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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5. 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관리자 2010-09-05 (일) 11:00 13년전 1372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요한복음 11:1~6

 

2007년 8월 23일 타임지의 커버 스토리는 ‘마더 테레사의 믿음의 위기’였습니다. 테레사는 1979년 12월 11일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 3달 전 마이클 반델피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믿음의 고뇌를 털어 놓았습니다.

그녀의 고뇌는 [마더 테레사, 나의 빛이 되리라]라는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여기서 테레사는 정직하게 자신의 믿음의 회의를 털어 놓았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특별히 사랑하고 계신 듯 합니다. 하지만 내게는 침묵과 공허가 너무 커서 그분을 보려 해도 보지 못하고 있으며, 들으려 해도 듣지 못하고 있으며, 기도의 혀를 움직이고자 해도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발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신학자들은 이런 상태을 ‘하나님의 부재(absence of God)의 상태’ 또는 ‘영혼의 어둔 밤’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상태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습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도 이런 어둔 밤을 지나게 됩니다.

새신자에게는 이런 회의의 시간이 있는 것이 물론 당연하겠지만 오래된 신자에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회의가 파괴적일 수 있지만 모든 회의가 그렇게 파괴적이거나 부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직한 믿음의 회의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구약의 하바국 선지자는 정직하게 회의하여 믿음의 깊은 비밀을 깨달았습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고민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왜 의인이 고생하며, 악인은 도리어 번성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범죄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뜻이며(합1:5-11), 임시적인 현상이라고 하셨습니다(합2:5-11).

둘째는 의인이 범죄할 때 징계하시되 왜 보다 더 악한 자를 통해 하시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이런 역설적 현상 때 의인은 진정한 믿음으로 산다고 하셨습니다(합2:2-20).

 

하박국 선지자의 회의는 모든 진지한 성도들이 한번쯤은 가질 수 있는 문제로 신앙 생활의 현장에 빛을 주었습니다.

더구나 두번째 질문에 대한 답인 하바국 2장 4절, 즉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무려 세 번씩이나 신약성경에서(롬 1:17, 갈 3:11, 히 10:38) 인용되었고, 루터의 종교개혁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구약 뿐 아니라 신약에도 믿음에 대해 회의를 하는 인물이 나옵니다. 그 사람은 바로 ‘의심 많은 도마’입니다.

예수의 12제자 중 한 사람인 도마는 예수가 십자가에 죽었는데도 예수가 자신의 눈 앞에 나타나자 그의 특이한 이성으로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습니다.

도마의 이러한 믿음 없는 반응을 예수는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자신의 못자국과 창자국을 만져 보도록 하여 그 회의를 극복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예수는 의심 많은 도마에게도 따뜻한 격려를 보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와 평소에 가깝게 지냈던 베다니 마을 나사로가 병들어 그의 누이들이 예수께 와서 고쳐 달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나사로의 누이들이 보낸 사람들에게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요11:4)고 하셨습니다.

누이들로부터 그 말을 들은 지 나흘째 되는 날에야 겨우 도착한 예수의 모습에 그 두 누이들은 상당히 섭섭하였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영적인 진리를 깨닫고 그 진리를 일상의 삶 가운데 실천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1. 예수께서는 사랑하는 자를 돌보십니다.

 

사람이 가까운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은 정말로 행복한 것입니다. 특히 위로가 되는 가정이 있어 그 가정에만 가면 큰 힘을 얻고, 마음의 평화를 얻으면 참 좋을 것입니다.

제가 유학차 영국에 있을 때 그곳에 토목공학 박사 과정을 하고 있는 이선생 내외가 있었는데, 이 선생 부인이 너무 좋은 분이어서 저는 가끔 그 집에 가서 외로움을 달래곤 했습니다.

언제든지 방문하면 맛있는 식사와 따뜻한 차를 대접하며 선대해 주셨습니다. 이런 가정이 가까이 있다는 것은 행복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신의 머리를 둘 곳도 없다 하셨습니다(눅9:58).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웃에게 이런 평안함을 준다는 것은 너무 행복한 일입니다. 우리의 가정이 이런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이웃을 대할 때 꼭 호화스런 대접이나 환대로 할 필요는 없습니다. 필요한 것은 이해하는 마음입니다.

예수께서도 이렇게 쉴 수 있는 가정이 있었습니다. 그 가정은 마르다와 마리아 그리고 나사로 3남매의 집이었습니다. 이 집은 아마도 부모가 일찍이 세상을 떠나 두 누나가 나사로를 데리고 살고 있었습니다.

큰 부자는 아니었어도 서로 우애하며 사는 집안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수께서 오시면 잘 모셨습니다. 이런 평화와 안식을 주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잘 모시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양평에서 상당히 가면 양동면 고송리라는 곳이 있습니다. 저는 도농교회 담임 목회를 하면서 고송리에 있는 교회의 임시 당회장을 몇 년간 한적이 있습니다.

1년에 두 번씩 세례와 성찬을 베풀러 그 교회를 방문하면 그 교회 김장로님 댁에서 당회장을 모신 전통으로 저도 그 집에 유했습니다. 그 집 장로님 내외분은 산에서 여러 가지 산열매를 준비해서 기다리곤 하였습니니다.

그 집에 제가 가면 장로님 내외분은 모든 정성을 다해서 저를 선대해 주었습니다. 주님을 모시듯이 환대해 주었습니다. 이런 가정을 주님은 사랑하십니다.

주님이 사랑하는 사람은 병들었어도, 실패했어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주님이 그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어려운 일이 왔을 때는 영적 타락과 죄악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처럼 주님을 잘 모셔 주님의 사랑을 받는 가정이 되시길 바랍니다.

 

2. 우리는 예수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자신들의 남동생 나사로가 큰 병이 들어 위험할 때 사람을 보내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요11:3)고 했습니다.

