 사도들을 방해한 것은 율법과 할례만을 구원의 증표로 생각하는 유대주의 때문이었습니다. 실상 하나님이 유대인들을 선택하신 것은 그들이 이방의 빛이 되게 하려고 하신 것입니다(사42:6, 49:6, 56:8).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예수를 통해서 온 세상을 구원하신 것처럼 유대인을 선택하신 것도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특권의식만을 내세웠지 이방민족에게 빛이 되는 것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세상의 어두움을 더하게 할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성육신으로 인해 발생한 구원의 패러다임의 변화를 받아들이기를 주저하였습니다. 그들은 변화를 두려워하였습니다. 그 변화로 인해 자신들의 기득권이 흔들릴 것을 염려하였습니다.

기독신자들인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오로지 믿음으로 세상에서 구원 받았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은혜로 인해 값없이 주어진 구원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자기 의를 드러내는 데에 사용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자신이 아니라 이웃을 섬기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한국 교회가 우리나라에 선교된 지 130여년이 되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크게 성장하였는데 사회로부터 존경받지 못하는 것을 보고 ‘교회개혁’이라는 말을 하는 것 같습니다.

교회 개혁은 초대교회의 모습 즉, 교회의 원형을 찾자는 것입니다. 물론 한국교회 선교 초기로 돌아가자는 말도 되지만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말일 것입니다.

로마 황제에 의해 로마의 국교로 공인되기 전의 교회는 핍박으로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수많은 순교자를 냈습니다. 순교를 앞 둔 성도들이 서로 섬기며 돕고 기도하며 주님을 위해 자신의 피를 바쳤습니다. 우리는 그때처럼 우리의 헌신을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감리교 창시자 요한 웨슬레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Holy Club을 조직해 신앙에 열심이었습니다. 매주 금요일 친구들과 함께 모여 기도하고 성경 공부하고 감옥이나 노동자 합숙소에 들어가서 고생하는 이들을 방문하여 위로하였고 빈민가에 들어가 그들을 식량과 의복을 주며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이러한 Holy Club 운동이 곧 영국을 변화시켰습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구원’은 구원받지 못한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신들을 구별하라고 값없이 베푼 것이 아닙니다.

그 구원은 구원받지 못한 다른 사람들을 섬기라고, 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세상의 빛 되신 그리스도를 본 받아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게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인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게 해야 합니다.

 

에가톤 영(Egarton Young)은 인디언에게 최초로 전도한 선교사였습니다. 그의 복음을 듣고 인디언 족장이 놀라 “당신이 말하는 그 아버지가 우리의 아버지라는 말이죠?”라고 반문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스스로 낮아지셔서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로 성육신한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이면서 당신의 아버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형제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한 형제입니다. 우리가 한 형제가 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 동안 남북관계에서 많은 물질적 도움을 주어서 그런대로 평화의 관계가 이루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MB 정부가 들어서서 상호주의를 내세우면서 남북관계가 거의 단절되어 금강산 여행을 비롯한 남북관계가 거의 중단되고 과거 냉전시대로 되돌려진 상태가 되었고,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대화 단절이라는 큰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또다시 ‘서울 불바다’라는 망언을 입에 올릴 정도로 북한은 위기에 몰려 있습니다.

우리는 북한을 도저히 마음에 품을 수 없다 하더라도 북한 역시 우리 민족의 한 구성원임을 깨닫고 대화와 타협으로 공동체 의식을 일구어야 합니다.

한 한국인 의사가 평양에 병원을 세우기로 한 후, 한국과 미국에서 ‘사랑의 의료품 나누기 운동’을 열어 건물만 있던 병원 내부를 채워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의사가 그 일을 시작할 당시는 화물을 운송해 주는 배나 항공편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한번 기자재를 나르려면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 의사가 몸을 담고 있던 선교회 회원들이 등에 지고 메고 해서 직접 항공기에 옮겨 싣고 평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북한 측은 그들을 문전박대하기 일쑤였습니다. “이것이 돈으로 얼마치입네까?” “왜 미제를 가지고 오지 한국제를 가지고 왔습네까?” 그들과 신경전을 벌이느라 입술이 부르튼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들을 도와주러 온 사람들한테 이럴 수는 없는 법이었습니다. 그 의사가 하도 기가 막혀 언짢은 표정을 하면 “누가 달라고 했습네까?” 하며 오히려 불평을 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합니까? 무슨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상을 주는 것도 아닌데, 제가 왜 이러고 있습니까?’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치밀어 올랐지만 그때마다 항상 사정하는 것은 그 의사 쪽이었습니다. “이 의약품 받아서 죽어 가는 사람 먼저 살려 주세요. 우선 생명을 살립시다.”

투정하는 그들 옆에서 눈물 흘리고 계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기 때문에 그 의사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누르고 어떻게 해서든 도움을 주고자 하였습니다.

‘내가 이렇게 답답하고 가슴이 아픈데, 예수님은 얼마나 안타까우실까?’ 자신의 손을 비비며 사정하는 것이 ‘그들에게’가 아니고 ‘예수님에게’라고 생각하니 못할 일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빡빡한 북한이라는 형제에게 내 사랑을 받아 달라고 사정하게 된 것, 그를 위해 내가 더 기도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 그것은 어쩌면 뜨거운 기적이었습니다.

본문에 예수께서는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16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안에서 외에 그 어떤 방법도 북한을 포함한 우리 전 민족을 하나가 되게 하기에는 어려울 것입니다. 전 민족을 하나 되게 하기 위해서는 구심점이 필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이 구심점입니다. 전 민족을 사랑과 평화로 하나 되게 만들 최선의 구심점입니다.

영국 연방은 많은 나라의 연합입니다. 그래서 ‘United Kingdom'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영국이 똑같은 정치 형태나 동일한 정권하에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연방을 형성하고 있는 나라는 나름대로 다 독립국가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왕에 대한 충성으로 통일되어 있습니다. 영국이 이렇게 여왕을 중심으로 통일되어 있는 것처럼 한민족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통일되어야 합니다.

전 민족이 복음화되어 우리 주님께 공통적인 충성심을 지니는 것으로 우리 민족은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만이 통일이 가능합니다.

한국 교회도 여러 교단과 교파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교단과 교파가 많더라도 교단과 교파의 차이를 넘어서서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충성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한국 교회는 하나가 될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께 충성하고 순종할수 있도록 기도하고, 남북한이 복음화되도록 온 성도가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 무엇보다 이 땅의 복음화를 위해 힘써서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모든 민족이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세상이 되는 것이 우리의 최종적인 목적입니다. 그 목적을 위해 우리 전 성도가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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