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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30. 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나는 세상의 빛

관리자 2010-05-30 (일) 11:00 13년전 1421  

나는 세상의 빛

요한복음 8:11-20절

독일의 유명한 신학자였던 본회퍼는 “미친 운전사가 차를 몰면서 여러 사람을 죽이려고 달리고 있다. 이것을 보면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저 미친 운전사를 붙잡아 주소서’ ‘애매하게 죽게 될 이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하면 그만인가? 그렇지 않으면 그 미친 운전사를 운전대에서 끌어내려야 하는가?” 물으면서 제 2차 대전으로 전 세계를 전쟁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히틀러를 암살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히틀러 암살 비밀 단체에 가담했고 결국 비밀경찰에 붙잡혀 1945년 4월 9일 불과 39세의 아까운 나이에 처형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죽기 전에 꿈을 꾸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대를 원수 히틀러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엄중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너 히틀러는 그 동안 많은 사람을 괴롭히고 무고한 피를 많이 흘려 강물이 되게 했으니 지옥으로 가서 영원토록 고통을 받아야 하리라”

그러자 히틀러는 하나님께 탄원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이러한 세상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만일 알았다면 그런 죄를 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문제는 누구하나 저에게 이런 것을 알려주지 않았고 또 전도하는 자도 없었습니다”

이 때 본회퍼는 가슴을 치며 “주님 저는 저 영혼을 불쌍히 여겨 전도할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오로지 히틀러를 죽이려고만 했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회개했다고 합니다.

그는 전쟁에 미친 히틀러를 빨리 죽여 없애는 것만이 진정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죽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해 그를 회개 시키는 데 있었습니다.

최근에 미국의 윌런 알렌 박사가 교인들을 상대로 신앙생활을 조사했는데 교인 중의 20%는 매주일 주일예배에 출석하지 않았고, 25%는 거의 기도가 없고, 35%는 가정에서 성경을 읽지 않고, 40%는 정기적인 헌금을 하지 않고, 75%는 교회에서 아무 봉사도 하지 않고, 85%는 한 명도 전도해 보지 않았다는 충격적인 보고서를 내 놓았습니다.

이 놀라운 보고가 우리들에 대한 보고가 아닌가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교회 안에도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이 있고 세상에는 어두움 속에 사는 이들이 그렇게 많은데 우리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고 어둡기 짝이 없는 이 세상 속에서 주님의 복음을 증거하는 빛된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1. 이 세상은 어둡기 짝이 없습니다.

 

작년에 북미주에 갔을 때 과거에 그렇게 왕성했으며 세계에 선교사들을 많이 파송했던 교단이 무너지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왜 그렇게 유명한 교단이 뼈만 앙상한 가지처럼 저렇게 무너지고 있는가 저는 심각한 마음으로 생각해 보았고 그 교단에서 가장 잘 되는 교회의 예배에 참석해 보았습니다만 거의 힘이 빠진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 교회의 담임목사의 설교는 어느 교회보다 논리적이었고 힘이 있었기에 교단이 무너진 이유가 더욱 더 의아했습니다.

교단이 무너진 이유를 좀 더 알아보니 그 교회는 그 어떤 교회보다 인간적이고 그 시대에 맞는 신학적 논리를 가지고 있었으나 몇 년 전부터 동성애자 안수 문제를 공론화 한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동성애자를 동조하는 목사가 신문에 글을 쓴 것을 읽었습니다. “나는 예수의 부활이 영적인 부활로 믿고 예수가 하나님일 수가 없기 때문에 그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일 리가 없다. 또 우리 교회에 동성애자들이 자유스럽게 교인으로 예배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동성애자를 받아들이는 교회가 아닌 교회는 오히려 창피하게 되는 완전히 뒤집어진 교회가 된 것을 보았습니다. 교회가 변질된 것입니다. 완전히 자신의 회사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계신 곳에 우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며 있을 수 없게 됐으니 정말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교회가 타락해도 너무나 무섭게 타락한 것입니다.

구약의 창세기에 보면 이삭의 아들 에서는 사냥을 하여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하루 종일 산과 들을 뛰어 다니며 사냥을 하여 그는 몹시 시장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시장기를 자극하는 향긋한 냄새가 났습니다. 동생 야곱이 팥죽을 쑨 것입니다. 에서가 팥죽을 요구했을 때 야곱은 에서의 장자권을 요구했습니다.

에서는 배가 고파죽겠는데 그깟 장자권이 무어 그리 중요하냐고 팔아버렸습니다. 이로서 에서는 배로 천국을 삼고 부끄러움으로 영광을 삼은 육신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북미주의 그 교단이 과거에 그렇게 찬란한 선교 역사를 가진 교회였는데 그 후손들이 그 믿음의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에 팔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하나님을 삼고 그만 교회가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선교사를 많이 보내는 교회이지만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만을 추구하다간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이 세상은 너무 어둡습니다. 세상의 풍조가 교회에 들어와 오염시키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순결한 복음과 그 복음에 근거한 굳건한 믿음으로 교회를 지켜야 할 것입니다.

 

2. 예수는 세상의 빛입니다.

