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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성광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 성찬의 깊은 뜻, 세상 안에서!!

관리자 2015-09-02 (수) 10:13 10년전 603  

2015830(주일) 오전 730/1030분 주일낮예배 광주성광교회

 

성경본문 : 고린도전서 11 23 _ 26

제 목 : 성찬의 깊은 뜻, 세상 안에서!!

 

할렐루야! 우리 예수님의 은총과 평강이 오늘 주의 전에 나아와 예배 드리는 광주성광교회 모든 성도님들과 오늘 귀한 찬양을 주께 올린 성가대 위에 지금 따님의 결혼식 때문에 미국에 가 계신 박상규 목사님과 사모님 위에 이제 결혼을 하게 될 박의선 양과 이 데이빗 군 우에 흘러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무엇보다도 목사님이 나가 계시는 동안 소천하신 고 안용훈 집사님의 영혼 위에 부인이신 이인숙 권사님과 모든 유족과 자녀들 위에 주 성령님의 위로하심이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박상규 목사님께서 고인의 가족들에게 특별한 위로를 전해드리라 하였습니다. 저는 목사님이 안 계시는 동안 잠시 말씀을 맡았을 뿐이고 말씀에 대한 깊고 깊은 은혜는 여러분의 담임목사님으로부터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교회에서 성찬식을 거행할 때 읽는 본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1 23 절에서 26 절은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다시 인용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22 19 절에서 20 절을 보겠습니다.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을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붇는 것이라이렇게 말씀하신 때가 언제입니까?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이었고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저녁식사를 하신 던 때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셨을 것입니다. 제자들과 마지막 저녁을 하는 것이며 오래지 않아 자신은 잡혀가게 되고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 피흘려 죽으리라고 분명히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식사를 하실 때 빵을 떼어 나누면서 식사후 포도주를 부어 주면서 뭔가 빵과 포도주에 빗대어 제자들에게 깊은 영적인 가르침을 주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빵을 나누시면서 자신의 살이라 하시고 포도주를 나누시면서 자신의 피라 하시고 먹고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라!혹은 나를 기념하라!하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서 예수님께서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 주셨을 때 제자들과 함께 현장 그 자리에 앉아 하신 말씀을 바로 그 식탁에서 들었다고 해 봅시다. 당시 예수님의 표정에서 예수님의 음성에서 예수님의 심장의 고동으로부터 예수님께서 빵과 포도주를 나누신 그 진정한 뜻이 도대체 무엇이었을까를 한 번 깊게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바로 그 핵심을 잡는 것은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을 살아가는데 참 신앙생활을 하는데 참으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승천하신 후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서 초대교회가 형성되었습니다. 초대교회는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모여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기 위해 힘써 기도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로부터 예수님께서 생전에 하신 말씀을 전달받았는데 오늘날 이는 예배에서 설교로 발전되었습니다. 또한 사도행전 2 장에 보면 집에서 떡을 떼며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였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성찬이라 불리우는 예전이 시작되는 원형이 어디 있느냐 하면 집에서 서로 함께 <떡을 떼었다> 하였는데 바로 이것이 예수님이 이것을 행하여 날 기억하라는 행위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우리가 성경 사도행전 2 장을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을 살펴 볼 수 있는데 무척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44 절입니다. “믿는 사람이 다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절입니다.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주며” 46 절을 보겠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절입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저는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 가운데 뭔인가 놓칠 수 없는 걸 하나 발견합니다. 여기서 음식을 먹는다는 것과 떡을 뗀다는 것이 각각 있습니다. 떡을 떼는 것이 단순히 음식을 먹는 것이라면 그냥 한 번에 써도 될텐데 서로 따로 떼어 말씀한 것은 떡을 뗀다는 것 속에 어떤 특별한 의미가 들어있는 때문입니다. 떡을 뗀다는 것은 단지 식사를 하는 차원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떡을 떼셔서 나누어 주시면서 이는 내 몸이다!하신 것을 깊이 가슴에 새기기 위하여 함께 떡을 뗀 것입니다. 초대교인들이 가슴 속에 새기기만 하였습니까? 아닙니다. 떡을 뗀다는 것을 단지 음식물을 먹기 위해 쪼갠다는 뜻이 아닌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 자신의 생명을 나눠주심을 깊이 생각하고 떡을 떼는 일을 반복한 것입니다. 떡을 떼면서 그렇지! 사랑하는 우리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살과 피를 아낌없이 다 나누어 주셨지!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실 때 단지 떡만 떼어 나누어 주신 것이 아니지! 이 땅에 계실 때도 하늘의 말씀도 주시고 자상하시고 인자하신 정도 나누어 주시고 기적을 일으키시어 병도 고쳐주시고 죽으시면서 까지 물과 피를 흘리시면서 죽어 가시면서도 우리의 죄를 다 용서하여 주셨지! 자신의 몸을 분해하시고 해체하시어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온전히 모두 다 몽땅 털어 다 나누어 주셨지! 그렇게 생각하고 예수님의 삶을 회상하면서 기억하면서 기념하면서 떡을 뗀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만 하고 회상만 하고 기억만 하고 떡만 뗐습니까? 아닙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신의 삶을 떼어 나누기 시작하였습니다. 자기의 물건을 내놓아 서로 함께 통용하기 시작하였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마음도 나누고 기쁨도 나누고 예수님 때문에 받는 핍박과 박해도 함께 나누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모든 것을 다 나누며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만일 초대 교회 성도들이 그 나눔과 섬김의 삶을 자신들끼리에게만 해당시키고 그것을 세상사람들과 아직 안믿는 이웃들과는 담벼락을 쌓고 살았더라면 사도행전 2 47 잘 말씀의 현실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47 절입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빵과 포도주를 나누시면서 이를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는 말씀을 단순히 머리 속의 기억으로만 국한시키지 아니하고 자신의 삶 속에서 구체화시켜 신학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인카네이트(incarnate)하여 나눔과 섬김의 삶으로 전환시키면서 살았는데 그 삶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너도 나도 초대교인들의 착함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싶어 예수를 따르고 믿게 되는 역사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처럼 성찬의 삶을 살았던 것이고 이것이 빛이 되어 예루살렘을 환히 비추었고 그 빛이 광속도로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게 되어 그것 자체가 전도가 되고 선교가 되었던 것입니다.

