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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7. 강남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관리자 2011-11-27 (일) 11:00 12년전 1200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로마서 1:16-17절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 8월 발표한 ‘역사교육과정’을 보면 역사교육과정은 불교, 유교는 말할 것도 없고, 천주교, 천도교, 민간신앙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그 시작과 발전에 대해서 서술하도록 명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근대사회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기독교에 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습니다. 현재 기독교는 불교 다음의 종교 인구를 갖고 있으며, 예배당과 성직자 수에 있어서 한국의 모든 종교 가운데서 가장 많습니다.

그런데도 역사교육과정에 있어서 모든 종교 가운데 기독교만 제외되어 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교과부는 역사교육과정에 이어서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을 만든다고 합니다. 이 집필기준에 의해서 필자들은 새롭게 역사교과서를 저술할 것입니다.

그런데 과거에 사용되어졌던 집필기준을 보면 개항 이후의 종교를 서술하는 데 있어서 특정 종교에 편향이 없도록 서술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겉으로는 매우 공정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기독교에 대한 서술을 할 수 없도록 만드는 독소조항이 되어왔습니다.

역사서술은 한 사건이 그 시대에 있어서 갖고 있는 중요성을 고려해서 서술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신라시대,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강조되어야 하고, 조선시대에는 유교가 강조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개항 이후 종교를 서술함에 있어서는 한국에 새로운 사상과 문화를 도입한 기독교를 중요하게 설명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현행 집필기준에는 개항 이후에는 특정종교에 대한 편향이 없도록 서술해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또 여기에 근거해서 역사교과서는 천주교 기독교 천도교 대종교 불교 유교를 모두 똑같이 몇 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기독교는 충분하게 설명되고 있지 않습니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어 왔던 이기백 교수의 [한국사신론]은 개항 이후의 종교 활동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약 3분의 2(37줄 중 24줄)를 기독교에 관해서 설명하고, 그 나머지 분량을 다른 종교에 할애하고 있습니다.

이 교수는 개항 이후 기독교가 정치 사회 문화 교육 의료에 있어서 한국 종교 중 근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진보사학자로 불리는 강만길 교수의 [한국 근대사]에서도 근대 한국의 종교를 전통종교의 변화와 기독교 운동으로 나누어 기독교의 시작과 발전을 중요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불교, 유교가 한국의 전통문화 형성에 기여했다면 기독교는 근대문화 형성에 기여했습니다. 정부는 이것을 인정하고 역사교과서를 바로 서술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불과 몇십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주님을 믿지 않는 역사학자일지라도 기독교가 역사에 미친 영향을 상당히 자세하게 기술했는데, 왜 오늘날은 이렇게 기독교의 위상이 추락되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신앙에 맞는 올바른 행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인 크리소스톰은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불신자들의 기대만큼만 산다면 불신자들은 저절로 없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의 성경을 읽는 대신 기독교인들의 생활을 읽고 있기 때문입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믿음과 생활을 일치시켜야 합니다. 믿음과 생활이 일치되지 않기 때문에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는 것입니다.

몇몇 교회의 일탈행위로 인해 한국 교회 전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러한 사회적인 분위기는 로마교회에 대한 로마 시민들의 일반적인 분위기와 비슷했습니다.

다만 교회가 사회로부터 적대감을 받은 이유는 달랐습니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의 행함이 없는 신앙 때문에 사회로부터 적대감을 받고 있지만 사도 바울 당시 로마교회는 부와 권력을 쥔 사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지 못한 사람들만이 교회에 모였기 때문에 일반 사회로부터 적대감을 받았습니다.

당시 기독교는 유대교처럼 전통이 있고 훌륭한 인물들이 많은 종교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고전1:26)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세상의 부족한 사람들만 모여 있는 로마교회를 당시 로마사회는 철저히 무시했습니다. 교회가 멸시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은 교회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또 혹여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끊임없이 지체가 낮은 교인들과 자신들을 분리시키려고 하였습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났습니다.

한국기독교 역사에서 우리들은 잊지 못할 수많은 선교사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 사무엘 무어라는 선교사가 있습니다. 무어 선교사는 미국에서 사역할 수 있었지만 무디의 부흥회를 통하여 선교사로 헌신하기로 결단하고 한국으로 오게 됩니다.

무어 목사님은 한국에서 마펫 선교사와 함께 많은 성경공부를 지도하고 특별히 그 당시 천민인 백정들에게 복음 전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백정 박성춘은 큰 병에 걸려서 다 죽어가다가 무어 선교사의 도움으로 살아납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인 박서양을 제중원에 있는 선교사 에비슨에게 부탁하여 의사가 되게 합니다. 이 일을 배경으로 만든 드라마가 바로 ‘제중원’입니다.

