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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18. 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무덤 저 너머

관리자 2011-09-18 (일) 11:00 12년전 1327  

무덤 저 너머

 

요한복음 20:11~18

 

아프리카에 가서 평생 동안 선교와 봉사를 하던 슈바이처 박사가 노벨 평화상을 받기 위해서 고국으로 돌아 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축하하면서 물었습니다.

“당신에게 무엇이 필요합니까? 무엇을 지원해 드리면 좋겠습니까?” 어떤 기자는 “박사님, 당신께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무엇이 시급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때 슈바이처 박사는 “하나님입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들도 슈바이처처럼 “그 무엇보다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기도의 핵심은 하나님을 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 제일 먼저 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들은 하나님보다는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먼저 구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없어도 물질만 많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아빠가 퇴근할 때마다 과자를 사가지고 와서 아이에게 주었습니다. 그러자 아빠가 올 시간이 되면 그 아이가 자꾸 밖을 쳐다 보았습니다.

드디어 초인종이 울리고 아빠가 들어왔는데 이번에는 빈손이었습니다. 빈손을 보자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내 과자...”

혹시 우리가 이 아이처럼 주님으로부터 물질의 축복만 구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교통 사고로 아내를 잃고 너무 외로워 자기도 자살을 하면서 이런 유서를 남겼다고 합니다.

 

“당신이 없으니 밥이 밥이 아니요

당신이 없으니 돈이 돈이 아니요

당신이 없으니 세상이 세상이 아니요

당신이 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나는 모르나

당신과 같이 되면 당신을 만날 있으리라 생각하오

그래서 당신을 따라가리이다

당신이 있는 곳이 내게는 천국이요“

 

‘빛이 없어도’라는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나는 없어도 당신이 곁에 계시면 나는 언제나 있습니다.

나는 있어도 당신이 곁에 없으면 나는 언제나 없습니다.

당신이 계시므로 나도 있고

당신의 노래가 머물므로 나는 부를 수 있어요

주여 꽃처럼 향기나는 나의 생활이 아니어도

나는 당신이 좋을 수 밖에 없어요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

 

그렇습니다. 하나님만 계시면 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기독교인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죽어 무덤에 장사된 지 사흘이 되던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무덤을 찾았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이전에 일곱 귀신이 들려 심히 고통을 받았던 여자였습니다.

이 여자는 예수를 만나 깨끗이 치유를 받아 예수의 은혜를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그 몹쓸 병으로 모진 고통을 받고 있었는데, 예수를 만나 고침을 받았으니 그 은혜를 어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녀는 예수를 생명의 은인으로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 모셔 들였습니다. 그녀는 예수에게 그녀의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예수만 따라 다녔습니다.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눅8:2-3).

예수와 제자들의 선교활동에는 많은 재정이 들었습니다. 그 경비를 막달라 마리아와 여러 여자들이 충당한 것입니다. 더욱이 막달라 마리아는 자기의 모든 것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예수의 십자가의 보혈로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었습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그 은혜를 잊고 언제나 내 문제에 매달려 조금치도 발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나의 생명을 다해서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결초보은(結草報恩)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이는 “풀잎을 엮어서 은혜를 갚는다”라는 뜻으로, 죽어서도 은혜를 갚는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춘추시대 진(晋)나라의 위무자에게 애첩이 있었는데, 그녀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위무자가 병이 들어 위독하자 본처의 아들인 위과에게 이렇게 분부했습니다. “내가 죽거든 애첩을 개가시켜라”

그러나 얼마 후 임종할 무렵이 되자, 다시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죽거든 애첩을 나와 함께 묻어 달라”

위무자가 죽자, 위과는 애첩을 개가시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이 위독해지면 마음이 흐트러지는 법입니다. 나는 아버님이 올바른 정신으로 하신 말씀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그 뒤 진(秦)나라 환공이 진(晋)나라를 공격했습니다. 전쟁에 나간 위과는 크게 패하여 적장 두회에게 쫓기게 되었습니다.

한창 도망치고 있는데, 저 멀리 넓은 초원에서 한 노인이 풀을 서로 엮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위과가 그 곳을 지나가자 뒤따라오던 두회는 그만 엮어 놓은 풀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이 때를 틈타서 위과는 말머리를 돌려 재빨리 적장 두회를 사로잡았고 싸움은 승리로 끝났습니다.

그날 밤 위과는 꿈에서 낮의 그 노인을 보았는데, 노인은 공손히 인사하면서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이 개가시킨 여인의 아비되는 사람이오. 당신이 아버지의 첫 유언에 따라 내 딸을 개가시켜 목숨을 구해 주었기 때문에 오늘 풀을 엮어서 은혜를 갚은 것이오.” 이것이 결초보은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결초보은의 마음으로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갚아나가야 할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고 이웃을 사랑하여 주님의 은혜를 죽어서라도 갚아나가야 할 것입니다.