 

예수께서 초막절에 성전 안의 뜰에 서서 많은 사람을 향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성전 안의 뜰에 헌금함이 있었는데 성전에 오는 사람은 여기에 헌금을 하였습니다.

그곳은 어두웠기 때문에 큰 등불을 켜 놓았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등불을 보시면서 자신이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초막절은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출애굽 당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 불기둥의 원형으로서 예수께서는 자기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어둔 세상에서 우리를 인도할 유일한 빛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교회라고 하더라도 이 예수가 없으면 그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예수께서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12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생명의 빛’은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생명의 원천으로부터 비치는 빛이라는 뜻과 다른 하나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빛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사람들을 비추는 하나님의 빛이시며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빛이십니다.

흡사 화초가 태양 빛을 전해 받지 아니하고는 꽃을 피울 수 없는 것과 같이 우리들의 생명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의 은혜 안에 들어올 때까지는 아름다고 향기로운 꽃과 같은 삶을 살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서 빛으로 나온다고 하셨는데 주님을 따르는 것은 그의 제자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1) 군대에서 부하가 지휘관의 명령에 따르는 것과 같은 생활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에게 제자는 절대 복종하는 관계입니다. 2) 노예가 주인을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3) 현명한 조언자의 판단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4) 시민으로서 국가의 법률에 복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5) 교사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육체와 정신과 영혼을 바쳐 주님께 복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떠한 고통이 찾아와도 그 고통을 기쁘게 감당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난을 감당하는 것은 제자도의 ‘필수 사항’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친히 고난당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쫓아가도록 부르심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메흐디 디바즈라는 이란 그리스도인 지도자는 고문을 받고 약 1평방미터 크기의 독방에 감금되어 결국 1993년 12월에 사형 언도를 받았습니다. 모슬렘으로 자라난 그는 기독교로 개종함으로써 ‘배교자’로 낙인이 찍힌 것이었고, 배교에 대한 벌은 사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감옥에서도 “나의 구원자 되신 분을 따르는 것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그를 염려하던 전세계 사람들의 탄원 덕분에 그는 잠시 감옥에서 풀려났지만 모슬렘들은 계속해서 그를 고소했습니다. 결국 그는 1994년 7월에 피살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내려진 가혹한 판결을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는지를 재어보시는 하나님의 시험’으로 생각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랐기 때문에 고난을 당한 사람들은 그 정도에 상관없이 이 모든 것이 영광의 상처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위로를 받았습니다.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나와 함께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눅 22:28-30).

주님에게서만이 빛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고통스러울지라도 그 고통을 감내하면서 주님으로부터 주어질 미래의 영광을 보며 이 빛으로 나아갈 때만이 주님의 참 제자가 되고 영원한 만족이 있습니다.

 

3. 우리는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인간이 이 세상 어두운 데에서 홀로 걸으려고 하면 비틀거리면서 암중모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인생의 여러 가지 문제는 우리들로서는 감당하기 어렵고 자기 힘으로 처리하고자 하나 서툴러서 그릇된 곳에 빠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혼자 걸으면 아무래도 그릇된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확실한 인생의 로드맵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이 땅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확실한 안내자와 정확한 로드맵을 가진 자만이 안정되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임금이 된 다음에 그 먼 산당까지 가서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고 하실 때 ‘지혜’를 구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위대한 임금이 되었습니다.

우리 예수만이 우리의 인생의 로드맵을 가지고 계신 분이기에 우리를 안내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분이 주신 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올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분이 가지신 로드맵을 믿고 그분께 모든 것을 아뢰이면 그분께서는 놀라운 방법으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찬송가 337장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이란 찬송은 엘리사 호프만 (E.A. Hoffman) 목사가 1894년에 작사 및 작곡을 하였습니다.

호프만 목사가 펜실바베니아의 레바논에서 목회하고 있을 때 슬픔과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의 집을 심방한 호프만 목사는 그녀가 낙심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녀는 자기의 사정을 모두 털어 놓은 후 “목사님 어쩌면 좋지요?”라고 물었습니다.

호프만 목사는 “예수님께 모든 슬픔을 맡기십시요”라고 말했습니다. 잠시 동안 생각에 잠겨 있다가 그녀는 눈을 번쩍뜨고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소리쳤습니다.

호프만 목사는 집에 돌아오면서 계속 그녀의 즐거워하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서재에 앉아 호프만은 이 찬송가를 썼으며 얼마 후에 작곡한 것입니다.

1절: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싸인 날 돌아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후렴: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2절: 내 모든 괴롬 닥치는 환란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주께서 친히 날 구해주사 넓으신 사랑 베푸시네

 

3절: 내 짐이 점점 무거워질 때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주께서 친히 날 구해주사 내 대신 짐을 져 주시네

 

4절: 마음의 시험 무서운 죄를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예수는 나의 능력이 되사 세상을 이길 힘 주시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이야말로 인생을 안전하게 걸어가고 나중에는 영광으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비추는 빛의 발광체입니다.

