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통령 물러난 뒤 기장 총회장… 함태영 목사의 삶과 신앙 재조명 [출처] 기독교 일간지 신문 기독일보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165543#share] > 법인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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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통령 물러난 뒤 기장 총회장… 함태영 목사의 삶과 신앙 재조명 [출처] 기독교 일간지 신문 기독일보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165543#share]

관리자 2026-10-19 (월) 09:21 4일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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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대학교 학술원 신학연구소가 한신대학교 서울캠퍼스 컨벤션홀에서 ‘송암 함태영 목사의 삶과 목회, 그리고 신학’을 주제로 제1회 효촌 강좌를 개최했다. 

  ©한신대학교 학술원 신학연구소



한신대학교 학술원 신학연구소가 16일 오전 한신대학교 서울캠퍼스 컨벤션홀에서 ‘송암 함태영 목사의 삶과 목회, 그리고 신학’을 주제로 제1회 효촌 강좌를 개최했다.


효촌장학위원회(위원장 배태진 목사)의 후원으로 마련된 이번 강좌는 독립운동가이자 목회자, 대한민국 제3대 부통령을 지낸 송암 함태영 목사(1873~1964)의 생애와 활동을 정치사·교회사·신학적 관점에서 살펴보기 위해 기획됐다.


함태영 목사는 대한제국 시기 법관으로 활동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3·1운동에 참여해 옥고를 치렀다. 이후 한국 장로교회의 발전과 신학교육에 참여했으며, 해방 후에는 심계원장과 부통령을 역임했다. 한국신학대학 학장과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 등도 맡았다.


강좌는 이영미 한신대학교 신학연구소장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강성영 한신대학교 총장이 환영사를 전했다. 이어 이훈삼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총무, 배태진 효촌장학위원회 위원장, 함재봉 한국학술연구원 원장이 축사를 맡았다.


강 총장은 환영사에서 함태영 목사의 생애를 목사와 부통령, 한국신학대학 학장, 교단 총회장이라는 네 가지 역할을 중심으로 살폈다. 그는 함 목사가 법관으로서 정의를 지키고 목회자로서 교회와 민족을 위해 활동했으며, 국가 지도자로서 청렴과 양심을 중시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함 목사가 조선신학교 설립과 운영에 참여하고 한국신학대학 학장으로서 신학교육의 기반을 마련한 점을 언급하며, 그의 생애를 통해 한신대학교의 창학 정신과 한국교회의 역사적 역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정무용 교수, 함태영의 해방정국 정치활동과 제1공화국 시기 행보 분석


첫 번째 발제에 나선 정무용 한신대학교 교수는 ‘송암 함태영의 한국 현대 정치사적 위상’을 주제로 함태영의 해방 이후 정치활동과 제1공화국 시기 공직 수행을 분석했다.


정 교수는 함태영이 대한제국 시기 법조인으로 활동하고 일제강점기 3·1운동에 참여했으며, 해방 후 대한민국 부통령을 지낸 인물이지만 그의 정치·사회적 활동을 다룬 연구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함태영의 정치적 행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방 직후 건국 과정과 제1공화국의 정치적 상황을 함께 살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함태영이 정치적 판단과 선택에 관한 기록을 많이 남기지 않은 만큼, 당시 정치 환경과 그가 참여했던 조직을 중심으로 정치적 입장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해방 직후 함태영이 조선기독교 남부대회를 통해 기독교 조직 재건에 참여하는 동시에 건국을 둘러싼 정치활동에도 나섰다고 설명했다. 함태영은 초기 한국민주당 결성에 가담했으며, 이승만 귀국 이후에는 독립촉성중앙협의회에 참여했다.


1945년 12월에는 독립촉성기독교중앙협의회 회장을 맡아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지하고 민족통일과 독립을 촉구했다. 이후 김구가 주도한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에도 참여했으며, 비상국민회의와 민주의원 등 건국 과정에서 구성된 정치조직에서 활동했다.


정 교수는 이러한 행보를 토대로 함태영이 이승만과 김구 사이에서 통합 또는 중재를 지향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그는 “그가 내세운 통합의 범위는 어디까지나 진영 내에서 머물렀다”며 함태영의 정치활동이 주로 우익 진영 내부에서 이뤄졌고, 당시 추진된 좌우합작운동과는 거리를 두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함태영의 공직 활동도 살폈다. 함태영은 1949년 제2대 심계원장에 임명돼 공직자의 윤리와 청렴을 강조했으며, 국가 재정의 관리와 감찰 업무를 수행했다.


정 교수는 함태영이 심계원장 재임 당시 국유재산 관리와 정부 예산 집행에 대한 감독을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법조인 시절부터 중시했던 공정성과 청렴의 원칙이 공직 수행에도 반영된 사례로 분석했다.


1952년 부통령 선거와 관련해서는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정치적 선택과 함태영 자신의 판단을 함께 검토했다. 그는 이승만의 지지가 함태영의 당선에 영향을 미쳤지만, 함태영의 정치적 의사를 단순히 수동적인 것으로만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함태영은 부통령으로서 정부와 국회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으나, 재임 기간 양원제가 시행되지 않으면서 헌법상 부통령에게 부여된 역할을 수행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분석했다.


정 교수는 “그는 발췌개헌에 대해서도 입장을 표명한 바 없었고 그의 재임 기간 동안 추진된 사사오입 개헌에 대해서도 특별한 견해를 밝힌 바 없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함태영이 정당정치에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으며 이승만을 보좌하는 데 무게를 뒀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자로서의 면모가 정치활동에서는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또한 반공주의와 이승만에 대한 신뢰가 그의 정치적 판단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했다.


[출처] 기독교 일간지 신문 기독일보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165543#sh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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