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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03. 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헌신적인 신앙

관리자 2010-10-03 (일) 11:00 13년전 1278  

헌신적인 신앙

 

요한복음 12:3

 

어떤 사람이 신을 만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신을 찾아 깊은 산과 유명한 사찰 그리고 각종 종교의 신전을 두루 찾아 다녔습니다.

그러나 아직 신을 만나지 못하여 인도에서 추앙을 받고 있는 라마누자라는 고승을 찾아 “저는 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애원했습니다.

그 때 라마누자는 “그보다 먼저 하나만 물어보겠습니다. 그대는 누구와 사랑을 주고 받은 일이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때 그 사람은 “저는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 따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신만을 사랑하기를 원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럼 지금까지 어떤 사람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지요?” “네, 저는 종교적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세속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신을 만나는 방법을 제발 가르쳐 주십시오”

“그렇다면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먼저 그대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없다는 것은 그대가 진정한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신을 만나려면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는 만날 수가 없습니다.”

예수를 만나 최고의 칭찬을 받은 여인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베다니 마을에 가셨을 때 예수의 일행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어 준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문둥이였던 시몬이었습니다.

아마도 그 동네 여러 사람이 합하여 하는 잔치였는데, 문둥병에서 고침을 받은 시몬의 집에서 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 집은 얼마 전에 무덤에서 일어난 나사로의 집 부근이었고 아마도 나사로의 친척이었을 것입니다. 이 잔치는 예수를 위한 잔치였습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지극히 비싼 향유 한 근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발에 붓고 머리털을 풀어 예수의 발을 닦아 향유 냄새가 방안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습을 한 번 머리 속에 생각해 보십시오. 별로 아름답지 못한 모습 같습니다. 젊은 여인이 젊은 청년 예수의 발에 값비싼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닦고 있었으니 가룟 유다가 꾸중을 할만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가룟 유다를 책망하고 그 여인이 예수의 장례를 준비한 위대한 행위로 칭찬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 여인의 행위가 예수의 인류 구원 사역에 있어 최고의 헌신이었으니 우리도 이런 헌신적인 신앙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1. 헌신적인 신앙은 주는데 있습니다.

 

예수께서 나사로를 죽은 지 나흘 만에 살려낸 사건이 있은 후 유대인 고관들은 예수의 초자연적인 기적 때문에 그를 추앙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일 음모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될 수 있으면 그를 잡으려고 하는 이들과 만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이 다가오자 예루살렘으로 당당히 올라가셨습니다.

예수께서 유월절 날이 되자 예루살렘으로 올라오셨습니다. 예루살렘에 숙소가 모자라는 편이라 베다니에도 묵는 이들이 있어 예수께서도 베다니에 가셨습니다.

그곳에 이르러 문둥병(한센병)에서 치료를 받은 시몬의 집에 초청을 받고 가셨습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값비싼 나드 한 근을 가지고 들어와 예수의 발에 붓고 머리를 풀어 씻겼습니다.

나드는 히말라야 산맥의 3,000미터 고지에 자생하는 마타리과에 속한 다년초입니다. 히말라야, 부탄, 네팔, 티베트, 인도동부 등이 나드의 원산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드는 인도산의 다른 향료나 약제와 함께 중동지역으로 거래된 역사가 오랜 진귀한 향료였습니다. 향료로 만들 때는, 근경(뿌리줄기)을 파내어서 바로 방향성분을 증류하여, 다른 기름과 섞어서 나드 향유를 만듭니다.

휘발하기 쉬우므로, 옥합(아라파스티제 향료병)에 넣어 밀봉하여, 팔레스타인으로 수출했는데, 사용할 때는 이것을 깨뜨려서 사용해야 했습니다. 그 향이 얼마나 강한지, 향을 깨뜨리면 방에 나드 향이 가득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드 향유는 지금도 인도에서 여자들의 머릿기름의 향유로 쓰이고 있습니다. 고대 유럽에서는 값비싼 향유로 즐겨쓰던 것이, 지금은 향이 너무 짙어서 향료로 쓰이지 않고, 신경 안정제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값비싼 나드 향유로 예수의 발을 씻고 있는 것을 본 가룟 유다는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요12:5)고 마리아를 책망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유다의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값비싼 향유를 발에 부어 없애는 것은 낭비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젊은 여인이 그 기름을 예수의 발에 붓고 머리털로 씻고 있었으니 보기 민망한 행동 같습니다.

