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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3. 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로마를 향한 비전

관리자 2011-11-13 (일) 11:00 12년전 1346  

로마를 향한 비전

 

로마서 1:1-7절

 

바울은 길리기아 다소 출신으로 예루살렘에서 공부를 하고 기독교를 핍박하는 책임자로 다메섹으로 기독교 신자를 박해하러 가다가 예수를 만나 일평생을 예수를 위해서 살았습니다.

그의 활동 영역은 팔레스타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세계의 수도로 이름나 있고 로마 황제가 거주하는 로마에 가서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그의 비전이었습니다.

정말 대단한 비전입니다. 지금부터 2천년 전, 엄청난 거리에 떨어져 있는 로마에 가서 복음을 증거하여 세계의 수도 로마를 그리스도의 복음의 거점으로 만들겠다는 대단한 비전을 바울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책상 앞에 앉아 골몰해서 이런 비전을 얻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만사도 제쳐 놓고 심산유곡에 있는 수도원에 가서 금식을 하면서 얻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주어진 삶에 매일 매일 최선을 다하던 중에, 즉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자신의 삶을 성실히 살아가는 중에 하나님의 비전을 깨달았습니다.

인생이란 하얀 벽지 위에 하루하루 색종이를 가지고 모자이크 작업을 해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모자이크 작업하는 예술가는 최후에 완성될 모자이크 그림이 어떤 것일지 처음에는 알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 색종이 한 장을 붙일 때에야 알게 됩니다.

하나님 안에서의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 이루시려는 궁극적인 뜻이 무엇인지 도무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서 매일의 색종이를 충실히 붙여 가노라면 어느 날 불현듯 하나님의 뜻이 온전하게 드러납니다.

우리의 나날의 삶은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되는 색종이와 같습니다. 하나하나의 색종이가 모여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어 내듯이 나날의 삶이 모여 아름다운 하나님의 뜻이 증거됩니다.

이번 주부터 우리가 묵상할 말씀은 로마서입니다. 로마서는 바울이 조만간 세계의 수도인 로마와 그 당시 지구 끝이라고 생각했던 서바나(스페인)까지 가서 복음을 증거할 것을 꿈꾸며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전한 복음서입니다.

 

1.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1절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종’은 헬라어로 ‘둘로스’인데 둘로스는 ‘얽매이다’ ‘밧줄로 묶다’에서 유래한 말로서 곧 노예를 가리킵니다.

그 당시 노예란 한낱 주인의 소유물이나 재산으로 취급되었습니다. 결국 이것은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된 자로서 주인된 예수 그리스도에게 완전히 복종할 의무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갈릴리에서 만나자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갈릴리 호수에 가서 한참을 기다렸지만 주님이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배와 그물을 빌려 제자들을 데리고 호수로 물고기를 잡으러 갔지만 밤새도록 그물을 내렸으나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아직 어둠이 깔려 있던 새벽에 예수께서는 육지에서 베드로 일행에게 “고기를 잡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 때 베드로 일행은 ”없소이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때 예수께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요21:6)고 하셔서 제자들이 그대로 순종하니 물고기를 많이 잡아 그물을 들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이 있은 후에야 육지에서 말씀하신 분이 바로 예수이신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께서는 고기잡이에 지친 제자들을 불러 떡과 물고기를 구워 주셨습니다.

그 뒤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물음을 세 번이나 물으시고 ‘내 양을 먹이라’라는 사명을 베드로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요21:18)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에 따라 마침내 베드로는 예수의 종이 되어 주님과 교회를 위하여 로마에서 거꾸로된 십자가형을 받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의 십자가 사형이 집행되기 전 가야바 법정에서 그 집 계집종의 추궁에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년에는 로마의 그 무시무시한 권력 앞에서도 예수를 주라고 고백하고 복음을 전하다가 수없이 많은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십자가 형을 받으면서도 그것을 영광으로 알았습니다.

그의 복음 선교 후반기에 그는 예수의 종이요 노예였습니다. 그 당시 둘로스는 부끄러운 것이었는데, 바울은 그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알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세상의 권력에 절대 복종해야 하는 종이라면 우리의 신세가 한없이 가엾겠지만, 우리는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 종이기에 한없는 자부심을 느낍니다.

주님의 종보다 더 좋은 자리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모세도 자신을 하나님의 종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은 이 세상에서 최고의 지위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자리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따라 충성스럽게 봉사하는 것이 바로 종된 우리들의 최고의 임무입니다.

 

2. 바울은 자신이 사도로 부름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사도라는 말은 헬라어의 ‘아포스톨로스’로 ‘특별한 임무를 받고 보냄을 받은 자’란 의미입니다. 본래 이 말은 헬라어에서 주인의 특명을 받고 항해를 떠나는 사람, 즉 파송된 사람을 말합니다.

결국 사도란 하나님으로부터 복음전파의 임무를 띠고 파송 받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예수의 공생애 시절 예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많은 사람 중 열두 명을 뽑은 뒤 그들에게 능력을 주사 특별히 사도로 세웠습니다.

이들은 예수께서 특별하게 뽑아 세운 사람들입니다. 그 외에도 70인 제자들이 있었지만 이들 12명은 특별히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12 사도에 끼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등장한 것은 예수가 세상을 떠난 다음인 초대교회 시절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활동하실 때 그는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를 믿는 교회를 핍박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원정을 가다가 예수를 만났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그는 아라비아 사막에서 기도생활을 하였고, 거기서 예수의 교훈을 받았기 때문에 스스로 사도라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사도권 주장은 자신의 위신과 체면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의 확실성을 증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는 그의 사도직 임무를 귀히 여겼습니다.

