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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힝야족 난민캠프 르포①] 미얀마군에 남편 잃고 5남매 데리고 피난

관리자 2018-01-05 (금) 10:13 6년전 1234  

[로힝야족 난민캠프 르포①] 미얀마군에 남편 잃고 5남매 데리고 피난

http://kor.theasian.asia/archives/184286

 

<아시아엔> 독자분이 지난 주말 다음과 같은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오늘 밤 방글라데시로 출국합니다. 가서 로힝야 병원 만드는 것 세팅 잘 하고 병원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가능하면 한번쯤 오셔서 세계 최대의 난민촌을 둘러보고 격려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함께 어깨 걸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하여 그에게 현지 사정을 전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오늘(10일) 아침 첫 글을 보내왔습니다. 그는 국내에 있는 동안 의약품·의료기 등을 확보하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정신없이 다니다가 훌쩍 떠나오게 되었다”며 “한국에서 많은 분들이 이곳 실상을 알고 기도해주시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아시아엔>은 그 독자분이 방글라데시와 미얀마 접경지대 콕스 바자르 지역의 로힝야 난민캠프에서 보내오는 로힝야 현지 르포를 독자들께 전할 예정입니다. 필자 이름은 본인의 요청에 따라 밝히지 않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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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편집국] 드디어 로힝야 난민들이 대거 집결한 콕스 바자르 지역 난민캠프에 도착했습니다. 그 지역에 방글라데시와 미얀마 접경지대의 국경선은 조그만 강이었습니다. 보따리 짐을 이고지고 아이들의 손을 잡고 건너오는 로힝야 피난민들의 고난의 자리이자 생명의 자리입니다.

로힝야 난민캠프 입구는 발디딜 틈이 없는 인산인해로 우리도 차에서 내려 함께 걷기 시작했습니다. 로힝야 피난민은 물론 이들을 지원하는 방글라데시 사람들, 지원물품을 실은 트럭과 오토릭샤 등이 함께 길을 메우고 있습니다. 많은 피난민들은 지원물품을 받으러 오거나 지원받은 물품을 가지고 갑니다. 필요한 천막지와 땔감 등을 이고 지고 바쁘게 길을 갑니다. 그 틈에도 아이들의 손을 불끈 쥐고, 울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염소를 끌고 길을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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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살쯤 앳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자기 몸보다 더 큰 땔감 나무 묶음을 허리에 끼고 갑니다. 이것이 삶의 무게만큼이나 힘든 길입니다.

남루한 옷차림에 조그만 비닐봉지를 하나를 가슴에 안고 가는 여자 아이 하나를 만났습니다. 이마에 구슬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는데 달랑 비닐봉지 하나를 들고 있습니다. 그 아이를 붙들고 통역을 통해 봉지에 들어있는 내용물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밧!”(밥)이라는 단 한마디 답이 돌아왔습니다. 비닐 봉지를 푸니 몇 주먹 분량의 ‘께초리’(쌀과 카레, 녹두를 넣고 하는 밥으로 딴 반찬 없이 먹는 밥)를 보여 줍니다.

연이어 질문을 던져봅니다. 이름은 ‘따슬리마’, 11살이라고 합니다. 미얀마 라카인주에서 살다가 엄마와 동생 네 명과 함께 방글라데시로 피난 왔다고 합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골목길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가족들은 어디에 있어요?”

“멀리 천막(집)에 있어요.”

“가족은 모두 몇 명이에요?”

“여섯명. 엄마와 나 그리고 어린 동생 네명이 있어요.”

“아버지는 어디에 있어요?”

“돌아가셨어요.”

“어떻게요?”

“들이닥친 미얀마 군인의 칼에 목을 베인 채 돌아가셨어요.”

“그 일이 언제 일어났어요?”

“한달 전에요.”

“아버지가 그렇게 된 걸 어떻게 알았어요?”

“집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그 자리에 있었어요. 직접 보았어요.”

“방글라데시에는 언제 왔어요?”

“일주일 전이요.”

어린 따슬리마는 하염없이 눈물을 훔쳐내고 있습니다. 그 일로 엄마는 자신과 어린 동생 네명을 데리고 국경을 넘어 왔다고 합니다. 엄마는 어린 동생들을 데리고 있고, 큰 딸인 자신이 밥을 얻으러 나왔다고 합니다. 달랑 몇 주먹밖에 되지 않는 밥을 비닐봉지에 받아 엄마에게 돌아가는 길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제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집니다.

엄마와 어린 동생들을 만나보고, 사는 모습도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가족이 있는 천막은 어디에 있는지 물었습니다. 거기는 멀다고 합니다. 얼마나 멀리 있는지 다시 물으니 3시간을 걸어가야 한다고 대답합니다. 아뿔사, 나는 갑자기 ‘어떻게 해야 할까?’ 머리가 어지러웠습니다. 허리도 아프고 무릎과 발목이 좋지 않아 멀리 걷기도 힘든데다가 함께 하는 10여명의 일행도 있고, 일정 상 다른 난민캠프도 돌아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혼란스러움을 느끼며 따슬리마네 가족 방문은 순간적으로 포기했습니다. 함께 걸어 가주기를 포기한 저 자신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왜 괜히 물어 보았을까 후회가 되었습니다. 다시 눈물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턱도 없이 적은 양의 밥을 가지고 가서 엄마와 어린 동생들과 함께 나눠 먹어야 할 터인데 걱정이 되었습니다. 괜히 물어보고 함께 가지 못하는 죄책감을 가리우고자 지폐 한 장을 꺼내어 남들 볼세라 살짝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아이는 비쩍 마른 얼굴에 눈만 껌벅이면서 인사도 없이 잰 걸음으로 떠나갑니다. 신발도 없이 맨 발로 길을 재촉하는 따슬리마의 뒷모습이 애처로워 보입니다. 제 가슴은 먹먹하기만 합니다.

방글라데사 콕스 바자르에 있는 로힝야족 난민캠프에서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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