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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구호개발연대 창립…"재난 피해자 지원" / 연합뉴스 / 2016.9.31

관리자 2016-11-16 (수) 16:12 7년전 1488  

           회복과 부흥을 꿈꾸는 교회입니다

 

에스겔 37: 1-7                                                   2017.02.05. 박용래 목사

 

선지자, 선견자란? (요엘2:28) (20:7~9)

 

구약에 기름부음 받은 세 직분은, /제사장/선지자였습니다.

그런데 선지자는 왕과 제사장과 달리 독특한 면이 있었는데, 왕과 제사장은 부모로부터 자동 승계가 되었습니다. 부모 잘 만나면, 왕도 되고, 제사장도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는 달랐습니다. 그는, 자기 부모가 선지자라도, 자기가 직접 하나님께선지자로 기름부음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선지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구약에 선지자를 나타내는 히브리어가 2개 있습니다.

나비 <선지자/예언자, >

히브리어로나비라는 말은 <부글부글 끓다, 거품이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선지자란 <끓어오르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선지자(나비)는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 오르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사람을 선지자라 했습니다.

 

예레미야가 선지자로 부름 받았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레미야는, 선지자로 부름을 받아서 하나님 말씀을 대언하면, 사람들에게 환영 받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자기 예상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자기만 병신 되고 말았습니다.

새 번역

20:7~ 주님, 주님께서 나를 속이셨으므로, 내가 주님께 속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나보다 더 강하셔서 나를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들이 날마다 나를 조롱합니다. 20:8~ 내가 입을 열어 말을 할 때마다 '폭력'을 고발하고 '파멸'을 외치니, 주님의 말씀 때문에, 나는 날마다 치욕과 모욕거리가 됩니다.

 

공동번역 (20:7~8)

"야훼여, 저는 어수룩하게도 주님의 꾐에 넘어갔습니다. 주님의 억지에 말려들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웃음거리가 되고 모든 사람에게 놀림감이 되었습니다.

저는 입을 열어 고함을 쳤습니다. 서로 때려잡는 세상이 되었다고 외치며 주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 덕에 날마다 욕을 먹고 조롱받는 몸이 되었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예언만 하지 않으면 남들처럼 편하게 살 수 있었는데,

예언을 하고 나면, 언제나 고난이 뒤따르고, 왕 따를 당했습니다.

그래서 나도 예언 안 하면 그만이지 뭐, 관두라 그래!’그렇게버티기를 해 보았습니다. 그러면 편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자기 속에서 불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것이 분출되지 않으니까, 자기 뼛속으로 불이 타고 들어가서, 자기 뼈를 마르게 하는 것과 같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견디다 못해, “다시 예언하겠습니다.” 그만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심정이 바로 20:9 말씀입니다.

20: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그래서 선지로 말하지 아니하면, 자기가 마음에 불붙는 것 같아서 답답해서 견딜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사람이 바로 선지자입니다.

 

로에 < 히브리어로 로에는 선견자란 뜻 >

삼상 9:9~ (지금 선지자라 하는 자를 옛적에는 선견자라 일컬었더라)

 

선지자를 선견자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선견자란 뜻은 무엇인가를 보는 사람을 말합니다. 남들이 못 보는 것을 보든지, 남보다 앞서 보든지, 뭘 보는 사람을 선견자라 불렀습니다. 선지자, 선견자 적 사명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알고, 깨닫고, 그것을 미리 보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는 에스겔이 하나님이 보여주신 환상을 본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한 골짜기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런데 그 골짜기에는 마른 뼈들만 가득하게 딩굴고 있었습니다. 사방에 마른 뼈들만 딩굴어 아무런 희망이 없는 골짜기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물으셨습니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에스겔이 대답하기를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명하셨습니다. 전하여라.

4~ "너는 이 뼈들에게 대언하여라. 너는 그것들에게 전하여라. '너희 마른 뼈들아, 너희는 나주의 말을 들어라. (새 번역성경)

37:7~ 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그리고 10절에 보면 큰 군대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환상가운데 마른 뼈는 얼마나 심각한 상황입니까? 병든 것이 아니라 생명이 없고,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는 최악의 상태입니다. 이것은 당시 이스라엘의 상황이었습니다. 국가는 바벨론에 멸망을 당하고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가 비참한 삶을 사는 암울한 상황이었습니다. 에스겔은 영적으로 깨어날 때 영안이 열리고, 눈이 열릴수록 주변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정확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때때로 하나님은 성도들에게도 눈을 열어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세계를 보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눈을 여셔서 잠을 못 잘 만큼 가슴 아픈 상황을 보여주시기도 하십니다.