그는 오직 십자가만을 자랑했으며(고전2:2), 심지어는 그 임무를 소홀히 하면 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고전9:16).

그는 그가 받은 사도의 임무를 지키기 위해서는 세상 모든 것을 다 해로 여겼으며(빌3:7), 사도의 사명은 세상에서 제일 고상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는 세상의 어떤 고난과 역경도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는 투옥과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세 번이나 맞았고, 파선하여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고, 배고픔과 추위 속에 사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도의 임무가 너무 크고 급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이 그토록 로마에 가기를 원했던 것도 바로 사도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땅 끝까지 선교하여 사도의 임무를 다하려 하였습니다.

당시의 세계관으로서는 서바나(스페인)가 땅 끝이었는데, 바울은 서바나까지 전도하고자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로마의 교회가 서바나까지 선교할 중간기지로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항상 로마를 마음에 품고, 그렇게나 로마에 가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행19:21; 롬15:23, 28). 그러나 좀처럼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드디어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바울은 체포되었고, 총독의 재판에서 그는 석방보다는 로마 황제에게 재판받기를 요청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는 죄수의 몸이 되어 소원대로 로마에 가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왜! 하필이면 죄수의 몸으로 로마를 방문하는 것입니까? 왜, 하필이면 감옥입니까?

바울이 로마 감옥에 구금된 것은 바울 자신뿐만 아니라 초대 교회에도 커다란 위기였습니다.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갇힘으로 그 위대한 선교여행은 아쉽게도 3차로 끝났습니다.

바울의 선교목표는 원대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선교여행은 안타깝게도 로마의 감옥에서 중단되었습니다. 서바나까지 선교하려고 로마의 방문을 원했건만 오히려 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은 로마의 감옥에서 28장으로 영원히 끝날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렇게 세상은 바울을 감옥 안에 가둠으로써 복음을 가두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고집스럽게 예루살렘으로 갔으며, 재판에서 석방보다는 죄수가 되어 감옥에 들어가서라도 로마에 갔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소동을 겪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날 밤에 그의 곁에 서서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행23:11)고 하셨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행을 감행하고 로마의 감옥으로 간 것은 불필요하고 쓸데없는 고집도 아니었으며 무모하고 현명치 못한 선택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믿음과 순종과 헌신이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전도가 로마의 감옥에서 끝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감옥에 갇힘으로 복음이 진보됐고, 그 곳에서 기록된 성경이 여러 날 후에 서바나뿐만 아니라 온 세계를 점령하였습니다.

세상은 바울을 감옥에 가두어 끝장내려 했지만, 죄수의 몸으로라도 사도의 사명을 감당한 바울은 감옥에서 세상을 복음으로 승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이 자신을 끝장내려고 덤벼들어도, 그래서 끝날 것 같아도, 그저 묵묵히 순종과 헌신으로 믿음을 지켜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쌀이 적당히 뜸이 들어 맛있는 밥이 되고, 포도가 썩을 만큼 썩은 후에 맛있는 술이 되고, 한 알의 씨앗이 계절이 지나 30배, 60배, 100배의 열매가 맺히듯이, 그 믿음의 결과가 적당한 때에 돌아올 것입니다.

 

3. 바울이 받은 임무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사이는 젊은이들의 수난시대인 것 같습니다. 그 어려운 대학을 졸업했는데도 취직하기가 어렵습니다. 88만원 세대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대학을 졸업했는데도 아르바이트나 하는 신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학생들에게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이제 20대이면서도 벌써 세상을 다 산 것처럼 아무 목표도 없습니다. 젊은이다운 도전 정신이 없습니다. 젊은이다운 도전 정신이 없는 청년은 청년이 아닐 것입니다.

80이 넘었는데도 젊은이처럼 사신 분이 있었습니다. CCC를 한국에 창설하신 김준곤 목사님입니다. 이 분은 몇 년 전 84세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언제나 비전의 사람이었습니다.

김목사님의 민족복음화와 세계 선교의 꿈은 어느 젊은이들보다 더 역동적이었습니다. 김목사님은 복음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80이 넘었음에도 젊은 청년처럼 살 수 있었습니다.

복음은 영어로 Good News, 곧 '좋은 소식'입니다. 죄와 사막의 쇠사슬에 얽매어 있는 모든 죄인들을 위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대속의 피를 흘리시고 부활승천하셔서 죄인들에게 구원과 영생을 주셨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기쁜 소식, 즉 복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복음을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예언자를 통해서 미리 예언해 주셨습니다. 이 복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셨습니다.

이 땅에 아직까지 주님처럼 부활한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부활의 첫 열매로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온 세계에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부활로 전 인류는 영원한 소망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온 세상에 전파했습니다. 이 복음 전파를 위해서 그는 온 삶을 드렸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삶은 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복음을 위해서 로마를 통해서 서반아까지 가기를 소원했습니다.

우리의 비전은 무엇입니까? 우리도 예수의 종으로서 부름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우리도 이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은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죄인의 몸으로라도 로마에 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종 된 우리도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어떠한 어려움이라도 달게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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