제 정신이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닌 것 같습니다. 보기 민망하여 가룟 유다는 마리아를 책망한 것 같습니다. 대낮에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이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은 가룟 유다는 가난한 자들을 생각하여 마리아를 책망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공동생활하는 제자들의 돈궤를 맡은 사람으로 그 돈궤에서 돈을 조금씩 훔쳐가는 도둑이었습니다.

향유를 팔아 삼백 데나리온을 돈궤에 넣어 두면 그중에서 조금 훔쳐 자신이 쓸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그 향유가 아깝기 그지없었습니다. 자신에게 떨어질 그 돈이 아까워서 유다는 마리아를 책망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요12:7)고 하셨습니다.

마리아는 그 많은 돈이 들어가는 향유를 왜 예수께 그렇게 드렸을까요? 그녀는 그것을 돈으로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은혜는 계산할 수 없이 큰 것이기 때문에 얼마 정도를 드리는가 하는 계산을 할 수 없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이 가진 전부를 드렸을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슬픈 일은 주님을 사랑하는데 드릴 것이 없을 때입니다.

오 헨리의 작품에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미국에 젊은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가난했지만 서로 무척 사랑했습니다.

그들은 각기 한가지씩 보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머리를 내리면 마치 드레스를 입은 것 같이 아름다웠습니다.

남편은 부모로부터 가보로 물려 받은 금시계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가문의 자랑이고 재산이었습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전날 밤 선물을 주어야 되는데 서로 가진 것이 없어 아내는 그녀의 보물인 머리카락을 잘라 금시계줄을 사서 집에 들어왔습니다. 남편은 집에 막 들어온 아름다운 머리카락이 잘린 아내의 모습을 한참 동안그저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머리를 빗을 수 있도록 보석으로 수 놓은 예쁜 빗을 선물로 준비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보물인 금시계를 팔아 마련한 보석빗이었습니다.

아내는 머리카락을 팔아 금시계줄을 선물로, 남편은 금시계를 팔아 보석 머리빗을 선물로 마련한 것입니다. 그들은 서로 자신들의 보물을 팔아 서로에게 필요한 선물을 샀던 것입니다.

이제 그 모든 선물이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행복했습니다. 서로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에 진정으로 행복했습니다. 그래서 서로를 꼭 껴안아 주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자신들의 모든 것을 상대방에게 주었습니다. 참다운 사랑과 헌신은 자신의 모든 것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한 주님께 헌신을 하려면 주님께 내 모든 것을 드려야 합니다. 계산 없이 드리는 것입니다. 여기에 주님의 은혜가 넘치는 것입니다.

 

2. 헌신적인 신앙은 겸손함이 있습니다.

 

성경은 “주께서 .....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시23:5)라고 했습니다. 기름은 머리에 바르고 붓는 것입니다. 왕이나 제사장 그리고 선지자를 세우거나 병을 치료할 때는 머리에 기름을 바르거나 붓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의 발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를 기름을 부어 임직하는 것도 아니기에 자신의 행동이 경거망동임을 잘 알았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을 높은 지위를 가진 하나님의 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위대한 인물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이 있었기에 그녀는 예수의 발에 기름을 부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집에 손님이 오면 씻을 물을 내 놓았고 그 물에 발을 씻었습니다. 사막을 샌달을 신고 다니던 때였기 때문에 발에 먼지가 많아 발을 물로 닦도록 했습니다. 보통 주인이 직접 나와서 씻겨 주거나 하인을 시켜 닦아 주도록 했습니다.

마리아는 값비싼 향유 한 근 적어도 300데나리온이나 되는 향유로 예수의 발을 씻겼습니다. 한 데나리온이 장정 하루 품삯이 되기 때문에 300 데나리온이란 장정 일 년 품삯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장정 일년치의 품삯에 해당하는 향유로 물을 대신한 이 여인의 행위는 가장 귀한 것으로 남을 섬기는 겸손함의 극치를 보여 준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섬길 때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의 것을 다 드리되 겸손하게 드려야 합니다.

