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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6. 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하나님의 모습

관리자 2011-11-06 (일) 11:00 12년전 1383  

하나님의 모습

 

로마서 1:18-23절

 

유대인의 랍비 문서 가운데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추방당한 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회개하고 있고, 자신들의 불신앙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동정심이 많은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죄 때문에 너희를 벌하고, 너희가 근심 없이 편히 지내던 에덴 동산에서 너희를 추방하였다.이제 너희는 상상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의 세계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너희에 대한 나의 자비와 사랑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너희가 알기 바란다.

너희는 세상에서 많은 고통을 만나고, 그 때문에 삶이 비참해 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하늘에 있는 보물 가운데 아주 값비싼 진주를 너희에게 준다.

보아라! 그것은 바로 눈물이다. 슬픔이 너희를 억누르고, 너희의 마음이 너무나 아파 참을 수 없고, 또 커다란 고뇌가 영혼을 붙잡을 때 너희의 눈에서 작은 눈물이 나올 것이다. 그 눈물로 인해 너희의 짐이 훨씬 가벼워 질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이 말을 듣고 슬픔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 볼을 타고 내려와 땅에 떨어졌습니다.

가장 먼저 땅을 적신 것이 바로 아담과 하와가 흘린 ‘고뇌’의 눈물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그 고뇌의 눈물을 아주 귀한 유산으로 알고 자녀들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이 때 이래로 인간에게 큰 고통이 닥쳐 그의 마음이 슬프고, 그의 영혼이 두려울 때면 눈물이 흘러내린다고 합니다.

이것은 유대 랍비 문서에 실려 있는 이야기입니다만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에는 어떠한 형편에 인간이 놓여 있다고 하더라도 그 인간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이 나와 있고, 아주 작은 것, 즉 그것이 한 순간에 사라지는 눈물일지라도 그 속에는 하나님의 뜻이 숨어 있다는 것입니다.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그것을 눈여겨 보면 그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세상 만물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는 사람은 참으로 위대한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 속에는 하나님의 모습이 보입니다. 인간, 동물, 식물, 심지어 무생물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19절)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 가운데 하나님의 모습이 보입니다. 여기서 ‘알 만한 것’이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게 하는 것도 눈에 띄지만 대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물을 보면 하나님의 모습을 가리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만물 속에 자신을 분명히 알 수 있도록 하셨기 때문에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만물 가운데 당신의 흔적을 드러내신 하나님을 동물은 알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동물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만이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동물과는 다릅니다. 인간은 다른 동물이 가지지 못한 이성과 양심과 영혼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알도록 인간의 마음 속에 이성과 양심을 주신 것입니다.

인간은 또한 자연 속에서도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세 교부인 터툴리안은 “자연은 선생이요 사람은 학생이다”고 말했습니다. 터툴리안 교부는 선생인 자연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20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만물이 하나님의 도움 없이 그냥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모든 만물에는 그것을 만든 이, 즉 하나님이 있습니다.

만물 가운데 존재하는 다양성, 질서, 아름다움, 조화, 특성, 기능, 그리고 합목적성 등을 보면 그것을 누가 만들었지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만물의 질서는 창조주의 능력과 신성을 충분히 증거하고도 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만물이 하나님을 보여주는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도 않고, 감사하지도 않으며, 교만하여 하나님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혜롭다는 사람들이 우상숭배에 빠지기도 합니다.

원시인들은 하나님의 피조물인 해와 달을, 세상에서 가장 교양을 갖추었다는 애굽인들은 황소를, 지중해의 뛰어난 희랍인들은 이성을, 가장 문명을 자랑하는 로마인들은 황제를 숭배하였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을 대신하는 우상입니다. 세상의 많은 민족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이런 우상을 섬깁니다. 특히 지혜가 뛰어나다는 민족이 우상숭배에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전도 여행 중 바울은 ‘아덴’에서 비방과 조롱을 제일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행17:16-31). 만물 속에 하나님의 모습이 보이는데, 아덴 사람들은 그것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있었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거의 다 자기중심적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자신이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자기중심적일 때 바로 우상숭배에 빠집니다.

인간이 자기중심적인 것도 우상숭배에 빠지지만 보이는 세계만 믿고 보이지 않는 세계는 믿지 않는 것 또한 우상숭배에 빠집니다.

인간은 보이지 않는 세계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가운데 귀한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의 눈에는 공기도 영혼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공기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또한 영혼도 얼마나 중요합니까?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은 얼마나 귀합니까?

사람들은 세상의 보이는 것만 찾다가 결국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보이는 것이 우상이 되어 보이지 않는 세계에 있는 하나님을 그만 놓쳐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만인의 연인이요, 세계의 남성의 우상으로 군림했던 미국의 여배우 마를린 먼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한 여인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졌습니다. 나는 젊고, 아름습니다. 나는 돈도 많고 사랑에 굶주리지도 않았습니다. 매일 수백 통의 펜레터를 받습니다. 누구보다도 건강하고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미래에도 그렇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나는 너무나도 공허하고 불행합니다. 뚜렷한 이유를 찾을 수 없지만 나는 불행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결국 마를린 먼로는 1962년 어느 날 밤 “나의 인생은 파장이요, 문 닫은 해수욕장과 같다”고 써 놓고 자살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인생은 이렇게 허무합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행복의 조건들은 다 가지고 있어도 하나님이 없으면 그 모든 것은 신기루에 불과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없다면 행복 또한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모르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시127:1).