우리 인생은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어둔 죄악에서 스스로 빠져 나올 수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빠져 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은혜를 받고 주님의 빛을 받아 반사하여 주님의 빛을 이 세상에 비추어야 합니다. 테레사 수녀나 장기려 박사 같은 성자들은 예수에게서 받은 빛으로 어둔 세상을 비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20세기초, 일본에서 갓 안수를 받은 나가노라는 젊은 목사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의 일본은, 지금도 그렇지만 기독교인이 거의 없었으므로, 그는 어느 곳에 가서 교회를 개척할 것인가 일본 지도를 펴놓고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면서 동서남북 100킬로미터 이내에 단 한명의 교인도 없는 곳을 찾고 보니 북쪽 '가나사와'라는 지역 이었습니다. 이 젊은 목사는 곧 그 지역으로 가서, 천막을 치고 개척교회를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아내와 아이 둘을 놓고 창립예배를 드렸습니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났는데 교인이 오지 않았습니다. 6개월이 지났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기도할 때에는 열심히 “믿습니다”라고 하지만 6개월 동안 교인이 오지 않으면 “하나님 뜻이 아니구나”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그러나 나가노 목사는 그 자리를 옮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곳에 보내 주신 줄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 자리를 무려 5년을 지켰습니다.

5년이 지난 어느 수요일 저녁에 천막의 커튼을 젖히고 첫 번째 교인이 들어왔습니다. 청년이었습니다. 나가노 목사가 얼마나 감격했겠습니까? 그동안 5년 동안 했던 그 어떤 설교보다도 열정적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가 끝난 뒤에 그 청년을 데리고 식탁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식사 도중에 이 청년이 ‘욱’하더니 피를 쏱았습니다. 그는 폐병환자였습니다. 나가노 목사가 순간적으로 속에서 갈등이 일었습니다. '이런 괘씸한 사람이 있나? 이 사람을 지금 당장 쫒아 버려야 하나, 아니면 내가 이 핏덩이를 쓸어내고 계속 함께 밥을 먹어야 하나?'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주님께서 내게 처음 보내주신 사람인데............ 나가노 목사는 자기 손으로 핏덩이를 치웠습니다. 그리고 음식을 가져다가 청년과 다시 먹었습니다.

그 청년은 일본의 유명 정치인의 사생아였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출신이 그랬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괴로움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복음을 접하게 되어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신학교를 다니는 도중에 폐병환자가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정학을 당했습니다. 다니던 교회에서 파문을 당했습니다.

이 청년이 생각할 때 '성경은 거짓말이구나, 예수도 거짓말이다. 나는 누구에게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 나는 누구에게 나의 치료비를 요구하지 않는다. 나는 누구에게 나의 폐병을 옮길 만큼 경솔한 사람도 아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이라도 폐병 환자인 나를 그리스도인으로 대해 주는 그리스도인을 만나고 싶다.' 그러나 없었습니다.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 청년은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자살 전에 우연히 한 사람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북쪽 가나사와 지방에 가면 나가노라는 목사가 있는데, 거기를 한번 찾아가 보라는 것입니다. 이 청년이 나가노 목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날 저녁에 밥을 먹다가 피를 쏱았습니다. 나가노 목사가 피를 닦아 내고 다시 밥을 차려 왔습니다. 그 순간에 이 청년이 다시 주님을 만났습니다. 주님은 살아 계셨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청년의 폐병이 나았습니다. 그리고 이 청년이 신학교를 졸업한 뒤에, 그 유명한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가 됩니다. 그리고 고베와 도쿄에서 수없이 많은 빈민을 위해 자신의 생을 섬김과 봉사의 삶으로 내어 놓았습니다.

빈민이 가장 고통스러워 하는 것은 변비라고 합니다. 항문에 변이 차돌같이 굳어 있어서 나오지를 않습니다. 그러면 장갑을 끼고 손으로 후벼 냅니다. 가가와 도요히꼬 목사가 그 빈민들의 항문을 손가락으로 후벼 주었지만 되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거지처럼 더러운 빈민의 항문에 자신의 입을 가져다 대고, 차돌같이 굳어 있는 변을 침으로 녹여서 빨아 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일본 기자가 도요히꼬 목사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는가?” 도요히꼬 목사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배운대로 합니다. 제 선생님은 제가 각혈한 핏덩이를 닦아 주셨습니다. 그분이 하신 것에 비하면 이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나가노 목사는 평생에 한 명의 그리스도인밖에 배출하지 못했습니다. 경제 논리로 본다면 실패한 목사입니다.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나가노 목사가 없었더라면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는 없습니다.

가가와 도요히꼬 목사가 빈민들의 항문을 빨아줄 때, 그 심중에는 나가노 목사도 함께 있었던 것입니다. 가가와 도요히꼬 목사가 중국 빈민을 위해 자신의 생애를 바칠 때 그 속에는 나가노 목사도 함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마지막까지 참는 것이고 속아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의 사랑을 그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기적의 꽃이 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둔 죄악의 세상입니다. 세상의 빛이 되신 주님을 모셔 들여 우리는 빛의 반사체가 되어 세상을 비추어야 합니다. 가정을 비추고 이웃에게 감동을 주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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