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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23. 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관리자 2011-10-23 (일) 11:00 12년전 1325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한복음 21:15-19절

 

제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미국의 영웅은 아이젠하워 장군입니다. 후에 그는 대통령 선거에 두 번이나 출마해서 두 차례 다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세계적인 지도자로 쓰임 받게 된 것은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1959년 9월 27일, 소련의 흐루시초프 수상이 미국을 방문하여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정상 회담을 하였습니다.

그 때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흐루시초프 수상에게 오늘은 주일이니 예배드리러 교회에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의 최고 통치권자가 예배를 드리러 갈 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흐루시초프 수상은 그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혼자 예배에 참여하고 한 시간 반 만에 돌아와 회담을 개최했습니다. 그 중요한 정상회담을 하는데, 외국의 정상을 기다리게 하고 예배를 드리고 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일에 대해서 아무도 비난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신앙생활을 다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를 소중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정상회담임에도 불구하고 먼저 교회 예배에 참석한 것입니다. 모든 것의 우선 순위에 바로 하나님을 두는 그의 신앙을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아이젠하워는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했습니다. 그에게 주님보다 더 사랑해야 할 대상은 없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베드로는 주님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모릅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고 자신의 생업을 버리면서까지 예수님을 따랐고 예수님을 위해서 자신의 인생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가야바 집 뜰에서 재판을 받고 있을 때 숯불이 있는 자리에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요18장).

또 갈릴리에서 만나자는 예수의 전언을 듣고 갈릴리에 와서 예수님을 기다리다가 그만 제자 여섯 명을 데리고 고기를 잡으러 배를 타고 나갔다가 밤새도록 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그 때 예수께서 배 오른편에 그물을 내리라는 말씀에 그물을 내려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고기를 잡은 다음에 예수이신 줄 알고 육지로 나왔을 때 예수께서는 이미 숯불에 물고기와 떡을 구워 조반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맛있게 차린 조반을 다 먹자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것도 바로 ‘숯불 곁에서’ 물으셨습니다.

지난 번 예수를 세 번 부인할 때도 ‘숯불 곁에서’였고, 지금도 ‘숯불 곁에서’ 베드로에게 자신을 사랑하는지를 물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물음에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의 물음과 베드로의 대답을 통해서 신앙생활 가운데 무엇이 중요한지를 깨닫고 예수님의 사랑을 믿고 의지하는 가운데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1.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15절)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에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마26:31)고 하셨는데, 베드로가 나서서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마26:23)고 호언장담했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예수께서 자신을 특별히 사랑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제자들 중의 제자, 즉 예수님의 수제자라는 교만과 혈기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호언장담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예수께서 가야바 대제사장 집 뜰에서 재판을 받을 때 문 지키는 계집종 하나가 “당신도 예수의 제자 가운데 하나가 아니냐?”(요18:17)고 베드로를 다그치자 그는 두려웠습니다.

‘나도 스승처럼 잡혀 가는 것은 아닌가?’라는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그래서 그는 강하게 “나는 아니라”고 부인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베드로는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때 닭이 두 번 울었고, 베드로는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는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 나가서 통곡하면서 회개했습니다.

그 뒤 부활하신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에서 그를 만나고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15절)고 물으셨습니다. 이미 세 번이나 당신을 모른다고 부인한 베드로의 폐부를 찌르는 질문이었습니다.

이 때 예수께서는 ‘아가페’의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지난 번 예수의 죽음을 앞둔 자리에서 예수를 부인했던 베드로가 무슨 아가페의 사랑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베드로는 주님 앞에 얼굴을 들 수 없었습니다. 죄송스럽고 부끄러워 자신있게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그렇게 배신은 했지만,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베드로에게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사랑한다고 호언장담했던 자신이 부끄러워 사랑한다고 뻔뻔스럽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15절)고 대답했습니다. 호언장담했던 자신이 부끄러워 주님에 대한 그의 사랑을 간접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주님은 아가페의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느냐는 당신의 물음에 ‘필로스,’ 즉 형제우애와 같은 사랑, 우정적인 사랑 정도 밖으로는 주님을 사랑하지 못했다는 베드로의 그 참혹한 심정을 아십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는 베드로의 대답은 “주님을 세 번이나 배신한 내가 어찌 아가페 사랑을 할 수 있겠습니까?”라는 의미가 있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렇게 자신만만했던 베드로의 기가 꺾였습니다. 주님을 내가 제일 사랑한다고 호언장담했던 베드로가 자신의 사랑은 결국 우정에도 미치지 못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베드로는 여기서 “주님께서 아시나이다”고 대답했는데, ‘아시나이다’라는 말은 초경험적인 직관을 통해서 절대적으로 파악한다는 의미입니다.

베드로는 모든 것을 아시는 부활하신 예수 앞에서 겸손히 굴복했습니다. 아가페의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필로스 사랑 밖에 못한다는 대답을 들었지만 주님은 베드로의 겸손한 그 고백에서 베드로의 진실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겸손을 인정해 주시고 “내 어린 양을 먹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어린 양떼를 위탁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내 어린 양을 먹이라”는 아주 큰 사명을 주셨습니다. ‘어린 양’이란 아주 연약한 상태의 양, 즉 약하고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베드로가 당신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지 않으셨음에도 그에게 큰 사명을 맡기신 것입니다. 믿음이 온전치 못한 베드로에게 그렇게 큰 사명을 맡기신 것은 바로 당신이 베드로와 함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베드로처럼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런 연약한 존재인 우리에게도 주님께서는 “내 양을 먹이라”고 사명을 맡기십니다.