 

초대교회를 지나면서 점점 그리스도교는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퍼져 나가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로마제국 깊숙이 복음이 스며들어 약 300 년이 지난 다음에는 로마제국이 자신의 국교로 선포할 만큼 기독교는 멀리 퍼져나가게 되었고 영향력있는 종교가 되었습니다. 기독교가 종교화가 되면서 예배를 드리는 예전도 점점 복잡한 형식을 더하게 되었고 예수님이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는 말씀을 즉 예수님의 성찬을 아주 예배와 예전 속에 담아 아주 긴 시간을 예배 속에 할애하였고 그 성찬예전을 신학화하여 <화체설>이라는 교리로 확립하였습니다. 화체설이 뭐냐 하면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만약 카톨릭의 사제가 서품을 받으면 천국의 열쇠를 맡는다. 사제가 떡과 포도주 위에 손을 얹고 축성을 하면 떡과 잔은 예수의 몸과 피로 변하고 불사의 능력이 그곳에 임재하게 된다. 그것은 너희가 믿던 안 믿던 상관이 없다. 왜 변하느냐고? 사제가 서품을 받을 때 그 능력을 받기 때문에 사제가 떡과 포도주를 위해 기도할 때 그 떡과 포도주는 본질이 예수의 몸과 피로 변하기 때문이지! 그렇게 변하기 때문에 성찬은 만병통치약이기도 하다>. 이것이 바로 화체설입니다.

 

이에 대하여 종교개혁가 루터는 반박하였습니다. “말 같지 않은 소리를 하지 말아라! 성례전은 마술이 아니다. 그래 사제가 축성하여 떡이 예수의 살로 변했다 치자! 그럼 제일 먼저 구원받은 이들이 교회성도들일 것 같나? 천만의 말씀이다. 그렇게 따진다면 구원서열 1 위는 교회 안에 돌아다니는 쥐들일 것이다. 빵도 갉아 먹고 포도주도 찔끔거리면서 마실테니까! 성찬의 효과는 마술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성찬에 실재하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그것은 헛것이다. 사제가 축성하던 하지 않던 그것은 상관없고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한 믿음 가운데 예수님께서 성찬에 현존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마르틴 루터의 <실재설>입니다.

 

이에 대하여 또 다른 종교개혁가인 쯔빙글리는 말하였다. “루터! 너는 성경 좀 더 읽어라! 예수님께서 제정의 말씀에서 뭐라고 하셨냐? 나를 기념하라 되어 있잖냐? 그러면 말씀 그대로 보면 성찬의식은 그날 그때를 상징하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쯔빙글리의 성찬론은 한마디로 <상징설-기념설>로 정리가 됩니다. 루터의 <실재설>과 쯔빙글리의 <상징설> 사이에 격론이 붙자 두 사람이 1529 년 마부르그에서 만나 회담을 합니다. 루터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쯔빙글리 너는 예수님께서 이것은 내 몸이다는 말씀은 왜 빼 먹는거냐?” “이것은 해석의 여지가 없는 주님의 말씀이고 그 분의 현존을 뜻하는 것이다. 그렇게 상징이라고 우겨대는 너 쯔빙글리와는 영영 이별이다하고 두 사람은 치열하게 싸웠고 그 두 사람들의 제자들이 세운 프로테스탄트의 교회들은 분열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살과 사랑의 피를 주신 것인데 카톨릭과 종교개혁가들은 서로 교회를 나누면서 사랑으로 주신 것을 열불나게 서로 싸우는데 사용하였고 성찬을 예수님의 가르침과 반대로 서로를 정죄하고 미워하는데 사용하였습니다.

 

종교개혁사 칼빈은 이 둘 사이에 논쟁에 대하여 쯔빙글리도 맞고 루터도 맞고 내 생각으로는 유한은 무한을 담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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