 

120 년 전에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우리 조선 땅을 본 상황이 에스겔이 보았던 골짜기 같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인습과 가난에 짓눌려 살아가는 무지한 조선 땅을 바라본 선교사의 마음은 한없이 절망적이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한국 땅을 살려낼 수 있을까? 선교사들이 고민하며 들어왔을 것입니다.

이 소망이 없고 절망적이었던 이 땅을 살려내기 위해 선교사들은 목숨을 걸었습니다.

 

마른 뼈들을 생각하면 사람에게는 세 가지 죽음이 있습니다.

첫째는 생물학적 죽음입니다.

육체에서 영혼이 떠나가는 것이 죽음입니다. 몸이 중요하지만, 몸을 지탱하는 것은 영혼입니다. 사실 사람이 죽는 현장을 보면, 호흡이 멈추고 영혼이 떠나면 사람의 건장한 육체나 근육이나 튼튼한 뼈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영혼이 떠나면 그의 육체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소중한 아들이라도 영혼이 떠나면 그의 육체는 흙으로 매장되어야 합니다.

이 생물학적 죽음은 아무도 피해갈 자가 없습니다. 아무리 유명한 권투선수라도 자기 앞에 닥아 온 죽음을 넘어트리고 피해갈 수 없는 것이며 아무리 총을 잘 쏘는 명수라도 자기 앞에 닥아 온 죽음을 무너트리고 피해갈 자가 없습니다.

 

아무리 부와 권력을 가진 자라도 아무리 유명한 의술을 자랑하던 명의라도 자기 앞에 닥아 온 죽음 앞에서는 속수무책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은 모두가 한번은 맞이해야할 죽음을 앞에 사는 것입니다. 자기 앞에 다가오는 죽음을 피해가거나 막아낼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죽음을 무너트릴 자도 없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입니다.

 

둘째는 영적인 죽음이 있습니다.

육적인 죽음은 내 영혼이 내 육체와 분리되는 것을 말하지만 영적인 죽음은 내 영혼이 하나님과 분리되는 것을 말합니다. 영혼이 하나님과 단절되어 분리된 상태를 영적인 죽음이라고 합니다. 육체는 살아있지만, 예수의 생명이 그 안에 없으면 하나님과 분리되고,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인생은 영적으로는 이미 죽은 사람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 인생의 마지막 결론은 영원한 죽음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며 우리는 죄와 허물로 죽었던 상태로 있었던 자인데 예수가 우리를 살리셨다고 고백했습니다. (2) 영적인 죽음이 있습니다.

 

셋째는 영원한 죽음입니다.

성경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죽음 앞에서 구원받은 자들은 영생으로 시작하게 되고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은 영원한 형벌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죽음이 온다 해도 사람의 영혼은 끝나지 않고 지속되는데 원을 받았으면 영생이지만 구원 받지 못했으면 영벌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죽음이 오기 전에 영생을 준비하지 못하면 다시는 기회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영적인 죽음입니다. 영적인 죽음을 하나님과 우리 영혼이 분리된 상태라고 보는 것은 사람들이 살아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 온 세상은 에스겔 골짜기의 해골 뼈들이 딩굴고 있는 상태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영적으로 깨어 있는 선지자의 영성을 가지는 성도들에게는 세상은 거대한 공동묘지와 같이 보여 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땅위에 70억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두가 이런 나그네 인생을 살다가 어느 순간에 영생 아니면 영벌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피할 자가 없습니다.100살 되신 노인에게 물어 보아도 인생은 너무나 짧다고 말을 합니다.

영원한 세상에 비춰보면 나그네 인생은 작은 점 하나와 같습니다.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의 법칙아래 삽니다. 언제 죽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선지자는 죽음의 권세 아래 지배받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게 됩니다. 구원받지 못한 인생을 살아가는 세상을 에스겔 골짜기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경제가 발전해서 넉넉하고 화려한 세상을 산다고 하더라도 구원받지 못한 인생은 생명력이 없는 소망이 끊어진 마른 뼈들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선지자는 사람을 바라볼 때 그 사람에게 생명이 있는가를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을 가진 것입니다.