그런데 인간이 죽는다고 해서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죽음 뒤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히브리서가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죽음 후에는 무서운 심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인간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돼지를 도축장으로 몰고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돼지는 아무 저항도 없이 꼬리를 흔들면서 도축장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비결을 물었습니다. “어째서 돼지가 도축장에 즐겁게 들어갑니까?” 그러자 돼지를 모는 사람이 자신의 손을 펴 보였습니다. 그 손바닥에는 콩이 있었습니다.

돼지 모는 사람은 돼지가 가야할 도축장의 길에 콩을 조금씩 떨어뜨리고 앞서가면 돼지는 그 콩을 먹는 맛에 도살장에 제 발로 꼬리를 흔들며 들어간다고 말했습니다.

당장 눈앞에 있는 콩 주워 먹는 맛에 죽음의 길을 즐겁게 걷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렴풋이 하나님의 심판과 지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재물과 권세와 쾌락과 명성이라는 달콤한 콩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콩을 주워 먹는 재미 때문에 지옥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세상이 주는 콩의 유혹이란 너무나 달콤해 지옥을 잊어버리게 만듭니다. 지금 현대인들은 롯의 사위들처럼 심판을 농담으로 받아들입니다.

하늘을 손으로 가린다 해서 하늘이 없어지지 않듯이 심판을 외면한다고 해서 심판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심판은 더뎌 보이지만 반드시 임합니다.

그러나 믿는 자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서 그를 믿는 자는 죄를 용서하고 영원한 구원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예수를 마음 속에 받아드리고 그분과 함께 사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몇 년 전 쉰들러 리스트라는 영화가 상영되어 많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 유대인에 대한 히틀러의 핍박이 계속되는 가운데 오스카 쉰들러라는 한 사업가가 수용소 유대인을 이용해서 그릇 제조 공장을 만들고 엄청난 부를 축적했습니다.

돈과 여자만 좋아하던 쉰들러는 마침내 유대인에 대한 히틀러의 만행을 목도하고 생명의 귀중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쉰들러는 수용소에서 가스실에 갈 운명인 1천 2백명의 목숨을 구하는데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넣었습니다. 비록 불의하게 번 돈이지만 수많은 유대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나치 간부에게 돈을 주었습니다.

마침내 전쟁이 끝나고 1천 2백명 유대인 생존자들과 헤어지는 자리에서 생존자들은 은혜의 보답으로 자진해서 뽑은 금니로 만든 금반지를 쉰들러에게 선물했습니다.

이 반지를 받아 쥔 쉰들러는 “내가 좀 더 노력했더라면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텐데 ...”라고 말하며 통곡했습니다.

쉰들러에 의해 생명을 건진 쉰들러 리스트의 유대인 후손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쉰들러는 1천 2백명만을 구한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을 살린 것입니다.

이 영화는 한 생명이 얼마나 귀중한 가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게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만 믿으면 영생을 얻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우리는 이 축복을 사람들에게 전하여 예수를 믿게 해야 됩니다.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시간과 물질과 생명을 다 해서 온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

1833년 스웨덴에서 노벨이라는 사람이 태어났습니다. 그는 화학자요 발명가로서 두각을 나타내게 됩니다. 33세에 최초로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여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그 후 3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조간신문에 난 가사를 보고 노벨은 깜짝 놀랐습니다. 기사 내용인즉슨 알프레드 노벨이 죽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프랑스 기자가 동명이인(同名異人)을 잘못 알고 ‘노벨이 죽었다’하니까 그 노벨인 줄 알고 당장 '노벨 사망하다'하고 기사를 실었던 것입니다.

버젓이 살아있는 사람을 죽었다고 한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노벨한테는 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이너마이트의 왕 죽다, 죽음의 사업가, 파괴의 발명가 죽다'라고 되어있는 기사내용이었습니다.

그 기사를 보는 순간 노벨은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내가 살아있기에 망정이지 정말로 죽는다면 이 기사가 사실이 되지 않겠는가, 오늘이라도 내가 죽으면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평가하겠는가' 노벨은 마음속으로 깨닫는 것이 있었습니다.

다이너마이트의 발명으로 모은 전 재산을 이제는 생명을 살리는 일에 쓰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기꺼이 자기 것을 다 내놓고 인류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공헌한 사람에게 그것을 나누어주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제도가 바로 노벨상 제도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이 세상을 떠난다면 사람들은 무엇으로 결론을 맺으며, 어떻게 평가될 것 같습니까? 또 주님은 여러분을 좌측과 우측, 알곡과 쭉정이, 양과 염소 중 어느 쪽으로 분류 심판하실까요?

죽음 후의 문제를 깊게 생각하고 복음을 받아들여 영생을 얻은 다음 그 복음을 널리 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연의 모든 만물이 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다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에 매진해야 할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여 사람의 생명을 건지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 하늘의 상급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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