나사로를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줄 알고 누이들이 연락을 했습니다. 예수께서 나사로를 사랑하고 나사로가 예수를 사랑하는 관계였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주님도 하늘 권세를 포기하시기까지 하면서 이 세상에 내려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면 그 고귀한 피를 흘리면서 죽으시기까지 하셨겠습니까? 이런 주님을 우리가 사랑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못된 것이겠습니까?

두 누이들은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자 나사로가 병들어서 죽게 생겨서 예수께 연락한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들도 주님의 사람들이 질병에 신음하고 있을 때에 그를 대신해서 주님께 호소해 주어야 합니다.

주님은 부르짖는 자의 기도를 꼭 응답해 주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어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꼭 들어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때 신앙에 문제가 생기곤 합니다. 꼭 함께 살아야 할 나이에 사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불치의 병을 앓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어설 수 없는 실패를 할 때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선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런 일을 우리로 하여금 당하게 내버려 두시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원망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모든 원망을 주님 앞에서 내려 놓고, 모든 지각 위에 뛰어난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원망할 것이지만, 하나님의 눈으로는 우리를 더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입니다. 기쁨은 물론이거니와 고통까지도 결국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요셉은 고통을 당하는 성도가 어떻게 그 고통을 받아들여야 할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창세기 37장에 보면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모의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때 요셉은 17세였습니다. 고난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기에는 아직 어린 소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의 여러 아들 중에서 특별히 소년 요셉을 택하여 그의 삶을 통해서 하시고자 하는 일들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요셉의 인생에서, 그것도 아직 어린 나이이기에 너무나 가혹한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비전 때문에 형들로부터 조롱을 당합니다. 형들은 그를 요셉이라고 부르지도 않고 ‘꿈꾸는 자’라고 비아냥댑니다.

그는 형들이 잘못을 행하였을 때는 그것을 아버지에게 직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형들이 자신을 싫어하는 줄 알면서도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형들에게 먹을 것을 전하기 위해 머나먼 길을 떠나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마음 때문에 하나님께 쓰임 받는 그릇이 되었지만, 또한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과정에서 고난을 경험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이루셔야 하기 때문에 형들에 의해 죽음의 구덩이에 내던져지는 고난을 요셉으로 하여금 당하게 하시면서도 요셉에게 구원의 손, 즉 피할 길을 주셔서 구덩이에서 꺼내져 애굽으로 팔려가게 하셨습니다.

어린 요셉을 우물에 넣은 형들은 요셉이 여러 날 동안 들판을 헤매며 가져온 그 음식을 먹습니다. 그 시간 요셉은 마른 구덩이 속에서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요? 자신이 당한 불의의 고난을 어떻게 맞이하고 있었을까요? 아마 요셉은 그 고난 속에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당하는 오늘의 모든 실패와 질병과 사별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면 우리가 그것들을 믿음으로 감당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 어떤 경우도 주님께 나아가서 아뢰고 어떤 고난이라도 그 고난이 주님께 영광이 된다면 우리 자신의 희생도 감수하고, 그 고난을 믿음으로 감당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는 신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기 때문입니다.

 

3. 기도의 응답에 너무 조급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마르다와 마리아 그리고 나사로를 사랑하셨습니다. 주님은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때는 베다니 마을을 지나 가셨으며, 지날 때마다 그 가정에 들러 쉬고 가셨습니다. 주님은 그 집안을 각별히 사랑하셨으며 관심과 배려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이렇게 그 집안을 사랑하셨음에도 주님은 그 가정의 기둥인 나사로가 병이 들어 사경을 헤맨다는 말을 듣고서 이틀이나 지체하셨습니다.

물론 주님은 거기에서 말씀을 선포하고, 많은 병자를 고치는 등 할 일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사로가 가까운 사이이고, 그래서 많은 신세를 져 특별히 사랑을 아끼지 않은 가장이었는데 왜 바로 가지 않고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나서 가셨을까요?

그 집안에서는 얼마나 주님을 원망했겠습니까? 죽기 전에 가셨으면 살았을 텐데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나서 가셨으니 그 집에서 얼마나 섭섭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께서는 ‘일부러’ 지체하셨습니다. 무슨 영적인 의도가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잘 되지 않고 지체되는 것은 아직 하나님의 때가 이르지 않았음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시간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그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세상에서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기도하면 대부분 즉각적으로 응답해 주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는 오랜 시간을 기다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아무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께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

어느 마을의 농부들이 하나님께 “하나님, 우리들이 원하는 대로 1년만 날씨를 변화시켜 주십시요” 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좋다. 일 년만 너희들의 소원을 들어 주겠다”고 대답을 하셨습니다.

 

 

 

그 다음부터 농부들이 비를 원하면 비가 내리고 해를 원하면 해가 비취었으며 바람을 원하면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 해 가을에는 농부들이 원하는 것처럼 아주 곡식이 잘되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탈곡을 하려고 보니 알맹이가 하나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도 놀란 농부들은 하나님께 항의를 했습니다. “하나님. 왜 알맹이가 없습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너희들은 비와 바람과 해를 달라고 구했지만 알맹이를 달라고 기도 하지는 않았다” 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제서야 농부들은 하나님께 주문하는 것보다 하나님께 내어 맡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화창한 날도 허락 하시지만 때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게도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느냐고 하나님을 원망하기 보다는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우리는 아무 것도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아도 하나님을 신뢰하여 결코 조급하지 맙시다.

생명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우리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감사함으로 살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만 돌리면 우리의 삶은 성공적인 삶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실하신 주님께서는 자신을 사랑하는 자에게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신자는 이런 신실하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조급해하지 말고 오직 감사함으로 구할 것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때가 되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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