영원히 썩지 않을 생명의 씨앗이 그 영혼 안에 있는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은 것, 마른 뼈입니다. 아무런 소망이 없는 에스겔 골짜기라는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를 마른 해골 골짜기로 보내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마른 뼈가 가득한 골짜기 안에 유일하게 산 자가 에스겔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마른 뼈들이 가득한 골짜기에 세우신 것은 에스겔을 통해 그 죽은 뼈들을 살리시겠다는 뜻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교회가 이 세상 한가운데 서 있는 이유는 성도들을 통하여 죽은 자를 살리는 일을 위한 것입니다. 육체의 날을 길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에게 진정한 생명의 씨앗을 심음으로 영원히 사느냐 죽느냐 하는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며 전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대언하라 명하셨습니다. 말씀을 선포해서 살려내라 명하신 것입니다.

아이가 출세하도록 이끄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 예수의 생명, 영원한 생명이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이런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가정과 교회는 에스겔 골짜기처럼 죽은 것과 같다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에게 질문을 던지십니다.

3~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에스겔은 자신 없는 대답을 했습니다. 속으로는 이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 뼈가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까? 말라도 너무 말랐습니다. 너무 오래되어 최악입니다. 1%의 가능성도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이 질문을 던지신 의도는 이 뼈들을 살리고 싶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첫 번째 명령을 하십니다.

4~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마른 뼈들에게 말씀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당황스러운 이야기입니까. 해골들이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습니까. 답답하고 기가 막힌 일입니다.

마른 뼈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라는 명령은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명령과 같습니다.

오늘도 강팍한 세상을 향하여 복음을 전하는 것은 마른 뼈들에게 외치는 것과 같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끔 전도하면서 저 사람에게는전도할 때가 아니야 하면서 전도를 거부할 때가 있습니다. 저 사람은 얼마나 박해하는지 모른다고.”그래서주저하고 망설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살고 죽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유능한 말로 전도한다고 해도 우리의 힘으로 예수를 믿게 할 수 없습니다. 생명을 주는 일, 구원의 역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7~ 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아멘. 하나님이 하십니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뼈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연결되었습니다. 에스겔이 한 것은 딱 한 가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그대로 전한 것뿐입니다.

멋진 말이 필요가 없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부흥이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의 능력이지 사람의 능력이 아닙니다. 우리의 언변으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에스겔이 한 것은 말씀을 대언한 것뿐입니다. 그런데 마른 뼈들이 살아났습니다.

 

10~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할렐루야!

 

마침내 마른 해골 떼가 군대가 되었습니다. 생기가 들어가서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생기입니다. 오직 성령의 역사입니다.

내가 전도하면 성령께서 역사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교회도 이런 기적을 체험하는 성도와 교회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들도 에스겔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전도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 하여 마른 뼈들이 살아나서 주님의 좋은 군사로 세움으로 사람을 살려내고 세상을 살려내는 하나님의 구령운동에 동참하시를 축원 합니다.

 

이것이 에스겔의 사명이요 오늘 우리들에게 주신 전도의 사명입니다. 우리는 현대판 마른 해골골짜기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럼으로 교회는 회복과 부흥을 위해 힘을 쏟아야 합니다. 교회는 구원받는 자가 날마다 많아져야 합니다. 정말 일년내내 성도들이 에스겔 선지자와 같은 심정으로 전도해서 교회에 등록하는 신자가 얼마나 됩니까? 일년 내내 한사람은 있습니까?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선지자적 사명을 가진 자들입니다.

2:28~ 2:17~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말세에는 아이들, 청년들, 노인들 등 <모든 사람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그 때 예언하고/ 꿈꾸고/ 환상을 볼 것이라고 요엘을 통해, 예언되어져 있습니다.

말세에는 아이들/청년들/노인들 등 모든 성도들은 선지자적 사명을 감당할 때 라는 것입니다. 환상을 보듯이 영안이 열려져서 심각한 상황을 느끼게 됩니다.

 

성령을 받은 모든 성도들은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천국과 지옥을 아는 자들이며, 영생과 영벌을 보는 자들입니다. 영안이 열리진 성도들은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마음에서 부 글 부글 끓어오릅니다.

 

고전 9:16~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바울의 고백입니다.

 

오늘도 영적으로 깨어 있는 성도들은 에스겔이 보았던 환상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깨닫게 되고 사명자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에스겔처럼 하나님의 도구들이 되어야 합니다. 선지자적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 살아나서 하나님의 나라에 좋은 군사들로 변화된 것처럼 오늘 우리 교회는 말세에 선지자적 사명을 잘 감당함으로 사람을 살려내고 세상을 살려내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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