우리 같은 연약한 존재가 어떻게 그런 큰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 곁에 주님이 함께 계십니다. 임마누엘의 주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에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현재 가진 능력이나 자격이 아니라 주님의 대한 믿음입니다. 우리가 가진 능력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우리는 어린 양을 방치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주님의 명령에 따라 그 양을 먹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으니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할 수 있도록 하시니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임마누엘의 신앙으로 주님의 복음을 증거하여 어린 양을 감당하라는 주님의 사명을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2.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16절)

 

주님은 베드로에게 다시 한번 부드럽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처음 질문에 베드로가 겸손하게 대답하는 것을 듣고 주님은 ‘이 사람들보다’라는 말은 뺐습니다.

처음 질문에서 ‘이 사람들보다’라는 말은 ‘맨 앞에 서서 다른 제자들을 인도한다고 생각하는 수제자로서 너는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자격이 있느냐?“는 물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겸손한 대답을 듣고 주님은 베드로가 맨 앞에 설 수 있는 사랑을 가졌다고 생각하시고 그 말씀은 빼신 것 같습니다.

베드로의 두 번째 답변은 처음의 답변과 같았습니다.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였습니다.

주님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주님이 당신의 신적 능력으로 이미 다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를 필레오로 사랑 할뿐 아가페로 사랑한다고는 도저히 대답을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때 예수께서는 “내 양을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첫 번째 위탁과는 달랐습니다. ‘어린 양’이 아니라 그냥 ‘양’을 치라고 하신 것입니다.

교회에 처음 나와 신앙이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모르는 성도들이 바로 ‘어린 양’이지만, 여기서 ‘양’은 신앙이 성장한 성도를 말합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양,’ 즉 신앙이 어느 정도 있는 성도를 치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는 성도들을 믿음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훈련시키라는 것입니다.

이는 바로 ‘제자훈련’을 시키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울은 성도들을 젖과 밥으로 양육하도록 당부했습니다. 젖을 뗀 후에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밥을 먹어야 합니다. 제자훈련은 성도들이 믿음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밥을 먹이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번 총동원 주일을 맞아 어린양들은 젖으로 먹이고, 복음의 진리를 올바로 파악하지 못한 성도들은 밥을 먹일 줄 알아야 합니다.

어린 양들에게 알파는 바로 젖이고, 초신자들에게는 양육반이, 어느 정도 믿음이 성장한 성도들에게는 제자반이 바로 밥입니다. 각자에 맞는 영적인 양식으로 믿음의 정성한 분량에 이르러야 합니다.

이렇게 알파, 양육반, 제자반이 없으면 안 됩니다. 주일 대예배만으로는 성숙한 제자에까지 이를 수 없습니다.

물론 주일 예배는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나 아이가 젖을 떼고 밥을 먹어야 성숙한 어른이 되듯, 믿음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 위해서는 가서 양을 치는 제자훈련에까지 나가야 합니다.

 

3.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17절)

 

주님은 세 번째 베드로에게 물었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은 두 번째까지는 아가페 사랑을 하느냐고 물으셨는데, 마지막 세 번째 질문은 필로스의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주님은 베드로가 아가페 사랑을 쫓아오지 못하자 필로스의 사랑을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낮은 수준으로 내려 오셔서 물으셨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그냥 높은 수준에만 머물러 있지 않으시고 우리들이 있는 낮은 수준으로 내려오셔서 우리의 형편을 돌보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믿음이 부족하여 인생의 비바람이 불어오면 쓰러지고 넘어지는데, 주님은 이런 연약한 우리를 버리시지 않으시고 끝까지 인도해 주십니다. 그런 주님이 지금도 우리를 돌보아 주고 계십니다.

베드로는 주님께서 세 번째로 필로스의 사랑을 하느냐고 물으시자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17절)고 대답했습니다.

여기서 앞에 나오는 ‘아시오매’의 ‘아신다’는 말씀과 뒤에 나오는 ‘아시나이다’의 ‘아신다’의 의미가 다릅니다.

앞의 ‘아신다’는 말씀은 ‘직관적으로 안다’는 뜻이고 뒤의 ‘아시나이다’는 ‘경험적으로 안다’는 것을 말합니다. 뒤의 ‘아시나이다’는 지난 3년 동안 동고동락하면서 경험한 모든 것을 주님이 다 아신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베드로의 고백을 듣고 주님께서는 베드로가 아가페의 사랑을 하지는 못해도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시고 재차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으로 주님은 베드로에게 자신의 양 떼를 ‘완전히’ 위탁하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무조건적으로 따르지 못하더라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서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은 우리를 쓰실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축복하시고 각자의 분량에 맞는 사명을 맡기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의 실패 때문에 베드로를 버리시지 않으셨듯이, 우리가 실패해도 주님은 우리를 버리시지 않으시고 우리가 사명을 잘 감동하도록 도우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실패해도 우리를 품에 안으실 것입니다. 왜 나를 부인하느냐고 묻지도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들이 주님께 불순종하고 내 마음대로 살았다고 하더라도 주님께서 버리지 않으실 것이니 결코 낙심하지 말고 주님의 은총을 사모하고 주님을 향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주님은 그런 우리를 늘 용서하시고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축복해 주십니다. 우리와 늘 함께 동행하시는 주님을 믿고 이번 총동원 주일에 믿음의 역사를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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