전심전력하여 섬겼던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어 장사지냈으니 마리아로서는 어떻게 마음을 추스를 수가 없었습니다.

장사 지낸지 3일 되던 날 새벽에 무덤에 와 보았더니 이미 예수의 시체는 없어졌습니다. 마리아는 그 허무한 빈 무덤 앞에서 마냥 서럽게 울었습니다.

그녀는 주님을 살해한 자들이 사람을 죽이는 것도 모자라 그 시체마저 빼돌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슬피 울었습니다.

이처럼 실망과 좌절과 절망에 빠진 막달라 마리아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15절)

이것은 부활하신 주님의 첫 음성이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단순히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예수의 시체의 행방을 물었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했던 주님의 음성과 모습을 보고 들었으면서도 주님을 알아보지 못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녀의 슬픔이 너무 커 눈물이 앞을 가리워 주님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많은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닥치는 슬픔으로 눈물이 앞을 가리워 삶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절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배우자를 잃었을 때, 부모님이나 자식을 잃었을 때, 우리는 엄습하는 외로움과 고독, 살을 에이는 아픔 때문에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그런데 하나님 안에서 떠난 사람은 세상의 고뇌로부터 해방되어 하나님의 품 안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것은 인생의 위대한 승리의 자리에 이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 자신 때문에 눈물로 세월을 보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눈물 그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눈물 그 너머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거기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눈물 저 너머에 계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그 어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또 마리아의 눈은 무덤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무덤에서 눈을 떼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의 눈도 차디찬 무덤에 쏠려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무덤에서 눈을 떼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무덤에는 주님이 없습니다. 이미 일어나셨습니다. 예수는 이미 하나님의 영광이 되셨습니다. 그분을 썩은 데서 찾으려고 해서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주님을 무덤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예수를 무덤에 묻었던 로마와 유대의 종교 권력과 유대인들의 왜곡된 신앙에서는 주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데서 우리의 인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진리를 찾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오로지 무덤 같은 곳만 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덤에는 썩은 시체만 있을 뿐입니다. 더러운 냄새만 있을 뿐입니다. 거기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거기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그 당시 예수 없는 유대교는 이미 사람을 구원할 수 없는 종교가 되어 버렸습니다.

예수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유명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길에 가끔 도적이 나타나는데, 한 사람이 그곳을 지나가다가 도적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많이 맞아 거의 죽게 될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을 지나가던 유대교 고위 지도자인 제사장은 그곳이 너무 위험한 곳이기도 하고 자신의 일정이 바쁘기도 해서 그만 강도 만난 자를 지나가 버렸습니다.

또 유대교의 지도자인 레위인도 제사장처럼 그냥 지나쳤습니다. 이것은 유대교는 이미 하나님의 구원의 도구가 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나가던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는 그 상처를 싸매어 주고 부축하여 데리고 가서 주막에 두 데나리온을 주면서 잘 치료해 달라고 부탁까지 했습니다.

여기 사마리아 사람은 유대교의 지도자가 아닌데도 자기의 모든 것을 동원하여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 주었습니다. 주님은 이런 사람을 가리켜 ‘선한 이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의 시대에 이미 유대교는 주님이 떠난 무덤 같은 것이었습니다.

예수는 이미 무덤에서 일어나 떠나셨습니다. 주님은 무덤에서 나오셔서 “마리아야”(16절)라고 부르셨습니다. 그제서야 마리아가 돌이켜 주님을 향하였습니다.

우리도 이제 무덤에서 돌이켜 주님을 향해야 합니다. 주님을 향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선한 사마리아인입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로서다(시121:1-2)“

 

이 말씀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되새겨 보아야 할 시편 구절입니다. 인생의 참된 아름다움은 이 시편 구절처럼 믿음의 주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용기와 결단 속에서 무지개처럼 피어납니다.

우리가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우리의 구주라 담대하게 외칠 때, 또 참 소망이신 그분만을 바라볼 때 우리의 삶 속에 기적과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는 분명하게 주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헬렌 켈러는 비록 맹인이었지만, 하늘보좌 우편에 앉은 주님을 바라볼 때 믿음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또, 스데반 집사는 순교 직전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보좌 우편에 서 있는 예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후5:15)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세례를 받으면 거듭나게 됩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다시 태어난다는 것으로 이전의 삶과는 다른 삶의 목표를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예전에는 우리의 삶의 목표는 세상적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이상과 행복만 추구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롭게 태어난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생의 삶을 추구하는 것이 진정한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새로운 삶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우리의 최종적인 목적지는 세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 어떤 환난에서도 눈물 저 너머에 계시는 주님의 영광을 보고 무덤에서 돌이켜 선한 사마리아 사람같이 이웃에게 사랑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가던 길을 돌이켜 주님을 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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