그리고 박성춘은 사람 취급 받지 못하는 백정들을 위하여 헌신하는 무어 목사님의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아 열심히 복음을 전합니다. 그래서 백정 마을에 복음이 들어오고 그들이 무어 목사님이 시무하는 승동교회에 나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 승동교회는 양반들이 많이 모이는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백정들이 교회 예배에 참석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성도들이 목사님에게 강단 앞에 양반들을 위해 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무어 목사님은 예수의 복음은 차별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같이 예배드리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무어 목사님은 고종 임금님에게 신분철폐와 천민들의 권위를 보장하는 법령을 반포하도록 설득하게 됩니다.

그래서 무어 목사님은 ‘백정 해방 운동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그렇게 무어 목사님은 15년간 열정을 다하여 선교하다가 46세의 젊은 나이에 장티푸스에 걸려 소천하셨습니다.

지금 합정에 있는 양화진 선교사 묘지에 시신이 안장되어 있습니다. 그 묘지에 있는 영문 비문에는 '예수그리스도의 충성된 종, 아름다운 인격과 정신의 소유자, 한국인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을 몸소 실천하셨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 또한 가문과 학문과 권세 모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으나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고는 예수의 종이 되어 복음 앞에서의 평등을 널리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7-29).

하나님은 이렇게 세상적으로 아무 것도 아닌 자들을 선택하여 로마의 권세 있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할 정도로 복음의 역사에 귀하게 쓰십니다. 바로 이런 보잘 것 없는 사람들로 인해 기독교는 세계화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별것 아닌 사람들을 통해서 기독교가 세계화 될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그런 사람들을 통해 역사하시는 복음의 능력 때문입니다. 바로 작은 자를 크게 들어 쓰시는 성령 하나님의 능력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권세로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겸손하게 자신을 주님의 비천한 종으로 여기고 성령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여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물질적인 ‘힘’이 아니라 복음이 가진 능력을 믿었고, 그 복음의 능력을 통해 기독교가 세계화 된 것입니다. 펜이 총보다 강한 것처럼, 복음이 권력보다 강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학식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복음의 능력만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이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복음이었기에 복음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복음을 자신의 최대의 자랑거리로 여겼습니다.

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이 복음의 힘은 로마의 그 엄청난 권력보다 더 컸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힘을 다 합한 것보다 더 큰 능력입니다.

어떻게 복음이 그렇게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그 복음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말씀만으로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복음은 단순한 말이 아닙니다. 단순한 말의 나열이 아닙니다. 그 복음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사람의 골수를 찔러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하여 회개  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은 단순합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피로 우리가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복된 소식’이기에 ‘복음’(福音)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 복음을 받아드리는 사람은 구원을 얻습니다.

여리고의 제사장 삭개오가 구원 받은 사건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세리장으로서 로마 통치하에 있는 유대인들의 고혈을 짜먹는 죄인 중의 죄인으로 사회적인 지탄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미 구원에서 제외된 자이며, 그가 혹시나 구원을 받으려고 해도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뽕나무에 올라가 지나가는 예수를 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나가는 예수가 그를 먼저 보고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눅19:5)고 하셨습니다.

이 때 삭개오는 뽕나무에서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고 자기가 못된 짓을 하여 번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그것의 네 갑절이나 갚겠다고 아주 구체적으로 회개를 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는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눅19:9)고 선언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삭개오에게 구원을 선포하심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셨습니다. 이렇게 주님이 선포하신 복음의 능력은 한 개인만이 아니라 가족, 사회, 국가, 전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영적인 능력이 있는 복음처럼 자랑스러운 것이 어디 있습니까?

복음은 우리 인간이 가진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칩니다. 차별이 있는 곳에 복음이 들어가면 평등한 세상이 열리며, 전쟁이 있는 곳에 복음이 들어가면 평화의 세상이 열립니다.

바울은 이 복음이 로마를 통해 전 세계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로마에 가서 복음을 증거하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의 복음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지 않자 복음의 역사는 중단되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을 통해 이 복음이 이방인에게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이방인들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은 전 세계적으로 퍼졌습니다. 갈릴리를 넘어 로마를 거쳐 전 세계로 구원의 물결이 퍼져 나간 것입니다.

어떠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 한계를 통해 더욱 더 증거되는 복음의 능력을 알았기에 사도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처음 들어왔을 때 그 누가 기독교를 인정했습니까? 처음에는 가난하고 병들고 불쌍한 여인들이나 교회에 나갔습니다. 양반들은 눈여겨 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사이에 가장 강력한 종교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역사입니다. 복음은 이렇게 큰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 복음으로만 우리 가정과 민족이 살 수 있습니다. 이 복음으로만이 민족이 통일될 수 있습니다. 이 복음의 역사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동참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은 개인과 가정과 사회와 국가를 변화시키는 영적인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통로이기에 모든 것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복음을 전하는 주님의 귀한 일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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