프리드리히 대제(1712-1786)는 기독교를 냉소적으로 대하는 임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총사령관 본 질랜드(von Zealland)는 충실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어느 날 장군들이 모인 자리에서 왕이 그리스도에 대해서 상스러운 농담을 하여 온 좌중이 웃음 바다가 되었습니다. 그 때 본 질랜드 총사령관이 말했습니다.

“폐하, 저는 전쟁에 38회나 나가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저는 이제 폐하에게 하직 인사를 드리고 폐하보다 더 위대한 분 앞에 나가려고 합니다. 그분은 폐하께서 모욕을 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저는 이제 폐하의 충실한 장군이 아니라 우리 주님을 사랑하는 늙은이로서 폐하께 마지막 경의를 표합니다”

이 말을 들은 프리드리히 대제는 “본 질랜드 장군, 나를 용서하시오. 나를 용서하시오. 나를 용서하시오”하며 본 질랜드 장군의 손을 잡았다고 합니다.

본 질랜드 장군은 주님을 겸손하게 섬기는 헌신으로 프리드리히 대제를 예수께 굴복시켰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 겸손하게 헌신해야 합니다.

 

3. 헌신적인 신앙은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중동에서는 여인들이 머리털을 매지 않고 공중 앞에 나서는 일은 없습니다. 여성은 결혼한 날부터 머리털을 매어 올리는 것입니다.

그 후에는 두 번 다시 머리를 길게 땋아 내린 모습으로 공중 앞에 나서는 일이 없습니다. 머리를 동여매지 않고 공중 앞에 나서는 것은 부도덕한 행위로 취급되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러한 관례는 생각지도 않았습니다. 남녀 두 사람이 진실로 사랑한다면 그들은 단 둘만의 세계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자기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고 그냥 서로 붙잡고 번잡한 거리를 지나갑니다. 사람들이 보는 것을 아랑곳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사랑하는 모습을 보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고 즐거워하기까지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회사에서 자기가 기독교 신자라는 것을 숨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 것도 상관하지 않고 주님과의 관계를 자랑하고 싶어합니다.

마리아는 사람들이 보든 말든 그녀의 모든 것인 향유 한 근을 예수의 발에 붓고 머리털을 풀어 씻겼으니 얼마나 대담한 행동입니까?

주님의 은혜가 크기에 사람들이 비웃든 말든 주님께 우리의 사랑을 다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녀는 가룟 유다의 비난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오직 주님만을 의식했습니다.

마리아가 이렇게 주위의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예수를 헌신적으로 섬길 수 있었던 것은 예수의 사랑을 그 누구보다도 깊이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른 그 무엇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을 우리의 모든 행동의 원천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영국의 선교사인 허드슨 테일러가 중국 대륙의 선교 책임자로 있을 때 그는 가끔 선교를 희망하는 후보자를 면접하였습니다. 한번은 봉사하기로 결심한 한 사람을 만나 “왜 당신은 해외 선교사로 가기를 원합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선교사 후보자는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전세계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에 가기를 원합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또 다른 한 명은 수백만의 사람들이 그리스도 밖에서 타락하고 있기 때문에 선교사로 나가기를 원한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때 허드슨 테일러는 “그 모든 동기들은 좋지만 시험과 시련 그리고 고생, 심지어 죽음의 순간을 당할 때, 그것은 당신을 구하지 못합니다. 단지 한 가지 동기가 당신을 어려운 시험과 시련에서 견디게 해줄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아프리카에 있는 어느 한 선교사가 한번은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을 진실로 좋아해서 하십니까?” 그의 대답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아닙니다. 나와 처는 먼지와 이 고생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초라한, 냄새가 나는 이런 오두막집에서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되겠습니까? 우리는 가라는 명령을 받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만이 진정한 헌신을 하게 만들 것입니다. 마리아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그리스도의 사랑에 매어 그 사랑의 힘으로 주의 역사에 헌신적으로 나서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의 헌신이 아름다워 그 향기가 우리 가정과 직장과 이 사회에 퍼져 하나님의 축복이 풍성하게 넘치는 세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드려 주님의 사랑을 받는 은혜를 누리기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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